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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3. 앨프리드 챈들러의 『보이는 손』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을 경영이란 ‘보이는 손’이 대체하다

김두얼 | 244호 (2018년 3월 Issue 1호)
Article at a Glance
앨프리드 챈들러(1918∼2007)는 경영사(business history)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다. 학계에 BC(Before Chandler)라는 구분이 있을 정도다. 그가 1977년 출간한 『보이는 손』은 18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미국 근대 대기업의 탄생 과정을 체계적으로 분석한 책으로 1978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이 책에서 챈들러는 19세기 초 미국에서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을 경영이라는 ‘보이는 손’이 대체하는 과정이 벌어졌다고 주장한다. 시장을 대신해 기업이 생산과 유통의 상품 흐름을 조율하고 자금과 인력을 배분하는 기능을 담당하게 되면서 근대적 대기업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기업의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고 봉급을 받는 중간 및 최고경영자 집단이 등장해 새로운 경영자 계급을 형성했다. 오늘날 미국의 경영자 자본주의(managerial capitalism)가 뿌리내리게 된 역사적 배경을 제시함으로써 대기업의 존재 의미에 대한 통찰을 준다.

산업혁명은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사건임에 틀림없다. 문명이 태동한 이후 오랜 기간 인류는 겨우 생존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의 소득만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18세기 말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난 이후 지난 200년 동안 인류의 생활수준은 엄청난 속도로 발전했다. 산업혁명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서 이런 변화가 가능했는지 끊임없이 연구가 이뤄지는 이유다.

산업혁명은 18세기 말 영국에서 시작했지만 두 번 더 ‘새로운’ 산업혁명이 나타났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진행된 제2차 산업혁명, 1970년대 이후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는 제3차 산업혁명이다. 로버트 고든 교수는 책 『미국의 성장은 끝났는가』1 에서 인류가 20세기에 역사상 유례없는 풍요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제2차 산업혁명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아울러 생산성의 증가라는 측면에서 볼 때 IT 산업을 중심으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제3차 산업혁명은 제2차 산업혁명과 비교할 바가 안 된다는 증거를 수없이 제시한다. 우리가 제3차 산업혁명의 시기를 살고 있으면서도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신기루를 좇고 있는 이유는 어쩌면 새로운 기술혁신이 일어나리라는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제3차 산업혁명이 우리의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데 따른 실망이 큰 탓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제2차 산업혁명은 왜 그렇게 혁신적이었을까? 제1차 산업혁명과 비교할 때 제2차 산업혁명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생산 규모의 변화로부터 찾을 수 있다. 제1차 산업혁명을 대표하는 산업은 면방직 공업이었다. 19세기 초 영국의 대표적인 공업도시들에는 동시대인들을 놀라게 하는 엄청난 규모의 면방직 기계와 이러한 기계들이 수십, 수백 대씩 작동하는 대규모 공장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공장에서는 수백 또는 수천 명의 노동자가 모여 일했다.

하지만 이런 공장들도 제2차 산업혁명 시기의 대표적인 공장들과 비교해 보면 여러 면에서 초라한 수준이다. 1901년 탄생한 US스틸사는 자본금 14억 달러에 종업원이 10만 명에 달했다. 1920년 말 완성된 헨리 포드의 리버루지(River Rouge) 공장에서는 공장 하나에서 10만 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근무했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중화학공업이 아닌 다른 산업군에서도 유사한 변화가 진행됐다는 점이다. 예컨대 19세기 말 미국에서 살아 있는 소를 소비지로 가져와 도살하는 대신 생산지에서 도축한 뒤 냉동 기차로 운반하는 포장육 기업이 등장했다. 미국 중서부에 위치한 스위프트컴퍼니의 공장은 미국 각 도시에서 소비되는 엄청난 양의 소를 한 곳에서 도축했다.

제2차 산업혁명 기간 많은 제조업 분야에서 대규모 공장을 경영하는 기업들이 등장했다. 앨프리드 챈들러는 이 기업들을 ‘근대적 대기업(modern business enterprise)’이라고 명명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도대체 왜 이런 기업들이 등장하게 됐을까?

챈들러가 던진 질문은 사실 19세기만 해도 아예 생각조차 못했던 질문이었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으로부터 앨프리드 마셜의 『경제학 원리(Principles of Economics)』에 이르기까지 19세기 경제학의 고전들 어디에도 ‘기업의 크기’를 문제 삼는 진지한 논의는 없었다.

이 주제에 대한 본격적 문제 제기는 20세기 초반에 서서히 등장하게 되는데 그 가운데서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널드 코즈의 기념비적인 1937년 논문 ‘기업의 본질’2 이 이후 연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경제주체들은 시장에서 서로 대등한 위치에서 계약을 맺고 교환을 하는 반면 기업 내에서는 명령과 복종이라는 위계질서를 따른다. 코즈는 경제주체들이 어떤 상호 작용을 기업 내에서 할지, 아니면 시장을 통해서 할지 여부를 거래비용의 크기를 고려해서 결정한다는 유명한 명제를 제시했다.

코즈의 직관은 기업과 보다 넓게는 제도가 왜 존재하는가에 대해 새로운 이해를 가능하게 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어떤 활동이 기업 내에서 이뤄진다는 것은 시장에서 이뤄질 때보다 비용이 덜 들기 때문이다. 즉 이러한 설명은 효율성의 관점에서 기업의 존재, 나아가 규모를 설명하는 토대를 제공했다.

챈들러의 『보이는 손(The Visible Hand, The Managerial Revloution in American Business)』은 제2차 산업혁명의 중심인 미국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코즈의 직관을 실증적으로 구명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19세기 전반까지도 미국에서는 수많은 생산자와 도매상, 소매상, 소비자들이 시장에서 상호작용을 했던 반면 19세기 말에 이러한 교환 중 상당 부분이 대기업 안으로 흡수된다. 챈들러는 이러한 변화 과정을 대하 역사소설처럼 서술하면서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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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적 대기업의 등장
- 제1부 전통적인 생산 및 유통 과정, 제2부 운송 및 통신 혁명

이 책은 크게 다섯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먼저 1부는 대기업이 등장하기 전, 즉 대략 1790년부터 1840년까지 미국의 경제 상황과 기업 활동을 개괄하고 있다. 챈들러는 근대적 대기업의 등장을 기업이 시장을 대체하는 과정으로 설명한다.

미국은 18세기 말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뒤 지속적인 경제 팽창을 경험했다. 이민과 출산 등을 통해 인구가 빠르게 증가했으며 동부 해안에 집중돼 있던 인구가 서부로 이동하면서 지리적 팽창이 동시에 진행됐다. 인구 증가와 지리적 팽창은 애덤 스미스가 이야기했던 현상, 즉 시장 규모의 증가가 분업의 심화를 가져온다는 현상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제2차 산업혁명이 본격화되는 1880년대 이전 미국에서 생산과 유통은 다른 여느 경제들과 마찬가지로 별개의 영역이었다. 생산자는 제품을 생산했고, 도매상인은 생산자로부터 제품을 넘겨받아 소매업자나 소비자들에게 판매했다. 대개 이러한 과정에서 상품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단계의 거래를 거치기 마련이었다. 분업의 심화는 생산성을 높여 19세기 초 미국 경제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 이런 상황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온 것이 바로 철도의 등장이다.

제2부는 철도 기업의 발전을 다룬다. 국가가 철도 산업을 독점 운영하고 있는 한국과 달리 미국은 다수의 민간 기업들이 서로 경쟁하며 최초의 근대적 대기업으로 발전한다. 챈들러는 철도회사들이 수많은 승객과 화물을 제시간에 정확한 지점으로 운송하기 위해 많은 인력을 관리하고 엄청난 양의 정보를 처리하면서 대기업의 내부 구조를 형성하는 경영 위계, 다양한 경영 기법들, 근대적 회계 기법을 최초로 발명했다고 강조한다.

철도회사는 설립 단계에서부터 대규모 자본 조달이 필요했기 때문에 미국의 자본시장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실제로 19세기 미국 주요 주식시장에서 거래되는 주식 대부분은 철도 주식이었다. 이처럼 외부로부터 많은 자본을 조달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오늘날 근대적 주식회사의 특징으로 언급되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나타났다.

철도망의 확산은 빠르면서도 안정되고 지속적인 물류 흐름을 제공함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시장 통합을 가져왔다. 철도기업은 최초의 근대적 대기업이면서 동시에 다른 대기업들을 창출한 모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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