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RD전략 ‘70:20:10’ 모델: 이찬 서울대 교수 강연고3 때로 돌아가 보자. 입시 준비하면서 경쟁력이 높은 친구들이 어떤 사람이었나? 잠 안 자고 하는 친구들, 잘 먹지도 않고 화장실도 잘 안 가면서 공부하는 친구들, 이런 친구들이 무서운 대상이다. 이런 친구들과는 경쟁하면 안 된다. 이기기 쉽지 않다. 빨리 파트너십을 맺어 협업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친구들이 양산되고 있다. 인공지능이다. 이 친구들은 머신러닝 기능까지 갖고 있다. 경쟁하겠다고? 절대 이길 수 없는 구도다. 이런 상태에서 앞으로의 HRD 또는 HRM은 Robot resource develop, Robot resource management와 연동해서 갈 수밖에 없다.
경제가 성장해도 일자리가 늘지 않는 것은 산업의 속성 자체가 예전 같은 노동 집약적 산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을 마치 개인 혹은 개별 기업의 문제로 치부하면 우리는 여전히 취업 학원가로 청년들을 내몰 수밖에 없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요구되는 역량이 과연 취업 학원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일까? 교육하는 분들이 조심해야 하는 2가지 실수가 있다. 하나는 가르쳐야 하는데 가르치지 않는 것, 다른 하나는 가르치지 말아야 할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학원 보낼 시간에 차라리 놀게 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앞으로 요구되는 역량은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듯 창의성과 소통 등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 회사들의 직급별 창의성은 어떨까? 거의 정확하게 직급과 역순이다. 들어갈 때는 그나마 창의성이 남아 있다. 사원들의 창의성이 가장 높다. 그다음 사원-대리-과장-차장으로 갈수록 일관되게 감소한다. 재밌는 부분은 그다음이다. 차장보다는 부장의 창의성이 높다. 부장보다는 임원이 더 높다. 이 지점이 많은 것을 시사한다. 사실 창의는 자기주도적으로 얼마나 업무를 추진할 수 있느냐와 관련이 깊다. 제일 괴로운 사람들은 위아래로 치이는 과장이나 차장급이다. 신입사원들에게 초점을 맞춰 워라밸이 강조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인공지능 도입으로 가장 크게 도전받을 그룹이 바로 과차장급이다.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인공지능은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협업의 대상이다. 우리는 인간 고유의 역량을 더 부각하고 육성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 지금의 제도권 교육은 아이들을 집어넣으면 넣을수록 기존에 갖고 있던 창의성마저 소멸시키는 체계에 가깝기 때문에 우리는 일하면서 창의성을 육성시킬 수 있는 패러다임으로 가야 한다. 70대20대10 모델이다.
이 모델은 이미 1980년대에 제시된 것인데 우리가 일하는 데 필요한 지식과 기술과 태도의 70%는 결국 현업에서 일하면서 실제로 배우는 것이고, 20% 정도는 관계 속에서 배우는 것이고, 10% 정도는 집체교육에서 배우는 것이라는 게 핵심이다. 신입이나 입문자들에게는 집체교육이 어느 정도 의미를 갖는다. 10% 정도 교육을 한 후에는 코칭이나 멘토링 같은 선배와의 관계를 통해 배우는 시간을 갖는다. 전문성이 숙련될수록 경험을 키워야 한다. 현업에서 일하면서 배우는 것이 나머지 70%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 비율이 완전히 뒤바뀐 경우가 많다. 집체교육에 70%의 시간과 인력을 투입하고, 20% 정도 멘토링이나 코칭을 하고, 실제 현업에서의 교육은 10%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많다.
페이스북에 입사해 일하고 있는 한국인들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교포 말고 한국에서 공부한 후 페이스북 미국 본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었는데, 이들에게 ‘가장 인상 깊고 당황스러운 일이 무엇이었는가’라고 물으니 ‘일을 주지 않는 것’이란 답을 들었다. 일을 주지 않고 네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오라고 했던 게 가장 어려운 과제였다고 한다. 실제로 이런 기업들은 리더들에게 일을 시키지 말라고 한다. 우리가 채용을 잘했다면 신입은 리더보다 똑똑할 것이다. 그렇다면 리더가 신입에게 일을 시키면 안 된다. 따라서 신입이 일을 잘할 수 있게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라는 논리다. 리더는 일을 시키지 않는다.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이 사람이 행복한지, 일을 통해 성장하고 있는지 등 3가지를 중점적으로 본다.페이스북은 매주 수요일을 패밀리데이라고 정해놓았다. 어떻게 운영하는가 봤더니 출근을 아예 하지 않는다. 패밀리데이니까. 만약 어쩔 수 없이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 있으면 출근하기는 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회의를 소집하거나 e메일을 보내지 않는다. 그냥 자기 일만 하다 퇴근한다. 우리 기업들도 패밀리데이 많이 한다. 그렇지만 현실은 어떤가? 역설적이게도 패밀리데이 때 회사 근처 호프집이 제일 붐빈다.
채용도 다르다. 채용 가장 마지막 단계에 부서장들이 와서 자기 업무를 신입들에게 발표한다. 그 발표를 듣고 신입사원이 가고 싶은 부서를 골라 들어간다. 이렇게 밑에서 위로 올라가는 보텀업(bottom-up) 방식의 HR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70대20대10의 비율을 어떻게 정착시킬 것인가의 문제가 앞으로 HR의 패러다임을 가져갈 것이다. 현업 경험의 비중을 어떻게 높여갈 것인가. 어떤 기회를 제공하고, 어떤 커리어 패스를 제공할 것인가 하는 점이 상당히 중요해질 것이다. 우리는 지금 과도기에 놓여 있다. 이게 몇 가지 인사 평가 시스템만으로 결정되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정리=최한나 기자 h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