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6. 동네 서점의 부활

책 파는 곳 아닌 ‘동네 지식공동체’, 독자와의 친밀성으로 다시 살아난 책방

239호 (2017년 12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동네 서점의 흥행이 서점 비즈니스의 본질을 바꿔놓고 있다. 종래 필요한 책을 거래하는 장소였던 서점이 독자들의 취향을 서로 연결하고, 책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하게 만드는 사회적 공간으로 진화했다. 책의 사용가치는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에서 ‘취향의 공동체’를 위한 도구이자 ‘특정한 라이프 스타일’을 실천하는 수단으로 확대됐다. 동네 서점은 책을 매개로 독자들에게 매력적인 경험을 제안하는 형태로 지금도 변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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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서점이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참고서가 가득하고 베스트셀러 판매가 중심인 과거의 동네 서점이 아니다. 독특한 공간 연출과 다양한 큐레이션으로 무장한 새로운 스타일의 서점이다. 일부에서는 일시적 유행으로 보고 ‘트렌드 서점’으로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요즘 나타나는 동네 서점은 판박이 가치를 지향하지 않고, 책을 중심으로 자주적인 취향 공동체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독립 서점’이라고 부르는 게 적합하다. 온라인 서점의 폭발적 성장과 대형 체인 서점의 공격적 지점 확대는 동네 서점의 존립을 지금도 위협하고 있다. 스마트폰 읽기가 일상화되면서 책으로 상징되는 긴 글 읽기의 욕구가 고갈되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그런데도 독립 서점의 반격이 거센 이유는 무엇일까. 2015년 9월1일 전국에 70군데 정도였던 독립 서점은 2017년 7월 말 현재 257군데로 늘어났다. 나흘에 하나꼴로 독립 서점이 생겨나는 중이다. 독립 서점의 도전은 오래전 지도에 아주 작은 노란 점 하나가 찍히면서 시작됐다.


거대 자본과 베스트셀러로부터 독립

2011년 서울 서교동, 카페와 술집이 즐비한 홍대 거리 한복판에 노란색 로고가 눈에 띄는 가게 ‘땡스북스’가 들어섰다. 무차별 할인을 내세운 인터넷 서점의 공세와 대형 체인 서점의 방어적 확장 때문에 동네 서점이 줄이어 폐업하던 때였다. ‘하루가 멀다 하고 임대료가 치솟는 홍대 앞에서 서점을?’ 호기심에 찾아가 보니 책이 빼곡하게 들어선 종래 서점과 공간 구성이 완전 달랐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가끔씩 접하던 갤러리형 또는 카페형 서점이었다. 가능한 한 많은 책을 구색으로 갖춰 놓고 파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동네 사람들 취향에 맞춤한 책만 골라서 가져다 놨다. 책을 파는 데 집중하기보다 책을 편하게 즐기도록 연출했다. 책과 직접 관련된 행사를 넘어서 음악회, 전시회, 강연회 등이 수시로 열렸다. 동네 사람들이 만든 책이나 잡지, 음반이나 소품 등도 진열했다. 이런 감성의 서점은 종래에 없었다. ‘가가린’이나 ‘이음아트’ 같은 독특한 서점이 있었지만 한쪽에서 독립 출판물을 취급하는 정도였다.

낯선 것은 호기심과 열광을 불러오는 동시에 냉소나 무시도 낳는다. 처음엔 얼마나 버틸지 우려하는 시선이 더 많았다. 주요 출판사로부터 책을 공급받는 것도 어려웠다고 한다. 하지만 새로운 삶을 갈망하는 이들의 호응이 꾸준히 이어졌다. 혁신의 첫걸음이 늘 그러하듯 대중은 이미 즐길 준비가 돼 있었고 자신들의 봉기를 도와줄 촉매가 필요했을 뿐이다.

그로부터 7년 후 땡스북스의 씨앗을 받아 전국에 수많은 서점이 용기 있게 꽃을 피웠다. 척박한 대지를 이기고, 인간과 책이 만나는 새로운 문화적 형식을 실험하는 이 서점들을 종래의 서점과 구분해 ‘독립 서점’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늘어났다. 2014년 11월부터 실시된 도서정가제는 신구간 서적의 할인을 15%로 제한함으로써 독립 서점의 백화제방에 든든한 파수꾼이 됐다.

독립 서점이라면, 도대체 무엇으로부터 독립한 것일까. 먼저 거대 자본으로부터 독립했다. 교보문고나 영풍문고 같은 대형 체인 서점, 예스24나 알라딘 같은 인터넷서점의 지점이나 프랜차이즈가 아니고, 더 나아가 다른 분야 기업의 계열인 경우도 드물다. 다음으로 베스트셀러로 상징되는 전국 균일의 서점 질서로부터 독립했다. 많은 독립 서점이 베스트셀러의 진열이나 판매에 신경 쓰기보다 자기 독자의 라이프 스타일을 반영하는 책을 고르는 데 집중한다. 이 두 가지 요소가 독립 서점을 지탱하는 두 다리이고, 이에 박자를 맞춰 호응하는 출판사(저자)와 독자가 독립 서점을 활기차게 만드는 양팔이 됐다. 여기에 서점 주인의 독특한 철학이라는 심장이 뜨거운 피를 공급했다. 루쉰은 말한다. “지상에는 본래 길이 없었는데, 걸어 다니는 사람이 많아지자 길이 된 것이다.” 책 문화의 황무지에서 독립 서점이 새로운 길을 낼 수 있었던 배경을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서점 위기 속에서 동네 서점이 뜬 배경

1995년 아마존이 등장한 이래, 전 세계적으로 오프라인 서점의 쇠퇴 기미는 뚜렷했다. 서점 왕국이라는 일본의 경우에도 1995년 2만2296곳에 달하던 서점이 2015년 1만2526곳으로 20년 만에 43.9%가 사라졌다. 프랑스도 마찬가지로 2000년 1051곳이었던 서점 숫자가 2014년 756곳으로 28.1%가 줄었다. 미국의 경우 역시 체인 서점 숫자가 급속히 감소하고 있다. 미국 최대 서적 소매업체 반스앤드노블은 수익이 나쁜 지점을 폐점하는 등 사업을 축소하고 있고, 2011년 서점 보더스는 파산해 버렸다. 그 결과 2009년 3만1126곳이었던 체인 서점 숫자는 2016년 2만4611곳으로 20.1% 축소됐다.1

한국 서점도 온라인 경제의 폭풍우를 피하기는 어려웠다. 2005년 3429곳에 달하던 서점이 2015년 2116곳으로 줄어들어 38.3%가 증발했다. 1995년에 서점 숫자가 5400곳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20년 동안 전국에서 71.3%의 서점이 사라진 셈이다. 지자체 중 서점이 한 군데도 없는 서점멸종지역이 6곳이나 되고 서점이 하나만 있어서 위기에 처해 있는 서점멸종 예정지역도 43곳에 달한다.2  ‘서점의 학살’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의 위기다.

서점의 심각한 위기를 가져온 원인을 내외부로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외적 요인은 다음과 같다. ① 정보화 혁명에 따른 콘텐츠 소비구조 변동으로 도서 수요 축소, ② 모바일 기기 보급으로 인한 독서 환경 악화, ③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학령인구 감소, ④ 자유 학년제 실시 등 교육정책 변화에 따른 참고서 수요 축소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독서문화 위축이 가장 심각하다. 성인 독서율은 2007년 76.7%에서 2015년 65.3%로 11.4%포인트 떨어져 성인 3명 중 1명이 한 해에 책을 1권도 읽지 않는 비독자에 속한다. 성인의 하루 평균 독서시간은 1999년 9분에서 2014년 6분으로 감소했고, 성인의 연평균 독서량 역시 2007년 12.1권에서 2015년 9.1권으로 줄었다. 그 결과 가구당 월평균 도서구입비가 2010년 2만1920원에서 2016년 1만5335원으로 6년 만에 30%(6585원)나 떨어졌다. 2016년 신간 서적의 평균 정가가 1만8018원임을 감안하면 1가구가 한 달에 책을 1권도 채 구매하지 않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다음으로 내적 요인을 살펴보자. ① 도서정가제 실시에도 도서소비의 온라인화가 여전히 강화되는 추세다. 주요 온라인서점 매출액은 2015년 7594억 원에서 2016년 8701억 원으로 14.5% 증가했다. ② 주요 체인 서점의 방어적 공세도 전혀 누그러지지 않아 도서정가제를 계기로 곳곳에 다양한 형태의 지점을 세우고 있다. 그 결과 주요 체인 서점의 매출액은 2015년 7722억 원에서 7759억 원으로 소폭 증가했다. ③ 알라딘 등 온라인서점에서 운영 중인 중고서점 역시 도서생태계의 순환을 교란함으로써 동네 서점의 존립을 위협 중이다. ④ 신간 도서의 발행종수가 크게 늘어나면서 반품처리로 인한 거래비용이 증가하는 와중에 송인서적 등 도매상이 부도나는 등 물류 부문의 불확실성은 점차 커지고 있다.

몇 년째 세상을 떠도는 ‘서점 위기론’은 이러한 현실로부터 나왔다. 이대로 가면 서점이 소멸할 수밖에 없으며, ‘지역문화의 사랑방’인 서점이 명맥을 이어갈 수 있도록 사회의 전면적 관심과 각종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작은 교보문고’ 격인 종래의 동네 서점 형태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지역주민의 사랑을 돌려받거나 사업적 활로를 찾기 어려워졌다. “서점이 완결된 텍스트의 전달이 아니라 책의 향기를 전달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독자들이 떠난 것”(서점 ‘책이 있는 글터’의 이연호 사장)이라는 자성의 목소리가 커졌다. 동네 서점이 책과 사람이 만나는 물리적 공간으로서 독자들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면, 인터넷서점이나 체인 서점의 다양성과 편리함을 이기기 힘들다는 위기감이 커졌다. 독자가 책의 소비자가 아니라 독자로서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을 갈망하는 욕구를 채워 줄 새로운 형태의 서점이 필요했다.

‘독립 서점’은 이런 위기 속에서 가장 창조적인 형태로 등장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서점 폐업이 줄을 잇는 세계에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형태의 서점들이 일어섰다. 문학 전문 서점 ‘고요서사’, 추리소설 전문 서점 ‘미스터리 유니온’, 밤에만 영업하는 심야책방 ‘밤의 서점’, 책과 함께 맥주도 파는 서점 ‘북바이북’, 고양이 전문 서점 ‘슈뢰딩거’, 시집 전문 서점 ‘위트앤시니컬’, 여행책 전문 서점 ‘일단멈춤’, 그림책 전문 서점 ‘피노키오’ 같은 독립 서점들이 서울에 등장했고, 곧이어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동네 서점은 죽지 않는다는 ‘서점 불사론’이 동네 서점은 결국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서점 소멸론’을 꺾기 시작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사실은 사라지는 서점과 생겨나는 서점은 책을 판다는 점만 똑같지 서점 운영의 기본 원리가 완전히 달랐다는 점이다. 동네 서점을 관통하는 ‘업의 본질’이 바뀌었다. 필자는 올여름 ‘동네 서점×쏜살문고’라는 프로젝트를 동네 책방과 함께 진행하면서 이 사실을 실감했다.



동네 서점, 장소에서 네트워크 비즈니스로 전환

도서정가제 실시 후, 가격 할인이 원천적으로 봉쇄되면서 북콘서트 같은 각종 행사나 특별 사은품 제공 등 책과 관련된 문화적 이벤트가 활발해졌다. 2015년 무렵부터는 ‘단독’이라는 이름으로, 특정 서점에서만 표지 등 책의 물성을 달리해서 판매하는 디자인 특별판 열풍이 불었다. 콘텐츠 품질이 이미 검증되고, 독자들 사랑까지 확인된 스테디셀러를 한정판으로 출간함으로써 기존 독자들의 소장욕구를 불러일으키고, 그 작품에 익숙지 않은 아랫세대 독자층까지 확보하는 전략이다. 문제는 이러한 혜택이 모두 집객력을 이미 확보한 인터넷서점이나 대형 체인 서점에서만 독점적으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하지만 동네 서점은 이런 종류의 행사를 진행하기 어려웠다. 잘 판매하고 싶어도 아예 판매할 상품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판매를 보장할 수 없는 상황에서 수많은 서점과 행사 진행을 협의해야 하고, 협의가 끝난 후에도 배송 및 정산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등 복잡한 과제가 널려 있어 설사 출판사에서 검토를 하더라도 실제 추진하기는 아주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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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서점×쏜살문고’ 프로젝트는 ‘동네 서점에서만 살 수 있는 책’을 실제로 판매해보자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민음사에 제안해 쏜살문고의 ‘특별판’ 생산을 보장받고, 독립 서점 네트워크 등을 통해 서점들 의견을 물은 후 손해 볼 각오를 하고 동네 서점 특별판 프로젝트를 실험적으로 진행해 본 것이다.

예상과 달리 반응은 뜨거웠다. 프로젝트를 실행할 조직을 별도로 구축하지 않은 채 구글 문서를 활용해서 사전 주문을 받고, 각 서점이 구축한 소셜미디어 채널로 독자들한테 알리는 식으로 이벤트를 진행했다. 결과는 한마디로 ‘대박’이었다. 전국의 동네 서점 162곳이 연결돼 이벤트에 참여했으며 독자들 호응도 대단해 초판 2000부 팔기도 어렵다는 출판 시장에서 발간 석 달 만에 두 권짜리 5000세트가 완전히 소진됐다. “태어나 줘서 고마운 책들”이라는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독자들의 적극적 공유와 참여가 수만 번 이상 이뤄진 덕분이다. 이 책을 계기로 동네 서점을 찾은 독자들이 다른 책들도 덩달아 구매했음은 물론이다. 이 프로젝트를 필자와 함께 기획한 서울 공릉동의 독립 서점 ‘51페이지’는 이름이 알려지면서 무려 100세트 가까운 판매고를 올렸다.

이 프로젝트 결과는 서점 비즈니스가 다른 모든 비즈니스와 마찬가지로 장소에 기반을 둔 비즈니스가 아니라 연결가치가 지배하는 네트워크 비즈니스로 전환해야 함을 보여줬다. 사람들은 흔히 서점이 좋은 길목에 위치하고, 인기 있는 제품(베스트셀러, 참고서 등)을 가져다 놓으면 저절로 독자들이 몰려드는 장소의 비즈니스라고 생각한다. 집이나 학교나 직장 등 생활공간 근처에 있는 서점에서 독자들이 책을 구매할 것이라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점은 잠재독자가 가장 많을 것으로 예측되는 곳, 즉 ‘장소 인접성’의 원리를 좇아 사람들이 다니는 길목에 자리 잡아 적절한 형태로 운영하면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초연결사회는 ‘장소 인접성’을 파괴한다. 스마트 기기를 통해 세상 모든 것과 이어져 있으므로 장소 인접성이 사람들을 연결하는 최우선의 원리일 수 없다. 물리적으로는 가깝더라도 전혀 연결되지 않은 경우가 있고, 세상 저 끝에 있더라도 항상 연결돼 있는 경우도 이제 흔하다. 카페에 나란히 앉아 있는 두 사람이 각자 휴대폰을 들여다보면서 소셜미디어를 즐기는 경우를 생각하면 이해될 것이다. 게다가 오전에 주문하면 오후에 집까지 무료로 책을 배달해 주는 ‘당일배송 경제’(인터넷서점)의 실현은 장소 인접성에 근거를 둔 경제(동네 서점)를 해체하고 파괴한다. 그 결과는 우리가 앞에서 본 것과 같은 ‘서점의 학살’이다.

물리적으로 가까운 장소에 있다는 현실만으로 독자와 충분히 연결될 수 없다면 사실상 연결가치가 전부인 초연결사회에서 동네 서점은 존립이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기존 서점이 무너진 폐허에서 새로 출발해야 했던 독립 서점이 물리적 서점의 존재 근거를 깊게 성찰하고 독자와의 연결점을 혁신하는 도전에 나서야 했던 까닭이다. 근거를 독일어로 그룬트(Grund)라고 한다. 대지라는 뜻이다. 근거가 무너진 곳에서는 어느 누구도 일어설 수 없다. 초연결사회에 맞는 동네 서점의 존립 근거, 즉 ‘업의 본질’을 다시 정의하지 않으면 출발이 아예 불가능했다. 독자들한테 ‘서점에 찾아야 할 이유’를 제안해 서점으로 연결하는 데 성공한 동네 서점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동네 서점, 친밀성의 미디어로 발전

동네 서점은 단지 독자가 필요한 책을 사고파는 ‘거래’의 장소를 넘어선다. 책을 사랑하는 인간들(book lovers)을 서로 연결함으로써 가치를 창조하는 ‘친밀성의 미디어’ 역할을 하고 있다. 책이 팔리는 것은 서점과 책과 독자들의 연결이라는 본질이 드러난 하나의 사건적 현상일 뿐이다. 책을 좋아하는 이들과 서로 이어져 교제를 나누는 연결가치(친밀성)를 확보하면 비로소 책 판매, 독서 모임, 강연, 낭독회, 사인회 등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다양한 사업기회가 주어진다. 커피나 차 같은 각종 음료나 맥주나 칵테일 같은 주류를 제공하는 것도 거기에서 가능하며, 인생 상담이나 책 처방 등도 마찬가지다. 책을 좋아하는 개인(서점주인 또는 직원)과 책을 좋아하는 개인(독자)이 책이 있는 멋진 공간(서점)에서 서로 연결되는 구체적이고 특수한 관계를 형성할 수 없을 때, 초연결사회에서 동네 서점은 생존할 수 없다.

동네 서점 운영에는 장소의 인접성보다 독자와의 친밀성 관리가 좀 더 본질적이다. 독자와 친밀하게 이어져 있지 않는 한 서점은 눈앞에 바로 있더라도 좀처럼 발견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오프라인 서점에서 책의 내용을 살펴보고, 스마트폰을 열어서 인터넷서점에서 서평 등을 살피고 혜택을 확인한 후 주문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만약 서점 주인과 친밀하다면 아무도 이러한 무례한 짓을 하지 않을 것이다.

종래의 동네 서점들은 주변에 사는(배우는/일하는/지나가는) 독자들이 책을 구매하려고 알아서 서점을 찾아오리라고 전제한 상태에서 가능하면 풍부하고 다양한 책과 만날 수 있도록 이른바 구색에 집중했다. 반면에 최근에 생겨난 독립 서점들은 독자들이 ‘저절로’ 서점에 오지 않으리라고 생각해서 서점을 찾아야 할 이유를 만들고, 이를 소셜미디어나 텍스트 메시지 등을 통해서 적극적으로 알리며, 일단 방문한 독자들과 반복적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친밀성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한다. 책이 있는 공간의 매력을 활용해 책과 책을, 인간과 책을, 인간과 인간을 연결하는 온갖 탐구들을 실험하고 실행해 독자들과 깊은 관계를 형성하고, 이에 기반을 두고 여러 가지 사업 기회를 창출해서 서점을 운영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흐름으로 볼 때 동네 서점의 ‘업의 본질’은 어느 독립 서점 운영자의 말처럼 “작가와 출판사와 서점, 그리고 독자들이 유기적으로 협력하고 공유하는 지식의 협동조합” 같은 식으로 정리할 수도 있겠다. ‘지식’을 ‘책’이라는 말로 바꾼다면 말이다.


책에서 라이프 스타일로 가치 확대

독립 서점은 초연결시대를 맞이한 서점의 새로운 진화 모델이다. 이 서점들이 우점종이 될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서점의 미래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독립 서점에서 배워야 할 확실한 것이 하나 있다. 책이 아니라 독자에게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앉아서 세상 모든 책을 구매할 수 있는 세상에서 독자들이 일부러 서점을 방문하도록 하려면 책 자체만이 아니라 서점을 방문한 독자들한테 서점이 편리나 재미, 의미 같은 어떤 추가 경험을 줄 수 있는가를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초연결시대 독자들은 좋은 책을 고르려 할 뿐만 아니라, 온라인서점이나 체인 서점 등에서 얻을 수 없는 경험을 제공하는 좋은 서점도 고르려고 한다. 서점이 독자들한테 제공하는 재미, 의미, 편리와 같은 고유한 경험이야말로 독립 서점의 존재 근거를 이룬다.

독립 서점이 독자들한테 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경험은 기존의 10진 분류법을 뛰어넘는 책의 분류와 배치다. 책 콘텐츠에 대한 전문성을 갖춘 서점 주인의 독특한 분류에 따라 정성 들여 고른 책들로 이뤄진 판매대는 독립 서점의 가장 큰 특징이다. ‘일인가구 분투기’ ‘회사생활이 싫어질 때’ ‘커피 다음은 홍차다’ 같은 예쁜 손글씨 태그를 달고 세심하게 모아놓은 책들은 독자들에게 설렘이 있는 행복한 발견을 제공한다. 독립 서점은 독자들이 베스트셀러 목록과는 다른 예기치 않는 책을 만날 수 있도록 돕는다.

초연결사회 이전에 서점의 판매대 대부분은 고정돼 있었다. 서점으로 입고될 때 한국 문학, 인문과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등 도서관식 분류에 따라 책의 자리가 한번 정해지면 책들이 그 자리에 고정된 상태로 일생을 마쳐야 했다. 이러한 비인간적 배치는 온라인서점을 능가할 수 없다. 세상 모든 책이 온라인서점에서는 아주 세세한 분류 기준에 따라 촘촘히 배열돼 있기 때문이다. 대형 체인 서점조차도 이쪽으로는 온라인서점과 경쟁할 수 없다. 물리적 공간의 제약으로 인한 한계가 뚜렷한 까닭이다. 독립 서점에 들어서는 독자가 기대하는 것은 이러한 분류는 아닐 것이다. 그러한 기대를 품었다면 책을 많이 보유할 수 없는 독립 서점을 찾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독립 서점의 서가 배치는 십진분류와는 당연히 차별화해야 할 뿐만 아니라 항상 독자의 기대를 뛰어넘어야 한다.

독자를 놀라게 하는 책의 창조적 추천은 독립 서점의 생명줄이다. 마쓰다 무네야키가 ‘제안’이라고, 마이클 바스카는 ‘큐레이션’이라고 부르는 이 행위야말로 독립 서점 운영의 본질을 이룬다. 근대 초기 책의 분류 체계를 연구한 유석환 교수에 따르면, “책의 분류는 단순히 책의 효과적인 활용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의 가치관, 세계관, 사유체계의 구성과도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서점 주인의 안목이 책의 분류를 통해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말이다. 달리 말하면, 독자들은 서점 주인의 안목을 즐기려고 독립 서점을 방문한다.

책의 전문적 추천도 중요하다. 문학, 시집, 추리소설, 그림책, 여행서 등의 전문 서점들은 각 분야의 책들에 대한 꾸준한 독서로 단련되고, 방대한 지식과 정보를 축적해 온 전문가들이 운영한다. 이런 서점에 들어선 독자들은 책마다 붙어 있는 식견이 넘치는 추천 이유를 즐길 수 있으며, 혹여 서점 주인이나 직원과 몇 마디 대화라도 나누면 곧바로 그들에게서 추천도서 목록이 쏟아진다.

독자들은 책을 구매할 때 과거의 독서 경험, 저자, 출판사, 표지 디자인, 마케팅 등에 우선 의존한다. 하지만 친구나 가족, 스승 등의 사회적 추천도 중요하게 여긴다. ‘삼일문고’는 지역주민이 직접 작성한 정성스러운 추천사로 유명하다. ‘최인아책방’은 사회 저명인사의 추천을 받아서 별도의 서가를 운영한다. 한 서점이 어떤 추천 목록을 갖추고 있느냐가 서점의 평판을 결정하며, 독자의 충성심을 좌우한다. ‘사적인서점’은 예약제로 운영되는 추천 서점이다. ‘책 처방사’를 자임하는 서점 주인은 독자와 한 시간가량 상담을 진행하면서 작성한 인터뷰 자료를 바탕으로 해서 그 사람에게 꼭 맞는 책을 선정한다. 처방받은 책은 최대 열흘 후에 선정 이유, 줄거리, 응원 메시지를 담은 개인적 편지와 함께 독자의 집으로 배달된다. 어떤 책이 올지 궁금해 하면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모습이 선하다. 이와 같이 독립 서점은 설렘이 있는 행복한 거래를, 즉 약간의 불편을 즐거움으로, 책으로 꾸미는 놀라운 일상을 제공하려고 애쓴다.

독립 서점은 책의 사용성을 확장한다. 읽기는 책의 가장 중요한 사용성에 해당하지만 사람들이 책을 읽으려고 사는 건 아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책을 구매한 후에 조금밖에 읽지 않는다. 읽을거리는 이제 얼마든지 있다. 지식과 정보는 가상공간에 무한히 존재하고, 우리는 필요할 때마다 거기에 접속해서 필요한 만큼 읽을 수 있다. 사람들은 저자나 출판사, 서점 등에 대한 지지를 표시하려고, 지인의 생일 등을 기념하려고, 자신의 지성적 또는 정서적 우위를 과시하려고 책을 사들인다. 사람들은 시간을 알차게 보내려고 책을 찾으며, 친구들과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책을 읽는다. 책의 사용성은 전혀 읽기에만 갇혀 있지 않다. 독립 서점은 책의 무한한 사용성을 탐구하고, 이를 독자들과 함께 갖가지 기획으로 실현한다. 독서 모임, 낭독 모임, 강좌, 공동 여행 등 수많은 사용성이 탐색된다.

해외에서는 독립 서점들이 지역사회의 구체적 현안을 논의하고 함께 해결책을 모색하는 프로그램을 제공함으로써 지역사회 공동체의 그물코로 존재하는 경우도 많다. 아울러 서점이 사라지지 않도록 지역주민들이 주주로 참여하고, ‘지역서점에서 책 사기(Buying Local)’ 운동을 전개하는 등 지역사회와의 연대도 깊어지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이러한 활동이 아직 선명하지는 않은 듯하다. 충주 ‘책이 있는 글터’가 지역사회 단체와 협업해 장터 등을 운영하고 있으며, ‘그날이 오면’이나 ‘풀무질’ 같은 대학가 앞 사회과학서점이 협동조합을 운영하는 등 관련 활동이 증가하고는 있다. 그러나 지역사회 공동체가 서점을 둘러싸고, 서점을 보호하며, 서점과 함께 성장하는 경지에 이른 경우는 아직 드물다. 독립 서점이 지역주민들의 사랑을 한껏 받을 수 있을 때 이렇게 진화하리라 생각한다. 국내 독립 서점이 성장할 여지는 아직 무궁무진하다.  

DBR mini box 

라이프 스타일을 바꾼 동네 서점들

 
일본 츠타야서점의 창업자 마쓰다 무네야키는 서점의 미래를 “라이프 스타일을 파는 일”이라고 했다. 라이프 스타일을 판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이는 독자가 서점에서 자신의 전면적 가치를, 즉 자기 인생과 깊게 결부될 만한 무엇인가를 발견한다는 말이다. 독립 서점의 성장에는 이 엄연한 사실에 대한 깊은 탐구와 나름의 대답이 있다.

‘북티크’에서는 금요일마다 심야서점이 열린다. 밤 10시쯤 되면 신청자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사람들은 각자 조용히 책을 읽는다. 심지어 가지고 온 책을 읽기도 한다. 새벽 2시가 되면 원하는 사람은 오늘밤 자신이 읽은 책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모임에 참석할 수 있다. 별도의 공간에서 제공되는 이 이야기 모임이 심야서점의 핵심 이벤트다. 사람들은 책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책은 깊이 있는 대화를 위한 강력한 도구상자다.

‘북바이북’은 작가 번개, 미니 콘서트, 강연 등의 행사를 매일매일 개최한다. 서점에서는 이를 “책을 읽고 나면 작가를 만나고, 작가에게 배우고, 배운 것을 실천하는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거의 유료로 진행되는 이 행사들은 독자를 서점으로 불러들임으로써 자연스럽게 서적 매출을 늘려줄 뿐만 아니라 음료나 주류 등 곁다리 판매도 가능해 서점의 수익성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된다. 이와 같이 책을 매개로 삼아 인간과 책을 연결하는 새로운 방법을 끝없이 창조하는 모험이야말로 독립 서점의 존립 근거이기도 하다.

‘숲속작은책방’은 서점과 민박을 겸하는 북스테이를 운영한다. 서점 주인이 애장하는 그림책과 만화책이 있는 비밀의 다락방을 사전 예약을 받은 손님들과 함께 나눈다. 책이 있는 아날로그 공간은 정서적, 심리적 안정감과 함께 창조성을 북돋운다. 선별된 책이 있는 공간에서 보내는 하룻밤은 독자들한테 어마어마한 영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인간이 변화하는 데는 우연히 펼쳐 읽은 책 속의 한 구절이면 충분하다. 어떤 책에 둘러싸여 있는가는 한 사람의 창조성을 결정하는 데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일일지도 모른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polyedit1@gmail.com

필자는 읽기 중독자. 서울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민음사에서 오랫동안 책을 만들고, 또 대표이사(편집인)도 지냈다. 현재 순천향대 미디어콘텐츠학과 초빙교수로 학생들과 어울리면서 주로 읽기와 쓰기, 출판과 미디어 등에 대한 생각의 도구들을 개발하는 일을 한다. 저서로는 『출판의 미래』 『4차산업혁명이라는 거짓말(공저)』 『한국의 논점(공저)』 등이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31호 Data Privacy in Marketing 2021년 10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