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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이 정해진 그림을 그릴 것인가, 마음 가는 대로 그릴 것인가

안병민 | 239호 (2017년 12월 Issue 2)
#장면 하나. 아는 동생인 진천이는 그림을 그립니다. 그림을 그리는 작가이기도 하지만 그림 수업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그는 정규 미술 교육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게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는 원래 웹기획자였습니다. 회사에서 밤낮 모르고 일하던 이 시대 직장인 중 하나였습니다. 승진도 빨랐지만 이상하게 늘 마음 한 구석이 허했습니다. 그때 알게 된 게 ‘그리기의 즐거움’이었습니다. 무작정 그렸습니다. 이렇게도 그려보고, 저렇게도 그려보았습니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가르치거나 시키는 사람이 없으니 마음 가는 대로 그린 겁니다. 처음엔 그림을 잊고 사는 저와 별 차이 없어 보이던 그의 그림 실력은 비 온 뒤 죽순처럼 쑥쑥 자라났습니다. 창의를 불쏘시개 삼은 행복한 몰입의 힘이었습니다. 그림의 재미를 익힌 그는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내고 지금은 또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림을 그립니다. 행복한 삶을 향한 창의적 혁신입니다.

#장면 둘. 아는 분이 운영하는 입시 전문 미술학원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미술엔 문외한인 저로서는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커다란 교실마다 각 벽면엔 그림들이 가득 붙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좀 이상했습니다. 하나같이 같은 그림이었습니다. 여러 사람이 같은 그림을 최대한 비슷하게 그린 겁니다. 그렇습니다. 대학입시를 위한 그림에는 ‘정답’이 있었습니다. 내가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린 그림은 탈락입니다. 최대한 정답에 가까운 그림을 그려야 합격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빛의 방향에도 정답이 있습니다. 실제 어떤 방향에 빛이 있든 그림 속 광원은 늘 좌상단에 위치합니다. 그게 정답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수학 풀이가 아님에도 정해진 공식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내 생각과 내 느낌을 창의적으로 표현하는 게 아니라 공식을 외워 입시담당자가 요구하는 정답을 그려내는 겁니다. 공장이 따로 없습니다.

바야흐로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논의가 한창입니다. 실체가 있나 없나 논란도 많습니다만 중요한 건, 어쨌든 크고 작은 변화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 변화들이 우리 사회를 바꾸어 가고 있다는 겁니다. 4차 산업혁명의 본질은 ‘초연결’과 ‘초지능’입니다. 사람을 넘어 사물끼리도 연결되는 세상입니다. 사물인터넷입니다. 그 연결 속에서 생성되는 데이터가 어마어마합니다. 빅데이터입니다. 그 데이터를 먹고 로봇은 하루가 다르게 똑똑해지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입니다. 즉, 편집이 불가능했던 오프라인의 우리 삶이 온라인 속의 데이터로 바뀌는 겁니다. 그렇게 바뀐 데이터를 잘라내고, 붙이고, 편집해 다시 오프라인 속 삶을 재구성하는 것, 이게 4차 산업혁명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그리고 가져다줄 변화의 핵심입니다.

이런 변화 속에서 사람들의 일자리는 줄어들 거라는 경고가 여기저기서 들려옵니다. “향후 5년간 719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210만 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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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다보스포럼에서 나왔던 얘기입니다. 하지만 섣부른 기대만큼이나 막연한 두려움도 금물입니다. 일자리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일의 형태가 달라질 거라는 게 글로벌 컨설팅 그룹 맥킨지의 전망입니다. 기술혁신이 일자리를 없애는 게 아니라 새로운 기술역량을 필요로 하는 곳으로 기존 인력을 이동시키는 거란 얘기입니다. 어느 쪽이든 인공지능 로봇과 함께 살아갈 세상에 대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그 준비에 대한 팁은 ‘로봇의 역설’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 쉬운 일은 로봇에게 어렵고, 로봇에게 쉬운 일은 인간에게 어렵다.”

미국 로봇공학자 한스 모라벡이 얘기한 로봇의 역설입니다. 로봇에게 어려운 일, 그 한가운데 ‘창의성’이 있습니다. 창의성의 사전적 의미는 전통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새롭고 독창적인 것을 만들어 내는 능력입니다. 반복적, 기계적인 일은 이제 로봇의 차지입니다. 우리는 예측이 불가능한, 패턴화할 수 없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걸 가능케 해주는 게 바로 창의성입니다.

『몰입』이란 책으로 유명한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교수의 창의성에 관한 재미있는 연구결과를 한번 살펴봅시다. 시카고 미대 학생 30여 명을 모아놓고 그림을 그리게 했습니다. 여러 개의 평범한 물건들이 있는 테이블에서 1∼2개를 골라 정물화를 그리라고 한 겁니다. 금세 윤곽을 잡고 그림을 그리는 학생들이 있는 반면 어떤 학생들은 테이블 위 물건들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구도와 배치까지 생각을 합니다. ‘어떻게 하면 그림을 잘 그릴까’를 고민하는 학생과 ‘어떤 그림을 그리면 좋을까’를 고민하는 학생의 차이입니다. 실제 18년 후 추적조사를 해보니 후자 그룹이 미술계 기준으로 현저한 성공을 거뒀더라는 겁니다. 내용은 단순하지만 시사점은 강력합니다. 테크닉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겁니다. 문제 해결 이전에 문제를 발견하고 정의하는 창의성이 관건이라는 겁니다.

앞서 그림 이야기를 늘어놓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봐야 하는 대로’ 그리는 그림에는 창의성이 들어갈 여지가 없습니다. 내 눈에, 내 마음에 ‘보이는 대로’ 그려야 하는 이유입니다. 가장 나다울 때 가장 창의적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번 생각해볼 일입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기하급수적 환경변화 속에서 창의성을 목 놓아 부르짖는 작금의 수많은 기업에서는 과연 변화와 혁신의 그림을 어떻게 그리고 있는지 말입니다. 변화와 혁신,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제대로 혁신하려면 ‘놀이’와 ‘도전’의 문화부터 만들 일입니다.

“늘 똑바르게 선을 그리라고 교육을 받아서 그런지 저런 삐뚤삐뚤한 자연스러운 선이 전 잘 안 그려져요.” 미술을 전공했다는 어느 수강생이 진천이에게 털어놓았다는 하소연입니다. 기업의 리더들은 알아야 합니다. 변화와 혁신은 창의성 넘쳐나는 ‘전문가들의 놀이터’에서 시작된다는 걸 말입니다.   

안병민 열린비즈랩 대표 (facebook.com/minoppa)

안병민 대표는 서울대 언론정보학과를 졸업하고 헬싱키경제대학원 MBA를 마쳤다. 열린비즈랩 대표로 경영마케팅 연구·강의와 자문·집필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 저서로 『마케팅 리스타트』 『경영일탈 정답은 많다』, 감수서로 『샤오미처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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