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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5. 미술관의 통념 깬 프랑스 마그재단

'돈 말고 열정' 아티스트 놀이터로 출발, 살아 숨 쉬는 예술 플랫폼으로 우뚝 서다

고성연 | 236호 (2017년 11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프랑스 마그재단 미술관은 당대에 활발히 활동하던 아티스트들의 작품 세계를 제대로 반영하기 위한, ‘영감 넘치는 놀이터’로 기획되고 조성됐다. 창립자 부부는 비즈니스가 아닌 오로지 아티스트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고자 했고, 그 순수한 열정과 진정성을 이해한 친구 아티스트들이 가세하면서 역설적으로 대중에게 가장 사랑받는 미술관을 탄생시켰다. 마그재단 미술관의 성공 요인은 다음과 같다. ▲ 다채로운 개성을 가진 다국적 작가들의 주도로 만들어졌다. ▲ 아티스트들과 남다른 친분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관계의 미학’이 작용했다. ▲ 자연과의 조화가 빼어난 한적한 마을, 생폴드방스를 택함으로써 ‘힐링 미술관’의 본보기가 됐다. ▲ 과거의 명작만 다루는 것이 아닌 현존 작가들과 꾸준히 협업하면서 동시대 문화 플랫폼로서의 경쟁력을 확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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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디 푸른 지중해를 품고 있기에 흔히 ‘코트다쥐르(Côte d’Azur, 프랑스어로 ‘푸른 해안’이라는 뜻)’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프랑스 남동부 지역. 2014년 여름, 이 일대를 잔잔하게 수놓은 이름 하나가 있다.

앙티브(Antibes)에 있는 피카소뮤지엄, 니스(Nice)의 명소 샤갈뮤지엄과 마티스뮤지엄, 비오트(Biot)에 위치한 페르낭레제뮤지엄 등 이 지역의 주요 공공 미술관에서 잇따라 개최한 전시 제목에 공통적으로 ‘마그(Maeght)’라는 단어가 포함돼 있었다. 니스에서 20㎞ 정도 떨어진 성곽마을 생폴드방스(Saint-Paul de Vence)에 자리한 사립 미술관, 마그재단 미술관(The Maeght Foundation)의 탄생 50주년을 기념해 인근의 국공립 미술관들이 너도나도 마그재단과 연관된 전시를 마련했다.1

‘마그’는 반세기 전인 1964년 마그재단 미술관을 설립한 마그 부부의 성을 딴 것인데 사실 프랑스 근현대 미술사에 조예가 깊지 않다면 익숙하게 들릴 리 없다. 하지만 2014년 마그재단 미술관에 축하의 손길을 내민 이웃 미술관들의 전시 목록을 훑어보면 미술 문외한이라도 웬만하면 들어봤을 법한 쟁쟁한 이름들과 나란히 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예컨대 호안 미로(Joan Miró) 추모전, 알렉산더 칼더(Alexander Calder) 추모전,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추모전 등이 하나같이 마그재단 미술관 50돌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로 기획됐다.

이쯤 되면 궁금해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도대체 마그라는 부부의 정체가 무엇이길래, 또 이 재단의 존재가 얼마나 대단하길래 이처럼 20세기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거장들을 한꺼번에 ‘호출’할 수 있었던 것일까? 더욱이 내로라하는 국공립 미술관들의 적극적인 외조를 받으면서 말이다.

그 이유는 마그재단 미술관이 엄연히 사립임에도 공공 미술관의 성격을 띠고 있고, 실제로 그런 대접을 받고 있는 흔치 않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근현대 미술의 보고(寶庫)인 마그미술관은 프랑스에서 시민들의 공공재로 자리매김한 사립 미술관의 효시이자 창조적 산실의 본보기로 여겨진다. 그렇다고 실제로 공공 미술관처럼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펀딩을 받지는 않는다. 해마다 방문객 15만∼20만 명을 꾸준히 끌어모으면서 스스로의 힘으로 존속해왔다. 미술관은 공공의 영역에 속한다거나, 엄청난 거부들이 돈을 쏟아부어 기부 방식으로 운영된다는 고정관념을 깬 사례다.

‘예술이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신념을 굳게 지녔던 창립자 부부는 상업 화랑으로 돈벌이에 꽤 성공했지만 비즈니스 논리에서 벗어나 오로지 아티스트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고자 했고, 그 순수한 열정에 공감한 친구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으로 세상에 둘도 없는 미술관을 탄생시켰다. 독립적인 사립 미술관이지만 공공재 반열에 올랐을 정도로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해온 마그재단 미술관의 저력은 다름 아닌 ‘진정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예술을 향한 사랑과 창조적 열의를 바탕으로 한 우정의 반석 위에 세워진 이래 반세기 넘게 독특한 존재감과 자생력을 발휘해온 마그재단 미술관의 뜻깊은 발자취를 분석해보자.

 

자연과의 공존, ‘힐링’을 부르는 생폴드방스의 숨은 명소

성벽으로 둘러싸인 외관, 그 안에 고풍스러운 느낌이 묻어나는 아기자기한 집들이 경사를 타고 올라가면서 밀도 있게 들어서 있고, 한가운데 꼭대기에는 교회당이 우뚝 서 있는 생폴드방스.

마치 외부와 단절된 중세의 요새를 떠올리게 하듯 평화로운 고요함이 흐르는 이 마을은 러시아 출신 유대인으로 프랑스로 망명했던 샤갈이 여생을 보냈을 뿐만 아니라 고흐, 마티스, 피카소 같은 걸출한 예술가들이 사랑해 마지않았던 곳이다.

프랑스에서도 아는 사람만 안다는 ‘숨은 명소’ 마그재단 미술관은 생폴드방스에서도 특히나 한적한 외곽의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숲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양 끝이 살짝 올라간 반달 모양의 하얀 지붕과 분홍빛 도는 연갈색 벽돌이 인상적인 건물이 짙은 녹음 속에서 자태를 드러낸다. 건물 자체는 다소 낡고 수수한 편이지만 그 앞에 펼쳐진 잔디밭 위에 여기저기 놓인 조각 작품들은 한눈에 딱 봐도 범상치 않은 아우라(aura)를 풍긴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는 이 조각들은 모빌의 발명가로 잘 알려진 미국 조각가 칼더를 비롯해 스페인의 조각 거장 에두아르도 칠리다(Eduardo Chillida), 독일계 프랑스 조각가 장 아르프(Jean Arp) 등 미술사에 길이 남을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의 작품들이다. 그뿐인가. 본관 입구 쪽 벽은 샤갈의 모자이크가 장식하고 있고, 건물 중정(Patio)에 자리한 수조의 타일은 피카소와 함께 큐비즘의 창시자인 조르주 브라크(Georges Braque)의 솜씨이며, 심지어 카페가 들어서 있는 건물 외벽에도 프랑스 입체주의 작가 페르낭 레제(Fernand Léger)의 부조 작품이 달려 있다.

미술관 본관 뒤편으로 가면 더욱 놀라운 풍경이 시야를 사로잡는다. 커다란 소나무들 사이로 낮은 돌담길이 마치 미로처럼 이리저리 얽혀져 있고, 그 사이사이에 동심을 불러일으키는 생기발랄하고 귀여운 조각들이 놓여 있다. 스페인에서 가장 대중적인 사랑을 받아온 20세기 미술가로 꼽히는 호안 미로의 조각 정원이다. 이름하여 ‘미로의 미로(The Miró Labyrinth)’. 이 미려한 정원 뒤쪽으로는 생폴드방스의 아름다운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미술관 안뜰은 스위스 초현실주의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의 차지다. 작가 특유의 길쭉한 작품들로 채워진 ‘자코메티의 뜰’이 커다란 나무를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다. 과연 유럽에서 자연과 가장 이상적인 조화를 이루는 미술관 목록에 빠짐없이 올라갈 만한 매혹적인 풍경들이다.

 

20세기 최고 예술가들의 놀이터, 독보적 성공 사례가 되다

이렇듯 대가들의 작품으로 가득 차 있는 공간을 사전 정보 없이 본 사람이라면 어마어마한 예산을 투입해 지은 미술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20세기 최고의 아티스트들을 한데 모아놓은 국립미술관이 아니라면 엄청난 부호가 화려한 컬렉션을 담아내기 위해 돈을 쏟아부어 만든 사립 미술관이지 않겠냐는 추론이 나오는 게 자연스럽다. 사립 미술관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뉴욕 구겐하임(Guggenheim)미술관이나 지난 2015년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억만장자 사회사업가 일라이 브로드(Eli Broad)의 지원으로 문을 연 현대미술관 브로드(The Broad)의 축소판처럼 말이다.

마그재단 미술관의 배경 스토리는 좀 다르다. 물론 예술을 사랑하고 후원하자는 마음에서 미술관을 지었다는 점은 비슷하다. 하지만 애초에 설립자 가문이 세상을 좌지우지할 만큼 거부(巨富)도 아니었을뿐더러 어떻게든 돈을 끌어모아 고가에 사들인 소장품들을 과시적으로 잔뜩 풀어놓은 것도 아니다. 수많은 미술관들이 그렇듯이 이미 타계한 전 세대 거장들의 작품들이라든가 작가들이 유명해진 다음에 거금을 투자해 소장하게 된 수집품들을 모아놓은 사례는 아니라는 얘기다.

마그재단 미술관은 오로지 당대에 활발히 활동하던 아티스트들의 작품 세계를 제대로 반영하기 위한 터전, 다시 말해 그들의 영감 넘치는 놀이터로 기획되고 만들어졌다. 작가들도 직접 나섰다. 그래서 마그재단 컬렉션 중 상당수는 오로지 이 전시 공간만을 위해 창조됐다. 샤갈의 모자이크, 미로의 정원, 자코메티의 뜰, 브라크의 타일 작품이 바로 그 살아 있는 예다. 세상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미술관이 많지만 다수의 작가들이 처음부터 주도적으로 동참해 미술관 자체를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만들어낸 사례는 극히 드물다.

의도된 바는 아니었지만 이 순수한 창조적 협업은 훗날 엄청난 자산 가치로 보답받았다. 미술관을 만드는 데 동참한 마그 가문의 아티스트 친구들은 당시 무명작가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작품 한 점에 오늘날 기준으로 수십억, 수백억 원에 거래될 정도의 비싼 몸값을 자랑하지도 않았다(지구촌을 온통 흔들어놓은 대규모 전쟁을 두 차례나 거쳤던 만큼 오늘날처럼 일부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들 대부분이 훗날 20세기를 이끈 작가들로 남게 됐고, 현재는 함부로 가치를 따질 수 없을 정도의 명장 대열에 올라 있다.

일례로, 자코메티의 ‘걸어가는 남자(Walking Man I, 1960년 작)’라는 청동 조각상을 살펴보자. 이 조각품은 2010년 소더비 경매에서 1억430만 달러(당시 환율로 1200억 원대)에 팔리면서 당시 경매 최고가를 경신했는데, 마그재단 미술관 안뜰에는 제작 시기나 스타일이 유사한 자코메티의 작품들이 30점 넘게 설치돼 있다.

“당시 자코메티는 이 미술관을 둘러싼 햇빛의 느낌과 어울리도록 뜰 안의 작품들을 갈색빛이 돌게 제작했다고 해요. 그 역시 이 미술관의 일부라고 할 수 있죠.”

필자가 만난 마그재단 미술관의 커뮤니케이션 담당자 샤를렌 소코로프(Charlène Sokoloff)는 당시만 해도 자코메티가 이 정도의 가치를 누릴 줄 아무도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창립자의 열정과 헌신이 작가들의 우정과 만나 수십 년 뒤에 막대한 가치를 창출해내고 미술관 자체도 국보급 예술 작품으로 평가받는, 미술 경영사에 길이 남을 만한 희소한 사례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예술적인 가치를 꿰뚫어 보는 안목이 남달리 빼어났던 마그 부부, 그들은 어떻게 작가들과 끈끈한 유대를 맺으면서 아트 생태계의 창조적 허브 역할을 했던 것일까? 그 배경을 파악하려면 먼저 어린 시절부터 전쟁통 속에서도 예술을 몹시 사랑했던 비즈니스맨 에메 마그(Aimé Maeght)의 삶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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