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at a Glance한국과 마찬가지로 식민지배, 분단, 전쟁의 아픔을 가지고 있고 설이면 한 살 더 먹은 것을 축하하며 세뱃돈을 주고받지만, 54개 종족이 산재하며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사회주의 국가. 이렇게 비슷하면서도 다른 베트남은 한국에 있어 세 번째로 큰 수출대상국일 정도로 중요한 교역 파트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관계가 ‘미래’를 담보하진 않는다. 실제로 베트남인들은 전반적으로 한국에 우호적이나 한국의 권위주의적 기업문화에 대해 부정적 인상을 가지고 있으며 베트남 내 한국 기업에서의 노사분규도 많은 편이다. 계속해서 파트너십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베트남을 더 알고, 그들을 이해하고 현지화하기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
식민지배, 분단, 전쟁… 한국과 유사한 역사 공유1993년 베트남에 처음 갔을 때 인상적이었던 것 중 하나는 용 장식이 눈에 띄게 많은 것이었다. 지금도 베트남 응우옌(Nguyen) 왕조의 수도였던 후에(Hue)에 가면 용을 지붕 위에도 얹어 놓고, 계단 난간 등 곳곳에 설치해 놓았는데 가히 ‘용의 나라’라고 할 만했다. 그런데 용은 중국 황제의 동물이 아니던가? 이렇게 용을 여기저기 배치해 놓았으면 중국이 베트남을 가만 놔두지 않았을 텐데 베트남이 중국에 대한 저항정신이 강했던 것일까?
이후 베트남을 좀 더 공부하며 동남아에 용 신앙이 널리 퍼졌고, 베트남은 스스로를 남국(南國)으로 칭하며 북국(北國) 중국과 대등한 국가임을 대내적으로 천명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중국은 기원전 111년부터 기원후 938년 독립하기까지 1000년 동안이나 베트남을 직접 지배했다. 이후에도 중국은 수차례 베트남에 공격을 감행했으나 베트남은 이에 굴하지 않고 모두 물리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베트남은 중국에 항거하고 남부로 영토를 확장하는 역사를 전개해왔다. 그래서 베트남의 역사를 ‘북거남진(北拒南進)’의 역사라고 한다.
당초 베트남 영토는 지금의 북부에만 있었고, 중부에는 참파(Champa)라는 국가가 있었으며, 남부는 캄보디아 땅이었다. 참파 인구는 주로 동남아 도서부 말레이 종족과 같은 계열의 사람들로 힌두교를 믿고 있었다. 북부 베트남이 남쪽으로 영토를 확장하면서 이들은 남부로 흩어졌고 지금은 주로 메콩 델타 지역(메콩강 하류의 베트남 남서부 삼각주)에 거주한다. 베트남이 남쪽 끝까지 영토를 확장한 것이 18세기 중반이니 역사 전체로 통틀어 보자면 근래의 일이다. 긴 영토로 인해 베트남 응우옌 왕조의 수도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중부 후에에 자리 잡았다.
이후 베트남은 19세기 후반부터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았고 짧은 기간 일본의 식민 지배를 거쳐 1945년 독립을 선언하지만 프랑스의 재침략으로 1954년까지 전쟁을 치렀다. 남북으로 분단됐던 베트남은 1975년 통일되기까지 다시 전쟁을 겪었다. 이런 식민지배, 분단, 전쟁의 과정은 한국과 공통되는 역사이기도 하다.
베트남은 1970년대 후반 경제적 침체에 빠지자 1980년대 초부터 부분적 경제개혁정책을 도입하다가 1986년 말 제6차 공산당대회에서 ‘쇄신’을 뜻하는 ‘도이머이’라는 탈사회주의적 전면적 개혁정책을 채택해 실행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한국과는 1990년대 초부터 본격적으로 경제협력관계를 발전시켜왔다.
다양성의 사회베트남에서 한국 TV 드라마가 한창 유행하자 일부에서는 그 원인 중 하나로 한국과 베트남이 유교사회라서 공감하는 부분이 많다는 점을 들었다.
사실 베트남은 중국에 저항하면서도 유교를 들여와 사회질서의 기반으로 삼았다. 초기에 유교는 상층부에만 영향을 끼쳤고 기층부에 대한 영향은 제한적이었지만 점차 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치게 됐다. 물론 베트남 사회가 한국처럼 지극한 가부장제 사회는 아니다. 베트남 남부는 부계제가 아닌 양계제(兩系制)를 따르는 동남아 문화를 공유하고 있고, 비교적 여성들의 지위가 높은 사회문화 속에 있다. 베트남인들 마음의 저변에는 불교나 풍수지리의 영향도 전반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고 베트남 사회가 유교적 덕목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으며 더욱이 베트남인들은 대부분 매우 애국적이다.
베트남에는 여러 종족이 공존한다. 낀(Kinh)족이라고도 불리는 다수 종족 비엣(Viet)족은 전체 인구의 86%를 차지한다. 이외 53개 소수 종족이 전국에 산재해 있으며 산악지역에 많이 거주하고 있다.
베트남인들은 보통 북·중·남부로 지역을 구분한다. 이를 북부와 남부로 크게 나눠보자면 북부는 대체로 마을 단위 공동체성이 강한 편이며, 남부는 상대적으로 더 개방적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노이 사람들의 얼굴이 무표정하거나 근엄했던 반면 사이공(호찌민) 사람들은 밝은 표정으로 붙임성이 좋은 편이었다. 예컨대 호찌민의 호텔에서 20여 년 전부터 ‘서(Sir)’라는 호칭을 들었지만 하노이에선 불과 몇 년 전부터 이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됐다. 우리가 베트남 대표 음식으로 알고 있는 쌀국수 ‘퍼(pho)’만 하더라도 지방별 다양함을 엿볼 수 있다. ‘퍼’는 본래 북부 음식이었는데 북부 사람들이 남부로 이주하면서 퍼뜨려 이제는 전국적 음식이 됐다. 지방별 쌀국수도 다양해 남부의 ‘후띠우(hu tieu)’, 중부의 ‘미꽝(mi quang)’ ‘까오러우(cao lau)’ 등이 많이 알려져 있다.
베트남 문화코드 이해하기1. 우리에게 설이 있다면 베트남에는 ‘뗏(Tet)’베트남인들은 평소에도 꽃을 참 좋아하지만 ‘뗏(Tet)’이라고 불리는 설에는 반드시 꽃나무를 준비한다. 집의 거실이나 가게 입구에 금귤 나무나 분홍빛 복숭아꽃 나무, 노란 살구꽃 나무를 둔다.
최근에는 추석을 지내는 사람들도 늘어났지만 예나 지금이나 베트남에서 가장 큰 연중행사는 설이다. 베트남에서는 설을 우리보다 훨씬 성대하게 지낸다. 설이 되면 우리 세뱃돈에 해당하는 ‘믕 뚜오이(mung tuoi)’ 또는 ‘띠엔 리씨(tien li xi)’를 자녀들에게 준다. 우리처럼 엎드려 절하고 받는 풍습은 없지만 한 살(tuoi) 더 먹은 걸 축하하는(mung) 돈이다. 직장에서는 노동조합이 소액을 넣은 빨간 봉투를 직원들에게 돌리며 즐거워한다. 설에 ‘바잉쯩(banh trung)’이나 ‘바인뗏(banh tet)’을 먹고, 추석에는 월병을 먹는다. 바잉쯩은 안에 돼지고기, 콩 으깬 것 등을 넣어 사각형 모양으로 만든 큼지막한 쌀떡인데 북부에서 그냥 쪄 먹거나 쪄낸 것을 프라이팬에 기름을 살짝 둘러 구워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