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stselling Author Interview: <게놈 익스프레스> 조진호 작가

“DNA만으로 공룡 재생은 불가능하다”

221호 (2017년 3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1. ‘유전자 = DNA’라는 생각은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화폐라는 물질이 경제라는 현상을 전부 설명할 수는 없듯이 DNA라는 물질로 유전현상을 전부 설명할 수는 없다. 생명체를 물질이 아니라 현상으로, 과정으로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2. 생명은 창발성(emergent properties)을 띤다. 기계를 분석하듯이 작은 요소로 쪼개는 방법으로는 생명체를 이해할 수 없다. 단일세포에서는 예상할 수 없는 일이 다세포 간 작용에서 창발적으로 나타나듯 생명체는 각각의 레벨마다 다른 논리를 갖고 있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이우경(조지아주립대 석사과정 진학 예정) 씨가 참여했습니다.



한국은 과학기술과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다. 동시에 한국은 과학기술 지식에 접근하기 어려운 사회이기도 하다. 학교에서부터 이과와 문과로 나뉘어 교육을 받는다. 18세가 넘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학과 과학을 접할 일이 없다. 대중매체에서도 깊이 있는 내용을 찾아보기 어렵다. 2016년 봄,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 열풍이 불었을 때 서점가에는 ‘알파고가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인공지능이 가져올 윤리적 문제는 무엇인가’ 등에 대한 책들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졌다. 하지만 정작 알파고의 알고리즘에 대해 기술적으로, 구체적으로 설명해주는 책은 드물었다.

그뿐인가. 신문과 방송에선 ‘바이오혁명’ ‘4차 산업혁명’ 등의 새로운 키워드가 쏟아지지만 바이오가 왜 혁명인지, 4차 산업혁명의 기반 기술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사람은 드물다. 과거에는 ‘아폴로 박사(조경철)’ ‘새 박사(윤무부)’ 등 대중과의 소통에 적극 나섰던 대학교수들이 소수 있기는 했지만 요즘은 그런 책임감 있는 학자를 찾아보기 힘들다. 과학기술은 학교와 연구실 안에만 갇혀 있는 현실이다.

이런 척박한 과학교육 환경을 개척하고 있는 저자가 있다. 그는 대학교수가 아니라 고등학교 교사다. 조진호 작가는 물리학의 중력 이론을 설명한 <어메이징 그래비티(궁리, 2012 )>, 유전학의 역사와 기초개념을 소개한 <게놈 익스프레스(위즈덤하우스, 2016)>를 연달아 펴내 과학저술계의 스타로 떠올랐다. <어메이징 그래비티>는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 최우수 교양도서로 뽑혔고 후속작 <게놈 익스프레스>는 아태이론물리센터가 2016 과학도서로 선정했다. <게놈 익스프레스>의 추천사를 쓴 오타와대 세포분자의학과 김우재 교수는 “기초과학의 불모지 한국에서 이런 수준의 책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은 한국 과학계의 복이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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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조진호의 책을 특별하게 만들까? 일단 수준이 만만치 않다. 그는 어린이가 아니라 어느 정도 과학에 소양이 있는 성인을 타깃 독자로 삼는다. 그래서 30∼40대 남성의 구매율이 가장 높다. 그림체는 유럽식 그래픽 노블(graphic novel)이다. 대사 한마디도 없이 그림만 가득한 페이지도 있는가 하면 깊은 생각이 필요해 책장을 넘기는 데 10분 이상 걸리는 페이지도 있다. 예술영화 같은 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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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라인 역시 사색을 요구한다. <게놈 익스프레스>는 저자 본인이 주인공이다. 저자는 ‘유전자란, 유전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품고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유전과학에 이정표를 세운 과학자들을 한 명씩 만난다.

예를 들어 이 책은 ‘왓슨과 크릭이 발견한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교과서처럼 설명하지 않는다. 그 대신 왓슨과 크릭이 1950년대 연구 당시 얼마만큼의 지식을 갖고 있었으며, 어떤 계기로 연구를 시작했고, 어떤 근거에서, 어떤 추론과정을 거쳐서, 어떤 실험을 통해서 그런 결론에 도달했는지를 당사자들의 입장에서 재구성한다. 콜럼버스가 달걀을 똑바로 세우기 위해 어떤 발상의 전환이 필요했는지를 설명해주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논문을 써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구구절절 공감할 수 있는 학자들의 고생담들이 이어진다. 작가는 ‘문제를 쓴다 - 생각한다 - 답을 쓴다’라는 세 단계1 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첫 번째, 문제를 제대로 쓰는 단계, 즉 논문의 주제를 잡는 단계임을 지적한다. “유전학과 생물학을 포함한 모든 과학은 답을 찾는 과정이라기보다는 새로운 문제를 쓰는 과정일지도 모른다”라고 그는 말한다.

한편, 직장생활을 하는 DBR 독자들에게는 이 책이 또 다른 의미에서 흥미로울 수 있다. 인생 3모작 중인 저자의 커리어 때문이다. 그는 벤처기업가 출신이다. 게임회사를 창업해 8년간 운영한 후 성공적으로 대기업에 매각했다. 30대 중반이 된 다음에야 과학교육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2009년 엘리트 사립고등학교인 민족사관학교에 생물학 교사로 부임한 이후로는 낮에는 학생을 가르치고 밤에는 만화를 그린다.

강원도 횡성군 민족사관고등학교 교정에서 조진호 작가를 만났다. 이 학교는 대학처럼 학생들이 원하는 강의를 찾아다니는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된다. 조 교사의 개인 연구실에는 공강시간 자습 중인 학생 두 명이 있었다. 미안한 마음으로 양해를 구하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part 1 - 커리어 전환에 대해

독특한 이력부터 설명 부탁드린다. 게임회사를 하다가 교사와 만화가까지 이르게 된 길은 어땠는가.

나는 대학 93학번이다. (수능 실시 전) 학력고사 마지막 세대라서 성적에 맞추다보니 서울대 생물교육학과를 가게 됐다. 과학과목 중에 생물이 가장 좋았다. 그런데 교생실습도 나가보고 이런 저런 경험을 해보니 교사라는 직업이 나와는 맞지 않는다 생각했다. 그래서 한때는 미대에 편입할까 생각도 했다. 어머니와 동생2 , 나 모두 그림을 잘 그린다. 그러다가 교육공학을 전공으로 해서 대학원에 갔다.

당시는 컴퓨터가 일반화되던 시기다. 나 역시 그림을 그리는 그래픽 툴 등을 사용하면서 컴퓨터에 재미를 붙이게 됐다. 프로그래밍도 익혔다. 당시 서울대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소프트웨어 개발 경진대회를 주최했는데 난 ‘초파리를 이용하는 유전 시뮬레이션 게임’을 출전해 대상을 탔다. 그 일이 계기가 돼 석사과정 도중에 포스코의 IT 계열사인 포스데이터(현 포스코ICT)에 취업하게 됐다. 약 2년 정도 기획 파트에서 근무했다. 그러다가 2002년에 게임 벤처회사를 차려 나왔다.



게임을 좋아했나. 어떤 게임을 만들었나.

게임을 특별히 좋아했다기보다는 일반적으로 뭔가를 만드는 걸 좋아한다. 원래 그 회사는 포스코의 사내 벤처로 시작했다. 회사의 사업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더라도 참신한 아이디어라면 벤처 설립을 지원해줬다. 하지만 막상 회사 내부에서는 사업이 잘 진행되지 않더라. 그래서 ‘난 아직 젊으니까 나가서 직접 한번 해봐야겠다’라는 마음을 먹었다. 제이인터렉티브라는 회사를 차렸다.

우리가 만드는 제품은 주로 초등학생, 어린이를 위한 가벼운 웹 기반 게임들이었다. 100여 개 이상 개발해서 야후 꾸러기와 네이버 주니어 등 어린이용 포털 서비스 위에 올렸다. 직원이 10명 이내이던 시절에는 내가 직접 기획도 하고 캐릭터 그림도 그렸지만 회사가 그보다 커지니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주로 밖으로 돌아다니면서 영업을 했다. 어려웠던 적도 있다. 2004년에 월급을 두 달이나 줄 수 없게 됐다. 직원 15명 중 10명가량을 내보냈다. 그런 고비를 겪고 나자 엔씨소프트와 CJ인터넷에서 회사를 인수하겠다는 제안이 왔다. 2006년 엔씨소프트 자회사로 편입될 당시3 직원은 35명이었다. 예전에 내보냈던 직원 중 절반은 다시 돌아왔다.



생물교사가 된 계기는.

엔씨소프트의 자회사로 있다가 2009년에 완전히 흡수됐다. 그때 직원 절반 정도와 함께 그만뒀다. 내가 만든 회사가 없어지는 마당에 나도 나오는 게 순리에 맞다 생각했다. 게임 일을 너무 오래 하다보니 지겹고 힘들기도 했다. 회사를 다닐 때는 몰랐는데 나오고 나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던 것 같다.

대기업의 자금을 받으니 회사 운영에 대한 걱정은 어느 정도 사라졌지만 대신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오더가 내려오는 대로 일을 해야 한다는 점이 답답했다. 서비스 개발이 80% 정도 이뤄졌는데 여러 가지 조직의 논리나 사업방향의 변화 때문에 백지화되면서 허탈한 적도 있었다. 그래도 회사의 대표로서 조직원들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꾸역꾸역 게임 일을 해야 하겠거니 생각했는데 조직이 아예 흡수돼버리자 그만둘 명분이 생긴 것이다.

10년 정도 회사생활을 하며 중간중간 대학원 수업도 들었다. 정말 힘들었지만 그래도 석사과정 수료는 해놓았었다. 퇴사 후 학교로 돌아와 졸업논문을 썼다. 게임 일을 워낙 오래 했기에 논문을 쓰는 중에도 같이 게임회사를 차리자든가, 자기 회사에 들어오라는 제안을 받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과학에 대한 관심도 있어서 이런저런 생각으로 진로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민족사관고에서 생물교사를 뽑는다는 제안이 연구실로 왔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한번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지도교수님께 말씀드렸다.



지도교수님의 반응은.

반대하셨다. 교사일을 해본 적도 없고 그동안 게임일 하면서 생물학은 다 잊었는데 어떻게 민사고 같은 학교에서 교사가 될 수 있겠냐 하셨다. 연구실 이름에 먹칠할 것 같다며 걱정하셨다. 그래도 내가 밀어붙였다. 학교의 사정도 있었다. 당시 생물교사 하시던 분이 새 학기를 앞둔 상황에서 그만두셨다고 한다. 심지어 민족사관고는 개학이 일반고보다 한 달 빠르기 때문에 정말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교사로 부임했다. 첫해는 고생했다. 학창시절 공부했던 내용들을 되살려내기 위해 새벽 2∼3시까지 혼자 공부하고, 그 내용으로 바로 다음날 수업을 하곤 했다.



기업 CEO에서 고등학교 교사로 변신하니 어떻던가.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다. 벤처기업을 운영하던 시절엔 두세 달 앞의 일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조마조마했다. 신기하게도 직원이 5명이던 시절이나, 30명이던 시절이나 회사 통장잔고는 항상 간당간당했다. 학교에 오자 이젠 직원을 챙기지 않아도 되니 스트레스가 줄었다. 물론 답답할 때도 있다. 남들은 공기 좋은 곳에 사니까 건강해졌겠다고 하지만 나는 가끔씩 지저분한 서울 공기를 쐬어야 건강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과학만화를 그리게 된 계기는.

교사 2년 차가 되자 살짝 시간 여유가 생겼다. 또 대학에 있을 때보다 과학에 대해서도 더 많이 알게 됐다. 민족사관고는 일반 학교처럼 교사가 한 과목을 반복해 수업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과목을 계속 개설해야 한다. 정규 교과과정에 있는 생물 강의도 하면서 학생들의 수요에 따라 세포생물학, 분자생물학, 면역학 등의 심화과정을 개설해야 한다. 교사가 공부를 게을리할 수 없다. 그러다보니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벤처를 창업할 때도 그랬듯이 내겐 뭔가를 만드는 것에 대한 욕구가 항상 있다. 방과 후 원주 시내에 나가 조용한 카페에서 태블릿으로 그림을 그렸다. 카페에 오래 앉아 있다가 쫓겨난 적도 있다. 주말과 방학도 책에 투자했다. 방학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선생님들도 있지만 나는 방학마다 자신을 채찍질했다. 그렇게 1년4개월을 들여 2012년에 첫 책을 출간했다.

책을 쓰는 일은 나의 숨통을 틔워준다. 몸은 힘들지만 심적으로는 여유를 가질 수 있다. 보람도 있고 책을 통해 알게 된 사람도 많아 소통창구가 넓어진 느낌이다. 이를 통해 삶도 풍부해졌다.



만화라는 형식을 택한 이유는.

따로 만화를 배운 적은 없다. 처음에는 만화책까지는 생각을 안 했고 그림이 가미된 책을 쓰겠다는 생각만 했다. 그런데 만화가이자 교사인 동생이 본격적으로 만화책을 만들어보라고 권유했다. 만화는 만화만의 묘미가 있다. 텍스트로 쓰는 글보다 기획해야 하는 요소가 많다. 연출이 필요하다. 칸칸의 연출이 생명력이다. 마치 영화 같다. 카메라감독, 촬영감독, 대본작가, 배우와 연출, 캐스팅까지 필요하다.

나는 완성형 작가는 아니다. 작품을 하면서 점점 나아진다. 작업이 끝날 때쯤 보면 먼저 그렸던 앞쪽 부분은 그림이 조잡해서 스스로 참을 수가 없을 정도다. <게놈 익스프레스>도 1장과 2장은 완전히 다시 그렸다. 어느 정도 반열에 오른 작가들은 작품이 뒤로 갈수록 의욕이 떨어져서 작품 퀄리티가 떨어지곤 한다. 나는 반대다. 앞보다 뒤가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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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공부에 취미를 뒀던 것이 과거 회사생활에 도움이 됐는가. 직장인들에게 과학 공부를 권하고 싶은가.

그 반대다. 오히려 게임회사 생활을 했던 것이 과학만화 제작에 도움이 됐다. 콘텐츠 개발, 기획, 캐릭터 개발이라는 점에서 유사하다. 게임회사 창업 초기에 구성원들과 같이 고민하고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재미있었는데 만화를 그리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part 2 - <게놈 익스프레스>에 대해

‘유전자’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유전자 = DNA4 ’라고 생각한다. 유전자(遺傳子)라는 단어 자체도 어떤 실체, 물질을 떠올리게 한다. 마치 USB 메모리 안에 데이터가 저장돼 있듯이 사람의 유전정보가 DNA라는 물질 안에 저장돼 있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 DNA 안에 일차원적인 문자의 배열이 있는데 그것을 번역하고 해독할 수 있다면 유전의 비밀을 풀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인식은 맞지만 또 틀렸다. 사실 100여 년 전 과학자들이 유전자(gene)라는 용어를 처음 만들었을 때는 유전자가 특정 물질일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생물학이 발전하고 DNA가 발견되면서 유전자가 물질인 것처럼 인식된 것이다. 이후의 여러 생물학적 발견들은 이 모델 자체에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걸 밝혀냈다. (‘유전을 밝히는 과학자들의 여정’ 참고.)

DBR mini box

유전을 밝히는 과학자들의 여정

현대인은 이미 DNA라는 존재를 알고 있기 때문에 이를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만 과거의 학자들은 유전이라는 현상에 대해, 또 생명의 탄생과 진화라는 현상에 대해 갖고 있는 정보가 극히 제한적이었다. 책에 소개된 유전과학의 발전 과정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전성설(preformation theory)

근대 이전의 학자 중에는 우리 몸 안에 미니 인간들이 가득 들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인간의 정자 안에 아주 작은 사람이 들어 있고, 그것이 난자로부터 영양분을 얻어 점점 커진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고성능 현미경이 발명되자 전성설은 곧 폐기됐다. 정자를 확대해보면 사람모양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는 생명체가 어떤 방식으로든 스스로를 조직화해가는 것 같다는 관점(후성설)에서 연구가 이어졌다.

그레고어 멘델(1822∼1884)

멘델은 성직자였는데 생명체에 대한 관심도 많았다. 완두콩으로 실험을 했는데, 당시로서는 획기적으로 통계적인 방법론(실험계획법)을 도입했다. 우성형질과 열성형질을 설명하는 ‘멘델의 유전법칙’을 발견했지만 당시엔 알아주는 이가 없었다.

토머스 모건(1866∼1945)

모건은 멘델의 완두콩 실험에서 한발 더 나아간 초파리의 교배 실험을 통해 생명체의 유전 현상이 세포 안 염색체에 기반한다는 것을 확실히 밝혔다. 염색체(chromosome)는 굵은 실타래 모양의 구조물이다. 특정 화학물질에 의해 염색이 잘된다는 뜻에서 저런 이름이 붙었다.

조지 비틀(1903∼1989)과 에드워트 테이텀(1909∼1975)

이들은 세포 내 유전자가 단백질을 합성한다고 주장했다.

에르빈 슈뢰딩거(1887∼1961)

슈뢰딩거는 원래 물리학자다. 그는 유전자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한 끝에 ‘정보’ 개념을 도입했다. 유전자가 문자와 같은 암호화된 코드 형태일 거라고 생각했다. 이는 당시 젊은 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줬다.

제임스 왓슨(1928∼)과 프란시스 크릭(1916∼2004)

이들은 당시 여러 학자들의 실험과 연구결과를 종합해 DNA가 이중나선구조를 띤 유전 물질임을 밝혔다.

마셜 니린버그(1927∼2010)와 고빈드 코라나(1922∼2011)

이들은 DNA의 네 종류 염기가 세 개씩 배열되는, 총 64개(4 X 4 X 4)의 염기서열을 밝혀내고 이를 20여 종의 아미노산(단백질)에 대응시켰다. 이로써 어느 염기가 어느 아미노산에 연관된 것인지를 알 수 있게 됐다.

이언 월머트(1944∼)

불가능하다고 생각됐던 포유류 복제에 성공했다. 복제양 돌리는 인간복제 가능성 논란으로 이어지며 생명공학의 윤리적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했다.

바버라 매클린톡(1902∼1992)

생명체의 기능은 유전체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세포, 세포의 조합, 그 외 유기체의 모든 요소와의 복잡한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것이라 생각했다.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자. DNA라는 물질 안에 유전정보가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는 없다. 유전현상은 말 그대로 현상으로 봐야 한다. 생물학적 정보가 어느 물질 위에 새겨져 있는 걸로 봐서는 안 된다. 마치 우리가 ‘경제’ ‘문화’ 같은 것을 손으로 잡을 수 있는 물질로 인식하지 않는 것과 같다. 지폐, 동전 같은 물질이 ‘경제’의 전부는 아니지 않는가. 경제는 하나의 현상이고, 총체적인 과정이다. 문화와 예술도 마찬가지다. 유전도 그렇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유전자’라는 말 때문에 ‘유전 = 어떤 물질’이라는 오해가 생긴다.

게임 개발의 예를 들어보자. 게임이라고 하면 하드디스크 같은 저장공간에 저장된 코드를 연상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이 게임을 즐기려면 그런 프로그램 코드만 가지고는 불가능하다. 그 코드를 해독하는 메커니즘(소프트웨어와 프로그래밍 언어, 논리)도 필요하고, 기계(PC와 모니터 등의 하드웨어)도 필요하고, 그것을 게임으로 받아들이는 인간의 인지과정도 필요하다. 그런 여러 ‘관계’들이 모여서 게임이라는 정보가 되는 것이지 글자가 잔뜩 쓰여 있는 프로그램 코드만 가지고는 게임이 되지 않는다. DNA도 마찬가지다.



할리우드 영화가 잘못된 인식을 강화하는 측면도 있다. 영화들을 보면 멸종한 공룡의 DNA 서열을 발견해낸 과학자들이 그 공룡을 재생해내기도 하고, 또 죽은 사람의 DNA를 가지고 재생해낼 수 있는 것처럼 나온다. 하지만 실제로는 티라노사우루스의 DNA 서열을 완벽하게 발견한다고 하더라도 티라노사우루스를 재생할 수는 없다. DNA만 가지고는 유의미한 정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DNA는 도서관에 무질서하게 널브러져 있는 책더미 같은 것이다. 그것은 목적을 가진 사람이 집어내야만 비로소 의미 있는 정보가 된다. 정보는 ‘관계’에 의해서 의미가 나타나는 것이지 독립적인 것이 아니다.

단, 멸종한 매머드를 재생하는 정도는 실현 가능성이 있다. 매머드와 유사한 코끼리라는 개체가 생존해 있기 때문이다. 매머드의 DNA 서열을 코끼리와 비교해서 차이가 나는 부분만 치환해서 살려보겠다는 거다. 나머지는 코끼리와 똑같다고 가정하고. 하지만 공룡은 참조할 것이 없기 때문에 재생이 불가능하다.



‘유전자 = DNA’가 아니라니 충격적이다.

왓슨과 크릭5 이 DNA의 구조에 대해 발표한 게 1950년대다. 그 분야는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 뒤로는 상황이 복잡해졌다. 이제 유전자는 맥락에 따라 DNA를 의미할 수도 있고, DNA의 특정 부분을 의미할 수도 있고, 염색체를 의미할 수도 있다. 그래서 아예 ‘유전자’라는 단어를 쓰지 말자는 의견도 있다. 그 단어 안에 너무 많은 맥락과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과학자들끼리는 맥락에 맞게 적절히 이해하지만 일반인들이 들었을 때는 혼란스럽다.



결국 유전자만으로는 유전이 되는 것도 아니라는 얘기인 것 같다.

유전이라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고, 훨씬 복잡하다는 얘기다. 단순히 DNA가 생명체에 지령을 내려서 유전현상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생명체의 모든 정보를 DNA나 수정란에 우겨넣을 수는 없다. DNA 레벨에서, 단일세포 레벨에서, 다세포 레벨에서 온갖 새로운 사건과 새로운 대화들이 생겨난다. 예를 들어 모든 세포는 동일한 염색체 DNA를 가지고 있지만 어떤 세포는 머리가 되고, 어떤 세포는 장기가 된다. 각각 다르게 발현된다. 이를 창발성(emergent properties)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는 너무 방대한 얘기라서 교과서에는 여전히 1960, 70년대 발견된 부분만 소개한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유전 = DNA’라고 단순하게 왜곡해서 이해하게 된다.

창발성이란 부분의 합이 전체가 아니라 전혀 다른 의미가 생성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소금의 분자식은 NaCl이다. Na(나트륨)와 Cl(염소)은 개별적으로 보면 독성이 있는 물질이다. 그런데 이 두 물질이 이온결합을 한 상태가 되면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된다. 합쳐지기 전에는 전혀 예상할 수 없던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생명체도 마찬가지다. 단계별로 분자 레벨, 세포 레벨, 조직 레벨, 기관 레벨, 이렇게 올라갈수록 그 전 단계에서는 예상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 DNA는 DNA 레벨에서 벌어지는 일(단백질 만들기)에 관여할 뿐 인간의 거시적인 특징을 결정하지 못한다.

또 생명체에는 직렬처리, 병렬처리, 모듈구조, 우회경로 처리, 피드백 구조 등 많은 정보처리 방식이 쓰이고 있다. 오늘날 IT 시스템 설계에도 이런 방법들이 쓰이고 있는데 생명체는 그런 것들을 기계보다 훨씬 더 세련되게 쓰고 있다. 경외감이 들 정도다.



그럼 DNA 레벨에서 결정되는 것은 무엇인가.

동물의 눈동자 색깔을 바꾸거나 특정 유전병을 치료하는 수준이다. 어떤 유전병은 열성 유전자를 우성 유전자로만 바꿔도 치료가 된다.6

유전병 중에서도 DNA로 조작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집안에 암이나 심근경색 같은 가족력이 있다고 했을 때 그런 것을 유전자 조작만으로는 막을 수 없다. DNA만으로는 무엇이 심근경색을 가져오는지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마이클 조던 같은 운동신경을 가진 사람’을 만든다는 식의 조작도 불가능하다. 마이클 조던 같은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어떤 요소들이 마이클 조던의 운동신경을 만드는 데 관여하는지 모두 파악하기란 현재로선 불가능하다. 물론 앞으로는 연구를 통해 많은 내용이 밝혀질 것이지만 유전자 서열만 바꿔서는 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 전체적인 관점에서 봐야 한다.

그래서 요즘은 과거 인기 있었던 ‘게놈 프로젝트’처럼 유전자 자체만을 연구하는 프로젝트는 많이 하지 않는다. 질병 치료와 관련해서는 유전자 자체에 대한 연구보다는 유전자가 어떻게 세포와 조직으로 발현되느냐에 더 관심을 두고 연구한다. 유전자 그 자체에 대한 연구는 오히려 진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많이 한다. 인류의 기원이나 생물체의 종 분화를 연구할 때 DNA 염기서열을 보면 그 안에서 진화의 흔적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 DNA를 보면 나의 조상이 몽골에서 왔는지, 남아시아에서 왔는지 등을 파악할 수 있다.



한국에선 황우석 스캔들이 있었다.

황우석 사태는 우선 인간 배아를 가지고 연구하는 행위에 대한 법 기준이 없어서 문제가 됐던 측면이 있었다. 또 실험 조작이라는 측면의 문제도 있었다. 사실 실험 조작의 경우 어디까지가 조작이고, 조작이 아닌지 그 경계는 좀 애매하다. 황우석만의 문제가 아니다. 멘델의 경우도 완두콩 실험을 하면서 자신의 이론에 맞는 실험 결과만을 발표했다. 생물학 실험에서는 사진 수백 장을 찍어서 자기가 원하는 결과만 논문에 내는 경우가 빈번하다. 경쟁이 치열한 분야일수록 이런 현상이 심하다. 자기도 알게 모르게 약간의 조작이 들어가는 것이다. 황우석 사건은 이런 문제를 잘 보여주는 사례였다. 어쨌든 그런 사건이 한번 터지면 대중도 관심을 갖고 법제화를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생긴다는 측면은 있다.



생명공학 분야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은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일 것이다.7
인간이라는 개체는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도구일 뿐이라는 내용이었다.
그 책의 내용은 어떻게 봐야 할까.

굉장히 잘 쓴 책이다. 과학적으로 옳아서가 아니다. 내용 구성이 굉장히 논리적이고 또 재미있다. DNA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 책은 옳다. 그런데 어떤 관점에서도 그런 얘기를 할 수 있다. DNA도 이기적이고, 세포도 이기적이고, 염색체도 이기적이다. 인간이라는 개체도 이기적이다. 이기적이라는 표현은 감성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원래 도킨스가 붙이려던 제목은 ‘The immortal gene(불멸의 유전자)’였다고 한다.



조진서 기자 cjs@donga.com
동아비즈니스리뷰 345호 Fake Data for AI 2022년 05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