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연(燕)나라의 재상이었던 자지(子之)가 임금 자쾌(子噲)를 속여 왕위를 찬탈한 일이 있었다. 연나라는 발칵 뒤집어졌고 주변국들에게는 연을 정벌할 수 있는 절호의 명분이 생겼다. 이때를 놓칠 세라 이웃의 강대국 제나라가 잽싸게 쳐들어가서는 불과 50일 만에 이 혼란한 나라를 정복해버렸다. 새로운 임금을 옹립해주고 철군하라는 맹자의 조언을 무시한 채, 제나라 선왕은 연을 집어삼킬 야욕을 꺾지 않았고, 결국 2년 뒤 연나라 사람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쳐 초라하게 철군해야 했다. 애초에 맹자의 말을 듣지 않고 일격을 당한 제선왕이 맹자를 대할 면목이 없다고 신하들에게 말하자 진가(陳賈)라는 신하가 왕을 변호하고 나섰다. “제가 맹자를 찾아가서 이 일을 해명하고 오겠습니다.”
진가가 맹자에게 물었다. “주공(周公)은 어떤 분입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옛날의 성인(聖人)입니다.” 진가가 다시 물었다. “주공이 형인 관숙(管叔)으로 하여금 은나라 유민을 감시하게 했는데, 이 양반이 도리어 그들과 결탁해서 반란을 일으켰잖아요? 그렇다면 주공은 그가 그럴 줄 알고도 감시직에 임명한 것인가요?” 형이 반란을 일으킬 것을 알고도 그 임무를 맡겼다면 주공은 옳지 못한 일을 한 것이고, 반란을 일으킬 것을 몰랐다면 주공이라는 성인도 지혜가 부족한 것이라는 논리였다. 그는 이 질문으로 맹자를 진퇴양난에 빠뜨린 것을 확신했다. 맹자가 대답했다. “물론 모르고 했지요. 관숙이 형이니 믿고 맡긴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요?” 그리고 이어서 일침을 가한다. “옛 군자는 잘못을 하면 고쳤는데, 지금의 군자라는 자는 잘못을 저지르고도 멈추지 않고 또 합니다. 옛 군자의 잘못은 일식과 월식 같은 것이라 잘못을 저지르면 사람들이 다 쳐다봤다가도, 고치면 사람들이 다시 그를 존경합니다. 지금의 군자는 잘못을 계속 저지를 뿐만 아니라 거기에 대고 변명까지 늘어놓는군요.” (<맹자> ‘공손추 하’ 참조.)
누구나 인생을 살면서 잘못을 저지른다.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았건, 또는 재수 좋게(?) 들키지 않건 재수가 없어 들키건, 일상의 작은 실수에서 큰 사고까지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사람은 없다. 전혀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해칠 것이다. 설령 그럴 수 있다 하더라도 너무 맑은 물에는 물고기가 살지 못한다고 흔히 말하듯 그에게는 사람들이 다가서기 어려울 것이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성인(聖人)도 잘못을 하는 일이 있고, 때로는 망가지는 면도 있다. 또 그것이 인간미다.
다른 것은 잘못에 대한 사후 처리다. 첫째, 군자는 잘못을 인정할 줄 안다. 이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인데, 잘못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큰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는 보통 잘못의 인정 이후에 벌어질 사태들이 두려워 잘못을 숨기려 하지만, 그것이 사태를 더 악화시키는 일을 수없이 목도한다. 용기와 상반되는 두려움이 크기 때문이다. 둘째, 잘못을 인정한 군자는 그것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반대로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잘못인 줄 알면서도 고치려 하지 않을 뿐더러 심지어 그에 대한 합리화의 변명을 줄줄이 늘어놓게 된다.
하루가 멀다 하고 유명인들이 친 ‘사고’의 소식을 접한다. 연예인이나 스포츠맨의 잘못은 눈살 찌푸리고 혀 차는 정도로 지나갈 수 있지만 존경의 대상이 돼야 할 소위 ‘지도층’의 그것은 사회적 파장이 만만치 않다. 그분들의 일거수일투족은 사회 구성원들의 정의감과 가치판단의 기준, 사회 전반의 분위기 형성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이것이 지도층들이 일식과 월식처럼 잘못을 인정하고 개선하는 데 힘써야 하는 이유이다. 사람들이 더 이상 눈살을 찌푸리지 않고, 정당하게 사는 사람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서 지도층들의 잘못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울러 사회의 분위기가 조금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 우리 모두가 자신에게는 관대하면서 타인의 잘못에는 너무 민감하지는 않은지 스스로 돌이켜 봐야 한다. 물론 이는 “나도 잘못을 저지를 때가 있으니 너의 잘못도 이해해준다”는 식의 사고방식을 가지라는 것이 아니다. 잘못의 인정과 개선이 어렵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진실 되게 개과천선한 사람이 있다면, 그 점은 높게 평가해주자는 것이다. 용서가 있어야 용서받을 용기를 낼 것이 아니겠는가.
이치억 성신여대 동양사상연구소 연구교수
필자는 퇴계 선생의 17대 종손(차종손)으로 전통적인 유교 집안에서 나고 자라면서 유교에 대한 반발심으로 유교철학에 입문했다가 현재는 유교철학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 성균관대 유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성신여대 동양사상연구소에서 연구 활동을, 성균관대·동인문화원 등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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