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 애슈턴 사물인터넷 창시자 강연
Article at a Glance
터치 스크린방식의 스마트폰이 세계 최초로 접목된 모델은 LG전자의 프라다폰이다. 그러나 많은 세계인들은 카리스마적 천재, 고(故) 스티브 잡스가 이끄는 애플이 이런 기술을 처음 구현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혜택받은 특정인만, 그리고 특정 공간에서만 위대한 창조가 탄생할 수 있다는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소수의 천재만이 혁신을 이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발상만 전환한다면 누구든 창조를 할 수 있다. 창조는 한순간의 영감이 아니라 평생을 걸쳐 쌓은 인내의 선물이다. |
‘동아비즈니스포럼 2015’ 첫째 날 오후 강연에 참석한 케빈 애슈턴 전(前) 벨킨 청정기술사업 총책임자는 연단에 오르자마자 조용히 휴대전화를 꺼내 청중들의 모습을 촬영했다. 그는 “강연이 끝나자마자 이 동영상을 SNS에 올려 서울에서 만난 여러 분들의 모습을 공유하려 한다”며 “손바닥만 한 기기로 세상을 찍고, 전 세계 사람들과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게 된 이 세상은 불과 10년 전에도 상상하기 어려웠다”고 말문을 열었다.
IoT(Internet of Things) 개념의 창시자이기도 한 그는 이날, IoT 혁신의 이전 단계이자 기본 전제 조건이라 할 수 있는 창조의 의미와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그의 강의를 요약 정리했다.
케빈 애슈턴(Kevin Ashton)은 매사추세츠공과대(MIT)에 거점을 둔 오토-아이디센터를 공동설립하고 소장을 지냈다. 이 센터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실시간 임베디드 시스템 연구실(Real-time and Embedded Systems Lab) 등을 포함해 세계 곳곳에서 연구실을 운영하고 있다. 애슈턴은 옥스퍼드 영어사전에도 등재된 사물인터넷(IoT·Internet of Things) 개념을 창시한 관련 분야 최고 권위자다. 그는 IoT 기술과 관련한 스타트업 세 곳의 경영자로 활동하면서 무선전자태그(RFID) 전문 학술지인 <쿼츠>와 <미디엄> 등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저서로 <창조의 탄생> 등이 있다.
창조의 오해
창조라는 개념에 대해 사람들이 생각하는 오해와 신화(myth)는 생각보다 강력한 것 같다. 오늘 말할 창조의 혁신 얘기에는 한국도 소재로 등장한다.
먼저 트럭 얘기로 시작해보겠다. 서호주의 외딴 광산 지대에선 수백 대의 무인 트럭이 운영되고 있다. 사람이 살 만한 환경이 아니고 운전자를 고용하기엔 비싸기 때문에 사람이 타지 않고도 운영되는 시스템을 도입한 것이다. 이 트럭은 땅의 표면을 파내 매우 희귀한 재료를 얻는 데 사용된다.
이번엔 호주에서부터 멀리 떨어진 그린란드로 가보자. 여기서도 특수한 재료를 채취할 수 있다. 이러한 원자재들은 각기 컨테이너에 실려 미국으로 옮겨진다.
또 다른 지역에서도 원료들이 수집된다. 아프리카 동쪽 해안의 섬에선 난초의 씨와 꽃을, 스리랑카에서는 나무 껍질을 모으기도 한다. 미국에선 옥수수를 채취하고, 이를 적셔 가루로 만드는 작업을 진행한다.
이 모든 여정은 코카콜라 한 캔을 만들기 위한 과정이다.
콜라는 이처럼 다양한 지역에서 소싱한 원료들을 혼합해 만들어진다. 생각지도 못했고 서로 어울릴까 싶었던 재료들이 한데 어우러져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베스트셀러 제품으로 탄생한 것이다. 원래는 유리병에 넣어 판매됐던 코카콜라가 알루미늄 소재의 캔에 담겨 선보여진 첫 장소가 한국이다. 한국전쟁 때 파병된 미군들을 위해 우선적으로 보급했기 때문이다.
많은 창조물들은 대개 이처럼 매우 복잡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렇게 이질적인 것들의 조합은 곧 위대한 창조로 이어진다.
이번엔 콜라의 원료 중 하나인 바닐라를 살펴보자. 전 세계인들이 좋아하고 가장 많이 사용하는 향신료 중 하나인 바닐라는 지금으로부터 170여 년 전만 해도 멕시코 이외 지역에선 생산하기 어려웠다. 유럽인들이 멕시코 아즈텍 사람들이 바닐라를 향신료로 사용해 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1500년대 초반, 자국에서 생산해보려고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유럽에선 꽃을 피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19세기 후반, 찰스 다윈의 진화론 발표 이후에야 유럽에 서식하지 않는 녹색 벌이 바닐라의 수분 매개자라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300년간 바닐라 난초는 유럽에선 수정시키기 어려운 식물로 여겨졌다.
그렇다면 19세기 중반 바닐라는 어떻게 전 세계로 퍼져나갈 수 있었을까. 놀랍게도 혁신의 키는 아프리카 동쪽의 프랑스령 식민지 섬인 레위니옹에 살던 한 흑인 노예 소년, 에드먼드가 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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