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 애슈턴 사물인터넷 창시자 강연

바닐라의 세계화? 한 소년의 호기심 덕! 발상만 바꾸면 누구나 창조한다

192호 (2016년 1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터치 스크린방식의 스마트폰이 세계 최초로 접목된 모델은 LG전자의 프라다폰이다. 그러나 많은 세계인들은 카리스마적 천재, () 스티브 잡스가 이끄는 애플이 이런 기술을 처음 구현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혜택받은 특정인만, 그리고 특정 공간에서만 위대한 창조가 탄생할 수 있다는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소수의 천재만이 혁신을 이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발상만 전환한다면 누구든 창조를 할 수 있다. 창조는 한순간의 영감이 아니라 평생을 걸쳐 쌓은 인내의 선물이다.

 

‘동아비즈니스포럼 2015’ 첫째 날 오후 강연에 참석한 케빈 애슈턴 전() 벨킨 청정기술사업 총책임자는 연단에 오르자마자 조용히 휴대전화를 꺼내 청중들의 모습을 촬영했다. 그는강연이 끝나자마자 이 동영상을 SNS에 올려 서울에서 만난 여러 분들의 모습을 공유하려 한다손바닥만 한 기기로 세상을 찍고, 전 세계 사람들과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게 된 이 세상은 불과 10년 전에도 상상하기 어려웠다고 말문을 열었다.

 

IoT(Internet of Things) 개념의 창시자이기도 한 그는 이날, IoT 혁신의 이전 단계이자 기본 전제 조건이라 할 수 있는 창조의 의미와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그의 강의를 요약 정리했다.

 

 

케빈 애슈턴(Kevin Ashton)은 매사추세츠공과대(MIT)에 거점을 둔 오토-아이디센터를 공동설립하고 소장을 지냈다. 이 센터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실시간 임베디드 시스템 연구실(Real-time and Embedded Systems Lab) 등을 포함해 세계 곳곳에서 연구실을 운영하고 있다. 애슈턴은 옥스퍼드 영어사전에도 등재된 사물인터넷(IoT·Internet of Things) 개념을 창시한 관련 분야 최고 권위자다. 그는 IoT 기술과 관련한 스타트업 세 곳의 경영자로 활동하면서 무선전자태그(RFID) 전문 학술지인 <쿼츠> <미디엄> 등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저서로 <창조의 탄생> 등이 있다.

 

창조의 오해

 

창조라는 개념에 대해 사람들이 생각하는 오해와 신화(myth)는 생각보다 강력한 것 같다. 오늘 말할 창조의 혁신 얘기에는 한국도 소재로 등장한다.

 

먼저 트럭 얘기로 시작해보겠다. 서호주의 외딴 광산 지대에선 수백 대의 무인 트럭이 운영되고 있다. 사람이 살 만한 환경이 아니고 운전자를 고용하기엔 비싸기 때문에 사람이 타지 않고도 운영되는 시스템을 도입한 것이다. 이 트럭은 땅의 표면을 파내 매우 희귀한 재료를 얻는 데 사용된다.

 

이번엔 호주에서부터 멀리 떨어진 그린란드로 가보자. 여기서도 특수한 재료를 채취할 수 있다. 이러한 원자재들은 각기 컨테이너에 실려 미국으로 옮겨진다.

 

또 다른 지역에서도 원료들이 수집된다. 아프리카 동쪽 해안의 섬에선 난초의 씨와 꽃을, 스리랑카에서는 나무 껍질을 모으기도 한다. 미국에선 옥수수를 채취하고, 이를 적셔 가루로 만드는 작업을 진행한다.

 

이 모든 여정은 코카콜라 한 캔을 만들기 위한 과정이다.

 

콜라는 이처럼 다양한 지역에서 소싱한 원료들을 혼합해 만들어진다. 생각지도 못했고 서로 어울릴까 싶었던 재료들이 한데 어우러져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베스트셀러 제품으로 탄생한 것이다. 원래는 유리병에 넣어 판매됐던 코카콜라가 알루미늄 소재의 캔에 담겨 선보여진 첫 장소가 한국이다. 한국전쟁 때 파병된 미군들을 위해 우선적으로 보급했기 때문이다.

 

많은 창조물들은 대개 이처럼 매우 복잡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렇게 이질적인 것들의 조합은 곧 위대한 창조로 이어진다.

 

이번엔 콜라의 원료 중 하나인 바닐라를 살펴보자. 전 세계인들이 좋아하고 가장 많이 사용하는 향신료 중 하나인 바닐라는 지금으로부터 170여 년 전만 해도 멕시코 이외 지역에선 생산하기 어려웠다. 유럽인들이 멕시코 아즈텍 사람들이 바닐라를 향신료로 사용해 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1500년대 초반, 자국에서 생산해보려고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유럽에선 꽃을 피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19세기 후반, 찰스 다윈의 진화론 발표 이후에야 유럽에 서식하지 않는 녹색 벌이 바닐라의 수분 매개자라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300년간 바닐라 난초는 유럽에선 수정시키기 어려운 식물로 여겨졌다.

 

그렇다면 19세기 중반 바닐라는 어떻게 전 세계로 퍼져나갈 수 있었을까. 놀랍게도 혁신의 키는 아프리카 동쪽의 프랑스령 식민지 섬인 레위니옹에 살던 한 흑인 노예 소년, 에드먼드가 쥐고 있었다.

 

 

300년 동안 유럽의 석학들이 풀지 못했던 난제를 불과 12살의 소년이 어떻게 풀 수 있었을까. 주인 가족의 농장에서 허드렛일을 하던 에드먼드는 1841년의 어느 날, 농장에 심어진 바닐라 덩굴을 발견한 뒤 우연히 인공적인 수정을 시도했다. 꽃잎을 뒤로 젖혀 대나무 가지로 자가 수정을 방해하는 부분을 올린 뒤 꽃밥과 암술머리를 쥐면 바닐라 꽃이 자가수정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기 때문이다.1

 

에드먼드의 작지만 위대한 발견 덕에 우리는 코카콜라를 마시고 샤넬 향수도 쓸 수 있게 됐다. 이후 대규모로 바닐라 나무를 재배할 수 있는 방법이 정립됐다.

 

위대한 발견과 발명은 모두 창조의 요소다. 창조는 12살짜리 노예도 할 수 있는, 인간이라면 모두가 타고 태어난 특질 중 하나다. 특정인에게만 주어진 마법 같은 힘이 아니라는 뜻이다.

 

다시 코카콜라 얘기로 돌아가보자. 코카콜라의시크릿 포뮬러중 하나는 거품이다. 물 안에 있는 기포가 청량감을 주는 핵심 요소로 작용한다. 이를 위해 화학 기술이 활용됐다. 이처럼 혁신의 한 필요조건으로 기술을 빼놓을 순 없다.

 

조직을 창조적으로 키우고 싶다면 혁신이 필요하다. 그리고 혁신의 출발점은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혁신과 창조는 특정 계층의, 타고난 두뇌를 가진 일부만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지금 우리와 유사한 외모를 가진 인류는 5만 년 전쯤에 등장했고 이후 지속적으로 진보해왔다. 한 세대가 25년 정도라고 할 때 지금까지 2000세대가 지나온 셈이다. 5만 년의 인류와 현재 모습의 인류를 관통하는 공통점은 창조적이라는 요소다.

 

도구를 사용하는 능력은 현대의 역사가 시작되기 전부터 사용됐다. 인간은 거의 본능적으로 도구를 사용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어떤 사람들은기술이 너무 만연한 세상에 살다보니 기술이 싫어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대의 기술은 과거 인류가 썼던 도구와 다를 바 없다. 받아들이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타고난 인간 본성의 결과라는 뜻이다. 수만 년간 인간은 도구를 자발적으로 만들면서 뇌를 진화시켰다.

 

도구를 쓰느라 두 손을 사용하게 되면서 사람들은 점점 직립보행을 하게 됐다. 두 손이 땅을 짚는 기능을 완전히 하지 않게 되면서 두 손은 자유로워졌다.

 

인간의 두 손으로 해낸 일들은 매 순간 매우 혁신적이었고 혁신은 곧 인간만의 특별한 자질의 산물로 자리 잡았다.

 

한편 문자의 발명은 인간의 창조를 또 다른 단계로 인도했다. 인간이 만든 결과물을 기억하기 위해 등장한 문자 덕에 기록의 역사가 생겼고, 이런 기록을 축적하고 더 나은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창조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한 것이다.

 

창조와 관련해 인간이 갖고 있는 오해, 즉 혜택받은 특정인만 창조를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얼마나 사실을 왜곡하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스티브 잡스다. 터치스크린 방식의 스마트폰을 세계에서 처음 선보인 것이 잡스라고 믿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검은색 터틀넥 스웨터와 청바지 차림으로 등장하는 그의 프레젠테이션과 실리콘밸리라는 상징적 공간이 주는 후광효과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애플이 당연히 터치스크린형 스마트폰을 처음 발명한 것으로 믿게 된 것이다. 그러나 사실 터치스크린형 스마트폰을 처음 선보인 것은 LG전자다. 프라다폰이 아이폰보다 6개월 전 출시됐다.

 

한국에서야진실을 아는 분들이 많겠지만 다른 나라에서 강연을 하며 이런 얘기를 들려주면 청중들이 깜짝 놀라곤 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전하는 이유는 특정 기업 또는 사람만이 혁신을 만들 수 있다는 편견을 깨라는 사실이다. 카리스마나 후광효과 탓에 대단히 창의적인 사람은 소수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지기 마련이지만 사실 그런창의 인재 공식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은 창조하기 좋은 곳

 

많은 이들이 기술 혁신을 얘기할 때 실리콘밸리를 떠올린다. 그리고 그곳에서 영감을 받으려고 한다. 하지만 터치스크린형 스마트폰처럼 오히려 한국에서 더 큰 창조 정신이 꽃필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실제 미국의 하이테크 산업과 관련한 수출 규모는 최근 12년간 다소 감소 추세를 보였다.

 

반대로 한국은 지난 30년간 대단한 기술 수출 실적을 내왔다. 실리콘밸리로부터 배울 것도 있겠지만 서울에서 배울 것도 많다는 뜻이다. 한국의 하이테크 경제는 규모로 치면 이미 미국을 넘어설 수 있는 접점에 와 있다. 전 세계 하이테크 수출 규모와 관련해 미국은 전 세계 4위를, 한국은 이를 넘어선 3위를 곧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의 인구가 한국보다 6배 더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박수를 쳐줄 만한 일이다.

 

앞으로 인류에게는 좀 더 놀라운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 앞으로 100년간의 발전은 지금까지의 발전을 다 뭉개버릴 만큼 파괴적인 방식으로 나타날 것이다. 물론 기후변화 같은 부작용과 인간의 발전에 발목을 잡을 만한 복병이 없지는 않지만 굳이 부정적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창조적인 유전자를 타고 난 인류라면 이 또한 슬기롭게 대처할 솔루션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대개 한순간의 번뜩이는영감보다는 평생을 걸쳐 쌓은 인내의 과정을 통해 탄생해 왔다는 사실이다. 돌려 말하면 천재적인 기발한 아이디어보다 창조를 하기 위한 끊임없는 고민이 창조 공식의 핵심 공식이다.이런 교훈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정리=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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