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siness Insight from Biology
Article at a Glance
지난 5월 초 평안했던 대한민국에 메르스라는 생소한 바이러스가 유입되면서 우리 사회는 공황 상태에 빠졌다. 보건 당국은 우왕좌왕했고, 일반 국민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했다. 메르스 사태 발생 후 근 6개월이 지난 이 시점에서 차분하게 당시의 대처들을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 메르스 사태는 비즈니스 세계에도 시사점이 크다. 철저한 위기관리 시스템을 마련해 돌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
편집자주
흔히 기업을 살아 있는 생명체라고 합니다. 이는 곧 생명에 대한 깊은 이해가 경영에 대한 통찰로 이어질 수 있음을 뜻합니다. 30여 년 동안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에 천착해 온 이일하 교수가 생명의 원리와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독자들이 생물학과 관련된 여러 질문들에 대한 궁금증을 풀고 기업 경영에 유익한 지혜도 얻어 가시기 바랍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병을 일으키는 작은 생물체가 있다. 1300년대에서 1700년대까지 400여 년간 유럽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흑사병의 원인 페스트균이나 20세기 중반 온 인류를 공포에 떨게 했던 AIDS의 병원체, HIV 바이러스가 좋은 예다. 이들처럼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생물체가 참을 수 없는 공포를 안겨준다. 보이지 않기에 더더욱 우리 인류를 두려움에 빠뜨린다. 지난 5월에 발발해 3개월 이상 대한민국을 불안에 떨게 했던 메르스(MERS·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중동 호흡기 증후군)도 눈에 보이지 않는 극도로 작은 바이러스가 원인이다. 우리의 일상생활을 3개월 이상 지배했던 바이러스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바이러스, 얼마나 작은가?
19세기 중반 파스퇴르는 백조목 플라스크 속에 고기 국물을 넣고 끓인 뒤 관찰하면 고깃국이 부패하지 않음을 알았다. 반면 백조목에 균열이 일어나면 고깃국은 곧 부패하는 것을 보고 공기 중에 있던 세균이 음식 부패의 원인이며, 생물은 자연발생적으로 생기는 게 아니라는 주장을 펼치게 된다. 이러한 이론이 확장돼 세균설(germ theory)이 됐다. 이 이론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세균 때문에 병이 생긴다는 과학적 패러다임으로 발전한다. 이후 음식을 철저히 끓여먹고 손을 깨끗이 씻는 습관이 서구인들의 몸에 자연스럽게 배어들었다.
한편 19세기 말 러시아 과학자인 이바노프스키는 세균보다 더 작은 병원체가 담뱃잎에 모자이크병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는 이러한 병원체가 생물인지, 그냥 물질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를 ‘독(毒)’이라는 의미의 라틴어 ‘바이러스(virus)’라 불렀다.
물론 해충이 병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존재는 역시 세균과 바이러스다. 우리 몸을 이루는 세포를 서울대 관악캠퍼스 정도로 확대했다고 상상해보자. 세균은 관악 캠퍼스를 구성하는 단과대 중 하나인 인문대 캠퍼스 정도, 바이러스는 인문대 강의실에 들어 있는 책상 하나 정도의 크기로 생각하면 된다. 이렇게 작은 생물체가 우리 몸속에 침입해 들어와 각종 질병을 일으킨다. 세균성 질병으론 앞에서 예로 든 페스트 외에 결핵, 매독, 한센병, 파상풍 등이 있으며 바이러스성 질병으론 소아마비, 독감, 홍역, 천연두 등이 있다. 이렇게 작은 생물체가 우리 몸 세포 속으로 은밀히 잠입해 병을 일으킨다.
세균은 스스로 증식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 몸의 세포와 별로 다르지 않다. 모든 세포가 그러하듯이 세균도 DNA로 정보를 저장하고 생명활동에 필요한 다양한 대사 작용을 한다. 반면 바이러스는 정보를 저장하는 DNA(혹은 RNA)를 가지고는 있지만 스스로 증식할 수는 없다. 대사 작용에 필요한 효소들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바이러스가 가지고 있는 것은 게놈에 해당하는 핵산(DNA 혹은 RNA)과 게놈을 둘러싸는 단백질 수백 개, 그리고 인지질막과 지질막에 꽂혀 있는 표면단백질 등이 전부다. 바이러스가 증식되기 위해서는 숙주세포를 필요로 한다. 즉 우리 몸의 세포 속으로 침투해 세포가 제공하는 대사 기제를 이용해 증식한다. 바이러스는 스스로 물질대사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들을 숙주와 분리하면 그냥 물질에 지나지 않게 된다. 이 때문에 바이러스를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 영역에 있는 존재로 분류하기도 한다.
바이러스는 어떻게 인체에 침투하는가?
인체에 질병을 일으키는 모든 바이러스는 우리 몸속으로 침투해 들어오기 위한 특별한 표면단백질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 몸속 세포에는 바이러스의 표면단백질이 도킹할 수 있는 수용체 단백질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HIV 바이러스는 바이러스 표면에 외피 당단백질(envelope glycoprotein)인 GP120이라는 표면단백질을 가지고 있고, 우리 몸의 면역세포인 백혈구(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T세포, 대식세포, 수지상세포)는 세포막에 CD4(cluster of differentiation 4)라는 수용체 단백질이 있다. 그래서 이 두 단백질, 즉 GP120과 CD4 간 도킹에 의해 바이러스가 세포 내로 침투해 들어온다. 말하자면 우리 몸의 면역세포도 HIV 바이러스가 침투해 들어오는 데 한몫을 하고 있는 셈이다. 재밌게도 CD4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있는 소수의 유럽인들은 AIDS에 걸리지 않는다. 바이러스가 도킹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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