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standing Global Trends

갈리마르·카스텔리·보그에서 웹블로그로…이젠 게이트키퍼가 트렌드세터인 시대

186호 (2015년 10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기업들은아방가르드한 문화를 생산하고 트렌드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에게 주목해야 하는 것만큼게이트 키퍼들과의 소통도 중요시해야 한다. 특히 수십억 네티즌들이 블로그와 각종 UCC 사이트를 통해 생산하고 있는 현재는아이디어 과포화시대로 볼 수 있는데, 이런 시대일수록게이트 키퍼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결국 이들도트렌드 리더혹은트렌드 세터가 된다.

 

가스통 갈리마르, 리오 카스텔리, 안나 윈투어, 그리고 테비 게빈슨에 이르기까지, 기업들은 유명 게이트 키퍼들을 찾아 소통하고 그들과의 소통을 통해 다가올 유행 트렌드를 제대로 읽을 수 있어야 한다.

 

편집자주

매해 연말이 되면 ‘20XX년 트렌드 예측류의 책이 서점에 넘쳐납니다. 하지만 대부분 신문기사와 몇 가지 특정한 문화현상을 짜깁기한 것에 그쳐 실망을 줄 때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영자들은 사회와 문화의 변화,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 위치한 소비자들의 트렌드 변화를 알고 싶어 합니다. 글로벌 문화 전략가인 조승연 작가가 현재 세계적트렌드 리더와 그들이 만들어내는 해외의 최신 문화 트렌드, 그리고 그것이 비즈니스에 미칠 영향에 대해 소개합니다.

 

‘트렌드 리더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떠오르나? 아마 대부분창의적인 일을 해서 먹고사는 사람들을 떠오르게 한다. 인간은 끊임없이 새롭고 기발한 멋을 추구한다. 그것은 또한 인류 발전의 원동력일 것이다. 그래서 항상 새로운 패션, 예술, 소리, 디자인들을 개발해서 유행을 이끄는 사람들이 주목을 받는다. 지난 번 연재에서 소개했듯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왔고, 미래의 라이프스타일을 선도하고 세팅하는 실험적인 사람들은아방가르드의 멤버로서 많은 주목을 받아왔다. 그러나 수십억 네티즌이 블로그, UCC(User-Created Content) 비디오 포털, 위키 포털 등을 통해 매일매일 새로운 아이디어를 용광로처럼 뿜어내는아이디어 과포화 시대로 급속하게 이전하면서 재미있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선도하는 역할이 아방가르드 예술가에서 문화학에서 나온게이트 키퍼라고 부르는 그룹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게이트 키퍼란?’ 참고.)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라는 말이 있지만 구슬이 서 말이 아니라 백만 말씩 있으면 이 말은 더 중요해진다. 수요 공급 원리에 따라 너무 흔한 구슬은 가치가 거의 0원으로 떨어지고, 사람들이 선호하는 방법으로 꿰는 기술을 가진 사람의 몸값이 오를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아이디어 홍수 시대가 되면서 사람들은 안목 높은 누군가가 그 많은 구슬 즉, 아이디어들 중에서 유용하고 감동적인 것을 추려내 보기 쉽게 정리해 보여주기를 바라게 된다. 이런 이유로 새로운 창의성의 다양한 산물들 중 쓸 만한 것들만 뽑고 모아 멋진 조합으로 보여주는게이트 키퍼업종이 크게 부상하고 있다. 게이트 키퍼들의 역할은 색안경과 같다고 보면 된다. 안경 렌즈 모양과 색에 따라 세상이 다르게 보이듯 게이트 키퍼들이 구슬을 꿰는 방식, 즉 창의적인 아이디어의 산물들을 조합하는 방식이 사람들의 세상 보는 프레임이 된다. 따라서 기업가들도 신세대의 소비 트렌드와 발 맞춰 상품 개발과 판매에 성공하려면 세계적인 게이트 키퍼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소통해야 한다. 그들이 다가올 유행을 만들어낼 것이기 때문이다.

 

가스통 갈리마르: 1대 스타 게이트 키퍼

 

‘게이트 키퍼 시대를 연 사람은 20세기 초 프랑스의 가스통 갈리마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프랑스 대표 출판사 에디숑 갈리마르의 창업자다. 인쇄물 시대에 가장 중요한 문화 게이트 키퍼들은 잡지, 신문, 출판사의 편집장들이었다. 그들은 수많은 뉴스, 유행, 상품, 아이디어들 중 대중들에게 필요한 것들만 추려서 조합하는 일을 했다. 이 작업은 정보의 홍수로 결정 장애를 겪는 수많은 현대인들에게 복음 같은 것이었다.

 

20세기 초까지 프랑스의 미디어 산업은 전 세계의 문화를 리드했다. 프랑스는 세계 최초로 시민혁명에 성공해 다른 나라 사람들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언론의 자유를 보장받았다. 당연히 전 세계의크리에이티브들이 자유를 찾아 파리로 몰려들었다. 또한 프랑스는 시민 혁명의 성공으로 일반 시민들도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됐다.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 숫자가 급격히 늘었다.

 

문맹률이 적은 프랑스의 대중은 글 쓰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시장을 만들어 줬다. 글을 쓰는 사람은 파리 시장에서 성공해야만 큰 돈과 명예를 얻을 수 있었다. 이 금맥을 찾아 스스로 글 솜씨가 있다고 자부하는 유럽 각국의 젊은이들이 파리로 쏟아져 들어왔다. 결과적으로 파리에 수만 명의 철학자, 시인, 언론가 지망생들이 몰려들어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분량의 지식과 작품을 쏟아냈다. 당연히 우수한 작품들이 많았지만 형편없는 글이나 읽을 가치가 없는 거짓 글들까지 섞여 독자 스스로 그 모든 글을 다 읽어보고 옥석을 가리기가 힘들어졌다. 게다가 산업 발달로 생활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할 만큼 바빠져 그 모든 정보들을 가려 읽을 시간까지 없어졌다. 그러나 이런 변화를 비즈니스 기회로 승화시킨 사람이 있으니 바로 갈리마르 출판사 창업자 가스통 갈리마르다.

 

 

1908, 프랑스 파리에는 몇몇 문인들이 모여 문학 비평잡지 <NRF(NOUVELLE française) revue>를 발간했다. 그러나 문예지 하나만으로는 사업성이 없었다. 갈리마르는 글 읽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발간되는 책의 수도 급격히 늘면서 많은 독자들이 좋은 책 고르기를 어려워한다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사람들이문예지의 추천에 의존하는 모습을 발견했다. 이것을 비즈니스로 연결하면 수익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1910년 마침내 갈리마르는 베스트셀러 작가 친구 두 명과 공동 투자로 NRF출판사를 세웠다. 의 게이트 키핑 파워를 출판사의 수익으로 연결할 계획이었다.

 

갈리마르 스스로도 문학적 조예가 깊어 출판사를 세우고는 밤낮 없이 프랑스 문학계의 동태를 살필 수 있었다. 그는 성공 잠재력이 높은 작가들을 발굴해서잡지를 통해 등단시키고, 잡지가 만들어 낸 수요를 NRF출판사의 책 구매로 연결해 높은 수익을 창출해냈다. 갈리마르 출판사는 좋은 글만 낸다는 소문이 돌자 점차 프랑스의 독자들에게 갈리마르의 안목을 믿고 이 출판사에서 나온 책은 웬만하면 다 사서 읽는 독서 문화가 형성됐다. 문학가들로서는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책을 내면 성공이 보장됐다. 의 독자들 간에갈리마르의 작가(Ecrivain Gallimard)’라는 타이틀이 문학적인 성공의 징표로 부상했다. 오늘날까지 프랑스 문학가에게 갈리마르에서 책을 냈다는 것은 대단한 영광이다.

 

DBR Mini Box

 

 

 

게이트 키퍼란?

 

 

문화인류학에서게이트 키퍼 (Gatekeeper)’란 출판사나 잡지, 신문 편집자, 미술관, 박물관 등의 큐레이터, 극장주, 백화점의 MD들처럼 수많은 글, 작품, 상품 중에 쓸 만한 것을 골라 알기 쉽게 정리해 주는 사람들을 말한다. 인터넷이 등장하기 전에는 출판사나 갤러리, 백화점의 선택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생성된 작품이나 상품을 대중에게 선보일 수 있는 관문(Gate)이었다.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은 이들이 자신들의 등용문을 잘못된 판단으로 가로막고 있다는 부정적 의미로 이들을 게이트 키퍼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독재 국가에는 정부의 입맛에 맞지 않는 기사 내용을 삭제하는 일을 맡아 처리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쓰였다. 그러나 인터넷 시대가 열리면서 일반적으로 유행을 선도하는 아이디어의 편집자 역할을 하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책을 낸 사람들 중에는 앙드레 지드(노벨상 1947), JMG 르 클레지오 (노벨상 2008),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어린 왕자>의 저자 생텍쥐페리와 장-폴 사르트르 등 세계적인 작가들이 많다. 갈리마르 출판사는 신문사 ‘Mercure de France’를 인수하고 Flammarion 출판그룹과 M&A를 한 뒤 프랑스 최대 미디어 그룹 중 하나로 우뚝 섰다. 스스로 글을 쓰거나, 창작물을 만들지 않아도, 뛰어난 창작품을 고를 줄 아는 안목만으로도 세상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비즈니스에 성공할 수 있다는 본보기가 된 갈리마르의 뒤를 이어서 프랑스에서 많은게이트 키퍼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그들이 전 세계의 문화 트렌드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갈리마르의 성공은 인터넷이 세상에 나오기 전에 이미 네크워크 경제의 원칙을 실행에 옮긴 성공이었다. 또한 게이트 키퍼의 새로운 지평을 보여줬다.

 

 

 

리오 카스텔리: 뉴욕의 게이트 키퍼 시대를 열다

 

프랑스에서 뉴욕으로 건너가 뉴욕의 게이트 키퍼 시대를 연 사람은 리오 카스텔리다. 오늘날의뉴욕 스타일은 잭슨 폴락, 리히텐슈타인, 앤디 워홀 같은 예술가들과 그런 예술을 응용한 디자인을 떠올린다. 그러나 이들의 예술적 아이디어가 뉴욕 스타일, 더 나아가 미국의 첨단 디자인을 대표하게 된 데에는 뉴욕의 게이트 키퍼 시대를 연 리오 카스텔리의 역할이 크다. 프랑스에서 가스통 갈리마르가 출판사를 세우고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나 사르트르의 글을 발굴해서 세계적인 문화 트렌드로 퍼트려 프랑스 문학이 세계를 선도하게 만들었다면 리오 가스텔리는 뉴욕의 다양한 아방가르드 예술 사조들을 편집하고 조합해서 전 세계인들이 뉴욕 스타일을 세련미의 기준으로 삼게 만들었다.

 

리오 카스텔리는 파리에서 은행원으로 일했다. 그러면서도 예술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뉴욕으로 망명을 와서 컬럼비아대에 들어가 공부했다. 그러던 중 뉴욕의 ‘The Club’이라는 이름의 예술가 클럽에 가입했다. The Club은 훗날 현대미술의 새로운 사조를 창조한 로버트 라쉰버그, 빌렌 드 쿠닝, 프랭크 스텔라 등이 모여 실험적인 예술을 추구하던 클럽이었다. 카스텔리는 예술가는 아니었지만 이 클럽 멤버가 돼 뉴욕 미술의 새로운 트렌드를 남들보다 먼저 읽을 수 있는 안목을 갖추게 된다. 은행 근무 경험으로 비즈니스도 잘 알았다. 그는 이 두 가지 노하우를 융합해 뉴욕의 예술가 친구들의 전시회를 주선해 주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아예 뉴욕의 한 갤러리에 취직해 경험을 쌓고 1957년에 카스텔리 갤러리를 오픈했다.

 

당시 뉴욕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도시 중 하나로 거대하고도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고 있었다. 2차 세계대전을 피해 유럽의 독일, 프랑스, 스페인에서 활동하던 탁월한 예술가들이 앞다퉈 뉴욕으로 망명해 왔다. 미국 각지의 예술가들도 개척지 시대의 예술적 훈련과 경험들을 짊어지고 세계 최강 문화 도시로 성장 중인 뉴욕으로 건너와 이름을 날릴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이처럼 수많은 예술가들이 뉴욕에서 활동하며 작품들을 쏟아내자 옥석을 가려 편집해줄 사람이 필요해졌다. 게이트 키퍼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카스텔리는 이 기회를 제대로 포착해 뉴욕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을 덩어리로 묶어 새로운 스타일에 걸맞은 이름을 붙여주기 시작했다. 그는 팝아트, 콘셉트 아트, Op()아트, 미니멀리즘 같은 단어들을 만들어 수많은 예술가들을 몇 개의 그룹으로 묶어 미술 애호가들이 자기 취향에 맞는 작품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해줬다. 애호가들은 일일이 예술가들의 이름을 다 외울 필요 없이 자기가 선호하는 스타일의 미술 작품 중 마음에 드는 작가의 활동 내용과 새로운 작품들에 대한 정보를 접할 수 있게 됐다. 이 일로 리오 카스텔리는 뉴욕의유행 메이커가 됐고 자연스럽게 어떤 예술가보다 뉴욕 트렌드를 주도하는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카스텔리의 거대해진 게이트 키핑 파워는 심지어 뉴욕의 부동산 시장에까지 큰 영향을 미쳤다. 지금의 뉴욕에서 가장 부동산 값이 높은 동네 중 한 곳이소호. 그러나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소호는 전 세계에서 뉴욕항으로 화물을 싣고 온 거대한 선박들이 내려 놓은 물건들을 보관하는 창고들이 즐비하던 동네였다. 뉴욕항이 뉴저지로 옮겨지면서 소호는 순식간에 슬럼으로 전락했다. 1970년대, 슬럼화한 소호에 카스텔리의 전 부인 소나벤드가 갤러리를 오픈했다. 그리고 오늘날 가장 높은 작품가를 형성한 뉴욕의 예술가 제프 쿤스와 길버트와 조지(Gibert & George)를 소호에서 발굴했다. 1980년대에는 카스텔리도 소호에 갤러리를 열었다. 이 두 사람이 역량 있는 예술가들을 발굴하고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해주자 뉴욕의 예술가들이 소호에 있는 이 두 갤러리에서 발굴돼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 너도나도 소호로 모여들었다.이 바람을 타고 전 세계 예술품 수집가들이 새로운 미술 트렌드와 가까워지기 위해 소호의 창고들을 사들여 럭셔리하게 개조했다. 소호의 슬럼은 갑자기 뉴욕에서 가장 핫 한 부동산 시장이 됐다. 창고의 드러난 파이프를 살린 실내 인테리어의로프트스타일의 원조가 돼 전 세계에 유행시킬 정도였다. 소호의 이런 움직임을 포착한 뉴욕의 부동산 업자 레오나드 스턴은 예술 애호가들의 창고형갤러리같은 분위기의 실내 장식을 갖춘 소호 그랜드 호텔과 트라이베카 그랜드 호텔을 열어 삽시간에 자신이 미리 소호에 헐값으로 사 모은 부동산의 가격을 올리고 부동산 재벌이 됐다. 그 여파는 지금까지 이어져 2015년 기준으로 소호는 부동산 가격이 뉴욕에서 가장 비싼 곳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게이트 키퍼들의 움직임을 잘 파악해서 다가올 디자인과 유행, 소비 트렌드를 미리 읽고 자신의 사업에 적용할 줄 아는 사람만이 성공한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처음으로 옷을 직접 디자인하고

만들지 않지만 남이 만든 옷을

평가하고 편집해서 세상에 알리는

패션 잡지 편집장의 역할과

생활상을 보여줬다.

 

게이트 키퍼의 전성 시대: 아나 윈투어

 

할리우드 영화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1세기 게이트 키퍼의 위상을 보여준다. 뒤에서 예술가들을 보조하고 프로모션하는 역할에서 본인이 전면으로 나와 게이트 키퍼 자신이 스타가 된 것이다. 이 영화 이전까지만 해도 문화를 소재로 하는 영화들은 유명 화가, 사진가, 디자이너 같은크리에이티브들의 생애 위주로 다뤘다. 하지만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처음으로 옷을 직접 디자인하고 만들지 않지만 남이 만든 옷을 평가하고 편집해서 세상에 알리는 패션 잡지 편집장의 역할과 생활상을 보여줬다. 패션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이 영화가 뉴욕 <보그> 잡지 편집장으로 유명한안나 윈투어를 모델로 했다는 것을 잘 안다.

 

안나 윈투어는 어릴 때 영국 해럴드백화점에 취업했다. 그러나 백화점 쪽 일에는 역량이 부족했었는지, ‘패션 감각은 타고 나는 것 같다는 말을 남기고 그만뒀다. 그렇다고 아예 패션 업계를 떠난 것은 아니다. 이후부터 여러 패션 잡지에서 일했다. 그 과정에서 1980년대를 기점으로 세계적인 여권 신장 바람이 불어 많은 여성들이 사회로 진출해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을 파악했다. 젊고 독립적이고 스스로 자기 인생을 개척하는 이 새로운 여성들은 가정만 지켜야 했던 기성 여성들이 종일 커피숍이나 미용실에서 다른 여성들과 수다를 떨거나 쇼핑을 다니면서 패션 동향을 파악하던 것과 달리 사회생활에 쫓겨 패션 동향 알아보는 데 쓸 시간이 부족했다. 게다가 갑자기 뉴욕 패션 업계가 과열 경쟁 상태로 변해 수많은 브랜드들이 서로 다른 스타일의 패션 상품들을 쏟아내 유행을 파악하기가 더욱 더 힘들어진 상태였다. 패션에 관심이 많고 경제적 여유도 있는 젊은 여성들에게 시간 많이 들이지 않고 올바른 패션 정보를 찾아주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점을 포착한 안나 윈투어는 세계적인 게이트 키퍼로 우뚝 설 기회를 놓치지 않고 붙잡았다. <보그>로 일자리를 옮긴 그녀는 1988 11월 호에 1만 달러짜리 디자이너을 흔한 청바지에믹스매치한 여자 사진을 표지에 실었다. 부유층을 겨냥한 잡지가 처음으로럭셔리패션이 아닌 파격적믹스매치를 시도해 보수적인 패션계의 큰 가십거리가 된다. 특히 직장을 가진 프로페셔널 여성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실제로 미국의 커리어우먼들의 옷장에는 보통 캐주얼 옷과 고급 옷이 뒤섞여 있었고, 백화점이나 길거리에도 유럽식 파티복부터 미국 카우보이 스타일까지 엄청나게 많은 스타일들이 넘치고 있었다. 안나 윈투어는 이처럼 다양한 의상들을 현명하게 조합하는 방법을 제시하겠다는 의지를 11월 호 표지에 선보였고 이후로 그 일들을 실행에 옮겨 <보그>는 뉴욕 여피 여성들의 대표 잡지가 된다.

 

안나 윈투어의 게이트 키퍼 역할이 크게 부상했고 그녀는 이러한 상승 기류에 힘입어 최초의 월드스타 게이트 키퍼가 됐다. 그녀는 ‘11월 호(The November Issue)’라는 다큐멘터리 필름의 주인공이 됐는데 여기서 그녀의 차갑고 완벽한 성격이 노출돼핵겨울 윈터(Nuclear Wintour)’1 또는 마거릿 대처 영국 전 수상에 비교해패션계 철의 여인같은 별명이 붙었다. 차가운 이미지가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으며 사람들은 그런 이미지를 흥미롭게 바라봤다. 마침내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라는 영화의 주인공 모델이 된다. 이 영화는 게이트 키퍼도 스타가 돼 세계 문화를 주도할 수 있고, 그렇게 될 거라는 미래 트렌드를 잘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1997년에는웹 블로그라는 새로운 게이트 키핑 분야가 생겼다. 누구든지 원하면 자기 의견을 인터넷에 올릴 수 있는 문화가 낳은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구든지 자유롭게 영상 자료를 올리고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유튜브 등의 서비스가 인기를 끌고, 카메라 달린 휴대폰도 유행하면서 이제는 폰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이 영상 콘텐츠를 인터넷에 올린다. 지금은 매일 수백만 개의 새로운 정보들이 쏟아진다. 그 안에서 새로운 트렌드를 발견해야 한다. 그러나 수많은 인간관계와 업무 처리로 항상 시간에 쪼들리는 현대인들은 빠르게 올라오는 정보들 속에서 세상의 트렌드를 읽어 선점해야 사회생활에서 뒤처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 거기에 투자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크리에이티브에 대한 관심보다 정보의 옥석을 가려주는 게이트 키퍼를 주목하게 된다. 웹 블로그들이 바로 그 일을 맡고 있다.

 

 

지금 미국 최강의 패션 게이트 키퍼 중 한 사람은 1996년생 테비 게빈슨이다. 그녀는 12살에스타일 루키블로그를 열고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서구 패션계에 알려진 인물이다. 그녀는 블로그의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루키 매거진이라는 온라인 패션, 팝 문화 잡지의 편집장이 됐다. 패션에 관심을 기울이는 연령층이 대폭 낮아지던 2008년 그녀는 11살 동갑내기 친구들과 실험적인 옷을 코디하고 사진을 찍어 블로그에 올렸는데 하루 평균 3만 명 이상이 읽었다. 블로그의 폭발적인 인기로 <뉴욕타임스>와 인터뷰를 했고뉴욕 패션 위크초청을 받아 <보그> 등 대형 잡지 편집장과 나란히 앉아 패션에 관한 의견을 교환하고 글로도 남길 수 있는 위치에 섰다. 뉴욕 바니스백화점에 상품평을 쓰고 TED에서 강의도 했다. 그녀의 사례는 게이트 키퍼들의 역할이 얼마나 커지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소비자들이 점차 디자이너보다 게이트 키퍼의 영향으로 상품 구매 결정을 하게 되자 2010년부터는 아예 게이트 키퍼들의 이름을 상품화하는 트렌드도 나타났다. <보그>의 프랑스판 편집자인 아린 로이펠드는 일본 의류 체인인 유니클로에 자기 이름이 붙은 라인을 선보였다. 미국 <보그> 잡지에서 스타일을 담당하던 타비타 시몬스는 자기 이름이 붙은 신발 라인을 선보이는 등 게이트 키퍼들의 시장 파워가 나날이 확대되고 있다. 아린 로이펠드는 자신의 인스타그램 팔로어가 447000명이 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녀의 안목과 코디 능력을 믿는 팬들 숫자가 바로 패션 업계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그녀의 힘의 원천이 된 것이다.

 

게이트 키퍼 시대를 맞이하며

 

다가올 유행 트렌드의 예측은 모든 기업들에게 가장 어렵고도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그래서 많은 기업들이 이미 유명 게이트 키퍼들을 유행 트렌드의 미래 방향을 재는 풍향계로 보고 부지런히 찾아내 소통을 한다. 사실 이들 게이트 키퍼들은 계속 잡지, 블로그, 유튜브 채널을 통해 미래의 유행 트렌드를 진흙처럼 빚어 나가고 있다. 그래서 새로운 디자이너나 뮤지션의 새로운 작품이 탁월하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다고 자부하는 문화인들도 이것들이 대중들에게 퍼져 나가는 루트와 해석 코드를 잘못 받아들이거나, 유행의 의미를 비즈니스에 잘못 적용해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사업 성공을 꿈꾸는 기업가라면 게이트 키퍼들과의 능동적이고 지속적인 소통을 해서 다가올 유행 트렌드를 제대로 읽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게이트 키퍼들이 나타나고 존재감이 커진 이유이니 말이다.

 

조승연문화전략가 scho@gurupartners.kr

 

필자는 고교 시절 미국전국라틴어경시대회에서 우수상(Magna Cum Laude)을 받았으며 미국 고등학생 문예지에 시와 단편소설을 싣기도 했다. 뉴욕대 스턴 경영대학원(NYU Stern School)을 졸업한 뒤 프랑스 최고 미술사 학교인 에콜 드 루브르에서 2년간 수학했다. 영국계 컨설팅회사 UnfrZenMind에서 외부 상임이사를 지냈으며 한국무역협회 등에서 주관한 국제 마케팅 리서치에 참여했다. <피리 부는 마케터> <이야기 인문학> <비즈니스 인문학> 등 다수의 저서를 출간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289호 Boosting Creativity 2020년 1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