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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DNA와 글로벌 전략

냉혹한 미국식 성과주의 가톨릭 문화권에서 통하지 않는 이유

조승연 | 158호 (2014년 8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 인문학

 천주교와 그에 대한 반발로 형성된 개신교의 역사적 형성 과정과 핵심 논리는 서로 다른 문화 DNA로 작동하며 소비와 노동행태에 영향을 미친다. 즉 서양이라고 다 같은 서양이 아니며 신대륙이라고 다 같은 신대륙이 아니라는 것이다. 천주교 국가가 다수인 중남미 시장을 비롯한 천주교 문화권 국가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미국·독일식의 개신교적 사고로 접근하면 안 된다. ‘오직 성공을 위해 자기계발을 하고 땀 흘려 장시간 일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사고를 탈피해 공동체를 중시하고 함께 어울려 인생을 즐기는 천주교 문화권 특유의 관습과 행태를 이해해야 한다. 부와 성공을 과시하는 개신교 문화권 소비자와 달리감각적이고 예술적인 소비에 집중하는 천주교 문화권의 특성 역시 염두에 둬야 한다.

 

편집자주

인종, 문화, 종교, 정서, 안목 등이 각양각색인 글로벌 시장에서 현지 소비자의 호감을 얻고 수익을 만들려면 인문학적 식견이 필요합니다. 우리나라 고객에게는 최고로 아름다운 디자인의 제품이 다른 나라 고객에게는 혐오감을 주거나 엉뚱한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영미 지역과 동남아 문화에 정통한 언어 전문가이자문화 전략가인 조승연 작가가문화 DNA와 글로벌 전략을 연재합니다.

 

유럽인들의 신대륙 진출 후 생긴 남북 아메리카 대륙의 대표 국가인 미국과 브라질은 문화적 공통점이 상당히 많다. 두 나라 모두 유럽 등 여러 대륙에서 건너온 다양한 민족과 언어로 구성된 다문화 국가이며 자유분방하고 개성을 존중하는신대륙국가다. 그러나 이처럼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음에도 미국 굴지의 기업인 월마트는 브라질 진출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월마트는 미국 500대 기업 리스트인 <포천> 500에서 자주 1위를 차지한다. 원화로 연간 약 485조 원 매출을 기록하는 거대 다국적 기업이다. 이 월마트가 1995년에 브라질로 진출했다. 브라질의 대형마트 매장 2개를 인수하는 것으로 시작해 500개의 매장을 세우고 슈퍼마켓, 대형마트, 주유소 등 다양한 사업 분야에 진출했다. 이러한 야심 찬 진출에도 불구하고 부진한 성과를 면치 못했다. 지난 424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진출 후 약 2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월마트는 브라질에서 흑자를 기록하지 못했다. 월마트는 현지 프라임 타임 텔레비전 광고를 내고 현지 CEO 도 세 번이나 교체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크레디트 스위스 그룹 애널리스트인 마이클 엑스타인은올해(2014)에도 월마트의 브라질 매장은 희망이 없어 보인다고 논평했다.

 

반면에 프랑스의 대형마트 카르푸(Carrefour)는 브라질 진출 후 호황을 누리고 있다. 카르푸에 브라질은 본국 프랑스 다음으로 높은 매출을 올려주는 최고의 효자 시장이다. 2014 410 CNBC 보도를 보면 카르푸는 브라질에서 2013 4·4분기에 5.8%의 매출 신장을, 2014 1·4분기에 6.4%의 매출 신장을 기록했다. 또 다른 프랑스 슈퍼마켓 체인인 카지노그룹도 2013년 브라질 시장에 진출해 좋은 성과를 냈다.

 

프랑스 슈퍼마켓들이 미국의 기업들에 비해 브라질 현지 소비자들에게 훨씬 높은 호응을 얻은 이유는 여러 가지로 분석할 수 있지만 프랑스와 브라질이 같은로만가톨릭 문화권이라는 점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종교는 문화, 세계관, 철학, 역사, 가치관과 규범의 집합체다. 어릴 때부터 배우고 익히 들어온 경전 내용들을 인용하면서 사고의 틀이 형성된다. 종교에서 나온 윤리관과 금기, 인생의 지향점과 가치관을 형성하고 후천적 유전자라고 할 수 있는 종교 문화 DNA가 형성된다. 당연히 종교관은 소비자로서, 노동자로서의 행동패턴도 바꾼다. 요즘 우리 기업들도 중남미 시장 진출에 관심이 많다. 이번 글에서는 한국 기업에 익숙한 미국, 독일 등개신교문화권과 브라질, 칠레 등의 남미, 동남아시아의 필리핀 등천주교문화권의 문화 DNA 차이를 살펴보고자 한다.1

 

천주교 사회의 문화 DNA: 전통주의

우리가 흔히서양라고 부르는 유럽은 중세기까지 오늘날과 같은 국경이 없었다. 수백, 수천 개의 지역으로 나뉘어 땅의 소유권을 가진 영주들이 다스렸다. 이렇게 나뉘어져 있는 동시에 통합돼 있기도 했다. 유럽 전체를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은 EU가 생기기 약 1000년 전부터 영주와 이들 영주를 각각 통합해서 다스리던 왕들 스스로 자신을그리스도의 왕국(Christendom)’이라는 하나의 통합된 가상 국가의 시민으로 믿었다. 하나의 종교, 즉 천주교의 깃발 아래로 뭉치는 전통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럽인들끼리는 국적이 서로 달라도 이슬람교도, 몽골족 등 종교가 다른 외부인들의 침략을 받으면 하나로 뭉쳐서 저항했다. 언어와 인종은 다르지만 종교적 위기가 닥치면 하나의 종교 깃발 아래 뭉친 연합군을 형성해서 싸웠다. 대표적인 예가 성지 예루살렘을 이슬람교도들에게서 빼앗기 위해 벌인 십자군전쟁 원정이라고 할 수 있다. 또 국경을 초월한 혼사도 자주 일어났다. 여행도 자유로웠다.

 

중세의 유럽인들은 거의 1000년이나 유럽 땅을 다스려온 로마제국이 멸망했다는 사실을 현실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유럽인들에게 천주교의 의미는 무엇보다 로마의 국교라는 것에 있었다. 천주교의 세례는 로마제국 시민이 돼문명인으로 인정받는 의식으로 받아들여졌다.

 

지금까지도 천주교의 교황은 Pontifex라는 로마제국의 대 제사장의 타이틀을 물려받아 사용한다. 바티칸의 최고 이사회 격인 Curia는 원래 로마제국의 대법원을 칭하던 단어 그대로다. 천주교회당을 뜻하는 Basilica 역시 로마의 동사무소를 뜻하던 단어였다. 지금의 유럽 천주교회는 로마 동사무소가 하던 출생신고, 성인식, 혼인, 장례식 등을 그대로 수행한다. 교황은 로마제국의 대 제사장으로서 중세기까지 유럽의 영주 중 한 사람을 대표로 뽑아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임명할 권한이 있었다. 서기 900년 이후부터신성로마제국의 왕관을 쓴 오스트리아의 왕은 스스로를카이저’, 시저라고 부르기도 했다. 유럽의 최고 귀족인 공작은 영어로 Duke인데 라틴어의장군 Dux의 변형이다. 라틴어와 천주교회의 연관성을 생각해본다면 유럽인들에게 천주교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있다. 중세 이후에도 유럽 천주교의 모든 예배 의식, 교회가 운영하던 모든 학교 수업은 라틴어로 진행됐고 교인들 간의 분쟁은 교회가 로마법으로 판결을 내렸다. 한마디로 천주교인은 로마 문명의 일원이라는 것이 천주교의 기본 개념이다. 그래서 교회 이름도 스스로로마 문명에 기반해 전 세계의 공통 가치관을 만든다라는 의미인 ‘Roman Catholic’이라고 불렀으며 유럽에서는 아직도 그렇게 부른다.

 

 

1500년대, 독일과 스위스 등 일부 신흥 부유층인 부르주아들이 신도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던 교회들이 로마제국 행정조직으로부터의 분리를 선언했다. 개신교가 탄생한 것이다. 개신교는 로마 전통과 성경 내용은 서로 관계가 없으니 로마법이 아닌 성경 말씀 자체에서 삶의 법도를 찾아야 한다는 주장에서 시작했다. 개신교가 로마 문화로부터의 분리를 주장했다는 확실한 증거는 개신교 교회는 예배를 라틴어가 아닌 영어, 독일어 등 각국의 민족 언어로 집행했다는 것이다. 개신교는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어떤 거대한 행정 조직에 소속되는 것이 아니라고 설파했다. 신앙이란 삶에 대한 개인의 태도와 순수한 믿음의 문제라고 강하게 주장했다.

 

이후로 개신교와 천주교는 교리, 선교, 종교적 가치 등을 놓고 수백 년 동안 치열한 논쟁과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치른다.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을 반으로 뚝 쪼개 두 개의 거대하고도 서로 다른 문화권을 탄생시켰다. 유럽의 기독교 역사에서 멀리 떨어져 살아온 우리나라 사람들은 천주교도나 개신교 신도들일지라도 로마제국과 천주교의 오래된 밀착 관계를 정확히 모르는 경우가 많지만 서양인들은 대부분 잘 안다. 오늘날의 유럽 지도로도 천주교 국가와 개신교 국가의 경계선을 그으면 옛 로마제국의 국경과 거의 일치한다. 또 미국인들은 주로 천주교를 믿는 중남미 사람들을 라틴아메리칸, 번역하면미주 로마인이라고 부른다.

 

로마시대의 정치제도, 규범, 가치관 등을 고스란히 계승해온,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행정 조직을 거느리고 있는 천주교 신도들은 변화를 싫어하고 전통을 중요시하는 문화적 특징이 있다. 이들은 오래 전부터 이어져온 질서를 무너트리지 않으려는 강한 문화 DNA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그래서 한국인들이 지향하는 경제 고속성장을 위한 혁신, 제도적 개선, 기술 발전, 노동환경 변화, 심지어는 식사 방식이나 신식 건축 공법 등에 대한 저항이나 반발이 크다. 반면에 부르주아 계층이 신도의 주류를 이뤘던 개신교는 천주교와 정반대로 경제 개발을 위한 변화, 자기계발 등을 크게 장려한다.

 

이처럼 서로 다른 천주교와 개신교가 만든 DNA가 해외 시장 진출에 미치는 영향을 이야기할 때 프랑스에 진출한 미국 디즈니사 사례를 드는 전문가들이 많다. 미국에서도 디즈니는 훌륭한 직원 훈련 과정과 고객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천주교 국가인 프랑스에서는 고객과 직원 관리에 고전을 면치 못한다. 디즈니사는 프랑스 진출 이후 약 20년이 지나도록 적자만 내자 대대적인 구조조정으로 분위기를 전환시킬 생각이었다. 그런데 구조조정 과정에서 변화를 잘 못 받아들이는 프랑스 직원들의 천주교 문화 DNA와 충돌했다. 2010, 파리 디즈니랜드 내의 음식점에서 일하던 한 셰프의 사례는 그 극단의 형태를 잘 보여준다. 같이 일하던 스태프들이 새 사람으로 바뀌고 싱싱한 재료로 만들던 요리를 냉동 식품으로 만들 상황이 되자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집에서나는 이제 미키마우스 집에 돌아가기 싫어’라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렸다. 언론과 세간의 엄청난 주목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2010 520일자 영국 <인디펜던트>지 기사에 따르면 파리에 있는 유로 디즈니사의 임원진과 운영 스타일이 갑자기 바뀌자 이에 적응하지 못한 직원들은 업무 의욕을 잃어 망가진 전구를 갈지 않거나 건물 관리를 소홀히 해 서비스의 질이 형편없이 떨어졌다. 직원들이 업무에 집중하지 못해 1년에 1500건의 안전사고가 발생해 건설업보다 더 위험한 직장으로 지목받기도 했다.

 

브라질과 같은 천주교 문화 DNA를 가진 프랑스 슈퍼마켓 카르푸는 브라질 시장 진출을 위해 1975년부터 계획을 세우고 현지인들과 인간관계를 맺으며 천천히 실행에 옮겼고 매장 수도 아주 천천히 늘려나갔다. 미국 노스웨스턴대 MBA 교수 수전 퍼킨스에 의하면 이렇게 천천히 사람들과의 관계부터 맺어 온 것이 브라질 시장에 진출한 카르푸의 성공 비결이었다.또 다른 프랑스 슈퍼마켓 체인 카지노는 Pao di Acucor라는, 브라질 현지인들에게 익숙한 슈퍼마켓을 매입하고 가시적 변화를 최소화해 시장 진입에 성공했다. 프랑스 기업들은 같은 천주교 문화 DNA의 속성을 알아 브라질 현지 고객들이 새로운 기업과 인연을 쌓는 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며 변화 적응 속도가 느리다는 점을 잘 파악해 전략을 짠 것이다. 당연히 브라질 시장 진입에 성공했다.

 

, 야망, 성공의 측면에서 본 천주교와 개신교의 차이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1905년에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저서를 펴냈다. 이 책은 종교와 사람들의 경제 행동 패턴 사이의 관계를 연구해 크게 주목받았다. 베버는전통 사회를 지향하는 구교(천주교) 사람들에게 경제 활동은 인생의 목적이 아니다. 사람은 천성적으로 계속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자기에게 익숙한 방식대로 살기를 원하며 그 상태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만큼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인데, 이것이 바로 전통사회다라고 설명했다. 베버는 또 전통사회와 달리 끊임 없는 자기계발을 도모하고 조금도 쉬지 못하더라도 맡은 일을 충실히 수행해서 반드시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야 한다는프로페셔널리즘을 두고 미국, 독일 등 개신교 사회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전통사회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는 천주교 국가 사람들은개개인이 열심히 일해서 남보다 더 많은 돈을 벌고 스스로 살아갈 수 있을 만한 경제적 독립을 이뤄야 한다는 의식이 상당히 약하다. 오히려 돈을 많이 벌려고 지나치게 일을 많이 하는 사람들을 그다지 좋게 보지 않는다. 월마트의 가격 경쟁력은 긴 시간 일하더라도 경제적으로 자립해야 한다는 강한 의식을 가진 미국 저소득층의 심리를 이용해 인건비를 최대한 줄여서 이뤄낸 것이다. 브라질에서는 이 같은 전략이 통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비즈니스 전략 분야의 석학인 서르지오 라자리니 교수는브라질의 엄격한 노동자 보호법 때문에 노동자를 채용하거나 해고하는 비용이 너무 높고 노동자들은 억울한 일이 발생하면 거의 습관적으로 법정으로 가지고 간다며 브라질에서 월마트가 직원들의 노동 조건에 대한 소송으로 잃은 손실이 무려 수익의 5% 가까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부분의 천주교 문화 DNA를 가진 나라 사람들은 노동 시간 초과로 상품 가격을 낮추는 것도 이해 못한다. 프랑스의 경우 주 35시간으로 노동시간을 규제하고 있다. 노동 강도로 경쟁사에 비해 저렴한 상품 가격을 형성하는 것을 제도적으로 금지한다. 심지어 노동을 너무 많이 하는 것을불공정 경쟁으로 본다. 2012년 프랑스의재 산업화 장관아르노 몽테부르는 한국의 현대·기아자동차를 보이콧해야 한다고 공식적으로 주장했다. 이유는 현대·기아차는 주 35시간 노동시간을 지키지 않아 다른 자동차 회사에 비해 가격 경쟁력을 높일 수 있기 때문에 프랑스 자동차 회사가 이들과 경쟁하려면 어쩔 수 없이 프랑스인의 노동 강도를 높이는 사회악을 초래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몽테부르는 현대·기아차의열심히 하기를 오히려사회적 덤핑이라며 심하게 비난했다.

 

영국의 성공회는 정통 천주교는 아니지만 천주교의 전통 의례를 많이 물려받았다. 영국은 천주교와 개신교의 중간 정도 되는 문화 DNA를 가졌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영국 케임브리지대 학생들의 올림픽 육상 출전기를 그린 오래된 미국 영화불의 전차(Chariots of Fire)’에 잘 드러나 있다. 내용을 잠깐 살펴보면 아브라함이라는 유태인 학생이 올림픽 육상 종목에 출전하려고 프로 코치를 고용해 학교 육상 트랙에서 밤낮 없이 연습을 한다. 아브라함이 재학 중인 케임브리지대 교수진은 아브라함의 행동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며 여러 논쟁 끝에 학생을 직접 불러 훈계하기로 한다. 대표 교수 한 명이 아브라함에게마치 육상이 직장인 것처럼승리에 집착을 하며 훈련하는 것은 신사도에 어긋나는 행동으로 학교에 불명예를 가져다줄 수 있다고 훈계한다. 이어 훈련받지 말고 타고난 재능만 가지고 출전하고, 지면 신사답게 받아들이는 것이 올바른 일이라고 말한다. 영국도 상류층은 천주교에 가까운 성공회 문화 DNA를 가져 땀 흘려 일하는 것 자체를 그다지 좋게 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우리나라 기업의 경영진 중 천주교 문화 DNA를 가진 국가로 진출한 뒤현지인을 고용했더니 너무 게으르다며 무시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천주교 문화 DNA를 가진 사람들은 집을 가꾸거나, 대가족과 모여 맛있는 요리를 해서 나눠 먹거나, 친구들의 이사, 관혼상례 등에 발 벗고 나서는 일에는 매우 적극적이다. 전통 농경사회에서 중시되던 도리에 포함하는 덕목을 지키는 데에는 오히려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훨씬 부지런한 편이다. 직장 일에 게으른 것은 천성이 아니라 그들의 관습이자 삶의 철학임을 인정해야 이 문제로 충돌하는 것을 줄일 수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이들은 식민지 개척과 약탈 전쟁에서 얻은 엄청난 전리품과 부유한 사람들이 낸 세금으로 시민들에게 화려한 축제와 파티를 아낌없이 베풀던 로마제국의 문화적 후예다. 천주교 문화에서 국가란 고대 로마제국처럼 국민들에게 무상 서비스와 엔터테인먼트, 빵과 서커스를 제공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Providential State 개념이 강하게 남아 있다. 지금도 가톨릭 국가에서는 노동조합과 풀뿌리 사회주의 조직이 단단하게 뿌리내리고 있다. 천주교 국가에서는 국가가 국민들의 니즈를 해결해 주지 못하면 그 책임이 고스란히 기업 몫으로 넘어온다. 그 때문에 기업이 인력이나 고객 관리에 문제점을 드러내면 바로 악덕 기업으로 매도당한다.천주교에서교회의 아버지로 추앙받은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신국>이라는 책을 펴냈을 정도로 천주교는 개개인이 따로따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천주교 조직 자체가 구원받고 성공하는 것을 중요시해왔다. 천주교 문화 DNA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아직도 이런 사고방식이 지배적이어서 개인이 더 열심히 일하기보다 조직을 이뤄 정치적인 해결책을 찾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월마트는 이런 천주교 문화 DNA 특성을 무시하고, 직원들의 임금을 무자비하게 깎고, 미국에서처럼 납품 기업들끼리의 가격 경쟁을 조장해 원가를 최대한 낮추고, 이를 통해 소매가격을 낮춰 시장 경쟁력을 높이려고 했다가 현지인들의 저항에 부딪혀 손실만 낼 수밖에 없던 이유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익숙한 개인 성과 중심에 기반을 둔서구적 가치관은 미국, 독일 등의 개신교 문화 DNA를 가진 나라 사람들의 경제관이다. 대부분이 개신교 신도들인 독일 등 북유럽인들은 열심히 일하는 것을 대단히 중시한다. 게으름을 피우거나 비생산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 일정 나이가 되고도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한 사람은 천대한다.개신교의 기본 정신은 1418년 네덜란드에서 시작된현대신앙(Devotio Moderna)’ 운동에서 만들어졌다. 현대신앙 운동의 대표 작가는 토마스 아 켐피스 (Thomas a Kempis)라는 신학자다. 토마스는 <예수의 모방(De Imitatione Christi)>이라는 저서를 펴내면서 예수가 목수, 즉 손으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었던 것처럼 노동은 일종의 정신 수양, 기도 또는 고행이라고 주장했다. ‘현대신앙의 뒤를 이은 개신교 종교개혁자들은 열심히 해서 돈을 더 많이 벌고 사회적으로 유용한 사람이 되는 것은 윤리적으로 뛰어난 일이며 이 돈을 쾌락을 위해서 함부로 쓰면 안 되고 저축을 해서 불려야 한다는개신교 노동 윤리(Protestant Work Ethic)’를 만들어 갔다. 독일 철학자 막스 베버는개신교로 인해 인생을 즐기려고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돈 버는 것 자체가 인생의 목표인 새로운 윤리가 탄생했다고 말했다. 그는이 새로운 윤리관에서 최고의 선()이란 인생을 즐기고 싶은 욕망을 최대한 억제하고 계속 돈을 버는 것이다. 돈은 더 이상 인생을 즐기기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인생의 목표 그 자체가 됐으며 그것이 전통 (천주교) 사회의 가치관을 거꾸로 뒤집은 것이라고 했다.

 

개신교 국가인 미국, 독일의 사회제도를 모방한 일본, 한국전쟁 이후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서구화된 한국인들은 대부분 서양인들이 모두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고 개별적으로 강한 책임감을 가지고 일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미국의 개신교 문화 DNA를 받아들인 우리나라 사람들도 노력을 통한 성공과 강한 노동 강도를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겨 경제 발전을 앞당기기도 했다. 하지만 천주교 문화 DNA를 가진 남미 등의 시장 진출을 원하는 기업에는 이런 사고방식이 오히려 위험하다. 현지에서 노동자들과 경영자 사이에 큰 분쟁으로 번질 수 있다는 의미다.그들은 개인보다는 조직으로 움직이는 데 능하고 단체로 사회적 솔루션을 찾는 데 익숙하다. 천주교 정신을 가진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전통 가치관이 위협을 받으면 망설임 없이 파업이나 집단 폭력으로 무섭게 저항해서 큰 손실을 끼칠 수 있다. 이럴 경우 현지에서의 기업 이미지를 크게 망칠 수 있다.

 

천주교 사회의 소비

중남미의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브라질, 칠레 등의 국가들이 한국 기업의 주요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컬처 코드>의 저자 콜로틸드 라파이유 박사는 심리학 분석을 통해 여러 나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성공의 기준과 이상적인 소비 코드를 찾은 연구로 유명하다. 그는 개신교 문화DNA를 가지고 성공을 주요 인생 목표로 삼는 미국인들은 구입 상품 브랜드를 사회에서 인정해주는 일종의 군대 계급장으로 생각한다는 점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래서 성공에 큰 가치를 두는 미국인들의 소비는 고가의 럭셔리 자동차, 고급 저택, 남들이 구입하기 어려운 희귀 장식품 등을 구입해서 타인들에게 자기의 성공을 과시하는 방향으로 나간다. 미국이 인터넷 거품으로 호황을 누리던 2000년대의 독일 고급 자동차 메르세데스 벤츠는 미국 시장에서 이런 소비자들 심리를 겨냥해당신이 목표점에 도착했다는 것을 모든 사람에게 알리세요라는 광고 문구로 톡톡한 재미를 봤다.성공의 상징으로서의 소비 성향은 미국, 독일 등 개신교 국가를 넘어 지금은 그들의 영향으로 경제적 성공을 중요시하게 된 한국,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에서도 익숙한 소비 패턴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클로틸드 라파이유 박사는 천주교 문화권인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도 미국에서와 같은 실험을 했다. 그 결과 프랑스인들이 생각하는 이상적 소비는 감각적 소비라는 점을 발견했다. 냄새가 좋은 향수, 맛있는 음식, 표면이 부드러운 욕조, 앤틱·그림·사진 같은 인테리어 아이템, 부부생활을 감미롭게 해주는 고급 속옷 등 만지고 냄새 맡고 느끼는 것의 소비가 프랑스인들이 생각하는이상적인소비임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프랑스와 같은 천주교 국가인 이탈리아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는데 약간의 차이를 보였다고 한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의 나라답게 감각 중에서도 비주얼적인 감각에 가장 많은 돈을 투자한다.성공한 사람들은 식칼, 냄비, 유리잔 등 가정 집기의 소품 하나까지도 따져가며 아름다운 것들에 둘러 싸여 사는 것을 좋은 삶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을 알게 됐다고 한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이러한 소비 문화 패턴은 왜 전 세계 사람들이 인생의 감각적 풍요를 더해주는 럭셔리 소비 상품들을 이 두 나라에서 집중 구입하는지를 알게 해준다.

 

순간의 즐거움을 위한 소비를 중시하는 천주교 문화 DNA의 소비 태도는 로마제국의 정서에 그 뿌리를 둔라틴민족의 긴 문화적 전통에서 나왔다. 고대 로마인들은 오랫동안 국가가 베푼 검투사 경기, 길거리 페스티벌 등을 즐겼다. 그중에서도 트라얀 황제는 로마 군대의 승전을 기념하기 위해 1 365일 중 123일간 놀고 먹고 마시며 5000쌍의 검투사들의 경기를 쉬지 않고 시민들에게 보여준 것으로 유명하다. 16세기 개신교들의 종교 개혁 압력에 천주교는 존립의 위협을 느끼고 1535트렌토 종교총회를 열어 천주교가 살아 남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거기서 찾아낸 방법은 교회 건물을 아름답고 웅장하게 짓고 내부에 그에 걸맞은 멋진 그림, 조각, 음악 등을 조화시켜 신도들이 교회에 오면 신을 직접 만나는 것과 같은 신비감과 짜릿함을 느끼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이 새로운 계획에 따라 천주교는 탁월한 예술가들을 영입해서 교회를 최대한 아름답게 장식하고 아름다운 것을 신성시하는 천주교 문화 DNA 특유의예술 중심 사고를 탄생시켰다. 이 정신을 가장 잘 드러낸 작품으로 이탈리아 조각가 잔로렌초 베르니니의성테레사의 엑스터시를 들 수 있다. 작품 설명을 조금 해 보면 성 테레사 수녀가 기도 중에 아름다운 천사가 나타나 황금 화살로 자신의 심장을 찌르자 몸이 뒤틀리는 쾌락을 경험하고 신의 존재 의미를 발견한다는 내용이다. 이후로 약 200년 동안 유럽의 천주교는예술을 통한 선교를 주요 프로젝트로 지원했다. 선교 활동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던 중남미, 필리핀 등으로 이를 거침없이 전파시켰다. 이렇게 형성된 미적 문화 DNA는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천주교 국가들의 부유층은 미적인 상품 소비를 지향하며 쾌락 목적의 감각적, 순간적 즐거움을 충족시켜주는 상품의 소비에 집중한다.

 

이런 연유로 천주교 신도가 대부분인 국가의 상품 광고는 소비자들이 상품에서 얻을 수 있는 실질적 이익보다 충족될 감각에 호소하는 것들이 많다. 대표적인 예로 프랑스의 유명 자동차 타이어 회사 미슐랭의 광고를 들 수 있다. 광고는 아기가 썰매 대신 타이어를 타고 내려오는 장면을 보여준다. 타이어의 성능이나 실용성보다 도로 주행질감이 좋다는 것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브라질의브라마맥주 광고는 땀 방울 하나가 아름다운 여성의 비키니 수영복의 선을 따라 피부를 스치며 내려오는 모습을 피부의 결과 솜털이 보이도록 클로즈업해서 보여준다. 그녀가 맥주를 마시자 땀이 다시 피부로 올라가고 모델 여성은 쾌감을 느끼며 신음소리를 낸다.

 

이런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11로 바이어를 대할 때도 적용된다. 천주교 국가에서는 잘 모르는 사람끼리도 섹스, 음식, 촉감 등 한국이나 미국 같은 개신교 문화 DNA를 가진 사람들이 민망해 할 감각적 대화를 하면 쉽게 대화가 이어진다. 그 대신 천주교 국가의 보수적인 사람들은 업무시간이 아닌데 돈, 투자, 경제 이야기를 꺼내면 상당히 불쾌해 하면서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돌리곤 한다.

 

결론

영국의 역사가 제임스 브라이스는 자신의 저서 <신성로마제국>에서천주교는 곧 로마제국이고 로마제국은 곧 천주교다라고 단언했다. 천주교는 로마제국이 무너지려는 때, 로마제국의 지식과 가치관을 지키는 조직으로서 성장했고 그에 발맞춰 전통 농경사회였던 고대 로마제국의 가치관을 지키는 유럽 주류 사회의 보수적인 가치관으로 이어졌다. 경제활동으로 자기 발전과 성공을 이루려는 부르주아 계급에서 시작된 개신교와 차이가 클 수밖에 없다. 천주교 사회는 여느 전통 농경사회와 마찬가지로 집을 꾸미고, 가정을 화목하게 잘 돌보고, 이웃이나 친인척들이 자주 어울려 맛있는 식사와 대화를 나누고, 동네 축제를 열어 즐겁게 어울리는 것을 주요 인생 목표로 여긴다. 따라서 직장 일이나 돈에 대한 개념이 개신교 국가와 그의 영향을 받아 급속한 발전을 이룬 현대 공업 국가의 윤리관을 가진 우리나라 등과는 크게 다르다. 우리 기업들이 앞다투어 진출하고 싶어 하는 남미는 유럽의 천주교가 유입된 이후 변모되지 않고 정체된 채로 머물러 유럽의 천주교 정신보다 훨씬 더 원론적인 형태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남미 진출을 꾀하는 기업의 임원들은 로마제국의 문화와 법, 풍습과 야사 등을 충분히 공부하고 현지 직원과 소비자 심리를 알아낸 후 진출해야 실패 확률을 크게 줄일 수 있다.

 

간단히 설명했지만 종교는 한 문화권의 가치관과 인생관을 좌우하는 경우가 많다. 이 글은 개신교·천주교 국가의 문화 DNA 20세기 초 독일 학자 막스 베버의 이론을 빌려 분석 소개했다. 천주교 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은 여전히 미국인들이 가진 투철한 직업 정신이나 돈벌이에 몰입하는 열정, 쾌락과 인생을 즐기는 것에 대한 부정적 견해 등을 썩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그래서정말 개신교적이네라는 말로 그들을 무시하며 그때마다 막스 베버를 자주 인용한다. 그만큼 유럽인들의 선입견을 잘 반영한 저서이기 때문에 막스 베버의 이론은 오늘날 많은 비판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큰 시사점을 주고 있다. 독자 여러분들도 천주교 문화권 시장에 접근하고자 한다면, 미국과 같은 개신교 문화권과의 차이를 알고자 한다면, 막스 베버의 저서부터 시작해 다양한 문화전략 서적을 읽어보길 바란다. 중남미, 남유럽, 필리핀 등지에서 고용한 현지 직원을 두고 그저 단순하게게으르다고 불평하는 일이 줄어들 것이다.

 

조승연문화전략가 scho@gurupartners.kr

필자는 고교 시절 미국전국라틴어경시대회에서 우수상(Magna Cum Laude)을 받았으며 미국 고등학생 문예지에 시와 단편소설이 실리기도 했다. 뉴욕대 스턴 경영대학원(NYU Stern School)을 졸업한 뒤 프랑스 최고 미술사 학교인 에콜 드 루브르에서 2년간 수학했다. 영국계 컨설팅회사 UnfroZenMind에서 외부 상임이사를 지냈으며 한국무역협회 등 국제 마케팅 리서치에 참여했다. 현재 오리진보카 대표로 <피리부는 마케터> <이야기 인문학> 등 다수의 저서를 출간했다.

 

  • 조승연 | -(현)오리진보카 대표
    -(현)문화전략가
    -UnfroZenMind 외부 상임이사
    -국제 마케팅 리서치 참여
    -<피리부는 마케터>, <이야기 인문학>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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