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를 위한 시(詩)적 상상력
Article at a Glance - 인문학
상당수 시인은 시를 쓸 때 쓰고자 하는 사물이나 자연이 돼 본다. 그리고 그 마음을 읽는다. 시인들이 이런 일체화를 추구하는 이유는 그 대상의 마음을 알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담쟁이덩굴은 기어오르는 성향이 있다. 그런데 담쟁이덩굴이 더 이상 타고 오를 데가 없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담쟁이동굴과 일체화한 시인은 그 상황에서 무엇을 보게 될까? 하늘이다. 하늘을 나는 새는 날면서 흔적을 남기지 않지만 그래도 혹시 조금이라도 남겨 놓았을까 봐 바람이 이를 지워버린다. 담쟁이덩굴은 벽 끝에 올라 하늘에서 펼쳐지는 공(空)의 세상을 본다. 이처럼 사물이나 자연의 마음을 알아내는 시인들의 일체화 방법은 회사의 제품 개발에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다. |
시는 사물이나 자연의 마음을 읽고 표현하는 특·장점을 가진 장르다. 사실 많은 예술 장르가 마음 읽는 방법을 공부하고 연구한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까지가 연구 범위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이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해결하기 위해서 입장 바꿔보기를 한다. 이름하여 ‘역지사지(易地思之)’다.
역지사지의 뜻은 ‘처지를 바꾸어 생각해보라’다. 내가 그 사람 처지라면 어떻게 할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다. 관점의 주체는 나다. 내가 그렇게 해보는 것이지 내가 그 사람이 돼보지는 않는다. 이럴 경우 “아무리 잘 이해한다 한들 당사자만 하랴”는 말처럼 이해 부족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해의 한계를 지니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이 아니라 상대가 사물이나 자연일지라도 마찬가지다. 나 중심의 관점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는 사물이나 자연을 바라볼 때도 아주 당연히, 아무렇지도 않게 나 중심의 관점을 활용하게 된다. 꽃을 그리는 화가가 꽃이 돼보지는 않는다. 책꽂이를 디자인하는 디자이너가 스스로 책상이 돼보지는 않는다. 음악가가 나무를 표현할 때 나무가 돼 어떤 마음인지를 표현하지는 않는다. 모두가 사람 입장에서 살펴본다. 해본 경험이 없기에 사람이 사물이나 자연의 마음을 읽는다는 것을 황당한 상상에 불과하다고 여긴다.
시인은 사물이나 자연이 될 수 있는 사람
반면 시는 그렇지 않다. 상당수 시인은 시를 쓸 때 쓰고자 하는 사물이나 자연이 먼저 돼본다. 그리고 그 마음을 읽는다. 만약 그 시를 쓰고자 하는 대상이 사람이라도 직접 그 사람이 돼 마음을 읽어본다. 이는 시와 다른 예술 장르와의 엄청난 차이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사물이든, 자연이든, 사람이든 간에 내가 대상의 마음을 ‘추측’하는 것과 내가 대상이 돼 그 마음을 ‘직접 느끼고’ 드러내는 차이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시에서의 관점 달리하기는 사람의 관점에서 사물이나 자연의 관점으로 완전히 전환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면 내가 대상이 되는 방법은 무엇일까? 시인은 사람인데 사람이 어떻게 사물이나 자연이 될 수 있을까? 우선 시 한 편 보자.
류시화 시인이 쓴 ‘나무의 시’의 앞부분이다. 아들에게 주는 이 시에서 시인은 “시로 나무를 표현하려면 나무가 돼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자신의 전 생애를 들고 가서 나무가 돼야 한다”고 말한다.
시에서 나와 대상이 하나가 되는 것을 일체화라고 한다. 그러니까 사람이 사물이자 자연이 될 수 있는 방법이 일체화인 것이다. 시 작법에는 ‘자아의 세계화’ 또는 ‘세계의 자아화’라는 말이 나온다. 자아는 쉽게 말해 나라고 생각하면 된다. 세계는 시를 쓰고자 하는 시적 대상이다. 이를 그냥 대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자아의 세계화’는 내가 대상에게 가서 하나가 되는 것이다. 반면 ‘세계의 자아화’는 대상이 나에게로 와서 하나가 되는 방법을 말한다. 어느 것이든 두 존재가 하나가 되는 방법이다. 이 시에 나오는 ‘나무에 대한 시를 쓰려면 먼저/눈을 감고/나무가 되어야지’는 내가 나무가 되는 ‘자아의 세계화’ 방식의 일체화이다.
예를 들어 비를 맞고 있는 꽃에 대한 시를 쓰고자 한다면 시를 쓰는 내가 비를 맞고 있는 꽃이 돼야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나 이제 꽃이다”라는 말로 되는 게 아니다. 꽃의 상황 속으로 내 전 생애를 가지고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내 전 생애가 꽃이 어떤 상황 속에서 비를 맞고 있는지를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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