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성’의 원천을 찾아서
Article at a Glance - 인문학, 혁신
창조적 예술가들은 대부분 이 세상에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절대적이고 완벽한 그 무엇을 찾아 길을 떠난 순례자와 같은 인상을 준다. 조직이론 관점에서 ‘열망수준’과 ‘창조적 파괴’의 두 가지 측면에서 해석할 수 있다. 세계적 예술가들의 열망수준은 흔히 선두 기업들이 모든 경쟁자들을 압도해서 ‘1등 기업’이 되겠다는 것과는 다르다. 즉 창조적 예술가들의 열망수준은 자신의 과거 기준이나 경쟁자 등이 아니라 현실을 넘어서는 초월적 완벽함이다. 그 결과 두 번째 특징인 창조적 파괴가 자연스럽게 나타나게 된다. 이 같은 ‘순례자적 삶’의 궁극을 보여주는 인물이 바로 세계적 첼리스트인 송영훈 경희대 음대 교수다. 재능을 타고났지만 정작 첼로에는 큰 관심이 없던 그는 두 명의 위대한 멘토, 바로 로빈스 교수와 자신의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순례자적 삶에 나선다.
편집자주
모두가 ‘창조’를 말하는 시대지만 정작 정확한 개념 정의도, 진정한 의미파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창조성’에 대해 10여 년 전부터 연구해 온 신동엽 연세대 교수가 여러 학자들과 함께 진행한 각종 인터뷰와 연구결과 등을 토대로 ‘21세기 시대정신, ‘창조성’의 원천을 찾아서’를 연재합니다.
불꽃 같은 창조적 에너지로 인류사를 밝혔던 위대한 예술가들의 삶을 처음부터 끝까지 추적해보면 평생 한군데 정착해서 편안히 창작활동을 하다 생을 마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간절하게 바라는 뭔가를 찾아 무수한 시련과 고난에도 불구하고 머나먼 길을 떠난다. 마치 일생이 하나의 순례와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19세기 말 동시대를 살아가며 서로 애증이 뒤얽혔던 고흐와 고갱의 삶을 보면 필자가 말하는 순례의 의미를 금방 알 수 있다. 고흐는 네덜란드의 가난한 시골 교회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자신도 목사가 되기 위해 탄광촌에 들어가 광부들의 비참한 삶을 함께하려 했다. 그러나 지나친 순수함과 열정이 광부들에게 부담이 돼 소외를 당하면서 상처를 입고 정신질환까지 겹쳐 고통 속에 작품 활동을 하다 짧은 생을 마친다. 고흐는 브뤼셀, 헤이그, 파리, 암스테르담, 앙베르, 영국 렘스케이트, 프로방스, 아를르 등을 떠돌아 다니다 결국 파리 근교 작은 시골 마을 오베르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의 마지막 작품 ‘까마귀가 나는 보리밭’ 바로 옆에 있는 오베르의 작은 공동묘지에는 고흐와 그의 동생 테오가 나란히 묻혀 있다. 그 묘지 앞에 서면 고흐가 머나먼 순례길에서 돌아와 드디어 안식하고 있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고갱 또한 마찬가지다. 파리에서 신문기자의 아들로 태어난 고갱은 선원이 되려다 다시 증권거래원으로 일했으나 결국 예술에 대한 열망을 버리지 못해 화가가 됐다. 일생 동안 파리, 페루의 리마, 다시 프랑스 오를레앙, 다시 파리, 부르타뉴, 파나마의 마르티니크 섬, 고흐와 함께 아를르, 남태평양 타히티, 다시 프랑스, 다시 타히티로 끝없이 옮겨 다니다 먼 이국 땅에서 숨을 거둔다. 뭔가를 찾아 전 세계를 헤매고 다니는 순례의 길이 그의 이상향이던 타히티에서 끝났다. 그의 대표 걸작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는 바로 그의 일생 동안의 순례를 한 화폭에 담아놓은 대작이다.
필자가 창조적 예술작품들이 탄생하는 조건과 과정에 대한 탐구를 통해 창조성의 원리를 밝히고자 시도한 책인 <창조성의 원천>을 집필하기 위해 세계적 예술가들을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예술가들로부터 반복적으로 받은 인상은 그들이 마치 이 세상에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절대적이고 완벽한 그 무엇을 찾아 길을 떠난 순례자 같다는 느낌이었다.
“음악가는 편안한 삶을 살아선 안 돼!”
첼로 거장 아르토 노라스의 이 한마디는 저로 하여금 당시 안정된 연주가의 삶을 버리고 그의 제자가 되도록 만들었습니다. 또 한 번의 성장을 위해 훌훌 털고 떠난겁니다.
-첼리스트 송영훈
연주하며 교감을 나누는 4첼로 실내악
이런 창조적 예술가들의 삶은 조직이론적 관점에서 열망수준과 창조적 파괴의 두 가지 측면에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세계적 예술가들의 열망수준은 흔히 선두 기업들이 모든 경쟁자들을 압도해서 ‘1등 기업(great company)’이 되겠다는 것과 같은 ‘1등’이나 ‘최고’는 아니었다. 인터뷰 과정에서 이들 세계적 예술가는 누가 그 분야의 최고냐, 혹은 자신의 위상은 어느 정도 되느냐 등에는 전혀 관심 없고 단지 어디엔가 있을 것으로 상상하는 완벽함을 열망한다. 즉 창조적 예술가들의 열망수준은 자신의 과거 기준이나 경쟁자 등이 아니라 현실을 넘어서는 초월적 완벽함인 것이다. 진정한 완벽함은 인간이 결코 도달할 수 없기 때문에 이들은 항상 갈급함과 부족함을 느끼고 끊임없이 더 높은 경지를 향해 도전하게 된다. 그 결과 두 번째 특징인 창조적 파괴가 자연스럽게 나타나게 된다. 즉 자신이 경쟁우위를 가지는 영역에 결코 머무를 수 없으며 끊임 없이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찾아 미지의 영역으로 순례 길을 떠나게 된다. 창조의 순례자인 이들에게는 매 순간의 예술이란 더 완벽한 것을 창조하기 위해 과감하게 파괴하고 버려야 할 대상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피카소는 “나는 파괴하기 위해 그린다”라고 선언했다.
필자가 <창조성의 원천>을 저술하기 위해 인터뷰한 20여 명의 세계적 예술가들은 예외 없이 이런 순례자적 삶을 살아왔지만 그중에서도 순례자의 이미지에 특히 가까운 사람은 젊은 첼리스트 송영훈이다. 송영훈의 삶의 궤적을 통해 예술창조의 순례자적 본질을 알아보기 전에 먼저 송영훈에 대해 간단하게 살펴보자. 21세기 한국 클래식 음악계를 이끌어갈 주축으로 주목받고 있는 첼리스트 송영훈은 5살에 첼로를 시작해 11살에 서울 시향과 랄로 협주곡 협연으로 데뷔했다. 예원학교에서 2년 만에 명예졸업장을 받은 후 1988년 줄리어드 예비학교 실기 장학생으로 입학했고, 이어서 줄리어드 음대에서 공부하다 바로 영국 노던 왕립 음악원, 핀란드 시벨리우스 음악원에서 공부했다. 차닝 로빈스, 랄프 커슈바움, 아르토 노라스 등 세계적 거장들에게 사사했다. 줄리어드 음대에 재학하는 동안 줄리어드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첼로 수석, 영국 노던 왕립 음악원 오케스트라 첼로 수석을 역임했으며, 강효 줄리어드 대학 교수가 전 세계 젊은 연주자들을 모아 설립한 세종 솔로이스츠 멤버로, 금호 4중단 멤버로도 활동했다. 피아노 4중주 그룹인 MIK 앙상블의 멤버로서 2005년 1집 앨범 ‘MIK Ensemble’을 발표했다. 특히 영국 노던 왕립 음악원을 다닐 당시 알게 된 현대 탱고의 거장 작곡가 피아졸라의 음악에 흠뻑 빠진 송영훈은 첼로로 연주한 탱고 앨범을 발매하고 탱고 콘서트를 개최해 클래식음악과 첼로의 저변 확대와 대중화에 크게 기여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송영훈의 첼로 소리가 모순적이라고 한다. 성스럽고 깊으면서도 감각적이다. 격정적으로 거칠다가도 갑자기 한없이 섬세하고 부드럽게 바뀐다. 화려하면서 동시에 담백하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송영훈만의 이런 절묘한 첼로 소리는 어디서 온 것일까? 송영훈은 그 어떤 거장도 낸 적이 없는 자신만의 첼로소리를 찾아 끊임없이 전 세계를 방랑해왔다. 마치 순례하는 구도자 같은 음악가다. 강동석, 김영욱, 백건우, 정경화, 정명훈 등 한국 클래식 음악을 세계에 알린 1세대를 이을 2세대 음악가를 대표하는 세계적 첼리스트 송영훈은 심각한 유럽 고전파, 낭만파 시대의 정통 클래식 레퍼토리와 대중적인 탱고 등 크로스오버 레퍼토리에서 모두 최고의 음악성을 보여주는 드문 음악가이기도 하다. 또한 그는 독주는 물론 다양한 형태의 실내악 앙상블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세계적 명성과 안정이 보장된 자리를 박차고 스승을 찾아 다시 학생으로 되돌아가기도 하며, 장르의 경계를 넘어 탱고에 심취하거나 팝 음악가들과도 서슴지 않고 협연하는 등 실험정신으로 충만한 음악가다. 그의 이런 모험과 도전은 모두 학생시절 영국에서 듣고 그의 뇌리에 영원히 박혀버린 거장들의 첼로소리를 넘어서서 자신만의 소리를 찾기 위한 내면으로의 끝없는 순례다.
2006년 첼로로 연주된 ‘Tango’ 앨범이 발표됐다. 많은 사람들이 이 앨범의 깊고 자유로우며 격정적이고 관능적인 첼로 선율에 환호했다. 이 앨범에서 연주된 곡들을 작곡한 현대 탱고 음악의 전설 아스토르 피아졸라는 민속음악은 물론 정통 클래식 음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존경해 마지않는 거장이다. 영국 노던 왕립 음악원에서 첼로를 공부하던 한 젊은 음악인도 그의 음악에서 깊은 예술적 영감을 받고 빠져들었다. 피아졸라의 탱고 선율은 당시 슬럼프를 겪고 있던 그에게 새로운 예술 세계로의 빗장을 열어주는 동시에 음악에 대한 열정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이 젊은 음악가가 바로 세계적인 첼리스트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송영훈이다.
세계 최고의 클래식 음악 교육기관들과 거장들에게서 첼로를 배운 송영훈은 정통 클래식 첼로 레퍼토리들을 모두 섭렵했다. 그러나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탱고, 보사노바, 재즈 등 다양한 음악 장르들이 갖는 각기 다른 매력을 발견하고 이를 자신만의 첼로 소리로 표현해보고자 끊임없이 노력한다. 세계 최고의 첼리스트 중 한 명이었던 차닝 로빈스의 마지막 제자로서 세계적으로 인정받으며 세종 솔로이스츠 멤버로 활동하던 그는 새로운 배움에 대한 열망으로 안정된 지위를 과감하게 버리고 다시 학생이 된다. 핀란드에 건너가 거장 아르토 노라스를 사사했다. 왜 그는 한자리에 머물지 않고 순례자처럼 끊임없이 새로운 영역으로 돌아다니는 것일까? 그가 음악의 순례자로서 찾아 다니는 성지는 도대체 무엇일까?
지치지 않는 음악에 대한 열정과 사랑으로 첼로에 심각하게 몰입하지만 동시에 누구보다 자유로운 영혼을 갖고 있는 송영훈을 만나 그의 음악세계와 첼로에 대한 사랑, 그가 평생 찾고 있는 순례의 대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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