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ential Cases in Books
애플 창업주 스티브 잡스의 강점은 무엇일까? 바로 인본주의(人本主義)다. 그렇다면 그의 한계는 무엇일까? 역시 인본주의다. 잡스는 기술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IT 세상에 인간의 중요성과 숨결을 불어 넣었고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기술에 인본주의를 가미했다. 하지만 그것이 잡스의 발목을 잡았다. 인본주의는 인간만을 중시하는 개념이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해법은 생태주의(生態主義)다. 인간을 생태계의 일부로 보고 자연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생태주의의 관점을 이해하기 위해 이어령 이화여대 명예 석좌교수의 저서 <생명이 자본이다(마로니에, 2014)>를 살펴보자. 생명체인 인간이 자연을 또 다른 생명으로 대하는 것은 인간만이 최고라는 생각을 버리고 다른 생명체를 존중하고 이들을 통해 어떤 것을 배우는 것이다. 인간은 자연에서 어떤 것을 배울까? 바로 공동체와 희생, 기술의 지혜를 배운다.
혹한을 견디는 황제펭귄 공동체의 지혜
공동체의 지혜는 남극으로 향하는 펭귄 이야기로 시작한다. 10월이 오면 남극에 살고 있는 모든 생물들이 떠난다. 영하 50도까지 떨어지는 극한의 추위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로 추위를 찾아 남극으로 이동하는 이상한 생물들이 있다. 이들은 해안에서 100㎞나 떨어진 서식지 콜로니를 향해 이동하는 황제펭귄이다. 시속 0.5㎞의 기우뚱거리는 걸음으로 걷고 때로는 배를 깔고 미끄러져 토보강(toboggan)으로 20일 동안 강행군을 계속한다. 이렇게 해서 다다른 곳은 어떤 생물도 존재하지 않는 오아모크 빙산이다. 여기에는 추위와 얼음, 차가운 바람밖에 없다. 그런데도 이곳을 ‘빙원의 오아시스’라고 부르는 것은 어떤 천적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황제펭귄들은 마음 놓고 사랑의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아 기를 수 있다. 지구에서 가장 혹독한 추위가 펭귄에게는 생명을 번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하는 것이다. 황제펭귄은 서식지에 도착하자마자 몰아치는 한파에서도 짝짓기를 한다. 영하 50도에서 러브콜이 성공하면 암컷은 알을 낳아 수컷의 발 위에 올려준다. 펭귄의 알은 추위와 펭귄 부부가 함께 만들어낸 공동작품이다. 수컷은 발등의 털로 알을 품는데 알이 털 밖으로 몇 초 동안만 노출돼도 바로 얼기 때문에 부동자세를 취한다. 그는 먹이를 찾아 먼 바다로 떠난 암컷이 돌아올 때까지 아무 것도 먹지 않고 꼼짝하지도 않는다. 펭귄의 부성애는 몸무게가 15㎏까지 줄어드는 굶주림과 긴 기다림을 버틸 수 있게 한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새끼가 부화해도 먹이를 구하러간 어미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펭귄 아버지는 비상수단을 쓸 수밖에 없다. 자신의 위벽이나 식도의 점막을 녹여 새끼의 먹이로 토해내는데 이것이 바로 ‘펭귄 밀크’라고 부르는 아버지의 젖이다. 황제펭귄의 놀라운 사랑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황제펭귄의 부성애는 황제펭귄들이 하나로 뭉치면서 공동체 의식을 형성하게 한다. 펭귄들은 털과 지방피질만으로는 몰아치는 블리자드(blizzard, 남극 특유의 눈보라)를 도저히 버틸 수 없기 때문에 함께 똘똘 뭉쳐서 추위를 극복한다. 이른바 ‘허들링 전략’이 시작되는 것이다. 체육경기장에서 운동선수들이 어깨동무로 원을 만들고 서로를 격려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펭귄들은 이런 방법으로 추위를 견딘다.
발에 알을 품은 황제펭귄 수컷들은 몸을 맞대어 커다란 똬리를 튼다. 몸으로 방풍벽을 친 펭귄들은 서로의 체온을 모아 바깥보다 10도나 높은 따뜻한 내부 공간을 만든다. 하나하나의 체열로 동료애가 만들어낸 생명의 공간이다. 하지만 바깥에 외벽을 친 펭귄들은 영하 50도의 추위에 노출돼 있다. 밖에 노출된 펭귄은 오래 버티지 못하고 얼어 죽을 것이다. 그래서 밖에 있던 펭귄이 안으로, 안에 있던 펭귄들이 밖으로 조금씩 자리를 옮긴다. 무리 전체가 마치 소용돌이처럼 돌면서 교대한다. 펭귄의 모습은 자발적인 공동체의 모습으로 인간이 희랍 때부터 추구해 온 공동선(共同善)과 비슷하다. 남극의 블리자드가 오히려 서로 돕고 공감하며 포용하는 삶을 만들었다. 협동하는 펭귄의 모습은 경쟁사회에서 서로 돕지 않고 떨어져서 떨다가 결국 죽고 마는 인간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남극의 빙산에서는 리더가 없고 법과 재판관이 없어도 공평한 질서를 추구하며 생존한다. 우리도 황제펭귄의 지혜에서 따뜻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추위와 가난에 노출된 이들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모두 생존하고 번성할 수 있다.
열매를 희생하는 나무의 지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지혜는 동물에만 한정된 게 아니다. 식물에서도 겸손과 희생의 지혜를 배울 수 있다. 식물은 여름의 소나기와 태양에서 열심히 수분을 빨아올린다. 영국의 소설가 토마스 하디의 장편소설 <테스>를 보면 식물이 빨아올리는 수액(樹液)의 소리가 들린다고 표현돼 있다. 식물은 대지의 자양을 흡수하고 햇빛으로 광합성을 한다. 작은 풀과 나무도 하나의 우주를 형성한다고도 볼 수 있다. 이 같은 생명의 원본인 풀과 나무를 관찰하면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식물은 꽃을 피우고 꿀을 만든다. 꿀은 벌과 나비들이 가져간다. 마치 식물이 착취를 당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꿀을 만들어 빼앗기는 꽃은 패자로, 꿀을 따가는 벌과 나비는 강자로 비치기도 한다. 그러나 생명의 질서라는 측면에서 살피면 단순하게 패자와 강자로 나뉘지는 않는다. 꽃은 일부러 벌과 나비를 유인해서 꿀을 따가도록 한다. 그렇게 해서 움직일 수 없는 꽃이 수정하고 번식한다. 아름다움으로 벌과 나비를 유인해 꿀을 제공하는 것은 생식을 위한 꽃의 전략이다. 벌이나 나비는 오히려 꽃에게 고용된 머슴이라고도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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