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를 싫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정치 논리보다는 합리적 이성과 시장 원리가 지배하는 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고(故) 허버트 사이먼 박사는 이와 다른 관점을 가질 수 있는 의미심장한 통찰을 제시했습니다. 만약 화성인이 사회 구조를 볼 수 있는 특별한 망원경으로 지구를 바라본다면 시장경제보다 조직경제가 훨씬 더 광범위하게 퍼져 있음을 확인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가족이나 부족경제가 지배적인 저개발국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서 시장보다는 조직에 속해 위계적 질서의 지배를 받는 비율이 훨씬 높다는 견해입니다. ‘조직의 편재성(ubiquity of organizations)’을 감안하면 지금의 경제 구조는 ‘시장경제’가 아니라 ‘조직경제’로 불러야 한다고 그는 강조합니다.
조직은 시장과 전혀 다른 논리로 운영됩니다. 위계질서(hierarchy)가 있고 정치 게임이 벌어지면서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의사결정도 자주 일어납니다. 각 주체들 간 갈등도 치열합니다. 희소한 자원을 둘러싼 비이성적 투쟁도 목격됩니다. 당연히 조직 실패도 자주 나타납니다. 그러나 허버트 사이먼 박사의 통찰대로 조직은 이 시대의 가장 보편적인 현상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린다 힐 하버드대 교수는 “문제가 많지만 장기간 생산성을 높여 가치를 창출하는 측면에서 조직은 인간이 만들어낸 최고의 제도”라고 평가합니다.
물론 조직의 양상은 시대에 따라 변합니다. 최근 조직들이 수평적 구조로 전환하는 게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하지만 조직이 본질적으로 정치적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오히려 수평적 구조로 전환할수록 더 정교한 정치력이 요구됩니다.
인재 경영의 창시자로 불리는 제프리 페퍼 스탠퍼드대 교수는 조직에서 정치를 무시하는 태도를 ‘자기 불구화(self-handicapping)’ 현상과 연관지어 설명합니다.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높게 평가하면서 자존감을 유지하려 합니다. 당연히 실패를 싫어합니다. 실패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자존감을 유지할 수 있는 좋은 방법 중 하나가 스스로 불리한 상황을 만들어버리는 것입니다. 시험 성적이 좋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면 공부하지 않고 그냥 자버리는 게 자존감 유지에 더 좋습니다. 자신과 타인에게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일찍 잠들어버려 성적이 나빠졌다는 변명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조직에서 목표를 달성하는 데 정치력이 필수적임에도 정치 혐오 때문에 스스로 정치에 신경 쓰지 않았다는 식으로 변명하는 것은 전형적인 자기 불구화라고 페퍼 교수는 설명합니다.
조직에서 자원 배분을 둘러싼 정치가 불가피하다는 관점에서 보면 정치를 없애는 게 경쟁력 강화의 답이 아닙니다. 나쁜 정치 문화를 없애고 좋은 정치 문화를 구축하는 게 바람직한 해법입니다. DBR은 최고 전문가들과 함께 기업 조직 내부에서, 혹은 경쟁 환경에서 권력의 원천이 무엇인지, 정치력를 활용해 개인이나 조직의 성과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집중 탐구했습니다.
정치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시대적 흐름과 조직의 상황, 상대의 감정까지 고려하는 넓은 시야와 감각이 필수적입니다. 정치가 성과 창출에 방해가 된다는 생각을 하기보다 정치력이 없으면 성과를 낼 수 없다고 보는 게 조직경제 시대에 더 바람직한 접근법입니다. 이번 스페셜 리포트를 토대로 조직 내 정치 이슈에 대한 새로운 프레임과 대안을 모색하시기 바랍니다.
김남국 편집장·국제경영학 박사 mar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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