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 Management
우리나라 속담에 ‘싼 게 비지떡’이란 말이 있다. 비용을 낮추면 품질을 높이기 어렵다는 뜻으로 ‘트레이드오프(trade-off)’가 존재하는 선택의 딜레마를 함축적으로 드러내는 표현이다. 칼로리가 낮으면서 맛도 훌륭한 패스트푸드를 만들기 힘들고, 신발을 신지 않은 듯 편안하면서 스타일이 멋진 킬힐을 디자인하기가 만만치 않은 것과 비슷하다.
기업 경영에서도 이런 트레이드오프 상황에 직면할 때가 많다. <트레이드오프>의 저자 케빈 매이니는 이와 관련해 기업의 성패는 양자택일의 상황에서 무엇을 어떻게 선택하고 포기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어중간한 타협은 금물이며 어느 하나만을 선택해 최극단을 추구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클릭 한 번으로 주문에서 배달까지 책임지는 아마존(편의성, convenience)이나 일반 핸드백의 1000배가 넘는 비싼 가격에도 최고 명품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에르메스(충실성, fidelity)가 트레이드오프의 양극단을 취해 성공을 거둔 대표적 예다.
물론 매이니의 주장대로 두 마리 토끼를 어설프게 쫓으려다 죽도 밥도 안 되는 경우는 허다하다. 하지만 양자택일 상황에서 반드시 단 하나의 선택에 올인 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일까. 제3의 해법도 존재한다. 바로 트레이드오프 발생의 원인이 되는 모순을 극복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혁신은 모순을 극복할 때 일어난다. 주목할 점은 모순이란 논리 분석을 통해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단적인 예가 삼단논법이다. 형식논리학의 대표적 추론법인 삼단논법의 목적은 오직 단 하나의 진실에 도달하는 것이다. 형식적인 모범답안은 나올 수 있겠지만 기존 시장을 파괴할 수 있는 창조적 해법을 기대할 순 없다. 대량생산과 효율성이 중시되던 20세기 경영 환경에선 적합한 사고 체계였을지 모르지만 21세기 지식경영 시대에는 걸맞은 방식이 아니다. 지식경영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노나카 이쿠지로 일본 히토쓰바시대 명예교수가 “지식창조 과정에서 변증법적 사고는 필수”라고 말한 이유다.
정·반·합의 전개를 따르는 변증법은 주어진 명제에 대해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고 답함으로써 끝없이 진리를 추구해가는 과정이다. 변증법을 뜻하는 영어단어 ‘dialectic’의 어원이 대화술, 문답법을 뜻하는 희랍어 ‘dialektike’라는 사실이 이를 잘 설명해 준다. 노나카 교수는 “변증법에서 말하는 ‘합’은 타협이 아니라 고차원적인 새로운 지식체계를 동적으로 만들어내는 프로세스”라며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기술이나 상품 개발은 서로 대립하는 것들을 변증법적으로 통합해가는 연속적 운동을 통해서만 생겨난다”고 강조했다.
부정을 매개로 하는 변증법적 프로세스를 통해 모순을 해결해나가는 지식창조 기업의 모범 사례로 노나카 교수는 혼다를 꼽는다. 혼다에선 기초기술을 담당하는 연구부문(R)은 99%의 실패를 해도 1%만 성공하면 용서받지만 제품 개발을 맡는 개발부문(D)은 오로지 100%의 성공을 요구받는 등 기술연구소 자체가 대립적 요소를 내포하는 형태로 구조화돼 있다. 또한 제품 개발 시 개발·영업·제조 부문이 각각 프로젝트를 조직해 세 부문이 합동팀(SED)을 만들어 서로 연계해 동시에 작업을 진행한다. 한마디로 조직 전체가 통합적인 지식창조를 위한 ‘변증법적 운동’에 최적화돼 있다고 할 수 있다.
변증법적 사고와 행동은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지식 창조를 위한 강력한 도구라는 게 노나카 교수의 주장이다. 그에 따르면 지식은 공유(socialization), 표출(externalization), 조합(combination), 내재화(internalization)라는 네 가지 변환 단계를 반복해 거치며 확대 재생산된다. 즉 사람들은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해 개개인에게 속해 있는 암묵지(暗知)를 서로 공유하며 기존 지식을 수정 발전시킨다. 공유화 단계를 통해 축적된 암묵지는 언어나 이미지, 매뉴얼 등의 수단을 통해 명시화됨으로써 집단 차원에서 공유된다. 이렇게 객관화된 지식은 표준화된 다른 지식들과 조합되면서 좀 더 복잡하고 체계적인 또 다른 형식지(形式知)로 거듭난다. 조직 차원에서 새롭게 창조된 형식지는 이를 실제 상황에 적용하고 실행하는 과정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 의해 보완됨으로써 각 개인들에게 새로운 암묵지로 내재화되며 동시에 새로운 지식창조 사이클의 출발이 된다. 변증법적 사고와 행동은 이러한 ‘창조적 루틴(creative routine)’을 끊임없이 이어갈 수 있게 해주는 핵심 추진 인자 중 하나다. “창조와 혁신은 논리분석이 아닌 ‘변증법’을 통해 태어난다”는 노나카 교수의 말을 곰곰이 되새겨볼 때다.
이방실 기업가정신센터장 smile@donga.com
필자는 서울대 영어교육과 및 동 대학원(석사)을 졸업했고 미국 듀크대 경영대학원에서 MBA 학위를 받았다. 한국경제신문 기자를 거쳐 올리버 와이만에서 글로벌화 및 경쟁전략 수립 등과 관련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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