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 본 아름다움
인간은 무엇을 가꾸고 있는 것일까. 가꾼다는 것은 따뜻하고 예쁜 말이다. 어떤 사물이나 생명을 고이고이 품고 소중히 대하면서 항상 본래 모습과 같거나 본래 모습보다 더 훌륭하고 아름답게 간직하려는 노력을 일컫는 표현이다. 가꾼다는 말은 ‘아름다움’이라는 말과 ‘소중함’이라는 말이 함께 어울려 다닌다. 문화유산을 ‘아름답게 가꾸고’, 민주주의를 ‘소중하게 가꾸고’, 공해로 피곤한 숲과 공원의 나무들을 ‘푸르고 울창하게 가꾸는’ 노력을 부단히 하고 있다. 최근 인간이 무엇보다 열심히 가꾸는 것은 외모다. 얼굴뿐 아니라 신체 구석구석을 성형외과술과 피부미용술의 도움으로 자르고 버리고 채우고 다듬고 붙인다. 이런 행동은 정말 아름답게 가꾸는 일일까. 인간은 왜 유독 다른 동물들과는 다른 도구들을 쓰며 아름다움을 갈구하고 집착하는 것일까. 아름다움은 무엇이며 인간은 왜 그것을 좇고 갈망하는 것일까.
아름다움은 어원적으로 ‘유용하다’는 의미
어원적으로 ‘아름다움’은 한국어 ‘알음답다’에서 유래했다. ‘알고 있을 만 한’ 즉, ‘알고 있을 가치와 소용이 있다’라는 뜻이다. 한문으로 미(美)는 커다란(大) 양머리(羊)를 뜻하는 상형문자다. 영어의 Beauty에서 ‘Beau’는 ‘Util(유용함)’을 뜻하는 말과 어원이 같다. 이 단어들에는 공통적인 부분이 있다. 바로 ‘어디에 쓰임이 있고 유용하다’는 의미다. 알고 있으면 유용하고 좋은 것이다. 아름다운 풍경은 시각적으로 보기 좋아서 아름답고 좋은 것이 아니라 시각적으로 쾌감을 주고 자신과 세계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힘을 준다. 그래서 당연히 알고 있을 가치와 꼭 필요한 아름다운 것이 된다.
한자어 미(美)라는 단어가 뜻하는 커다란 양머리는 제사의식과 관련이 있다. 신비와 경외의 대상이었던 자연과 신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안녕과 평화를 기원하기 위해 당시 목축과 농경에 종사하던 인간은 가장 좋은 것인 큰 양의 머리를 바쳤다. 가장 좋은 것을 아낌없이 바쳐야 자연과 신의 노여움을 가라앉히고 평온한 삶을 유지할 수 있었다. 당시 가장 귀한 재산이었던 양의 머리를 재물로 바치는 일은 매우 쓸모가 있고 효용성이 있는 아름다운 일이었다. 그래서 영어 Beauty의 어원인 ‘Beau’의 의미가 ‘유용하고 효과적’이라는 단어와 어원을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도 자연스럽다. ‘아름다움’은 동서양의 문명이 만나는 지점에서 공통적으로 체험되고 인식됐다. 아름다움은 쓸모가 있고 효과적이기 때문에 마음에 담고 머리로 기억할 만한 가치와 소용이 있어서 아름다운 존재인 것이다.
오늘날 인간은 아름답다는 말을 할 때 시각적인 조화와 조형미, 색상 등을 떠올리거나 가슴을 적시는 감동과 정념의 이미지를 생각한다. 그러나 아름다움은 유용하고 이로운 존재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는 조형미와 색상, 형태의 조화 등이 아름다움과 관계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이 인간에게 유용하다고 여겨지는 것이었다면 그것은 인간에게 아름다운 존재로 진화해왔다는 것이다. 아름다움은 왜 인간의 눈을 멀게 하는가. 바로 아름다움이 인간에게 치명적으로 유용하고 쓸모가 있기 때문에 인간은 누구나 아름다움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사용하고 싶은 것이다.
진화생물학에서 아름다움은 종의 재생산
수사자에게 우두머리는 모든 암컷을 짝짓기 대상으로 가진다는 것을 뜻한다. 더 나아가서 자신만이 암컷들과 짝짓기를 할 수 있는 특권이 있다는 의미다. 짝짓기는 무리를 짓는 개체에게 단순한 일이 아니다. 힘든 생존 환경에서 무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항상 건강하고 강인한 무리의 자손들이 태어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건강한 유전자가 전해진 생명체를 잉태해야 한다. 강인한 수컷의 정자와 건강한 암컷의 난자가 결합되는 짝짓기를 해야 하는데 문제는 어떤 수사자가 용맹스럽고 강인한가를 판단하는 검증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자들은 수사자의 서열을 통해 검증시스템을 작동시킨다. 가장 강한 수사자가 우두머리가 된다. 수사자들은 죽음과도 맞바꿔야 하는 혹독한 경쟁을 통과해야 하고 최후의 수사자가 됐을 때만이 자신의 유전자를 암컷에게 전달할 수 있다. 매우 혹독한 과정이다. 수컷들과의 싸움에서 치명적인 부상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다. 살아남더라도 서열 마지막에 위치해서 사냥한 먹이를 먹을 수 있는 확률이 적어 굶어 죽을 수 있다. 이동 중 도태돼 죽을 수도 있다.
아름다움의 생물학적 목적은 바로 종의 재생산에 기여하는 것이다. 생명체에게 가장 근원적인 본능과 욕망이 작동하는 곳에 아름다움의 메커니즘이 함께 작동하고 있다. 다만 인간은 도구와 지능을 사용하는 것처럼 종의 재생산을 담당하는 생식 행위에도 다른 동물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진화했다. 동물은 일정한 기간에만 짝짓기를 하지만 인간은 그렇지 않다. 짝짓기를 하는 고등동물의 체위와 행동이 일정한 데 반해 인간은 성교의 쾌감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를 증진시키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또 과학이 발달하면서 종의 재생산과 관련된 생식행위 역시 그 자체의 기능과는 관계없는 섹스의 즐거움과 쾌락을 향유하는 행위가 됐다. 이런 점들은 인간만의 매우 독특한 문화다. 하지만 인간의 행동과 아름다움에 관한 관계를 이해하는 데에는 여전히 진화생물학적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인간은 좀 더 특이하게 쾌락을 좇도록 진화했다. 이런 본능은 외모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과 소유욕을 갖도록 만들었다. 남성은 자손 번식의 욕구와 쾌락을 일체시키는 방향으로 진화됐다. 여성들의 좁은 허리와 엉덩이를 강조해주는 커다란 가슴선과 풍만한 유방 등을 매력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이는 번식의 최적 효율을 높이는 방식이 인간이 길러온 미감각과 일치하게 된 결과다. 하버드대의 인류학 교수인 피터 엘리슨 박사는 여성의 잘록한 허리 및 풍만한 엉덩이와 출산 능력 간에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가슴이 크고 허리가 가느다란 여성은 전체 생리주기 동안 평균 26% 더 많은 에스트로겐이 분비됐다. 임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기간에는 이 호르몬이 37%나 더 분비됐다. 여성은 매력을 발산해야 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남성들을 유혹하기 위해 여성은 배란기가 정점인 날 가장 매력적인 모습으로 바뀐다. 뉴캐슬 유나이티드킹덤대의 크레이그 로버트 박사는 19세에서 33세 사이의 여성 50명을 선택해 배란기의 정점인 날과 이후 2주가 지난날에 각각 사진을 찍어 250명의 남녀로 하여금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사진을 선택하도록 했다. 배란기에 찍은 사진이 훨씬 더 자주 선택됐다.
아름다운 외모는 일상생활에서도 엄청난 힘을 갖고 있다.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 직장에서 상급자와 직원, 가정에서 부모와 자식 간에도 외모가 매우 중요하다는 연구 결과는 많다. 부모조차 잘난 아이에게 끌리는 것이다. 매력적인 아이는 덜 매력적인 아이보다 더 많은 호감을 받고 더 영리하게 여겨진다. 미국 미네소타대의 사회학자 카렌 디온이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혼나야 할 때 매력적인 아이는 ‘장래가 촉망되는 아이’라며 가혹한 처벌을 모면할 때가 많았다. 교육 현장에서는 살이 찌거나 마른 아이들은 교사에게 편견이나 집단 따돌림의 대상이 된다.
외모는 법에도 영향을 미쳤다. 잘생긴 피고는 유죄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덜하다. 유죄 판결을 받을 때조차도 다른 피고인들보다 상대적으로 덜 가혹한 처벌을 받는다는 연구 결과가 1960년대 초 칼벤과 자이젤의 실험에 이어 계속 나오고 있다. 이스트캐롤라이나대 칼 부에누시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성적 학대와 성 추행에 관한 판결에서 성적 학대를 받았다고 고소한 고소인이 피고소인보다 매력적인 경우 배심원들은 피고소인의 유죄를 더욱 확신했다. 2001년 영국 포츠머스대 알더 브리지와 한나 퍼민의 실험은 같은 강간범 재판에서 잘생긴 강간범은 유사한 범죄를 저지른 못생긴 강간범보다 더 가벼운 형량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나타냈다. 그러나 매력적인 외모를 활용해 사기범죄를 성공시키려 한 경우 더욱 지능적이고 약삭빠른 행위로 비춰져서 배심원들의 관대심이 희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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