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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ative Minds

피카소 vs. 세잔, 개척가가 개선가를 만날 때

이병주 | 131호 (2013년 6월 Issue 2)

 

 

편집자주

창조와 혁신이 화두인 시대입니다. 예술가, 문학가, 학자, 엔지니어, 운동선수 등 창작가들의 노하우는 기업 경영자에게 보석 같은 지혜를 제공합니다. 이병주 생생경영연구소장이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본 창조의 노하우를 소개합니다.

 

1907년 여름, 파리에서 활동하던 피카소는 친구들을 자신의 스튜디오로 초대해 오랜 기간 준비한 그림을 보여줬다. 처음 보는 화풍에 놀란 친구들은 그 진가를 몰랐지만 이 그림은 현대미술사의 전환점이 될 만큼 중요한 그림이 됐다. 그것은 <아비뇽의 처녀들>이었다. 당시 26세였던 피카소는 이미 미술계에 널리 알려진 인물이었다.

 

같은 해 가을, 파리의 살롱에서 세잔의 대규모 회고전이 열렸다. 수많은 찬사가 쏟아졌다. 그는 1년 전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다가 심한 독감에 걸려 67세로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안타깝게도 세잔은 살아 있을 때 이런 사랑을 한번도 받지 못했다. 피카소가 20세도 되기 전에 전시회를 열고 유명해진 것과 달리 세잔은 50대 중반에 가서야 처음으로 개인전을 열었다.

 

피카소는 평생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았고, 세잔은 일생 내내 사람들의 무관심과 냉대 속에 살았다. 누구는 어려서 유명해지는데, 누구는 죽은 후에야 알려진다. 천재를 알아보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무지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개척가와 개선가

 

오랜 기간 창작가에 대해 연구한 갈렌슨(David Galenson)은 그럴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그는 예술가를 영감에 따라 일하는 사람과 경험을 중시하는 사람, 두 부류로 나누었다. 이들은 예술 창작 방식이 서로 다르다.

 

두 부류를 개척가와 개선가로 부르면 이해가 더 쉽겠는데 이들이 일하는 방식은 서로 판이하다. 개척가는 처음부터 명확한 생각을 가지고 작품을 창작하지만 개선가는 작품을 만들어가면서 생각을 수정한다. 개척가는 일반적인 것을 구체화하는 연역적 방식으로 작업한다. 그러므로 그에게 예술의 소재는 중요하지 않고 단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도구일 뿐이다. 반면 개선가는 구체성에서 일반적인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귀납적인 방법으로 작품을 창작한다. 그러므로 현실의 소재 자체가 매우 중요하다. 개척가는 현실을 초월하지만, 개선가는 현재에 기반한다.

 

이런 특징으로 인해 개척가는 경험이 예술에 대한 고정관념을 형성하기 전인, 젊을 때 획기적인 작품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개선가는 다양한 경험과 수많은 작업으로 예술에 대한 혜안이 최고조에 이른 늙은 시기에 대작을 만들어낸다. 갈렌슨은 개척가를 젊은 천재, 개선가를 나이든 대가로 불렀다.

 

피카소가 개척가, 세잔이 개선가의 대표적 인물이다. 피카소가 20대 초반에 미술계에 알려진 것은 그의 천재성이 일찍 피어났기 때문이다. 그는 어떤 가르침도 구체적으로 받지 않았지만 시대의 흐름과 미술계에 나타나고 있는 미세한 변화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래서 보이는 그대로 그리는 르네상스 이후의 전통을 거부하고 여러 시점을 한 캔버스에 표현했다. 그 시도가 <아비뇽의 처녀들>로 나타났고 이후 입체주의가 본격적으로 개화했다. 현대미술이 탄생한 것이다. 피카소는 수많은 작품을 남겼지만 대부분의 미술 교과서에 실린 작품은 초기작이다.

 

 

반면, 세잔은 미술학교 입시에도 떨어질 만큼 기초적인 그림 실력이 부족했다. 그의 초창기 작품은 변두리 싸구려 술집에 걸려 있는 그림처럼 기본적인 구도나 인물의 균형도 안 된 졸작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그는 다양한 그림을 그리면서 스스로 학습해나갔다. 그 역시 처음에는 빛과 순간적인 색감을 중시한 인상파에 영향을 받았지만 인상파가 도외시한 형태와 구조를 희생하지 않는 작품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결국 말년에 세잔의 독특한 화풍이 만들어졌다. 교과서에 실린 작품은 대부분 50대 이후의 것이다.

 

개척가와 개선가 기업의 특징

 

기업도 두 종류다. 급진적 혁신으로 소비자를 놀라게 만드는 개척가 기업과 점진적 혁신으로 소비자를 편리하게 해주는 개선가 기업이 있다.

 

개척가는 시장을 뒤흔드는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낸다. 애플이 대표적 기업이다. 애플은 개인용 컴퓨터 시장을 개척했다. 또 그래픽 인터페이스를 장착한 매킨토시를 출시해 PC의 발전 방향을 제시했다. 애플은 성장이 정체될 때마다 새로운 제품을 출시해 도약했다. 컴퓨터 사업이 정체됐을 때 아이팟과 아이튠즈를 개발해 디지털 음악기기와 유통을 장악했다. 음악기기 사업이 정체되자 스마트폰을 대중화시켰고 이후 태블릿 시장을 개척해 성장을 이어나갔다.

 

반면 개선가는 다른 기업이 만든 제품을 따라 하거나 다양한 제품을 빠르게 내놓으며 소비자의 반응을 지켜본다. 이들의 제품은 시간이 지날수록 개선되고 완벽에 가까워진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대표적이다. 처음 출시한 윈도는 결함투성이 제품이었지만 10년 동안 집요하게 개선해 출시한 윈도 95는 역사상 가장 성공한 운영체제가 됐고 지금은 PC 사용자 대부분이 윈도를 쓰고 있다. 웹 브라우저인 익스플로러도 처음에는 넷스케이프에 밀리다가 개선해 성공했고, 스프레드시트 프로그램도 로터스 사에 고전하다가 역전했다.

 

물론 대다수의 기업은 1등을 따라 하고 제품을 향상시키는 데 노력하므로 개선가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소비자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을 정도로 점진적 혁신에 뛰어난 개선가 기업에는 도요타나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한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피카소와 세잔의 창작 방식이 다르듯이 개척가와 개선가는 여러 면에서 상이하다.( 1) 첫째, 일의 중심이 다르다. 개척가는 강점이나 핵심역량에 기반해 일을 한다. 반면, 개선가는 항상 시장 중심으로 일을 한다. 시장 기회가 생기면 역량에 관계없이 뛰어든다. 그래서 개선가가 소비자 목소리를 중시하는 데 반해 자기 중심적인 개척가는 소비자 의견을 무시하기도 한다. 애플이 아이폰 4의 안테나 불량이 생겼을 때 소비자의 불만을 듣고 제품을 고친 게 아니라 범퍼를 나눠준 것도 이런 이유다. 애플이 시장조사를 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다. 둘째, 의사결정 방식이 대조적이다. 개척가는 직관적으로, 개선가는 논리적으로 의사결정한다. 개척가는 보고서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보다 제품 모형을 놓고 대화와 토론을 통해 경영자와 실무자의 의견을 좁혀나간다. 반면 개선가는 다양한 데이터와 팩트에 근거해 의사결정을 한다. 개척가가 디자인과 같은 감성 품질에 강점이 있고 개선가가 기능 구현에 능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셋째, 일의 가치를 다른 데 둔다. 개척가는 새로움이나 남다름을, 개선가는 속도나 완벽함을 추구한다. 개척가는 다른 기업이라고 불리기를 좋아하고 개선가는 빠른 기업이란 소리를 듣기 좋아한다. 자연스레 개척가는 가치 창출에 능하고 개선가는 비용 절감에 탁월하다. 요컨대, 개척가는 인사이드아웃 방식(Inside-out Approach)으로, 개선가는 아웃사이드인 방식(Outside-in Approach)으로 일한다.

 

일하는 방식이 다르므로 서로 다른 장단점이 있다. 개척가는 불확실한 환경에서 이길 가능성이 많다. 새로운 시장을 발굴하는 데 능하므로 유망 산업이나 신사업은 항상 개척 기업이 주도한다. 이는 개척가가 미래 예측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다. 개척가는 불확실한 외부의 시장 환경보다는 확신 있는 핵심역량을 기반으로 일을 한다. 그러므로 시장을 바라보는 개선가에 비해 불확실한 환경에서 먼저 대안을 제시할 줄 안다. 소비자들이 이걸 보고 따라오는 것이다. 미래를 예측하기보다 미래를 만든다는 게 더 적절하다. 결국 개척가의 창의성은 용기에서 나온다.

 

개척가의 장점은 개선가의 단점이 될 것이므로 개척가의 단점(개선가의 장점)으로 넘어가자. 두 가지 단점이 있다. 첫째, 실패 가능성이 크다. 개척가는 강점에 기반해서 일한다. 즉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만드는 게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물건을 만든다. 또 논리적으로 의사결정을 하지 않는다. 자칫 시장과 소비자가 원하는 방향과 다르게 갈 수 있다. 따라서 성공하면 크게 성공하지만 실패도 많다. 스티브 잡스 시절, 애플은 배당을 하지 않았다. 명목상으로는 미래에 대한 투자를 위해서라고 했지만 애플의 연구개발비는 그리 크지 않았다. 실상은 실패를 대비해서 현금을 확보해 놓은 것이다. 둘째, 경쟁에 취약하다. 특히 시장이 안정화되고 경쟁이 치열해지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개선가에게 못 당한다. 새로운 것을 만드는 데 더 큰 가치를 두는 개척가는 기존 것을 개선하는 것에는 열정을 크게 느끼지 못한다. 경쟁에 젬병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애플이 새로운 제품으로 성장을 이어나간 이유가 기존 제품을 가지고 벌이는 싸움에서 힘들어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애플이 스마트폰 시장을 개척하고 주도했지만 개선 기업인 삼성전자에 시장점유율이 역전 당한 것은 자연스런 결과다.

 

개선가에서 개척가로

 

그럼에도 환경 변화의 심화로 불확실성에 강한 개척가가 큰 조명을 받고 있다. 더욱이 개척 기업은 젊은 천재가 그렇듯이 눈에 잘 띈다. 오늘날 사람들은 개척가를 칭송하고 글로벌기업으로 도약한 한국 기업에도 개척가가 되라고 한다. 그러나 개척가는 실패할 확률도 높다. 서서히 망하는 게 두려워 빨리 망하는 길을 택할 수도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오히려 스마트폰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개척가인 애플이 개선가로 변신하려고 하는 듯하다. 우선 제품의 수를 늘리고 제품 출시 기간을 줄이고 있다. 과거에는 오랫동안 준비한 획기적인 제품 하나에 집중했는데 아이패드 미니를 비롯해서 비슷한 제품을 여러 개 출시하고 있다. 앞으로 스마트폰 역시 다양하게 나올 것으로 보인다. 배당을 늘리고 자사주를 매입한 것도 위험을 줄이고 시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려는 전략 변화의 일환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소비자의 불만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그러나 변신이 쉽지 않을 것 같다. 시장 전문가들은 애플이 2분기 영업이익에서 삼성전자에 밀릴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애플의 전략 변화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우선 불확실성이 크다고 반드시 개척가가 돼야 한다는 법은 없다. 애플마저 개선가가 되려고 하는데 개척가로 성공하기보다 개선가로 승리하기가 더 수월할 것이다. 두 번째 의미는 개척가가 개선가가 되기가 어려운 것처럼 개선가도 개척가가 되기는 힘들다는 사실이다. 일하는 방식이나 기업 문화가 한순간에 바뀌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생각을 바꿔볼 필요가 있다. 개선가의 장점을 유지하면서 개척가가 되는 길은 없는가. 피카소와 세잔의 또 다른 일화에 실마리가 있다. 피카소는 세잔에게 영향받았다. 세잔은 오랜 기간 인상파를 이해하고 결국 인상파를 넘어섰다. 빛과 색채를 넘어서 기하학적 형태를 그림의 근본으로 이해했던 세잔은 입체주의의 탄생에 기여했다. 세잔의 말년 작품인 <목욕하는 사람들> <아비뇽의 처녀들>의 모태가 됐다는 게 미술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피카소의 작품을 사진에 담았던 사진작가가 세잔에 대해 물었다. 피카소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세잔을 아냐고요? 그는 나의 유일한 스승이었습니다.”

 

개선은 결국 개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한국 기업은 끊임없는 개선을 통해 축적한 우리만의 역량을 토대로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때로는 개척가의 방식을 빌려올 수도 있다. 가령 커다란 기업의 조직문화는 쉽사리 바뀌지 않으므로 작은 독립 조직을 만들어 개척가의 일하는 방식을 받아들여서 실험하는 것도 좋다. 이렇게 되면 실패의 충격도 줄어든다. 스피드, 시장을 읽고 보는 안목, 그간 축적한 기술 등에 개척가의 용기를 더한다면빠르면서도 다른기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병주 생생경영연구소장 capomaru@gmail.com

이병주 소장은 연세대 경영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LG경제연구원에 재직하면서 창의성, 변화관리, 리더십 등을 연구했다. 저서로 <애플 콤플렉스> <> <3불 전략>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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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병주capomaru@gmail.com

    DBR 객원 편집위원

    필자는 연세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LG경제연구원에서 창의성, 혁신, 마케팅 관련 연구와 컨설팅을 수행했다. 여러 벤처캐피털에서 자문위원으로 일하며, 스타트업 투자와 보육, 성장을 도왔다. 저서로 『애플 콤플렉스』, 『촉』, 『3불 전략』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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