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siting Machiavelli-15

사랑에 빠진 마키아벨리, 풍자의 칼 들다

122호 (2013년 2월 Issue 1)

 

 

 

편집자주

많은 사람들은 마키아벨리는권모술수의 대가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억울하게 살고 있는 약자들에게더 이상 당하지 마라고 조언했던 인물입니다. 메디치가문의 창조 경영 리더십 연재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김상근 연세대 교수가 마키아벨리를 주제로 연재합니다. 시대를 뛰어넘는 통찰력을 주는 마키아벨리의 이야기 속에서 깊은 지혜와 통찰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마키아벨리가 코미디 작가라고?

1519, 마키아벨리는 두 젊은이가 세상을 떠나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한 사람은 그가 사랑하고 존경했던 사람이었고 또 다른 한 사람은 그가 죽도록 미워했던 사람이다. 그가 죽음을 애도했던 사람은루첼라이 정원의 좌장이었으며 <로마사 논고>의 헌정 대상이었던 코시모 루첼라이였다. 또 다른 사람은 <군주론>의 헌정 대상이었던우르비노의 공작로렌초 데 메디치였다. 코시모 루첼라이가 죽자 마키아벨리는 자비로운 후원자를 잃었고우르비노의 공작이 죽자 관직으로 나갈 수 있는 마지막 가느다란 희망을 잃게 된다. 마키아벨리의 두 대표작인

<군주론> <로마사 논고>를 헌정했던 두 사람이 우연히 한 해(1519)에 죽자 그의 삶도 서서히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이제 마키아벨리도 쉰 살이 됐다.

 

마키아벨리는 1519년 삶의 방향을 바꿨다. 이미 공직에 대한 미련은 버렸으니 아예 전문 작가로 밥벌이에 나서기로 작심했다. 코미디 작가로 변신한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생전에 <군주론>의 저자로 알려진 것이 아니다. <만드라골라>를 쓴코미디 작가로 불렸다. 그의 최고 히트작은 <군주론>이나 <로마사 논고>가 아니라 16세기 이탈리아를 웃음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코미디 <만드라골라> <클리지아>였다. 마키아벨리는 전문 코미디 작가로 대박을 터트린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역사의 무대 뒤에서 영웅들의 은밀한 속내를 들춰 보며 약자가 강자의 횡포에서 맞서는 법을 연구했다. 왜 갑자기 포복절도할 재치와 음탕한 내용으로 가득한 코미디를 쓰게 됐을까? <군주론> <로마사 논고>의 집필에 한참 몰두하던 시절 동네사람들은 마키아벨리에게 별명을 붙여줬다. 마키아벨리는 주로 밤에 글을 썼기 때문에 낮 시간에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동네 상점이나 술집에 앉아 사람들과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시간을 죽이곤 했다. 워낙 말주변이 좋은데다 타고난 붙임성까지 있어서 동네사람들은 그와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다. 재미삼아 그를상점 진드기라고 불렀다. 늘 상점에 빈대 붙으면서 음란하고 허튼 농담을 널어놓는 마키아벨리의 넉살을 풍자한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아내는 그를집 진드기로 불렀다. 특별한 직업이 없이 빈둥거리며 사내 구실도 제대로 못하는 남편에게 붙여준 조금은 잔혹한 별명이었다. 로마에 가 있던 친구 베토리와 편지를 교환하는 일이 마키아벨리의 유일한 낙이었다. 편지 내용은 궁색하기만 하다. 허드렛일이라도 좋으니 로마에 일자리를 좀 알아봐 달라는 하소연과 수입은 90피오리노뿐인데 세금을 40피오리노씩 뜯어가니 어디서 급전을 빌릴 수 없겠냐는 아쉬운 소리를 늘어놓았다. 베토리는 이 딱한 친구를 위해 대출보증을 서주면서 이렇게 썼다.

 

“마키아벨리는 가난하지만 착한 사람입니다. 물론 달리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그는 분명히 착한 사람입니다. 제가 마키아벨리의 신용을 보증합니다. 그는 지금 수입에 비해 과중한 세금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그의 수중에 돈은 한 푼도 없고 집안에는 아이들만 바글바글합니다.”1

 

이런 마키아벨리가 갑자기 코미디 작가로 변신한 이유는 운명적인 한 과부와의 만남 때문이었다. 마키아벨리는 라 타파니(La Tafani)로 불리던 동네 과부와 사랑에 빠졌다.2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만나중세의 장송곡으로 불리는 <신곡>의 영감을 얻었다면 마키아벨리는 동네 과부 라 타파니를 만나 코미디 작가가 됐다. 번개 같은 사랑은 누구에게나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1514 83, 친구 베토리에게 쓴 편지의 내용은 마키아벨리를 <군주론> <로마사 논고>의 저자로 존경하는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우리 시골마을에서 우연히 한 여인을 만났다네. 그런데 그녀는 천성이나 됨됨이가 너무나 부드럽고, 너무나 섬세하고, 너무나 고귀해서, 나의 어떤 찬사와 사랑도 그녀에겐 그저 부족할 뿐이라네. <중략> 난 감정이 움직이는 대로 몸을 맡기지. 때로는 나의 감정과는 다르고 심지어 반대되는 경우까지도 말이야. 내가 지금 커다란 고통 속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그곳에서 큰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네. 그건 바로 그녀의 보기 드문 용모 때문이기도 하고 그녀 때문에 나의 고통을 모두 잊어버렸기 때문이기도 하지. 세상의 어떤 것을 준다고 해도 난 여기서 벗어나지 않겠네. 그래서 위대하고 중차대한 문제 같은 것은 생각지 않기로 했다네. 이제 더 이상 옛 역사를 읽는 것도, 우리 시대의 사건들을 숙고하는 것도 즐겁지가 않다네. 이 모든 것이 감미로운 생각들로 바뀌어버린 걸세.”3

 

 

마키아벨리는 사랑에 빠졌다. 큐피드가 쏜 사랑의 화살에 심장을 찔렸다. 자신의 가난과 고통을 송두리째 잊었다. 고대의 빼어난 고전을 읽으며 시대의 난제를 숙고하던 그의 노력은 잠시 중단됐다. 가난과 고통을 포함한 모든 것이감미로운 생각들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로마에 있던 베토리에게 여자 스타킹 한 켤레를 짤 수 있는 양의

푸른색 털실을 구입해 달라는 편지까지 썼다. 마키아벨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줄 선물을 위해서 친구에게 염치없는 부탁도 스스럼없이 할 정도로 사랑에 눈이 멀었다. <만드라골라>는 사랑의 열정에 불타오르던 떨리는 가슴으로 쓴 코미디다. 마키아벨리처럼 미친 듯이 사랑해 본 사람만이 <만드라골라>의 참뜻을 알게 되리라.

 

대박이 터진 마키아벨리의 코미디, <만드라골라>

<만드라골라>가 집필된 시기는 1518년 사육제 기간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피렌체에서 초연된 이 코미디는 빠르게 입소문을 타고 이탈리아의 주요 도시에서 상연됐다. 교황청은 단독으로 <만드라골라>를 제작해서 메디치 출신 교황들을 즐겁게 해줬다. 베네치아에서는 너무 많은 청중이 몰려들어 무대 장치가 무너지는 사고로 <만드라골라> 공연이 중단되기도 했다. <만드라골라> 16세기 이탈리아 최고의 코미디였다. 영국에 셰익스피어가 있었다면 이탈리아에는 <만드라골라>를 쓴 마키아벨리가 있었다.

 

 

 

<만드라골라>에는 7명의 주요 인물이 등장한다. 연극의 무대는 당연히 마키아벨리의 고향인 피렌체다. 줄거리는 대충 이렇다. 불세출의 미인이지만 이미 니시아(Nicia) 판사의 아내가 된 루크레치아(Lucrezia)가 피렌체에 살고 있었다. 1484년에 프랑스 파리에 살고 있던 칼리마코(Callimaco)는 루크레치아의 미모에 대한 소문을 듣고 고향 피렌체로 돌아온다. 칼리마코의 꿈은 루크레치아와 길고 진한 하룻밤을 보내는 것이다. 그녀를 한번만 안아볼 수 있다면 자기 생명까지 바치겠다는 사생결단의 각오로 고향으로 돌아왔다.

 

칼리마코는 피렌체에서 유명한 건달이며 사기꾼(Trickster)인 리구리오(Ligurio)를 만나 니시아 판사와 루크레치아를 속일 방법을 만들어낸다. 결혼한 지 6년이 지났지만 아직 자식을 얻지 못한 니시아 판사에게 칼리마코를 프랑스에서 온 유명한 의사로 소개하고 임신에 특별한 효험을 가진만드라골라라는 약을 소개한다는 것이다. 이 신비의 영약을 먹으면 반드시 임신하게 되는데 심각한 부작용이 뒤따르는 것이 문제다. 이 약을 복용한 여인과 잠자리를 같이 한 첫 번째 남자는 일주일 이내에 죽는다고 설명했다. 루크레치아에게 이 약을 먹게 한 뒤 동네 건달을 한 명 잡아다가 그녀의 방안으로 밀어 넣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루크레치아는 임신하고 건달은 곧 숨진다. 니시아 판사는 스캔들에 휘말릴 염려가 없다. 후손을 보고 싶어 안달하던 니시아 판사는 리구리오와 칼리마코의 제안에 귀가 솔깃해졌다. 그러나 루크레치아는 분명 망설일 것이다. 루크레치아를 설득하는 일은 사악한 수사인 티모테오(Timoteo)가 맡기로 한다. 티모테오는 니시아 판사로부터 두둑한 기부금을 받아낼 요량으로 루크레치아를 설득한다. 임신하기 위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남자를 죽음으로 몰아놓는 것이 꺼림칙했던 루크레치아에게 괴변을 늘어놓았다. 남편의 뜻에 따르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고 강변했다.

  

결국 루크레치아는 신비의 영약만드라골라를 삼키고 방에서 기다린다. 자식을 보겠다는 일념에 눈이 먼 니시아 판사는 피렌체 골목에서 지나가던 남자 건달 한 명을 잡아다가 아내의 방에 들어가게 한다. 물론 이 남자는 동네 건달로 분장한 칼리마코였다. 드디어 칼리마코는 어두운 방에서 루크레치아와 황홀한 밤을 보낸다. 다음 날 아침, 루크레치아는반전 있는 여자로 돌변하면서 관객들을 놀라게 한다. 침대에 누워 있는 칼리마코에게 자기는 이미 오래 전부터 얼간이 같은 남편의 의도를 다 알고 있었고 칼리마코와 리구리오, 티모테오 수사의 음흉한 계략도 다 눈치채고 있었다고 말했다. 자신과 지난 밤 동침한 동네 건달이 바로 칼리마코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만드라골라가 가짜 약이란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루크레치아도 얼간이 같은 남편보다 젊고 잘생긴 칼리마코 당신이 좋으니 이제부터프랑스 의사칼리마코로 행세하면서 자기를 자주 만나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자고 유혹했다. 관객들은 루크레치아의 마지막 반전에 깜짝 놀랐다. 아무 것도 모른 채 곧 자식을 얻게 될 것이라고 믿으며 싱글벙글하는 니시아 판사의 모습을 보면서 웃음을 터트리는 것으로 막이 내린다.

 

 

피렌체의상점 진드기리구리오는 마키아벨리 자기 자신이다. 마키아벨리 자신의 모습을 리구리오에게 투사했다. 마키아벨리는 원래 전문적으로속이는 사람(Trickster)’이었다. 외교관으로서 자신의 의중을 숨기고 상대 국가의 의도를 간파해 내는 것이 그에게 주어진 임무였다. ‘여우의 지혜와 사자의 용기를 운운하면서 <군주론>으로 메디치 가문을 속이려고 들기도 했다. <만드라골라> 1 3장에서 리구리오가 니시아 판사를 속이는 방법을 가르쳐 주자 칼리마코는 리구리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자네를 믿겠네. 비록 자네 같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속이면서 산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말이야.” 3막 제12장 말미에 등장하는 코러스의 노래 가사는 더 직설적이다. “속임수를 쓴다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가! 간절히 그리던 목표를 위해!”

 

아름다운 루크레치아를 안고 싶어 프랑스에서 피렌체로 돌아온 칼리마코의 모습에서도 마키아벨리가 보인다. 동네 과부였던 라 타파니(La Tafani)와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을 꿈꾸던 마키아벨리로서는 변칙을 동원해서라도 그 사랑을 이루고 싶었던 것이다. 피렌체의 기득권을 상징하던 니시아 판사는 권력과 돈을 모두 가지고 있고 티모테오 수사를 동원할 수 있는 사회적 영향력까지 지녔다. 이 힘 센 사람의 아내를 칼리마코 같은 젊은이가 차지한다는 것은 과연 가능한 일일까? 약자는 어떻게 강자의 지배에서 벗어나서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을까?

 

여배우와 스캔들에 빠지다

마키아벨리는 1524 1월 또 다른 뮤즈(Muse)를 만났다. 시인이나 작가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여성을 서양에서는 시()와 음악의 신인뮤즈로 부른다. 스페인 출신의 피카소는 수많은 뮤즈를 가졌던 화가로 유명하다. 여자가 바뀔 때마다 그의 화풍은 이전 시대와 결별하고 새로운 창조의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마키아벨리에게도 동네 과부 라 타파니(La Tafani) 외에 또 다른 뮤즈가 있었는데 이 사랑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코미디 <클리지아 (Clizia)>가 발표된다. 1524년에 만난 뮤즈는 피렌체의 유명한 여배우였던 바바라 라파카니(Barbara Raffacani)였다. 바바라는 마키아벨리의 새 코미디 <클리지아>의 주연 여배우이기도 했다.

 

                     

 

<클리지아> <만드라골라>보다 더 즉각적인 인기를 끌었다. 더 노골적이고 직설적인 내용 때문이었을 것이다. 1525 113일에 초연된 이 코미디 역시 섹스 스캔들을 다루고 있지만 내용을 자세히 보면 마키아벨리 자신에 대한 자조적인 이야기를 펼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인공의 이름 니코마코(Nicomaco)부터 니콜로 마키아벨리(Nicolo Machiavelli)란 자기 이름을 코믹하게 표현한 것이다. 늙은 부자이자 호색한이었던 니코마코는 미모의 젊은 하녀인 클리지아의 아름다운 매력에 빠졌다. 클리지아의 뛰어난 미모 때문에 니코마코의 아들이었던 클레안데르(Cleander)도 사랑의 감정에 휩싸였다. 아버지와 아들이 하녀 한 명을 놓고 서로 탐냈다. 욕심 많은 노인 니코마코는 자기 아들에게 클리지아를 뺏기기 싫어서 소작농인 피로(Pirro)와 비밀 계약을 맺고 가짜 결혼식을 올린다. 법적으로 결혼은 피로와 하고 실제로는 니코마코가 클리지아를 밤마다 차지한다는 이중 계약을 맺었다. 결혼식 당일 니코마코는 소작농 피로처럼 분장하고 신랑 행세를 한다. 결혼식 행사를 대충

 

마무리한 다음 드디어 니코마코가 고대하던 신혼 첫날밤이 다가왔다. 그러나 대반전이 일어난다. 니코마코의 아내 소프로니아(Sofronia)는 남편의 음모를 미리 알아채고 깜짝 놀랄 만한 복수를 준비했다. 튼튼한 남자 하인을 돈으로 사서 신부 클리지아처럼 분장시킨 뒤 첫날밤을 기다리고 있던 니코마코의 신혼 방으로 들여보냈다. 가짜 피로(니코마코)와 가짜 클리지아(남자 하인)가 신혼 첫날밤을 함께 보내게 된다. 어두컴컴한 방에서 클리지아로 여장(女裝)을 한 남자 하인을 클리지아로 생각하고 달려드는 니코마코의 행동에 관객들을 웃음을 터트린다. 클리지아로 분장한 남자 하인에게 실컷 두들겨 맞은 니코마코가 포기하고 잠에 들자 이번에는 또 다른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남자 하인이 니코마코를 겁탈하는 포복절도할 장면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맙소사, 이 남자 하인은 호모였던 것이다!

 

남자 하인에게 수모를 당하는 니코마코는 바로 니콜로 마키아벨리 자신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딸 정도 나이의 여배우와 사랑에 빠졌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비난과 냉소뿐이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남자 하인에게 무자비한 폭행을 당한 니코마코의 불쌍한 신세는 어쩌면 메디치 가문으로부터 외면당해야 했던 자신의 딱한 처지를 풍자한 것인지도 모른다. 마키아벨리는 폭소를 터트리는 관객들과 함께 너털웃음을 쳤을 것이다. 하지만 그 너털웃음 뒤에 싸늘한 각성이 숨어 있었다. 웃기라도 해야 하는 자신의 딱한 처지를 뒤돌아보면서 한바탕 웃음 뒤에 남아 있는 코미디의 참된 의미를 관객들이 알아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코미디는 나의 힘

마키아벨리의 고향 피렌체에서 북쪽으로 산과 언덕 몇 개를 넘으면 볼로냐라는 큰 도시가 나온다. 유럽 최고의 법과대학을 자랑하는 볼로냐대가 있는 곳이다. <장미의 이름>이란 소설과 영화로 유명해진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 교수는 볼로냐대의 또 다른 자랑이다. 널리 알려진 대로 <장미의 이름>은 이탈리아 북부 지방의 한 베네딕트 수도원에서 일어난 중세시대의 살인 사건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중세의 미스터리 소설이다.

 

수도원에서 발생했던 수도사들의 의문스러운 사망 사건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웃음에 대한 책을 대중의 손에서 제거하려는 한 수도사의 광기에서 초래한 것이었다. 이 책을 필사하던 수도사들이 페이지를 넘기기 위해 검지에 침을 바르는데 그 책의 가장자리에 독을 발라 수도사를 죽게 만들었다. 왜 이런 살인을 저지르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희극에 대한 책을 없애려고 하느냐고 물었을 때 작품 속의 수도사는 이렇게 말한다.

 

“웃음이라고 하는 것은 허약함, 부패, 우리 육신의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것에 지나지 않아요. 웃음이란 농부의 여흥, 주정뱅이에게나 가당한 것이오. 지혜롭고 신성한 교회도 잔치나 축제 때는 이 일상의 부정을 용납하여 기분을 풀게 하지요. 허나 웃음이 원래 천박한 것, 범용한 자들의 제 진심을 얼버무리는 수단, 평민을 비천하게 만드는 것임에는 변함이 없어요.”4

 

웃음에 대한 힘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입장을 이 문장처럼 잘 표현한 것이 있을까. 강자와 지배자들은 잘 웃지 않는다. 우리 사회를 돈과 권력으로 지배하고 있는 기득권자들은 약자들이 아무 때나 웃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강자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방식은 엄숙함을 조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권위 있는 것은 엄숙하고 묵직해야 하고 가벼운 농담의 대상이나 풍자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 그러나 원래 웃음은 약자들의 보편적인 무기다. 풍자와 조롱을 통해 약자는 주눅 든 기분과 의기소침한 불안감을 털어버린다. 권위와 힘에 대항할 수 있는 용기를 얻는다.움베르트 에코는 약자의 수호성자였던 마키아벨리가 <만드라골라> <크레지아>라는 코미디를 쓴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희극(코미디)은 보통 사람의 모자라는 면이나 악덕을 왜곡시켜 보여 줌으로써 우스꽝스러운 효과를 연출하지요. 여기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웃음을, 교육적 가치가 있는 선을 지향하는 힘으로 봅니다. 거짓이 아닌 것은 분명하나 실상이 아닌 것 또한 분명합니다. 실상이 아니지만 예기치 못한 비유를 통해 실상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검정하고아하, 실상은 이러한 것인데 나는 모르고 있었구나하고 감탄하게 만드는 것이지요. 우리가 실재라고 믿던 것보다 열등한 인간과 세계를 그림으로써 진리에 도달하는 하나의 방법을 제시한다는 것입니다.”5

 

볼로냐의 석학 움베르토 에코는 마키아벨리의 의도를 정확하게 간파한 것처럼 보인다. 마키아벨리는교육적 가치를 위해서 코미디를 썼고 이것이선을 지향하는 힘이라고 봤다. 강자의 논리에 휘둘리는 약자들에게진리에 도달하는 방법을 보여주기 위해 코미디를 선택한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만드라골라>의 프롤로그에서 코미디의 줄거리를 안내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빌려 자신의 처지를 드러낸다.당시 피렌체 사람들은 마키아벨리가 어떤 사람인지 다 알고 있었다. 최소한 <만드라골라>를 관람하는 관객들은 그가 한때 피렌체의 제2서기장이었으며 메디치 가문에 고문을 당하고 결국 유배까지 갔던 사람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심혈을 기울여 쓴 <군주론>이 개보다 못한 대접을 받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이 관객들은 <만드라골라>를 소개하는 사람이 결국 마키아벨리 자신임을 알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자신을 소개한다.

 

“비록 이 이야기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자신을 점잖은 사람으로 무게를 잡는 사람들에게는 너무 가벼운 내용이라 해도, 이 코미디를 쓴 사람을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그는 지금 자신의 지혜를 하잘 것 없는 일에 쏟으면서, 고단한 삶의 시련을 유쾌함으로 바꾸는 것뿐입니다. 그에게 달리 시도해 볼 다른 방도도 특별히 없습니다. 가택연금의 처벌을 받은데다,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길은 모두 막혀 있습니다. 흘린 땀에 대한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하고 있지요.”6

 

이것은 피렌체의 권력을 독점하고 있던 메디치 가문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것이다. 마키아벨리에게가택연금의 처벌을 내린 사람이 메디치 가문이라는 것을 다 알고 있는 처지에 그는 공개적으로 메디치 가문을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흘린 땀에 대한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했다는 표현을 들었을 때 관객들은 바로 <군주론>을 떠올렸을 것이다. 관객들은 이 소개를 들으면서 <만드라골라>가 단순한 코미디가 아님을 알게 된다. 니시아 판사가 아래와 같은 대사를 읊을 때 관객들은 마키아벨리와 같은 약자로 전락한 사람들이 처해 있는 삶이 바로 자신의 삶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나라에서 정치적 연줄이 없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나 같은 지위라도 개도 짖게 할 수 없어. 우리는 그저 장례식이나 결혼식 파티에 앉아 있거나, 아니면 일 없이 관리들의 창구 앞에서 죽치고 기다리거나, 그것도 아니면 하루 종일 광장을 배회할 팔자야.”7

 

약자들의 수호성자였던 마키아벨리는 약자들을 응원하기 위해서 코미디를 썼다. 비록 우리들은개도 짖게 할 수 없는한심한 처지에 놓여 있지만 웃음으로 용기를 얻고 새로운 것을 시도해야 한다. 코미디는 약자의 오락이자 무기다. 웃음과 풍자로 강자에게 대항하라. 마키아벨리는 <만드라골라>의 주인공인 칼리마코의 입을 빌려 이 세상 모든 약자들을 이렇게 선동하고 있다.

 

“너의 운명을 직시하라. 불행에선 도망가라. 하지만 도망갈 수 없을 때는 사나이답게 견디어라. 너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지 마라. 여자처럼 비겁하게 굴지 말라.”8

 

 

김상근 연세대 신과대학 교수 skk@yonsei.ac.kr

필자는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립대 및 에모리대에서 석사 학위를,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연세대 신과대학 부교수로 재직 중이며 ㈜SK케미칼 고문도 맡고 있다. <르네상스 창조 경영> <천재들의 도시 피렌체> <사람의 마음을 얻는 법> 15권의 책을 냈다. 르네상스 시대의 창조적 영감을 현대적 언어로 재해석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48호 The New Chapter, Web 3.0 2022년 07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