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는 각 고을을 다스리는 공직자를 목민관이라 하였다. 목민(牧民)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백성(民)들을 기른다(牧)다는 뜻으로 마치 양을 치는 목자(牧者)가 여러 양들을 잘 돌보고 기르듯이 목민관은 고을 백성들의 민생을 살피고 그들 삶을 행복하게 영위할 수 있도록 책임진 사람이라는 뜻이다. 지금의 눈으로 보면 백성들을 마소로 여기는 듯한 단어이지만 마음을 노동하는 노심자(勞心者)와 몸을 노동하는 노력자(勞力者)로 구분되는 것이 당연시되던 시대에는 백성들을 돌보고 잘 보살피는 것이 치자(治者)의 도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실학자 다산 정약용 선생이 쓴 <목민심서(牧民心書)>의 부임육조에 보면 목민관이라는 직책은 함부로 구해서는 안 된다는 구절이 있다. ‘목민지관불가구야(牧民之官不可求也)라! 목민의 관직은 자신이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일이 아니다!’ 다른 관직은 스스로 구하고 찾아도 되지만 백성들의 삶과 직결되는 목민관직은 억지로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산은 그에 대한 근거로 목민의 관직은 크고 작음만 다를 뿐 천하를 다스리는 일과 같다고 하고 있다. 목민관이 누가 되냐에 따라 결국 백성들의 인생도 결정되고 그 지역의 풍토도 변하기 때문에 비록 조그만 고을의 목민관이라도 아무나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따뜻한 인격과 위엄을 동시에 갖춘 사람, 굳은 의지와 시비를 정확히 가릴 줄 아는 사람이 목민관이 돼야 그 고을 백성들이 제대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만약 조건에 안 맞는 사람을 목민관으로 앉히면 백성들은 도탄에 빠지고 원성이 높아져 자손대대로 화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작은 고을에 목민관이 있다면 한 나라를 다스리는 목민관도 있다. 한 나라의 국민들을 책임지는 목민관을 요즘은 대통령이라고 한다. 대통령은 그 나라 국민들의 삶과 행복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에 아무나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다산이 지적하듯이 목민관이 그 고을 토족들의 횡포와 협잡을 이겨내야 하듯이, 대통령은 그 나라의 기강을 흔드는 수많은 단체와 사람들의 협잡을 이겨내야 한다. 이 시대 한 나라를 책임진 목민관이 된다는 것은 정말 신중하게 생각하고 생각할 일이다.
요즘 대통령을 꿈꾸는 대선 후보들이 서로 자신이 적격이라고 연일 전국을 다니며 유세하고 있다. 나를 뽑아달라고 목청껏 외치고 있지만 다산의 관점에 의하면 대통령의 자리는 나를 뽑아달라고 부탁할 자리가 아니다. 묵묵히 있는 역량을 보여주고 국민들의 결정을 조용히 기다릴 뿐, 온갖 전략으로 승리해 차지해야 할 자리는 아닌 것이다. 이순신 장군은 32살에 무과에 급제하고 임용발령을 기다리며 자신이 어떤 자리로 발령이 나든 나라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대장부가 세상에 나서서(大丈夫出世), 세상이 나를 필요로 하면 죽음을 다해 나라에 충성을 다 할 것이고(用則效死以忠), 세상이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초야에 묻혀 밭을 갈며 사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不用則耕野足矣).’
장관은 나를 뽑아달라고 목을 매도 좋다. 그러나 대통령은 아니다. 국가와 민족의 미래와 국민의 운명을 결정하는 자리이기에 민심을 반영한 천명(天命)을 묵묵히 기다리며 자신을 더욱 겸허하게 단속해야 한다. 여기저기 표를 얻기 위한 눈에 보이는 연극으로 대통령이 되면 그 후환은 아무리 능력 있는 자라도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다가오는 대선에서 국민들의 한 표 한 표가 더욱더 신중해야 할 이유다.
박재희 민족문화컨텐츠연구원장 taoy2k@empal.com
필자는 조부에게 한학을 배우고 성균관대에서 동양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중국 사회과학원에서 수학했다. 고전의 재해석을 통한 새로운 미래사회 가치를 연구하고 있으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를 지내고 현재 포스코 전략대학 석좌교수, 민족문화콘텐츠연구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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