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한 상원의원이 기존의 법 관념이나 일반적인 경제 이론, 혹은 경영 철학적 상식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법인 설립에 관한 법안을 제출해 관심을 끌었다. 이름하여 ‘유연한 목적 회사(Flexible Purpose Corporation, 이하 FPC 법안)11법안 번호 SB 201 (상원)로 마크 드살니어(Mark DeSaulnier) 캘리포니아 상원의원이 2011년 2월 8일 발의. 지난 5월2일 법사위원회에서 가결(찬성 3, 반대 1)됐으며 현재 세출위원회에 계류된 상태.
닫기이다. 법인의 정관에 회사가 영리적 목적 이외에 공익 내지 사회적 목적 사업 영역을 명시, 주주에 대한 경영진의 법적 책임을 유연하게 만들어주는 게 본 법안의 골자다.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비영리 목적을 가진 영리 법인 등장의 서막을 알리는 법안인 셈이다.
미국인들의 기업에 대한 뿌리 깊은 도덕철학을 보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주주 이익 극대화로 제한한다.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은 일찍이 “기업의 경영자는 주주들을 위해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책임질 것이 없다”22‘The Social Responsibility of Business is to Increase its Profits’, Milton Friedman, The New York Times Magazine, September 13, 1970.
닫기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 범위를 한정했을 정도다. 이러한 생각은 현대 자유 기업 및 금융 시스템의 철학적 기반을 형성하며, 때로는 기업이 행하는 자선적이고 공익적인 활동들에 대해 매우 비도덕적인 행위라고 비판을 가하는 근거로까지 활용돼왔다. 기업이 자선을 위해 지출하는 사회적 비용은 상품 가격을 왜곡하고 시장 비효율을 초래할 수 있어 궁극적으로는 주주의 이익을 침해한다는 것이 사회적 책임 부정론자들의 주요 논리다. 이러한 논리로만 본다면 이번 캘리포니아주의 FPC 법안은 주주와 경영자들 사이의 이해 충돌 가능성을 오히려 인정하고 법적 책임의 유연성 확대를 공식적으로 허락하는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다.
왜 하필 이런 이례적인 사건이 자유시장주의 경제와 철학이 가장 발달한 미국에서 일어났을까? 전 세계 경제와 산업에 쓰나미를 몰고 온 최근의 금융위기는 미국의 글로벌 경제 권력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미국의 기업윤리에 대해 전 세계적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위기 수습과 구제 과정에서 드러난 월스트리트 금융기관 경영진의 비윤리적이고 탐욕적인 행위는 미국인들은 물론 전 세계인들로 하여금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단기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비윤리적 결정도 서슴지 않았던 미국 기업 리더들에게 경제 위기의 책임이 돌아가게 된 것이다.
미국 기업들은 현재 사회의 희생 위에서 일부 주주와 리더들이 경제적 이익을 편취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으며 정당성의 위기에 빠져 있다. 기업들은 향후 지속가능한 이익의 원천을 창출함과 동시에 자본주의의 위기를 해결할 새로운 전략적 방향을 모색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됐다. 이와 관련해 최근 공유 가치(Shared Value)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새로운 기업 패러다임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지난 1월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마이클 포터 교수는 ‘The Big Idea: Creating Shared Value’라는 논문에서 기업이 사회와 공유된 가치(Shared Value)를 창출할 수 있도록 기업 본연의 책무를 재정립해 현재의 위기를 극복할 것을 주문했다. 포터는 기존의 자유주의 기업 철학이나 사회적 책임 논의들, 양쪽 모두가 가지고 있는 기업과 사회의 이분법적 갈등 관계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하며 경제 영역과 사회 영역의 경계를 허물어 새로운 비즈니스 영역을 개척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림 1)
기업은 오로지 경제적 가치만 생산하고 사회적 가치는 비영리 기관이나 정부에 맡겨 대리하게 하는 현재의 자본주의 시스템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양자 사이의 공유된 가치 기반을 찾아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를 위해서는 영리와 비영리 간 경계를 부수고 기업은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가 지속적으로 건강해질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내는 데에서 비즈니스 기회와 상품 혁신 아이디어를 찾아야 한다. 또한 사회와 연결된 기업 가치 사슬을 재정의하고 지역사회와 기업이 결합된 산업 클러스터를 형성해 전략적 효과를 높여야 함을 강조했다. 이름하여 ‘임팩트 비즈니스(Impact Business)’의 등장이다. (그림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