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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원하면 ‘역량’아닌 ‘기회’를 보라

홍범식 | 87호 (2011년 8월 Issue 2)

‘신성장동력’ ‘신성장 시장’ 등 어느 때부터인가 ‘성장’이란 말이 업계의 화두로 떠올랐다. 여기저기서 성장을 강조하지만 이를 뒤집어보면 우리 경제가 역설적으로 저성장 시대의 문턱을 넘고 있음을 의미한다. 고령화, 저출산 등에 따른 노동력 감소와 생산성 하락에 더해 경쟁증가와 시장포화가 저성장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저성장 시대를 어떻게 헤쳐나가느냐는 개별 기업은 물론 국가 경제에 중요한 화두가 아닐 수 없다. 한국 기업들은 수차례의 위기를 겪으며 체격과 체질 모두 강화됐다. 그러나 과거의 핵심역량(core competence)을 바탕으로 한 시장 선점 전략은 저성장 시대에서 빛을 잃을지도 모른다. 1980년대 처음 정의됐던 핵심역량은 남들보다 빨리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기본 동력이었다. 시장 획득이 핵심성공 요인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물론 기업으로서 탄탄한 사업 역량을 갖춰야 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문제는 21세기 들어 기업 환경이 근본적으로 바뀐 상황에서 어디에 무게중심을 둘 것인가다.
 
기업 환경이 생산중심에서 소비중심으로 변하면서 글로벌 기업들은 시장 ‘획득형’에서 시장 ‘창출형’으로 바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기업에 요구되는 변화는 ‘역량중심’ 사고에서 ‘기회중심’ 사고로의 전환이다. 기본 역량을 갖춘 기업이라면 이제 눈을 외부로 돌려야 한다. 자신의 기본 역량에만 의지해 사업을 벌이는 일이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자기가 부족하면 남들의 역량도 얼마든지 빌려다 쓸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달로 서로의 기술과 지식을 얼마든지 공유하고 이를 통해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까지도 개발할 수 있게 됐다. 신제품의 40% 가까이를 이런 방식으로 개발하고 있는 P&G는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이란 말을 사용한다. 고객의 아이디어를 직접 반영해 제품을 만드는 델의 아이디어스톰(Idea Storm)은 크라우드 소싱(crowd sourcing)으로 표현하지만 그 중심에서 일어나는 현상은 동일하다. 이제는 예전만큼 독점적인 기술이나 아이디어가 사업의 진입장벽으로 작용하는 시대가 아니라는 관점도 있을 정도다.
 
그렇다면 이제 기업들은 어떤 사업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고객이 가격을 결정하고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주체로 등장한 것이라면 고객의 니즈에 따라 기업의 재화와 용역이 결정된다는 얘기다. 오늘날 세계적인 기업들은 소비자의 행동을 연구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들은 단순히 소비자의 특정 니즈를 충족시키는 제품 개발로 끝나는 게 아니라 니즈를 충족시키는 방법을 연구하고 이를 개선해 새로운 생활양식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특징을 보인다. 소니는 20세기에 워크맨을 통해 집에서 듣는 음악을 길거리에서도 듣게 만들었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주도권은 애플로 넘어갔다. 애플은 아이팟과 아이튠즈를 통해 소비자가 원하는 음악을 언제 어디서든, 그리고 무엇이든 들을 수 있게 만들며 새로운 소비문화를 창출했다. 복사(copy)를 하고 검색(search)을 하고 싶어하는 소비자의 니즈는 제록스와 구글이라는 회사를 복사기 제조나 검색 포털을 넘어 편리한 생활 솔루션이라는 새로운 플랫폼 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시장 변화와 기업의 대응이 서비스의 컨버전스(convergence)를 가속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컨버전스라는 개념도 단순한 서비스의 결합이 아니라 다양한 기업들이 뭉쳐서 소비자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현상으로 확대되고 있다. 통신사를 통해 TV나 영화를 보고 편의점을 24시간 은행이나 택배회사로 이용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기업의 정체성도 변하고 있다. 나이키의 경쟁사가 운동화나 스포츠 의류를 생산하는 기업이 아니라 애플이나 닌텐도처럼 다른 곳에 있는 이유다.
 
소비자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시장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기업들은 경쟁보다는 협업을 택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이는 결국 자신이 갖고 있는 기본적인 역량에 남의 역량을 더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겠다는 전략이다. 이제는 내부의 역량에만 초점을 둘 게 아니라 외부의 변화를 같이 봐야 한다. 그리고 성장을 지속하기 위한 조건을 소비자 중심의 시장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는 일에 두어야 한다.
홍범식 베인 & 컴퍼니 아시아태평양 정보통신/테크놀로지 부문 대표
 
 

홍범식 대표는 미국 남가주대(USC), 컬럼비아대에서 각각 경영학 학사 및 석사(MBA) 학위를 취득했다. SK텔레콤 사업전략실장과 글로벌 전략 컨설팅회사인 올리버와이만 한국 대표를 역임했다. 국내외 정보통신과 미디어, 유통, 및 금융 분야의 포트폴리오 전략과 혁신, 마케팅 전략,조직 및 M&A 관련 프로젝트를 다수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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