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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경영

제로센 vs 와일드 캣,日첨단전투기를 美팀워크가 깼다

임용한 | 86호 (2011년 8월 Issue 1)


편집자주
전쟁은 역사가 만들어낸 비극입니다. 그러나 전쟁은 인간의 극한 능력과 지혜를 시험하며 조직과 기술 발전을 가져온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전쟁과 한국사를 연구해온 임용한 박사가 전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 코너를 통해 리더십과 조직 운영, 인사 관리, 전략 등과 관련한 생생한 역사의 지혜를 만나기 바랍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주력 전투기인 ‘제로센(零戰)’은 미군 조종사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1939년에 등장한 제로센은 미쓰비시의 제품으로 정식 명칭은 A6M1 영식함상전투기(零式艦上戰鬪機)다. 태평양전쟁에는 개량형인 A6M2와 A6M3가 사용됐다. 제로센은 미군의 어떤 전투기보다도 빠르고 항속거리도 길었다. 무엇보다 선회반경이 가히 환상적이었다. 제로센은 90도로 회전하는 데 회전반경이 200m밖에 되지 않았다. 미군 전투기는 그 두 배인 400m였다. 선회반경이 10m만 차이가 나도 공중전에서는 치명적이다. 100m가 훨씬 넘는 차이는 아예 맞상대가 절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제로센뿐 아니라 일본군의 다른 전투기들도 미군의 주력 전투기인 F4F-3, 일명 ‘와일드캣(Wild Cat)’과 P40을 압도했다. 군함을 공격해야 하는 미군의 뇌격기와 급강하 폭격기의 성능은 ‘날아다니는 관’이라고 불릴 정도로 더욱 형편없었다.
 
과달카날 사수에 나선 미군
1942년 일본은 태평양을 거의 석권하고 뉴기니에까지 진출했다. 호주마저 점령당할 위기에 처한 미군은 필사적인 반격 작전을 전개했다. 반격 지점은 솔로몬제도의 과달카날섬이었다. 과달카날전투는 미군으로서는 대단한 모험이었다. 태평양의 섬에서 벌이는 전투인데 제해권과 제공권이 모두 열세였다. 특히 제공권의 상실은 치명적이었다. 바다에서 전함끼리 맞붙어 포격으로 승부를 가르는 방식은 이미 구식이 돼가고 있었다. 하늘의 싸움이 함대의 운명까지 좌우했고 바다를 잃으면 과달카날의 지상군은 고립돼 궤멸될 판이었다.
 
전투기의 성능을 놓고 봤을 때 미군은 일본군에 비해 절대적 열세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투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신형 전투기가 개발될 때까지 전투를 연기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1942년 8월 미국은 과달카날에 상륙해 비행장을 확보하고 섬에 주둔시킬 전투 비행단을 편성해 파견했다. 나중에 선인장 항공대(Cactus Air Force)라고 불린 이 비행단에는 총 42대의 전투기와 12대의 급강하 폭격기가 배치됐다. 이들의 임무는 과달카날 상공을 방어하고 주변 바다의 일본군 수송선을 공격하며 해상전투를 지원하는 것이었다.
 
미군 조종사들은 대부분이 신참이었다. 반면 일본군 항공대는 100여대 가까이 격추시킨 전설적인 에이스 사카이 사부로를 앞세운 최정예 조종사로 구성돼 있었다. 성능, 조종사 등 모든 면에서 열세인 미군 비행단이 과달카날의 상공을 사수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미군에게 기적이 일어났다. 과달카날전투가 벌어지기 한 달 전인 1942년 7월, 일본군은 미 태평양 함대의 전력을 분산시키기 위해 알래스카의 알류샨열도에 대한 위장공격을 감행했다. 이 작전은 나중에 오히려 일본군의 전력을 분산시킨 쓸데없는 작전으로 혹평을 받는데 이 쓸데없는 작전이 미군에게 뜻하지 않은 선물을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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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용한

    임용한yhkmyy@hanmail.net

    - (현) KJ인문경영연구원 대표
    - 한국역사고전연구소장
    - 『조선국왕 이야기』, 『전쟁의 역사』, 『조선전기 관리등용제도 연구』, 『조선전기 수령제와 지방통치』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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