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김포공항이 있다면 일본 도쿄엔 하네다공항이 있다. 하네다공항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도쿄국제공항’이라는 이름으로 공식 개항했다. 일본의 관문인 하네다는 일본 경제발전의 한 축을 담당하며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1960년대 한국인이 유럽 등으로 여행하려면 김포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하네다공항까지 가야 비로소 목적지로 향하는 국제선을 탈 수 있었다. 김포공항이 수화물을 리어카로 나르던 1960년대에 하네다공항은 이미 동북아 허브공항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일본 경제가 성장하면서 하네다공항은 버려졌다. 더 큰 국제공항이 필요해진 일본은 1978년 신 도쿄국제공항인 나리타공항을 열었다. 하네다공항은 이후 국내선 중심으로 재편됐다. 2002년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와 타이완 노선 운행을 중단하면서 그나마 남아 있던 국제공항의 타이틀을 뗐다. ‘퇴역군인’ 하네다공항이 부활의 날갯짓을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 일이다. 2003년 김포를 오가는 셔틀노선이 운항되면서 국제선이 다시 취항했고 지난해 10월에는 연간 700만 명의 여객을 수용하는 새로운 국제선 터미널이 문을 열었다. ‘나리타-국제선, 하네다-국내선’의 이원화된 항공정책이 일본 내의 환승을 불편하게 만들고 한국 인천공항에 밀리는 원인이라는 지적에 따라 ‘빅 버드(Big bird)’로 불리던 하네다공항 여객터미널에 새로운 시설을 확충한 것이다. 하네다공항은 이를 토대로 현재 동남아 노선과 유럽행 야간 노선을 중심으로 24시간 운영되는 국제공항이 됐다.
얼마 전 유럽 출장길에 유럽행 새벽 비행기를 타기 위해 하네다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로 전력 수급에 비상이 걸린 도쿄의 공항에서 무더운 밤을 지새울 생각을 하니 앞이 캄캄했다. 하지만 쓸데없는 고민이었다. 새로 문을 연 국제선 터미널은 테마파크처럼 여행객의 오감을 사로잡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공항 내부의 푸드코트인 ‘에도마켓(Edo Market)’은 다양한 일본 전통음식점이 들어선 에도시대 저잣거리처럼 디자인됐다. 에도시대 풍의 상점과 간판, 신사를 떠올리게 하는 조형물 사이를 걷다보면 잠시 교토 기온거리를 걷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심야 여행객들은 오후 10시를 넘어 대부분 상점이 문을 닫은 뒤에도 이곳을 떠나지 않고 사진을 찍고 상점가를 둘러보며 시간을 보냈다. 실내가 답답하면 24시간 개방되는 공항 옥상 전망대로 나갈 수도 있다. 여행객들은 절전을 하느라 냉방이 시원찮은 공항 내부를 벗어나 옥상에서 공항 활주로와 도쿄 야경을 즐겼다. 전망대에는 마루 바닥이 깔려 있고 촛불과 비슷한 은은한 조명이 설치된 테이블도 여러 개가 있었다. 후지산 쪽 전망을 볼 수 있는 유료 망원경도 설치돼 있었다.
하네다공항이 공을 들인 ‘음식과 음료’는 집객(集客) 효과가 큰 요소다. ‘숍인숍(shop in shop)’ 형태로 커피숍과 음식점이 들어선 상점들이 최근 늘어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발 더 나아가 고객의 오감을 만족시키는 경험은 고객의 애착과 충성도를 높일 수 있다. 훌라 댄스를 보면 하와이가 떠오르고, 백파이프 음악을 들으면 스코틀랜드를 생각하고, 김치찌개 냄새를 맡으면 배가 고파지는 게 사람이다. 미국 오하이오대 연구진이 고객들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머그잔을 30초 이상 집어든 고객은 10초만 집어든 고객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지불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객이 어떤 경험을 얼마나 하느냐에 따라 애착과 충성도는 물론 씀씀이까지 달라질 수 있다.
인천공항에 한국 대표 공항의 자리를 내준 김포공항도 최근 기지개를 켜고 있다. 7월1일 김포∼베이징 노선 운항이 시작되는 등 일본과 중국 등 단거리 국제선 노선을 차곡차곡 늘려가고 있다. 연말에는 국제선 청사 앞에 복합쇼핑몰 ‘롯데몰 김포공항 스카이파크’도 문을 열 예정이다.
그런데 어딘지 찜찜하다. 비즈니스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김포공항은 고객에게 어떤 경험을 만들어줄까. 김포를 거쳐 하네다를 떠나오면서 내내 고민해봤지만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애써 노력해도 안 떠오르는 데 스쳐 지나가는 여행객이라면 오죽할까. 김포공항, 신공항 건설 논란이 일었던 김해공항, 비좁은 공항 시설로 고민하고 있는 제주공항 등 한국의 공항 대부분이 무색무취의 ‘붕어빵 공항’이다.
대대적인 투자를 한 하네다공항이 과거의 영화를 되찾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여행객을 위해 제공되는 공항 내의 서비스 디자인만큼은 ‘1등 공항’을 향한 강한 혁신 의지가 느껴졌다. 하네다는 여행객을 빨리 떠나보내는 일에 몰두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객에게 색다른 경험을 만들어주고 어떻게 하면 다시 불러올까를 고민했다. 1등이 되려면 철학부터 달라야 한다. 한국 공항과의 격차가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박 용 기자 parky@donga.com
박용
- 동아일보 기자
-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부설 국가보안기술연구소(NSRI) 연구원
- 한국정보보호진흥원(KISA) 정책연구팀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