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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화 없으면 사회공헌도 없다

방일석 | 85호 (2011년 7월 Issue 2)

 


얼마 전 국내에 진출해 있는 몇몇 해외 명품 기업들의 인색한 사회공헌이 도마 위에 올랐다. 한국에서 벌어들이는 막대한 수익에 비해 국내 소비자들에게 되돌려준 기부금의 액수는 매출액의 0.1%도 안 되는 미미한 수준이며 소외 계층에 대한 그 밖의 사회적 책임에 소홀하다는 게 요지였다.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기업이 1만여 개를 돌파한 현 상황에서 이런 쓴소리는 외국계 기업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실 한국에서 영업하는 글로벌 기업들의 배당률(현지 국가에서 벌어들인 수익 중 본사로 보내는 금액의 비율)을 살펴보면 40%에서 많으면 거의 100%까지 되는 곳도 있다. 다시 말해 국내에서 창출한 수익의 대부분을 본사에 반납하고 있다. 이처럼 구조적으로 수익 대부분을 본사로 보내고 있는 외국계 기업들에 사회공헌 활동이 부족하다고 비판하는 건 애당초 무리한 요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에 대한 요구 수준이 갈수록 높아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는 국내 토종기업은 물론 해외 기업에도 공히 적용되는 잣대가 될 것이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우리는 글로벌 기업의 위상에 걸맞게 한국 시장이 아니라 글로벌 시장 단위로 사회공헌 캠페인을 펼친다”는 변명이 더는 통하지 않는 시대가 온 것이다. 또 굳이 국내에서 CSR 활동을 하지 않더라도 높은 브랜드 파워와 제품력, 충성도 높은 고객이 있으므로 비즈니스에 별반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내심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이런 안일한 사고방식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시장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고 소비자들이 기업들에 요구하는 윤리적 잣대는 더욱 높아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외국계 기업이 성공적으로 CSR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현지화(localization)가 선행돼야 한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비즈니스와 관련된 모든 결정을 본사의 지시에 따라야 하고 국내에서 벌어들인 수익을 고스란히 본사로 송금해야 하는 상황에선 국내 투자조차 제대로 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공헌 활동을 추진하기는 매우 힘들다. 설령 어렵게 사회공헌 활동을 추진했다 하더라도 일회성 행사로 그치기 쉽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올림푸스한국은 지난해 서울 삼성동에 신사옥 ‘올림푸스타워’를 준공하면서 지하에 소규모 전용 클래식홀인 ‘올림푸스홀’을 건립했다. CSR은 단순히 물질적 풍요를 넘어 정신적인 풍요로움까지 추구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기업은 문화 예술에 투자하고, 문화예술 종사자는 기업 이미지 발전을 돕고, 국민은 문화 예술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선순환 구조가 국가 경쟁력을 높이고 궁극적으로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일이라는 게 필자의 평소 생각이다. 하지만 처음 클래식홀 개관 계획을 이야기했을 때 대부분의 지인들이 걱정 어린 소리들을 쏟아냈다. 외국계 기업이 국내에 사옥을 짓는다는 것 자체도 의문인데 많은 비용을 투자해야 하는 클래식 전용관 건립은 너무 무리 아니냐는 걱정들이었다.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클래식홀을 건립할 수 있었던 데는 올림푸스한국의 현지화가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올림푸스한국은 해외 법인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인사, 재무, 영업, 마케팅 등 대부분 업무를 본사와 독립해 운영하고 있다. 본사 배당률도 지난 10년간 평균 약 3.5%에 불과하다. 국내에서 벌어들인 수익 대부분을 국내에 재투자할 수 있는 기반을 갖췄기 때문에 막대한 투자가 들어가는 사회공헌 활동도 소신 있게 펼칠 수 있다.
 
물론 모든 외국계 기업들이 글로벌 본사와 100% 독립해 현지 기업처럼 비즈니스를 영위할 수는 없다. 현실적으로 불필요할 수도 있고 불가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최소한 조직원들의 마음가짐은 현지화해 바꿀 수 있다. 외국계 기업에서 일하고 있지만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일터는 한국에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사회공헌을 위해 어떠한 일을 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되묻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제 외국계 기업들도 한국 소비자들에게 오랫동안 ‘사랑 받는 기업’으로 남을 수 있는 ‘지속가능 기업’으로서 경쟁력을 모색해야 할 때다.
방일석 올림푸스한국 사장


방일석 사장은 중앙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했다. 삼성전자 일본 주재원으로 근무하다 2000년 한국으로 돌아와 올림푸스한국을 설립, 현재까지 대표이사 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2004년 올림푸스이미징 아시아중동 총괄 사장, 올림푸스이미징 차이나 회장 등을 역임했고 올해 4월부터는 비(非)일본인 아시아인 최초로 올림푸스그룹 총괄 경영 집행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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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일석

    - (현)삼성전자 일본 주재원 근무
    - 2000년 올림푸스한국을 설립,현 대표이사 사장 재직
    - 2004년 올림푸스이미징 아시아중동 총괄 사장, 올림푸스이미징 차이나 회장 등을 역임
    - 2011년 비(非)일본인 아시아인 최초로 올림푸스그룹 총괄 경영 집행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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