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자본과 선진 시스템을 갖춘 대형 할인점, 대형 슈퍼마켓, 편의점과 같은 신유통업태가 세력을 확장하면서 동네 영세 가게, 재래시장과 같은 전통 소매점은 점점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그 중에서도 재래시장은 급속히 쇠퇴하면서 점차 우리 머릿속에서 잊혀져가고 있다. 어머니 손을 잡고 이것저것 구경하면서 물건을 사던 모습은 이제 먼 옛날이야기가 돼 버렸다.
하지만 이러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살아남아 지역민과 지역경제의 활력소가 되고 있는 성공적 재래시장이 있어 주목을 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쓰러지지 않고 꿋꿋이 버텨낸 것은 물론 위기를 기회로 만든 이들 전통시장 강자의 성공 요인은 무엇일까. 성공한 재래시장들을 분석해보면 <그림 1>에서와 같이 몇 가지 공통점이 보인다. 바로 △역경을 극복하려는 열정적 마인드 △ 진정성 기반의 내부구성원 만족 마케팅 △지역상생을 이끌어내는 협업 시스템 △스토리텔링과 콘텐츠 차별화를 통한 외부고객 만족 마케팅 등이다.
열정적 마인드와 내부구성원 만족 마케팅은 조직 내부의 역량 강화 측면에서, 협업시스템은 외부 환경 변화에 따른 대처 전략 측면에서, 그리고 스토리텔링 및 콘텐츠 차별화는 대고객 만족 측면에서의 성공 포인트로 각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안으로는 결집력을 이끌어내고 바깥으로는 원만한 협력 관계를 형성하며 고객에게는 다시 찾아올 이유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유통업체뿐만 아니라 타 분야의 기업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본 마인드: 역경을 이겨내려는 ‘열정’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있다. 끊임없는 열정으로 자신의 결점을 극복하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려는 자에게는 좋은 결과가 온다는 뜻이다. 재래시장은 많은 약점과 불리한 요소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자양 골목시장, 수원 못골시장, 정선 5일장, 장흥 토요시장, 울산 수암시장 등 DBR에서 분석한 성공적 전통시장은 수많은 약점에도 불구하고 이를 극복하려는 강인한 의지, 즉 열정을 가지고 있었기에 오늘의 성공을 일궈냈다.
이러한 성공적 재래시장은 <그림 2>에 제시된 ‘언더독 매트릭스(Underdog Disposition Martix)’에서 ‘언더독(Underdog)’에 해당된다. 우리에게는 절대 강자에 대한 견제 심리가 있다. 특히 강자에 대항하는 약자에 대해서는 강한 연민까지 작용해 약자가 강자를 짓누르는 역전의 드라마를 기대하곤 한다. 투견판에서 ‘밑에 깔린 개(말 그대로 언더독)’에게 연민을 느끼고 이기길 바라는 것처럼 약자가 이기기를 바라는 심리를 ‘언더독 효과(Underdog effect)’라고 한다.
선진화된 시스템과 자본력으로 막강한 파워를 행사하는 거대 유통업체와 비교했을 때 재래시장은 약점 투성이다. 만약 약점을 극복하려 하지 않고 체념해버리면 ‘희생자(Victim)’가 되고 만다. 하지만 약점을 극복하기 위한 열정과 투지를 보인다면 ‘언더독’으로서 소비자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
Paharia et al.(2011) 연구 결과에 따르면 소비자들은 <그림 2>의 네 가지 유형 중 언더독을 가장 선호한다. 구매 의도 측면에서도 언더독이 가장 높게 나타난다. 그 이유는 소비자들이 열정과 투지로 역경을 이겨낸 브랜드에서 자신을 발견하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즉, 소비자들은 여러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는 자신과 그 브랜드가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에 ‘톱독(Topdog)’에 비해 상대적으로 쉽게 공감대를 형성한다고 한다. 그 결과 강력한 ‘자아-브랜드 연결감(Self-Brand Connection)’이 형성되고, 이런 인식이 궁극적으로 브랜드에 대한 사랑과 애착으로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Hoch & Deighton(1989) 연구에서는 전통적인 언더독의 예로 ‘시카고컵스’ ‘자메이카봅슬레이팀’ ‘애플’ ‘사우스웨스트에어라인’ 등을 꼽았다. 이들은 각각 ‘뉴욕양키스’ ‘노르웨이봅슬레이팀’ ‘마이크로소프트’ ‘아메리칸에어라인’ 등 절대 강자, 이른바 ‘톱독’ 못지않은 성공과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언더독 브랜드는 모두 역경을 이겨내려는 결연한 의지로 성공을 이룬 사례다. DBR이 분석한 5개 재래시장 케이스에서도 공히 이 같은 언더독 효과를 찾을 수 있다. 불리한 상황을 이겨내려는 열정이 소비자에 전달되면 강한 친밀감과 함께 애착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이들 케이스로부터 발견할 수 있다.
내부 시스템: 진정성 기반의 ‘내부구성원 만족 마케팅 (Internal Marketing)’
재래시장은 수십, 수백 명의 사장님들로 구성된 조직이다 보니 단합이 쉽지 않다. 점장의 통제 하에 직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대형 할인점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자치 조직인 상인조합, 상인회 등이 있지만 통제력을 갖기가 쉽지 않다. 내부구성원들인 상인들이 따라주지 않으면 유명무실한 조직이 돼버리기 십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어떤 조직에서보다 희생의 중요성이 커진다. DBR 재래시장 케이스 스터디 결과, 상인조합 소속 임직원들이 진정성을 기반으로 내부 커뮤니케이션에 성공했던 게 전통시장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주요 동인으로 보인다. 사리사욕이 아니라 자신을 희생하면서 전체 시장의 발전을 도모하는 모습에서 진정성이 느껴지고 이것이 내부구성원의 설득으로 이어졌다.
재래시장처럼 구성원들의 결집력을 한데 모으기가 구조적으로 어려운 조직일수록 고객에게 다가가기에 앞서 내부 구성원의 단합에 더욱 힘을 써야 한다. 외부고객 대상의 마케팅(External Marketing) 이전에 내부구성원을 결집시키고 만족시키는 내부마케팅(Internal Marketing)이 우선이다. 내부구성원이 체계적이고 일관된 모습을 갖춘 일사불란한 마케팅을 펼치지 못하면 그 느낌이 고스란히 고객에게 전달될 것이고 결국 고객들은 등을 돌리게 된다.
세계에서 가장 일하기 좋은 회사로 수년째 1위로 뽑힌 SAS의 대표이사 인터뷰에서 “직원의 행복이 곧 고객의 행복으로 이어진다”라는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구성원이 만족을 못하고 늘 불만과 불신에 가득 차 있다면 고객의 얼굴도 덩달아 찌푸려질 것이다. 상인들의 만족과 행복이 고객들의 행복으로 이어진다는 측면에서 성공한 재래시장은 내부마케팅의 중요성을 깨닫고 이를 잘 실천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 이들 내부 구성원인 상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방법은 뭘까? 내부 구성원의 마음을 이해하고 진심 및 진정성이 기반이 된 소통과 커뮤니케이션을 하다보면 설득은 저절로 이뤄진다. 실제 DBR 케이스 스터디 결과 성공적 재래시장들은 시장의 조합, 상인회가 시장 상인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진정성을 전달하고 시장 시스템 개선과 협조에 대한 설득에 나선 바 있다. 신나는 조직문화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다양한 내부 동호회 활동은 일터에서 소소한 행복을 느끼게 해준다. 수원 못골시장에서는 상인들끼리 합창단, 댄스스포츠 동호회, 라디오방송국 등을 개설해 시장을 일할 맛 나는 공간으로 만들어갔다.
어려운 상황일수록 내부 단합이 중요하다. 강력한 내부 단합은 내부구성원도 마케팅의 대상으로 보고 적극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과정에서 생겨난다. 그리고 커뮤니케이션 주체의 희생을 기반으로 한 진심과 진정성의 전달은 내부 구성원의 강력한 단합을 이끌어낸다. 고객에게 다가가기에 앞서 모래알처럼 흐트러진 조직을 먼저 다잡고 한마음으로 똘똘 뭉치도록 구성원을 촉진하는 내부마케팅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주인의식, 공동체의식도 바로 이런 내부마케팅의 결과로 생겨나는 조직 발전의 훌륭한 원동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