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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Open Forum: 윤석철 한양대 석좌교수 초청 강연

Naked Strength: 아름다움과 인간미의 근원

윤석철 | 76호 (2011년 3월 Issue 1)

편집자주 DBR(동아비즈니스리뷰)은 창간 3주년을 맞아 윤석철 한양대 석좌교수를 초청해 오픈 포럼을 개최했습니다. 2011 217일 저녁 7시부터 8시 반까지 열린 이번 포럼에는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참가를 신청한 전국 각지의 DBR 애독자 200여 명이 참석했습니다. 이날 윤 교수의 <문학에서 경영을 배우다> 강의 내용을 요약합니다.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 연구원 이민재 (25·고려대 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저는 1950년대 후반 서울대학교 독문과에 입학했습니다. 당시 독일 경제는라인 강의 기적을 꽃피우고 있었습니다. 독어를 배워 우리나라 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게 제가 독문과를 선택한 이유였습니다. 비슷한 목적을 가지고 입학한 과 동기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요즘 젊은 학생들은 출세를 하고, 돈을 잘 벌기 위해 전공을 택합니다. 너무 거창하다고요? 하지만 그때는 정말 나라를 살리기 위해 대학 전공을 택하는 시대였습니다. 요즘은 누구나 자신의 이익만 생각합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듬해 과학 기술의 중요성을 깨닫고 저는 물리학과로 전과를 했습니다. 그 후에도 전공과 관계없이 문학 관련 수업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강연에서는 문학을 통해 우리 삶의 본질적 고민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합니다.

제가 소개할 시는 영국의 계관시인 앨프리드 테니슨(Alfred Tennyson) 경의 The Oak입니다. 계관이라는 단어는 고대 그리스에서 명예의 상징으로 머리에 월계관을 씌워주던 전통에서 유래했습니다. 17세기 이후 영국 왕실은 당대의 훌륭한 시인 한 사람을 선정해 그에게 연봉을 주며 궁정의 의식에 시를 지어 올리게 했습니다. 그 직책을 맡은 사람이 바로 계관시인입니다. 시 전문을 한 번 볼까요.

저는 중학교 시절인 1955년에 영어 교과서에서 이 시를 처음 접했습니다. 그때는 학교에서 배우는 시뿐만 아니라 교과서를 외우게 하는 게 일반적이었습니다. 이 시를 외우는데 딱 두 단어에서 막혔습니다. 봄과 여름 부분에서는 별 문제가 없었는데 가을에서 sober라는 단어, 겨울에서 naked strength라는 단어가 잘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영어사전은 굉장히 얇았습니다. 그 사전에는 sober의 뜻이취기에서 깨어난이라는 의미 밖에 나와 있지 않았습니다. 선생님께 여쭈었더니큰 사전이 아직 안 나왔으니 나중에 사전이 나오면 찾아보거라고 하시더군요.

저는 아직까지도 이 시를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처음 이 시를 접한 이후 50년이 넘도록 이 시를 탐구해 오고 있습니다. 저는 이 시를 통해 인생의 지혜를 배웠고, 저의 전공 분야인 경영학의 진리도 터득했습니다. 그럼 제가 어린 시절에 이해하지 못했던, 지금까지도 탐구하고 있는 테니슨의 시어 sober naked strength에 대해 이야기해보죠.

High Risk, High Return의 유혹에서 깨어나라

2008
년 전 세계를 강타한 경제 위기는 처음에 금융위기로 시작됐습니다. 이 금융위기는 고위험, 고수익이라는 경제적 탐욕에 빠져 제 정신을 상실한, sober하지 못한 금융업자 때문에 기인했다는 게 경제, 경영 분야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입니다. 한마디로 고위험 고수익(High Risk, High Return)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셈이죠.

인간은 왜 고위험 고수익의 유혹에 약할까요. 이를 알려면 우선머피의 법칙을 이해해야 합니다. ‘머피의 법칙이란 엔지니어들이 발견한 경험 법칙으로잘못될 수 있는 일은 결국 잘못되고 만다(If anything can go wrong, it will)’는 평범한 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50km의 해저터널 속에서 탈선사고가 날 확률은 100만분의 1이라고 가정합시다. 이 확률은 아주 작지만 열차가 하루에 20번 왕복한다면, 하루에 사고가 날 확률은 100만분의 40(20×2)으로 커집니다. 10년 동안에 이 터널에서 탈선 사고가 날 확률은 100만분의 146000(40×365×10)까지 상승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머피의 법칙이 말하는 잘못될 확률은 계속 커져서 100%에 접근하죠. 결국 잘못될 가능성이 있는 일은 장기적으로 반드시 일어납니다. 저는 이 간단한 진리를 이해하는 데 오랜 시간을 소비했습니다.

칼 포퍼(Karl Popper)라는 위대한 철학자가 있습니다. 그는최선의 선택보다 최악을 회피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가르침에 따라 영국과 프랑스 정부는 두 나라를 이어주는 해저 터널을 건설할 때 경제적 최선책을 포기했습니다. 대신 최악의 상황, 즉 열차 탈선으로 인한 대형 참사를 방지하기 위해 많은 비용을 감수하고 두 개의 터널을 뚫었습니다.

미 항공우주국 나사(NASA)에서도 처음에는 대형 사고가 많이 있었습니다. 이후 최악의 상황을 피하는 일을 선택하면서 사고 횟수를 급격히 줄여나갔습니다. 나사는 디스커버리 호나 아틀란티스 호 등의 우주 왕복선이 임무를 마치고 플로리다 기지로 귀환할 때, 기상 조건이 썩 만족스럽지 못하면 아예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에드워드 공군 기지에 착륙시켰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1 5000만 달러의 추가 비용이 필요했지만 개의치 않았습니다. 확률은 낮지만 만일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면 1 5000만 달러보다 몇 십 배의 비용이 들 테니까요.

고위험 고수익 전략은 얼핏 보면 솔깃해 보여도 머피의 법칙에 따라 반드시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를 일으킨 주체도 이러한 유혹에 취해 깨어나지 못한 금융회사들입니다. 반드시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합니다.

근거 없는 믿음과 행운의 기대에서 깨어나라

경영자들이 sober해야 할 요인 중에 대마불사(大馬不死)라는 근거 없는 믿음도 있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 전 많은 사람들은 대마불사의 논리를 믿어 왔습니다. 이로 인해 많은 기업들이 부채를 내가면서 몸집 부풀리기에 급급한 외형적인 성장만을 추구했습니다. 은행 역시 이에 가세해 대기업을 위한 대규모 대출을 계속했습니다. 그 결과 IMF 관리체제라는 국가 초유의 경제 위기를 맞았습니다. 당시 우리나라 30대 기업 중 16개가 부도를 냈고, 수많은 금융기관이 파산하거나 정부의 공적자금에 의존하는 신세로 전락했습니다. 모두 대마불사라는 근거 없는 믿음에서 sober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기업이라도 우월감과 안주 의식에서 깨어나지 못하면 도태되고 맙니다.

행운에 대한 기대도 sober해야 할 대상입니다. 의미 있는 성공은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하지만 행운은 장기적으로 계속 나타나지 않습니다. 역사적으로 큰 업적을 이룩한 분들은 일찍이 행운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고, 오랫동안 의미 있는 성공을 위해 열심히 기다리고 노력한 사람들입니다.

일본 전국시대를 끝내고 에도 막부를 세운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는 행운에 대한 기대로부터 sober한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16세기 후반, 지방 군소 영주였던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는 당시 큰 세력을 가졌던 다른 영주 이마가와 요시모토(今川義元)와의 결전에서 승리한 후 전국적인 강자로 발돋움했습니다. 이때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오다 노부나가의 편에 서서 승리에 일익을 담당했습니다.

당시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25000명의 대군을 이끌고 교토 입성을 시도했습니다. 오다 노부나가가 동원 할 수 있는 병력은 이마가와 측의 10분에 1에 불과했습니다. 때문에 오다 노부나가는 항복과 농성 대신 기습 공격을 감행합니다. 무모한 작전처럼 보였지만 오다 노부나가의 결사대는 한여름 더위를 피해 휴식 중이던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본진을 급습, 그의 목을 치는 데 성공합니다. 일본의 역사를 바꾼 오케하자마(桶狹間) 전투입니다.

이를 통해 오다 노부나가가 금방이라도 천하를 통일할 듯 보였지만 그는 곧 심복에게 살해 당합니다. 진짜 천하를 통일한 사람은 아시다시피 도쿠가와 이에야스입니다. 오케하자마 전투 후 도쿠가와가 욕심을 냈더라면 오다 노부나가가 그를 제거했을지 모릅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오케하자마 전투의 승패가 결정되자마자행운에 대한 기대를 포기한다고 밝혔습니다. 행운에 의지하지 않겠다는 그의 마음가짐은 자기 계발의 강도를 높였습니다. 꾸준히 때를 기다린 그는 270년이나 지속된 에도 막부를 창건하는 데 성공합니다.

인생의 경영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돌아온 1973년 당시 서울대 상과대학에서 미국 박사 학위를 가진 교수는 저를 포함해 단 2명뿐이었습니다. 당시 제가 학문의 정상에 서 있다고 자만하고 그 자만심에서 sober하지 못했다면 지금 이 자리에 오르지 못했을 것입니다.

경쟁력의 원천, naked strength

테니슨은 Oak가 잎과 열매 등 여름 동안입고 있던 옷을 모두 벗은 후에도벌거벗은 힘을 지니고 있다고 예찬합니다. 중학교 시절에는 naked strength를 번역은 할 수 있어도, 그 구체적인 의미를 이해하지는 못했습니다. naked strength는 총, , 돈과 같은 물질의 힘을 다 벗은 후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힘, 즉 아무 것이 없어도 사람의 마음을 끄는 아름다움과 인간미의 근원입니다.

한국과 프랑스의 대통령을 비교하면 이 단어의 의미를 금방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가 대학생이 됐을 때 4.19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 후 하와이로 망명했고, 한국 땅에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지만대통령 옷을 벗자마자 자신의 나라에서 살 수 없는 신세가 됐습니다.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대통령이라는만 벗으면 감옥 행입니다. 감옥을 가지 않아도 국민들로부터 의혹, 원성, 비난의 대상이 됩니다. 즉 그분들의 naked strength는 제로(0)가 아니라 마이너스(-)입니다.

샤를 드골(Charles de Gaulle) 전 프랑스 대통령은 어떨까요. 그는 이웃 나라 독일보다 영토도 크고, 인구도 많은 프랑스가 전쟁만 하면 독일에 번번이 지는 걸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는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위대한 프랑스건설을 위한 미래지향적 정책을 실시하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러나 프랑스 국민은 불확실한 미래를 위한 오늘의 희생을 거부했습니다. 이런 갈등 때문에 드골은 하야하고 맙니다. 이후 알제리 독립 사태가 터지자 프랑스 국민들은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드골을 다시 원했습니다. 드골은 대통령에 복귀했지만 여전히 현재만 생각하고 희생의 가치를 받아들이지 않는 프랑스 국민과 갈등을 빚었습니다. 드골은 또 하야했습니다.

드골은 유언을 통해 국장을 거부했고, 묘비에전직 대통령이라는 구절도 넣지 못하게 했습니다. 대통령 연금도 거부했습니다. 부창부수라고 드골의 아내 이본 드골(Yvonne de Gaulle) 역시 남편의 유언에 따라 대통령 배우자에게 나오는 연금을 거부했습니다. 이런 행동으로 드골 사후 그에 대한 인기는 치솟았습니다. 이본 여사가 죽자 프랑스 국민들은 드골에게프랑스 대통령의 문구를 새겨 넣은 묘비를 헌정했습니다. 오늘날에도 드골은 프랑스 국민으로부터 가장 존경 받는 지도자로 꼽힙니다. 대통령이라는 옷을 벗은 후에 진정한 naked strength를 지녔음을 보여준 인물이 바로 드골입니다.

naked strength의 본질은 자기 희생

인간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힘이 아름다움입니다. naked strength는 물질적인 것을 다 벗은 후에도 남아 있는 힘, 바로 이 아름다움()의 힘을 의미합니다. 서양의 미는 비례나 황금 분할 등 외적인 대상으로만 대변되지만 동양의 미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의미합니다. ()라는 한자는 양()과 대()라는 글자의 합입니다. 양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거룩한 제사에 바치는 제물을 뜻합니다. 제물은 바로 자기 희생을 의미합니다. 자기 희생이 클수록 진정한 미를 지닐 수 있다는 뜻입니다.

자기희생적 삶의 자세를 인격, 도덕성, 가치관 등으로 구현하고, 내면의 매력을 갖춘 사람만이 naked strength를 지닐 수 있습니다. 동창회 모임에 나가면 자기 희생은 조금도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있죠. 우리는 그들에게서 인간적 매력을 느끼지 못합니다. 바로 naked strength를 가지지 않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예술품과 연설도 naked strength를 가질 수 있습니다. 1863년 링컨 미국 대통령이 게티스버그에서 한 연설을 기억하시죠. 당시 유럽에서는 아직도 왕이 절대적 권력을 휘둘렀습니다. 그런 시절에 링컨은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부(the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and for the people)’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 말이 지닌 naked strength가 워낙 컸기에 오늘날에도 전 세계 교과서에 실리는 겁니다. 이탈리아의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Giuseppe Verdi)는 수에즈 운하의 개통을 축하하기 위해 오페라를 만들라는 주문을 받았습니다. 바로 아이다(Aida)입니다. 이 오페라는 경축 행사를 위해 급하게 만들어졌지만 음악이 지닌 본연의 힘이 컸기에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경영에서의 naked strength

naked strength는 기업 경영의 기본 원칙이기도 합니다. 고객이 100원의 가치(v)를 느끼는 제품을 100원 가격(p)에 판매한다면 잉여 가치(v-p) 0입니다. 하지만 고객의 가치보다 낮은 가격에 제품을 판매한다면 잉여 가치(v-p)는 플러스(+)가 됩니다. 이 잉여 가치가 바로 그 제품만이 지닌 경쟁력, naked strength입니다. 기업들은 자사의 제품이 이 naked strength를 지니고 있는지 진지하게 탐구해야 합니다.

한국 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S라면을 봅시다. S라면을 제조하는 회사의 시장조사팀은 종종 남대문 시장 같은 곳에, 특히 점심 시간에 맞춰 조사를 나갑니다. 가보면 점심으로 라면을 먹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조사원들은 그 소비자들에게 만약 현재 700원인 해당 라면의 가격이 1000원으로 올라도 먹겠느냐고 묻습니다.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곰곰이 생각해 보고는 그래도 먹겠다고 답합니다.

소비자들이 S라면을 먹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충분히 한 끼 식사로 대용할 수 있습니다. 둘째, 별다른 반찬이 필요 없고, 설거지를 할 필요도 없으니 편의성이 뛰어납니다. 셋째, 얼큰하고 시원한 국물 맛이 일품입니다. 소비자가 1000원으로 이 세 가지 가치를 느낄 수 있는 다른 상품을 찾을 수 없다면 소비자가 S라면에서 느끼는 최소한의 가치는 1000원 이상입니다. S라면의 가격이 700원이므로 소비자는 해당 제품을 소비하면서 300원의 잉여 가치를 얻습니다.

설사 가격이 1000원으로 오른다고 해도 이 3가지 요건을 만족시킬 수 있는 제품은 많지 않습니다. 잘 알려진 대로 라면의 원조는 중국입니다. 하지만 김치까지 중국에서 수입해먹는 마당에 중국산 라면을 먹는 한국 소비자는 거의 없습니다. S라면의 경쟁력이 그만큼 뛰어나고, 소비자들에게 주는 가치가 높기 때문입니다. 바로 naked strength의 힘입니다.

직장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100만 원의 일을 했기에 100만 원의 월급을 받았다고 떳떳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해당 직장에서 끝까지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100만 원을 받았다고 해서, 100만 원만큼의 일만 하면 곧 도태 당하고 맙니다. 자신이 받은 월급보다 더 많은 가치를 회사에 돌려줄 때 그 직장인은 naked strength를 보유한 사람이 됩니다. 그래야 끝까지 살아 남을 수 있습니다. 이혼도 이 생존부등식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서로가 상대방에게 느끼는 만족도가 자신이 상대방에게 들인 노력보다 적다고 느껴지면 불화가 생기고, 결국 이혼으로 이어집니다.

잉여 가치(v-p)의 개념은 노자의 영필일야(盈必鎰也) 사상에서도 배울 수 있습니다. 영필일야는그릇이 가득 차면 반드시 넘쳐 더 이상 그릇 노릇을 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더 채울 수 있지만 더 채우지 않고 남겨놓은 부분()의 중요성을 강조한 표현입니다. 즉 자기가 받을 수 있는 급료를 회사가 제공하는 가치와 반드시 같은 수준으로 올리려고 욕심내지 않을 때, 제품 가격을 소비자가 느끼는 가치 이상으로 올리려 하지 않을 때 naked strength가 발생합니다. 이는 개개인 혹은 기업의 경쟁력으로 이어집니다.

인간이 젊은 시절에 향유하는 육체적 아름다움은 세월이 흐르면서 벗어야 하는입니다. 서슬 퍼런 권세 또한 나이 들면서 벗어야 하는입니다. 결국 모든 인간은 젊은 시절에는 헛된 환상이나 욕심, 유혹 등에서 sober해야 하고, 나이가 들수록 naked strength를 쌓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게 바로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입니다. 감사합니다.

윤석철 교수는 서울대 독문과에 입학했다가 이듬해 물리학과로 전과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전기공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은 후 같은 대학에서 다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처럼 다양한 학문을 전공하며 일찌감치 통섭의 중요성을 깨달은 그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두루 섭렵한 경영 대가로 인정받고 있다. 1973년부터 2005년까지 서울대 교수로 재직한 후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 한양대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경영학적 사고의 틀>(1981), <프린시피아 매네지멘타>(1991), <경영학의 진리체계>(2001), <삶의 정도>(2011) 10년 주기로 저서를 출간하고 있다.

 

  • 윤석철 | - (현) 한양대 경영대학 석좌교수
    - <경영학적 사고의 틀>(1981), <프린시피아 매네지멘타>(1991),<경영학의 진리체계>(2001), <삶의 정도>(2011) 저자
    - 2005년 서울대 경영대학 정년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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