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ts of Prosperity

기업 활동 보호, 로마의 흥망 가르다

72호 (2011년 1월 Issue 1)

 

번영의 근원(Roots of Prosperity)
번영을 구가하는 나라들의 경제 발전 역사를 들여다보면 남들과 똑같은 방법으로 현재 위치에 오른 나라는 단 하나도 없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일반적인 패턴은 찾아볼 수 있다. 바로 한 나라가 빈곤에서 벗어나는 시기는 비즈니스 영역이 번창하면서 기존의 경제 시스템을 대체하는 때라는 점이다.
 
이러한 변화에 꼭 필요한 요소들도 널리 알려져 있다. 2004년 이후 세계은행은 해마다 각국을 평가해 기업환경평가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다(최신 호는 <2010기업환경평가 : 역경의 시기에 이룬 개혁>, 세계은행과 국제금융공사 공저, 팔그레이브 맥밀란 펴냄, 2009). 세계은행의 보고서는 개업, 건축 허가권 등을 포함한 면허 취득, 근로자 채용, 재산 등록, 신용 적립, 투자자 보호, 납세, 해외 진출, 계약 이행, 폐업에 이르는 10단계의 기업 주기에 따라 각국 정부가 어떠한 정책과 절차를 제시하고 있는지를 평가한다.
 
기업 친화적인 정책을 펴고 있는 국가의 정부는 기업의 장애물을 없애주고, 기업이 치러야 할 시간(대기시간)과 비용(수수료나 뇌물)을 줄여주려 애쓴다. 친(親)기업형 국가일수록 발전 전망이 밝은 건 물론이다.
 
물론 이들 항목이 한 국가의 경제 성장 가능성을 과학적으로 측정하는 완벽한 기준일 수는 없다. 몇몇 예외 사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은행의 기업환경평가 보고서는 한 국가의 비즈니스가 성장할지 아닐지를 판단하게 해주는 상당히 신뢰할 만한 자료다. 2009년에는 조사 대상 181개국 가운데 싱가포르가 1위에 올랐다. 그 뒤를 뉴질랜드, 미국, 홍콩(중국), 덴마크가 따르고 있다. 반대로 콩고민주공화국이 최하위를 기록했고, 중앙아프리카공화국, 기니비사우, 콩고공화국, 부룬디 등이 최하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최근 경제 불안으로 홍역을 겪고 있는 그리스는 109위에 올라 있다.
 
기업 친화적인 환경의 장점이 그렇게 분명하다면 왜 각국이 앞다퉈 이를 위해 노력하지 않는 것일까? 이 논리 대로라면 각국 정부는 일관성을 갖고 규제 완화를 위해 최대한으로 노력해야 하는 게 아닐까? 이 해답이야말로 오늘날 가난한 나라들이 당면한 내부 문제를 바라보는 비판적인 시각을 제시해준다고 할 수 있다. 전제적 정부나 막강한 과두 재벌 체제는 기업 친화적인 정책을 채택하지 못하게 저지한다. 아직도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한 국가들에서는 특히 이러한 반(反) 기업 체제가 당당히 자리 잡고 있다. 역사가 주는 교훈을 통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를 알아보자.
 
친구, 로마인, 상인
고고학자들은 기원전 2500년 경, 메소포타미아(현재 이라크) 지역에서 민간 기업이 존재했다는 기록 문서를 발굴한 바 있다. 사채업, 세금 지불을 위한 정부의 선금, 무역 상인의 자금 동원 등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페니키아, 그리스, 페르시아, 로마에서도 이러한 경제 활동으로 수천 개의 무역 도시와 타운이 생겨났다. 고고학자들은 이 지역에서 도기, 금속 기구, 모자이크, 조각물, 각종 상점에서 판매하는 물품의 제작소를 다량으로 발굴했다. 이는 모두 과거의 번영한 경제상을 엿볼 수 있는 증거품들이다. 이는 당시 충분한 수입과 높은 생활 수준을 구가했던 시민들이 많았음을 보여준다.
 
이 상업 중심지에 거주한 인구는 세계 전체로 보면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다른 지역에서 살았던 고대인의 생활은 힘겨웠고, 평균 수명도 짧았다. 문맹률이 높았고, 많은 사람들이 질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전쟁과 약탈이 상업을 파괴시키는 일이 수세기에 걸쳐 반복됐다. 기원 후 12세기에 이르러서야, 로마 제국이 강성해지면서 평화가 유지됐다. 이후 더 많은 인구가 번영의 과실을 맛볼 수 있었다. 특히 농지를 배후로 갖고 있던 도시 수천 곳이 급성장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로마의 번영은 오래가지 못했다. 3세기가 시작할 무렵, 전쟁이 번영하는 로마 비즈니스를 와해시키기 시작했다. 로마 제국은 5세기에 멸망했다.
 
로마 제국으로 인한 평화가 이어졌던 200년 동안에는 상당히 높은 수준의 친비즈니스적 사회 환경이 유지됐다. 로마의 사회 제도가 얼마나 비즈니스 활동에 적합했는지, 오늘날과 비교해보자.
 
우선 로마에서는 창업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남자는 물론이고 여자, 비(非)로마인, 심지어 노예들조차도 일체의 제약 없이 자기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이는 현대의 창업 환경과 비교해봐도 놀라운 수준이다. 물론 실질적으로는 로마의 자유 시민이 창업하기에 가장 유리한 위치에 서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인허가 제도 또한 비교적 친기업적이었다. 로마인들은 특정 면허 없이 물품을 제조하고, 판매하고 구매할 수 있었다. 거의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정부의 독점 사업이었다. 로마 제국은 소금, 금속, 대리석 광산을 운영했다. 곡물의 구매 및 판매, 군복과 무기 등 각종 군수품 생산에는 국가가 직접 관여했다.

근로자를 찾는 일도 어렵지 않았다. 로마 제국 이전부터 오랫동안 존재해온 노예 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기업은 임금을 지불해야 하는 근로자를 고용하기보다 로마 군대의 점령지에서 쉴 새 없이 흘러 들어오는 노예를 사들이는 쪽을 선택했다. 그러나 기업이 성장하면서는 이들 노예에 대한 의존도가 점차 낮아지고, 근로자를 고용하는 비중이 증가 했다. 임금을 받는 근로자를 채용하고 해고하는 일에는 전혀 제약이 없었다. 마찬가지로 근로자들이 직업을 구하거나 그만두는 일도 자유로웠다. 오늘날 전문 경영인에 해당하는 직업도 등장했다. 로마 시대의 ‘인스티토레(institore)’는 오너를 대신해 기업을 경영하는 인물을 일컫는다. 사유 재산권도 잘 보장됐다. 로마의 법 제도는 상당히 발전되어 있어서 종류를 불문하고 개인의 재산 보유 및 매각이 성문법에 의거, 허용됐다. 노예제의 부도덕성을 예외로 한다면, 이러한 법의 보호는 기업하기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했다.
 
로마의 법 제도는 신용 제도를 가능하게 했다. 일종의 계약 형태로 이자를 낀 사채업도 존재했다. 하지만 로마 사채업은 그다지 활발하지 못했다. 대부분 봉건 영주 및 정부 관료였던 고대 로마의 지배층이 토지, 올리브 농장, 가축, 노예, 세금 등을 통해 부를 일구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비즈니스를 천한 대상으로 여겼고, 자신의 부를 거의 은행에다 투자하지 않았다. 자금을 빌려올 대형 은행이 없었기 때문에, 정부는 세금을 올려 필요한 자금을 마련했다. 수백 년 동안 이어지던 평화가 사라지고 길고 긴 전쟁이 이어지면서, 로마 정부는 대규모 군대를 유지하기 위해 세금을 인상했다. 이는 비즈니스 발전을 가로막았고, 결과적으로는 로마 제국 멸망의 중요한 이유로 작용했다.
 
로마에서 일반 비즈니스 분야에서 투자자들이 자금을 모아 손실에 대비할 수 있는 기업 형태를 찾아볼 수는 없다. 하지만 이와 유사하게 정부를 대신해 세금을 징수하는 ‘소사이어티’가 존재했다. 소사이어티 덕분에 예측 가능하고 안정적인 투자의 문이 열렸다. 로마인들은 이 소사이어티의 주식을 거래할 수 있었으며, 법은 이러한 거래를 일종의 계약으로 간주하고 보호했다.
 
납세 의무 역시 전쟁 기간을 제외하고는 특별히 큰 부담으로 작용하지는 않았다. 기업가는 소유하고 있는 재산과 부에 대해 연간 13% 세금을 납부하면 그만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반면 이와 대조적으로 오늘날 콩고공화국 기업가는 연간 89번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 이를 위한 서류 준비 및 접수 대기에만 106일이 필요하다. 이들이 내야 하는 금액 또한 수익의 65.4%에 해당할 정도다.
 
오늘날 영국에서 시리아에 이르는 방대한 영토를 가진 로마 제국 내에서는 국경이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내야 할 관세도 없었다. 수출 및 수입 업자는 약 5%의 관세를 물었다. 이는 과거와 오늘날을 막론하고 그 어떤 기준과 비교해도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관세 납부에 걸리는 시간도 길어야 몇 시간에 불과했다. 반면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에서는 오늘날에도 물품이 국경을 한 번 넘는 데에만 35일이 걸린다. 준비 서류와 수수료 납부에 걸리는 시간이 길기 때문이다.
 
로마 법 제도의 장점은 계약 제도에 있었다. 정식 계약서 없이 구두로 이뤄진 계약이라 해도 법정에서 선서할 수 있는 증인만 있다면 이를 성사시키고 이행하는 데 어려움이 전혀 없었다. 사법 제도의 부패가 끊이지 않았지만, 로마 제국의 평화가 지속되던 200년 동안에는 로마의 사법 제도가 일상 비즈니스를 착취하기보다 그 발전에 더 기여했다.
 
다만 불행히도 폐업을 관장하는 법 제도는 그다지 온건하지 않았다. 도산한 기업은 마치 계약법에서 채무불이행을 한 것처럼 다루어졌다. 법정에서는 채권자들이 채무자들의 재산을 압류하고 이들이 돈을 갚지 않았을 때에는 노예로 전락시켰다. 이러한 법 규정은 반 기업적 조항으로 인식될 만하다. 기업가들이 실패를 만회하고 재기를 위해 노력할 기회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기준에 비춰보면, 로마 제국의 기업 관련 제도는 세계은행의 기업환경평가 보고서 항목에 대입한다 해도 상당히 높은 점수를 얻을 가능성이 높다. 노예 제도의 존재, 진짜 기업의 부재, 재산 압류 제도 등은 점수 하락 요인이지만, 법 제도 및 정부 시스템은 로마 제국 전역에 걸쳐 비즈니스가 쉽게 확산되는 데 기여했다. 도기 및 유리 제작업, 곡물 및 와인업, 양복점, 도살업, 목공 및 금속 가공업, 빵집, 압축 가공유업, 린넨과 양털 편물업, 가죽과 생선 판매업, 램프 제작업, 보석업, 상아 및 흑단 무역업 등 여러 분야에서 비즈니스가 번성하면서 수천 개의 무역 도시와 주거지가 들어섰다.
 
로마군이 평화를 유지시키는 곳이라면 어디나 예외가 없었다. 특히 로마의 각 속지 내 혹은 속지간 무역 규모는 제국의 확대와 더불어 날로 커져갔다. 로마 정부는 필요한 곳에 빠짐없이 도로와 항만을 건설했다. 애초에는 정복전에 나선 로마군을 위한 일이었지만 번창하는 로마 상업을 위한 일이기도 했다.
봉건적 반동
5세기 이후 로마 제국은 밀려드는 이민족의 침략에 결국 무릎을 꿇었다. 로마의 비즈니스 도시들도 그 운명을 달리했다. 이후에 서방에서는 비잔틴, 신성 로마 제국 등이 일어났고 동방에서는 중국의 각 왕조가 흥망을 거듭했다. 이 시대의 국가들은 세금이나 전리품으로 운영되는 군대를 통해 철권 통치를 하는 전제 왕조이거나, 지역의 맹주가 군대와 세금을 나눠 부담하는 연방 형태의 봉건 국가였다. 이러한 환경하에서 당시 비즈니스는 큰 타격을 입었다.
 
끊임없는 전쟁도 일부 이유였지만, 샤를마뉴 대제에 의해 발전된 서유럽의 봉건 왕조, 특히 신성 로마 제국의 제도는 기업환경평가 보고서의 기준에 의하면, 근본적으로 반기업적 시스템이었다. 상품과 자금은 농노, 지주, 영주를 거쳐 국왕에게 흘러 들어가는 피라미드형 단계를 구성했다. 각 단계는 가톨릭 교회가 관할했다. 교회는 일정한 자기 몫을 떼어갔고, 비즈니스 활동을 억압하는 정책을 강요하면서 비즈니스의 발전을 가로막았다. 교회의 감독이야말로 사실상 제국을 ‘신성’하게 만드는 가장 큰 요소였다.
 
서유럽의 봉건 왕조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반기업 정책은 사채업에 대한 종교적 금지였다. 이로 인해 가톨릭 신도들은 결과적으로는 어떠한 비즈니스에도 종사할 수 없었다. 그 결과 전체 비즈니스 규모가 줄었다. 이에 따라 당시 비즈니스는 뼛속 깊숙이부터 곪기 시작했다. 유사하게 당시의 중국, 이집트, 오스만 제국의 전제 왕권도 용병을 동원한 군정을 통해 국가 경제권을 엄격하게 통제했다. 중국은 7세기 당나라 시절에는 친기업적 정책을 폈다. 아랍, 비잔틴, 유럽으로 이어진 실크로드를 활용해 상업을 꽃피운 게 그 예다. 그러나 중국은 907년 당 왕조의 패망과 함께 다시 관료주의적 통치하에 들어갔다.
 
저명한 경제사학자인 앵거스 매디슨은 저서 <장기적으로 본 중국의 경제 활동(OECD 개발센터. 1998)>을 통해 당 제국 멸망 이후 관료제로의 회귀가 가져온 변화를 이렇게 지적했다. “대규모 토목 공사는 국가 또는 공인 독점 사업체의 영역으로 좁혀졌다. 중국 정부는 중국의 발전된 조선술과 항해술에 기반한 세계 무역도 별다른 이유없이 금지했다. 인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유럽의 봉건적 관료주의 역시 중국과 인도만큼이나 자국의 비즈니스 부문을 억압하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그러나 이들의 노력은 실패로 돌아갔다. 덕분에 유럽에서는 비즈니스 부문이 로마 패망 이후 수백 년 만에 번성하기 시작했다.”
 
당시 중국과 인도와 달리 동남아시아에서는 비즈니스 부문이 번영을 구가했다. 비옥한 계곡, 우수한 항구 및 무역로가 있어서 중국 및 인도 제국의 직접적인 통치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지역에서 발전하게 된 왕국은 차츰 중국과 인도 제국의 통치 방식을 따르기 시작했다. 반기업적 정책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런 예는 오늘날의 빈곤 국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부족 및 봉건 체제를 막론하고 정부 관료가 많을수록 국민들에게도 좋다는 식의 사고 방식이 은연중 만연해 있다. 모잠비크에서는 창업을 하기 위해 무려 12단계를 밟아야 한다. 12곳의 정부 기관을 찾아가서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는 뜻은 모잠비크 정부의 일자리가 12개 늘어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정부 관료들은 적은 월급을 받으면서 제출된 서류에 승인 도장을 찍어 주는 대가로 뇌물을 받는다. 이렇게 12개 도장을 모두 받은 기업가만이 어느 날 갑자기 경찰의 방문을 받을 염려없이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
 
사회주의 국가나 전제주의의 잔재가 남아 있는 국가에서도 정부와 부패가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2006년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이 당선된 볼리비아는 이후 사회주의를 도입했다. 모랄레스 대통령은 천연가스, 광물 가공업 등 주요 산업을 국유화했다. 덕분에 정부 내 일자리가 늘었으며, 누가 되었든 이 자리에 앉는 사람들의 손에는 훨씬 많은 돈이 흘러 들어왔다.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적신호였고, 결과적으로는 국가의 번영을 좀먹는 일이었다. 미얀마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군부의 폭압적 철권 통치는 비즈니스의 발전을 가로막았다. 군부는 자신들이 문호를 개방하는 순간 중국 무역상들이 들이닥칠 거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그때 힘의 균형이 어떻게 변할지 미얀마 군부는 자신할 수 없었던 셈이다.
 
비즈니스 계층의 번영은 전제주의에 대한 가장 강력한 견제 수단이다. 역사는 이 명제가 옳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늘 그렇지는 않았지만, 이들의 존재는 민주주의를 의미하기도 했다. 1890년 당시 영국 내각은 귀족들의 상원이 지배하는 곳이었고, 빅토리아 여왕은 정부의 공식 수장이었다. 그러나 비즈니스 계층은 이에 맞서 공권력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자유롭게 사업을 운영해갈 수 있는 권리를 획득했다. 중국이 장래에 민주주의를 채택할지 아닐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흥 비즈니스 계층이야말로 중국 공산당과 맞설 수 있는 유일한 견제 세력이라는 점은 이미 중국에서 확인할 수 있다.
 
비즈니스 계층을 육성해 국가 빈곤 해결
세계의 최빈국들은 어떻게 비즈니스 계층을 육성해서 빈곤에서 탈피할 수 있을까? 유럽 역사에서 그 답을 찾아볼 수 있다. 유럽 봉건 관료제는 대체로 비즈니스 지역을 틀 안에 가두려고 매우 애썼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가장 큰 이유는 산과 강이 복잡하게 놓인 영토 전체를 중앙에서 통제하는 일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유럽의 상업 시스템은 1100년대 베니스에서 시작됐다. 베니스는 남쪽으로는 아랍 제국, 동쪽으로는 비잔틴 제국, 북쪽으로는 신성 로마 제국과 맞닿아 있었다. 베니스는 이 세 나라와 모두 교역했다. 도시 국가인 베니스는 과거 로마 제국의 제도를 발전적으로 재구성한 상업 시스템을 채택했다. 초기에는 부계 중심의 가족 비즈니스 형태로 아버지가 죽으면 형제들이 함께 가업을 이어갔다. 이후 1100년대에는 회사(company) 형태로 발전, 가족이 아닌 사람도 사업에 참여할 수 있었다.
 
이때 회사는 계약에 의해 정해진 기간 동안 정해진 활동, 예를 들어 무역선 한 척을 출항하고 각자 수익을 배분하는 형태였다. 참가자들은 다음 번 출항 때는 새로운 계약을 맺고 필요하면 다른 투자자를 모집하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의 의사 결정권은 유지했고, 외부 투자자에게는 자금 투자만을 허락했다. 이러한 외부 투자 형태는 근본적으로 이자 수익을 목적으로 한 것이다. 이는 오늘날의 채권과 매우 유사하다.
베니스의 새로운 시스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회사가 지배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회사 주인들은 의회 및 원로원과 총독을 선출했다. 왕권을 세습하는 왕가도 없었고, 교회의 역할도 없었다. 기독교인이 이자를 받는 일도 가능했다. 전당포 업자, 예금은행, 상업은행 등이 개인과 회사에 크고 작은 돈을 빌려줬다. 세율은 낮았지만 거래량이 컸으므로 정부가 거둘 수 있는 세수는 많았다. 군대를 유지하며 해적이나 외부 강국으로부터 도시 국가를 보호하기에 충분했다.
 
베니스의 시스템이 비옥한 포 계곡을 따라 이탈리아 북부로 점점 퍼지면서 오늘날과 비슷한 비즈니스 지역이 형성됐다.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부를 거머쥐었다. 동쪽 베니스에서 서쪽 토리노까지 이탈리아 각 도시는 수공업과 상업의 중심지로 변모했다. 주변의 농촌 지역에서는 봉건 영주와 자유민들이 곡물, 가축, 토지를 팔아 도시의 은행과 공장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15세기 말에는 베니스의 시스템이 북부 이탈리아 전체에 퍼졌다. 물론 당시 베니스의 시스템은 지금의 시스템과 차이가 있다. 노예 제도가 있었고, 여성은 사업에 참여할 수 없었으며, 종교적 차별도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문제들은 이후 수백 년 동안 개선되지 않았다. 하지만 역사 이래 최초로 개별 도시와 그 주변 수준이 아닌 광범위한 영역의 비즈니스 지역이 형성된 점은 큰 의미를 지닌다.
 
마르코 폴로의 예에서 보듯 북부 이탈리아의 신흥 상인들은 실크로드를 따라 중국과 교역했다. 서쪽으로는 그린란드와 북해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유럽 전역을 누비고 다녔다. 또 가는 곳마다 자신의 비즈니스 양식을 전파했다. 북부 이탈리아는 1500년경 봉건 왕조인 스페인과 프랑스에 복속됐다. 하지만 베니스의 시스템은 이미 전 유럽으로 전파된 뒤였다.
 
베니스 이후에는 라인 강이 유럽 교역의 중심으로 등장했다. 라인 강은 유럽의 내륙 지방을 당시 최대의 상업 도시인 암스테르담과 연결했다. 당시 네덜란드 전체가 어떤 식으로든 비즈니스에 종사했다. 농촌 사람들은 판매를 위한 작물을 재배했고, 도시 사람들은 수공업이나 상업에 종사하며 라인 강뿐 아니라 네덜란드 배가 다니는 곳이면 어디든 물건을 팔았다. 아우데바터라는 지역을 보자. 주변은 삼(大麻) 재배 특화 지역이었고, 도시 지역에서는 이 삼으로 로프를 만들었다. 배 1척당 10마일의 로프가 필요했으므로 매우 큰 규모의 비즈니스였다. 뿐만 아니라 삼으로 옷, 페인트, 기름, 비누까지도 생산했다. 따라서 삼(大麻) 관련 산업에만 수천 명이 일했다.
 
이 외에도 레이덴은 모직 원단, 델프트는 도자기, 가우다와 에담 지역에서는 치즈를 만들었다. 각 지역에서 특화된 제품을 생산하기 위한 자금 조달, 수송, 판매, 수출을 해야 했으므로 더 많은 일자리가 생겼다. 뿐만 아니라 향신료, 차, 커피, 아시아 면화 등 수입에서도 일자리가 생겼다. 모든 네덜란드 사람들이 비즈니스에 종사했으며, 봉건제 따위를 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1602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최초로 주식 공모를 통해 자금을 조달했다. 7년 후 회사는 투자 주식의 환금을 거부했다. 주주가 환금을 원하면 주식을 남에게 팔아야 했다. 이를 통해 1609년에 현대적 의미의 기업이 처음으로 탄생했다. 주식을 사고 팔아야 했으므로 최초의 증권거래소 역시 암스테르담에 설립됐다.
 
네덜란드의 시스템은 재빨리 영국으로 전파됐다. 당시 런던은 작은 규모의 암스테르담이었다. 하지만 영국의 증권거래소가 제대로 된 모습을 갖추기까지는 한 세기가 더 걸렸다. 영국의 봉건 체제가 네덜란드의 체제보다 훨씬 강력해 반발과 저항 또한 더 컸기 때문이다. 친비즈니스적인 환경은 오히려 영국 식민지였던 미국, 특히 뉴욕에 더 빠르게 전파됐다. 뉴욕은 1624년 네덜란드 인들이 개척했고, 1674년 영국이 정복했다. 식민지였던 미국은 1781년에 독립전쟁에서 승리하며 결국 봉건제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했다.
 
미국의 독립은 8년 후의 프랑스 대혁명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후 유럽의 전제 군주 국가는 차례로 나폴레옹과 이후의 부르주아 혁명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전 유럽에 걸쳐 과거 봉건 귀족이 누렸던 권력이 비즈니스 계층에게 넘어갔다. 비즈니스 중심의 문화는 19세기에 유럽과 북미 지역이 산업혁명을 통해 부와 국력을 증대시키는 원동력이었다.
비즈니스 친화적인 환경을 조성하려면
경제 성장을 이루고 싶어하는 저개발 국가들은 앞선 나라들이 갔던 길을 밟아야 한다. 기업환경평가 항목들을 놓고 친비즈니스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가장 좋은 예로 중국과 인도를 들 수 있다. 그 외에도 르완다, 키르기스 공화국, 마케도니아, 벨라루스, 아랍에미레이트연합(UAE), 몰도바, 콜롬비아, 타지키스탄, 이집트, 라이베리아, 그루지아, 모리셔스 등이 필요한 개혁을 앞세우고 있다. 2010 기업환경평가에 따르면, 초기 연구의 결과는 긍정적이다. 등록 사업체 수가 늘었고, 고용도 증가했으며, 신규 진입이 활성화되면서 경쟁이 생겨 물가도 안정됐다.
 
2010 기업환경평가에서는 정부의 역할을 기준으로 10개 항목을 나열했지만, 사실 정부 혼자서 비즈니스에 우호적인 분위기를 만들 수는 없다. 세계 각국 정부는 대부분 느리고 다른 경제 주체들은 이를 답답해하기 마련이다. 개인이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명백하다. 주변 사람들과 차별화할 수 있을 정도의 교육 수준, 재력, 기술, 기회를 가지고 있다면 자국 내 비즈니스 분야에 참가하거나 지원해야 한다. 자국 의 경영대학원에 가서 기회를 찾아라. 자국 산업이 왜곡되어 아무런 기회를 찾을 수 없다면, 국내에서든 어디서든 해외 비즈니스에서 일하라. 흐름이 바뀔 때 국내 비즈니스 분야를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라.
 
빈곤 타파에 기여하고 싶은 개인이라면 친비즈니스적인 프로젝트를 찾아 지원하기를 권한다. 웹사이트 ‘Businessfightspoverty.org’나 ‘Businessactionforafrica.org’ 같은 사이트를 방문해보라. 저개발 국가의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한 사업에 특별한 관심을 가진 사람은 세계자원연구소와 아큐멘 펀드의 공동 프로젝트인 온라인 결제시스템 ‘Nextbillion.net’을 이용하길 바란다.
 
이런 상황을 도우려는 뜻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도 바뀌어야 한다. 무작정 아프리카에 구호 물자를 보내는 일만으로는 결코 이 지역의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 지역의 비즈니스 영역을 지원해야 한다. 물고기를 주지 말고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뜻이다. 현재 영국 바클레이즈 PLC는 26개국 700개 지역 공동체를 지원한다고 자신들을 선전하고 있다. 하지만 직접 지원을 반으로 줄이고, 나머지 반을 해당 지역 비즈니스를 지원하는 게 훨씬 낫지 않겠는가. 1690년 설립된 바클레이즈는 영국 기업 중 건전한 비즈니스 영역을 육성해온 가장 대표적인 기업이다. 그런 활동을 영국 밖 다른 나라에서도 해야 한다.
 
미소 금융, 직업 훈련, 사업 자금 대출 등이 빈곤 지역의 비즈니스를 돕는 첫 걸음이다. 이런 활동의 목표는 기업들이 그동안 낙후된 지역 특성 때문에 직접 처리해야 했던 일, 즉 운송, 은행금융, 납품, 유통, 기타 서비스 등을 지역 업체에 맡기는 데 있다. 현지 업체의 관리자라면 현지 건설업체나 부동산업체를 지원해서 회사가 필요로 하는 직원 기숙사를 짓거나, 관리할 수 있는 역량을 배양시켜주는 식으로 도움을 제공할 수 있다. 빈곤 지역의 사회적 기업을 활성화시키는 일 또한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최근 프랑스 요구르트 업체인 다농과 방글라데시의 그라민 은행이 제휴를 통해 방글라데시에 비영리단체를 만들기로 한 것이 좋은 사례다.
 
가난한 나라의 경영대학원이 특별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20년 전 중국에는 경영대학원이 하나도 없었지만 지금은 100군데가 넘는다. 인도에는 현재 1000개가 넘는 경영대학원이 있다. 현재 빈곤국은 예외없이 연구와 교육을 통해 국가 산업에 기여할 좋은 경영대학원이 필요하다. 동문 네트워크는 비즈니스 지향적인 모임이 된다. 연구와 세미나를 통해 국가의 개혁에 조력하고 기업환경지수를 개선해나간다. 지역 비즈니스 분야와 강한 유대를 일으킬 수 있는 프로젝트를 조직하면 부유한 국가의 경영대학원과 함께 하는 공동 프로젝트를 통해 수입을 얻을 수도 있다.
 
잘 사는 나라의 경영대학원 학생들도 이들을 도와줄 수 있다. 최근 대부분의 주요 경영대학원에서 사회적 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전체 학생의 25% 이상이 사회적 기업 연구 모임에 참여하는 사례도 흔하다. 국제 클럽인 ‘넷 임팩트’는 수백 개의 지부로 이뤄져 있으며, 이에 속한 경영학과 학생들은 다른 지역의 사회적 참여 기업에서 일할 수 있다. 이는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있는 일이지만, 그 대상을 가난한 나라의 소규모 업체로 확대하는 일도 그다지 어렵지는 않다. 비즈니스 중심의 원조가 자리 잡으면 잘 사는 나라의 MBA 졸업생들은 그 과정의 최일선에 등장할 것이다. 이전 세대의 선배들이 ‘세상을 살리기(save the world)’ 위해 정부기구나 비정부기구(NGO) 프로젝트에 참여해 해외로 나섰던 전례를 계승하는 셈이다. 이를 통해 빈곤국의 경영대학원 졸업생들은 각자의 산업 분야를 발전시키기는 데 앞장설 것이다.
 
빈곤국의 기업들이 할 일은 자명하다. 지금 그들은 비즈니스를 계속하는 사실만으로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충분히 하고 있다. 이는 번영을 이끄는 분위기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단계다. 기업을 경영하는 일이 쉬워질수록 빈곤 국가의 번영도 더 빨리 찾아올 것이다.
 
글렌 허바드(rgh1@columbia.edu)는 조지 부시 전 미국대통령 산하에서 백악관 경제자문위 위원장(CEA)을 지냈다. 현재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 학장이자 재무 및 경제학 분야의 러셀 L 카손 교수직을 역임하고 있다. 윌리엄 더건은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 부교수로 포드재단 서아프리카 대표를 지냈다.
 
편집자주 이 글은 컨설팅회사 부즈 앤드 컴퍼니가 발행하는 경영 전문 계간지 <strategy+business>에 실린 미국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의 글렌 허바드 학장, 윌리엄 더건 교수의 글 ‘Roots of Prosperity’를 전문 번역한 것입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51호 Diversity in Talent Management 2022년 08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