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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3000m 칠레 사막에서 리더십을 체득하다

송원준 | 70호 (2010년 12월 Issue 1)

최근 칠레 광산에 두 달 넘게 갇혀 있었던 광부들이 무사히 구조돼 감동을 줬다. 특히 올해 칠레를 방문한 경험이 있는 필자에겐 더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필자는 지난 5월 칠레의 광부들이 갇혀 있던 곳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칠레 북부의 아타카마 사막(Atacama Desert)에서 열린 와튼 리더십 벤처라는 리더십 개발 프로그램에 참여한 바 있다.
 
와튼 MBA에서는 일반 강의실의 강의 또는 토론으로는 배울 수 없는 실제적인 행동과 의사결정을 통한 리더십 개발을 위해 와튼 리더십 벤처(Wharton Leadership Venture)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프로그램의 면면을 보면, 이 행사의 목적이 무엇인지 쉽게 알 수 있다. 2010년 와튼 리더십 벤처 프로그램이 열린 장소는 남극, 알래스카, 킬리만자로, 아타카마 사막 등 모두가 일반인이 접근하기 힘든 오지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56명의 학생, 벤처 펠로(Venture Fellow, 이 프로그램에 먼저 참여한 적이 있는 MBA 2학년 학생), 해당 분야의 안전 전문가 1명 등이 한 팀을 구성했다.
 
이 프로그램은 한 학년이 끝나는 5월에 시작된다. 실제 준비 과정은 전년도 학기가 개강을 하는 이전 해 9월부터 이뤄진다. 특히 필자가 참여한 아타카마 사막은 난이도가 매우 높은 프로그램이어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많은 준비를 해야 했다. 우선 학기가 시작하는 9월이 되자마자, 수강 신청도 경매에 부치는 와튼답게 리더십 벤처 프로그램에 대한 옥션이 진행된다. 모든 학생들은 기본 1000 포인트를 가지고 본인이 참여하고자 하는 프로그램을 경매로 신청한다. 신청이 완료되면, 바로 매주 2번씩 프로그램을 위한 체력 단련 세션에 참석한다. 강변을 3km 정도 달리고 스트레칭을 하는 식이다.
 
흥미로운 점은 체력단련 세션에 참석할 때마다 보너스 포인트가 적립되고, 이 보너스 포인트를 활용해 프로그램에 필요한 필수 장비들을 구입한다는 점이다. 워낙 오지를 여행하기에 필수 장비가 매우 중요하다. 하나라도 모자라면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없다. 이 외에도 학교가 지정한 병원에서 필요한 예방접종, 신체검사, 극한 상황에서 받을 스트레스를 잘 관리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상담도 진행한다.
 
필자는 가기 전부터 프로그램의 상세한 내용을 미리 알아보려 했으나, 전체 개요 외에는 자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없었다. 그 이유를 학교의 벤처 펠로를 통해 확인해 보니, 이 프로그램의 목적이 ‘불확실성 하의 의사결정 경험’이기에 자세한 내용을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 해당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안전 전문가들이 진행한 오리엔테이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업무 상 회사 경영진들을 자주 만나는 안전 전문가들은 유명한 경영자들조차 “불확실성 하의 의사결정이 리더십의 주요 요소라는 걸 알지만 내가 실제로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적기 때문에 이런 프로그램에 참석하고 싶다”는 말을 종종 한다고 들려줬다.
 
준비 과정이 끝나면 본격적인 리더십 벤처 프로그램이 시작된다. 일단 아타카마 사막에 도착하는 일부터 험난했다. 필자는 필라델피아에서 아타카마 근처의 산 페드로(San Pedro) 공항에 도착하기 위해 무려 24시간 동안 3번의 비행기를 갈아탔다. 필라델피아 - 마이애미 - 산티아고 - 산 페드로로 이어지는 여정을 겪고 나자 아타카마에 도착하기 전부터 진이 빠졌다. 게다가 산 페드로 공항에 도착하니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공항이 해발 2000m가 넘는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아타카마 사막은 이보다 더 높은 해발 3000m의 고지대에 있었다. 일교차도 엄청났다. 아타카마 사막은 해가 지기 전에는 영상 30도, 해가 진 후에는 영하 15도 정도의 기온을 보였다. 많은 준비를 마치고 온 참가자들조차 고산병 증세를 호소했고, 프로그램 내의 불확실성 요소 역시 컸다.
 
팀원들은 매일 1명의 리더, 1명의 GPS를 보는 사람을 선택한다. 리더의 역할은 최종 의사결정을 내리는 사람이다. 참여하는 안전 전문가 1명은 오직 안전에 관한 조언만 해 준다. 이미 해당 벤처 프로그램을 경험하고, 리더십 요소에 대한 교육을 받은 벤처 펠로(MBA 2학년 학생) 역시 매일 바뀌는 리더들에게 리더십에 대한 멘터 역할만 수행한다. 이 2명은 팀원들의 의사 결정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는 해발 5700m의 화산 정상에 오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필자는 정상에 도달하지 못했다. 참가한 총 40명의 학생 중 4명은 고산병 증세가 너무 심해져 안전 요원이 등산을 금지시켰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필자는 그 중 한 명이었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정상을 눈앞에 두고 돌아갈 수는 없다는 마음이 컸지만 안전 요원의 지시에 따라야 했다.
 
모든 팀은 직선 방향만을 알려주는 GPS 1개, 팀이 가야 하는 목적지의 위치가 적힌 종이 한 장, 다른 팀과 간단한 무선 통신을 할 수 있는 무전기만을 이용해 목적지를 찾아가야 한다. 때문에 사막에서 갈림길이 나타날 때마다 매번 팀원들은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의사결정을 내려야 했다.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필자의 팀은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 순간에 정말 많은 의사 결정을 제한적인 정보를 이용해 내려야만 했다. 모든 팀원들이 육체적으로 힘든 상황에서는 단순한 결정이 많은 팀원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신중한 결정을 내려야 했다. 조그만 갈림길에서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를 결정하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길을 잘못 드는 순간 목적지에 도착 시간이 30분 이상 지연되기에 엄청난 더위나 추위와 싸워야만 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겪고 나니 와튼이 왜 이런 프로그램을 준비했는지, 리더십의 요체가 무엇인지를 잘 알 수 있었다.
 
필자가 이 리더십 벤처 프로그램을 통해 느낀 점은 다음과 같다. 우선, 리더십의 본질은 제한된 정보와 환경 하에서 자신 또는 자신이 속한 조직을 옳은 방향으로 변화를 이끌어나가는 일이라는 점이다. 와튼의 리더십 벤처 프로그램, MBA 교과 과정에서의 배우는 모든 케이스, 실제 사회 생활에서도 그 누구도 언제나 완전무결한 정보를 가지고 의사결정을 내릴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제약과 불완전한 상황에서도 우선 올바른 비전을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변화를 만들어내는 일이 리더십의 핵심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둘째, 한국에서 병역 의무에 대한 사고의 전환이 있었으면 한다. 많은 사람들이 군대 생활을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다. 필자 역시 이 프로그램을 경험하기 전에는 그런 마음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외국 유수 기업의 경영진들은 본인들의 시간과 비용을 지불해가며 우리 나라의 많은 남자들이 군대에서 쉽게 경험할 수 있는 환경 하에서 리더십을 개발하려 노력하고 있다. 와튼 스쿨이 미래의 경영진이 될 MBA 학생들을 오지로 보내 비슷한 경험을 하게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물론 많은 제도적, 사회적 뒷받침이 있어야겠지만 모든 젊은이가 군대를 가야만 하는 현실을 바꿀 수 없다면 군대에 관한 인식부터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군대라는 특수한 환경과 시간을 리더십을 개발할 기회로 여기고, 그 기회를 잘 살린다면 개개인의 인생은 물론 그가 속한 조직, 사회, 국가 전체에도 엄청난 파급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고려대 통계학과를 졸업한 후, AT커니에서 컨설턴트로 근무했다. 금융, 통신, 중공업 업계의 경영 관리 및 혁신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와튼 스쿨은 1881년 필라델피아의 사업가였던 조지프 와튼이 설립한 세계 최초의 비즈니스 스쿨이다. ‘파이낸셜 타임스(FT)’ 등 세계 유수 언론으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비즈니스 스쿨로 여러 차례 선정됐다. 매년 850명 정도의 신입생들이 입학하며, 재학생의 45%가 외국 학생일 정도로 다양성에 바탕을 둔 글로벌 인재를 키우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한국인 학생도 상당수여서 탄탄한 동문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다.
 
편집자주 DBR이 세계 톱 경영대학원의 생생한 현지 소식을 전하는 ‘MBA 통신’ 코너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명문 경영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는 젊고 유능한 DBR 통신원들은 세계적 석학이나 유명 기업인들의 명강연, 현지 산업계와 학교 소식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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