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백 아주대 명예 교수·공장관리기술사
원가 절감은 가장 오래 된 경영 화두 중 하나다. 하지만 원가 절감이란 말을 너무 흔하게 사용하는 탓에 정작 ‘원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원가(cost)’란 정상적 경영 활동 하에서 제품이나 용역을 생산하기 위해 사용하는 재화나 용역을 화폐 단위로 표시한 것이다.
원가를 계산할 때는 고객에게 가치를 준 경영 활동만을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따라서 원재료 구입비, 인건비, 공장 설비 구입비 등은 원가에 포함된다. 반면 기업이 낸 정치자금, 기부금, 불우이웃돕기 성금, 접대비 등은 원가에 포함되지 않는다. 고객에게 직접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활동에 쓰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치자금 항목은 재무회계의 비용(expense)이지 원가가 아니다.
원가는 실제 원가와 표준 원가, 제품 원가, 기간 원가, 전체 원가와 부분 원가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개별 제품 원가를 구성하는 요인은 재료비, 노무비, 외주가공비, 제조경비, 일반관리비 및 판매비, 영업외 비용 등이다.
원가절감의 역사
일반적으로 제품은 재료, 노동, 설비의 3대 요소에 ‘관리(management)’가 결합해 탄생한다. 원가를 줄이기 위해서는 원가를 유발하는 생산, 업무 처리 조건, 시스템에 변화를 가해야 한다.
글로벌 경쟁 격화, 원자재 가격의 지속적 상승, 원화 가치 상승, 임금 상승, 연구개발 및 기술 격차, 생산성 저하 등으로 원가절감의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그러나 아직 많은 기업들이 원가절감 노력과 책임을 외면하고 있다. 일부 기업들은 현실적으로 소비자들이 정확한 원가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을 악용하고 있다. 특히 자신들의 원가 절감 실패로 인한 비용 부담을 가격 인상으로 만회해 소비자에게 피해를 전가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수 있는 행위이므로 지양해야 한다.
원가 절감을 위해 필수적인 관리(management)의 개념을 혼동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는 영어의 ‘관리(management)’와 ‘통제(control)’를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근대 경영관리론의 창시자인 프랑스의 앙리 화욜(Henry Fayol, 1841∼1925)이 강조한 ‘관리의 5요소’는 요즘과 같은 관리의 홍수 시대에 시사하는 바가 많다. 화욜은 기업 활동을 기술, 영업, 재무, 보전, 회계, 관리로 구분했다. 여기서 그는 관리 활동이 계획, 조직, 지휘, 조정, 통제의 5개 요소로 이뤄진다고 강조했다. 관리는 통제 활동을 포함하지만 이보다는 훨씬 더 폭넓은 개념이라는 뜻이다.
‘화욜의 관리 5요소’는 오늘날 유행어인 PDCA 방법론(기획-실행-평가-혁신의 품질경영 기법), W.D. 데밍의 통계적 품질관리(SQC)의 원조이기도 하다. 이는 서구 산업 사회가 원가관리의 본질적 개념을 1892년 이전부터 사용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심지어 미국에서는 남북전쟁으로 경기 불황이 찾아왔던 19세기 후반부터 이미 과학적 관리법이 등장했다. “엔지니어는 경제학자다(The engineer is an economist)”라고 주장한 H.R. 타우니(Towne, 1844∼1924)는 생산기술(techniques)로부터 관리(management)를 분리시켜야 한다며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기업은 생명을 지닌 유기체다. 이 생명을 좌우하는 2대 요소가 바로 품질(quality)과 원가(cost)다. 기업이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는 좋은 품질의 제품 및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면 소비자로부터 신뢰을 잃고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원가를 절감할 수 없다면 그 기업은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경쟁력을 잃고 낙오한다. 특히 글로벌 시대에 그 기업의 경쟁 대상은 국내에 있는 동종업체만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지구촌 각국의 동종업체와 싸워야하기 때문에 품질과 원가 관리는 기업의 사회적 책무이기도 하다.
그간 한국에 소개된 경영혁신 및 원가절감 방법들은 수없이 많다. 과학적 관리 기법의 발판을 이뤘던 테일러주의와 포드주의, 앙리 화욜의 경영관리론, 인간 관계론과 행동 과학, 품질관리와 품질 경영, 산업공학(IE), 경영과학(OR), 가치분석과 가치공학(VA/VE), 인간공학과 감성공학, QC서클(현장 소집단)을 통한 자주적 공정 개선, 도요타의 적시생산방식(JIT, Just in Time), 린(Lean) 생산방식, 리스트럭처링과 리엔지니어링, 자동화와 컴퓨터 통합 제조(CIM), 동시공학(Concurrent Engineering), 고객만족(CS), 식스 시그마(6σ) 활동 등 수많은 원가절감 방법이 속출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전사적으로 체계적인 원가절감 프로그램을 도입하기보다 현장 중심으로 ‘쥐어짜기’식 원가 인하를 추진하는 기업들이 많다. 이는 원가 절감의 핵심인 지속성을 확보하기 어렵게 만든다. 또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선진국의 원가절감 기법을 유행처럼 따라할 경우 오히려 현장에서 학습 등과 관련한 비용이 증가하고 제대로 성과를 보지 못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