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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센티브로 카드 고객을 움직이면…

최종학 | 47호 (2009년 12월 Issue 2)
상당 기간 동안 잠행을 거듭했던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의 보고펀드가 2009년 중반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보고펀드는 2009년 8월 하나은행과 SC제일은행으로부터 BC카드의 지분 약 31%를 인수했다. 인수 가격은 1940억 원(주당 약 14만 원)이다.
 
이 인수 계약은 상당히 재미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원래 BC카드는 시중 은행들이 공동으로 투자해 설립한 카드회사다. 신용카드의 사용이 많지 않았던 과거에는 각 은행들이 전국적으로 통용되는 신용카드 사용 시스템을 각각 구축할 이유가 없었다. 소비자도 각 은행들이 발급하는 모든 카드를 소지하기에는 여러모로 불편한 점이 많았다. 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 가맹점 수도 적었다. 카드의 사용이 늘어날 수도 없었고, 규모의 경제를 달성할 수도 없는 구조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개입했고, 결국 11개의 은행들이 참여해 공동으로 신용카드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 카드회사가 바로 BC카드다.
 
BC카드는 상당히 안정적인 사업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은행들이야 카드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지만, BC카드는 은행이 모집한 고객들에게 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 플랫폼만 제공해주면 된다. 즉, 어느 은행에서 고객을 확보했느냐에 관계없이 고객들이 카드를 사용하기만 하면 수수료 수익을 올릴 수 있다. 그야말로 경쟁자가 없는 독점 사업이다.
 
그런데 이 사업 구조가 점점 변하기 시작했다. 은행들이 합병을 통해 덩치를 키우고, 은행들 간 경쟁도 심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BC카드 네트워크를 사용하지 않는 전업 카드회사들이 나타나 빠르게 시장점유율을 늘리기 시작했다. 현대, 삼성, 롯데 카드 등이 대표적이다. 심지어 각 은행들조차 BC카드 망을 사용하지 않는 새로운 카드를 발급하기 시작했다. 은행들이 합병을 통해 규모를 키우고, 신용카드의 사용이 보편화된 데다, 정부가 카드 소득공제까지 도입하자 카드 시장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졌기 때문이다.
 
규모의 경제를 달성할 수 있는 상황이 오자 개별 은행들은 BC카드를 권유하는 대신 자체 카드를 발급하는 데 열을 올렸다. 그 결과 BC카드의 주인인 은행들이 이제 BC카드의 경쟁자로 등장하는 아이러니한 모습이 나타났다. 대표적 예가 국민, 신한, 외환 카드 등이다. 이 와중에 보고펀드가 BC카드의 지분을 획득했다는 점은 과연 무엇을 시사할까. BC카드의 주인인 은행들이 이제 더 이상 BC카드를 자회사로 둘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볼 수 있다. BC카드와 옛 주인인 은행들 사이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는 시대가 온 셈이다.

 
사실 서로 경쟁하는 모회사와 자회사의 모습은 매우 어색하다. 지분 매각 전까지 하나은행 및 SC제일은행과 BC카드의 사이도 매우 어색했다. 이익이 많이 나면 주주인 은행들은 BC카드가 수수료를 너무 많이 받아 이익이 난 셈이니 수수료를 낮추라고 압박했을 것이다. 반대로 이익이 너무 적으면 경영을 잘 못해서 이익이 적다고 불평했을 것이다.
 
BC카드의 지분을 매입한 보고펀드도 흥미로운 대상이다. 잘 알려진 대로 보고펀드는 변양호 전 국장이 시중 은행의 자금을 투자받아 설립한 펀드다. 펀드의 규모는 5000억 원 정도로 국내 대표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 IMM 등을 추격하고 있다. 그동안 활발한 활동을 벌여온 다른 사모펀드에 비해 보고펀드의 활동은 상대적으로 미미했다. BC카드의 인수가 최초의 대규모 투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고펀드가 BC카드 지분을 인수했지만 보고펀드의 투자자가 결국 은행이라는 점은 무엇을 뜻할까. 결국 은행이 소유했던 BC카드를 은행이 투자한 돈으로 보고펀드가 인수하는 형태다. 즉, 겉으로 드러난 주인이 바뀌었지만 결국 뒤에 숨어 있는 진짜 주인은 변하지 않은 셈이다. 돌고 돌아 원래대로 돌아온 셈이니 이 역시 아이러니다. 사실 보고펀드는 2006년에도 BC카드를 인수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협상이 무산된 바 있었다.
 
이제 보고펀드가 BC카드를 어떻게 할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모펀드인 보고펀드의 목적은 BC카드를 계속 경영하는 데 있지 않다. 일정 기간 경영한 후 비싼 값에 되파는 게 목적이다. 그럼 BC카드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대형 시중 은행이 BC카드를 인수할 가능성은 많지 않다. 이미 자체 브랜드로도 카드 시장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이유로 마지못해 인수할 수도 있다. 혹은 비자나 마스터 카드 등 외국계 금융회사가 국내 진입을 위해 인수를 타진할 수도 있다. 금융기관 이외의 기업이 금융 사업에 진출하는 일을 사실상 막고 있는 금산분리법이 개정된다면 대기업들이 나설 수도 있다. 특히 카드 분야 진출을 희망하는 이동통신업계 쪽에서는 많은 관심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카드 가맹점들을 확보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하는 부가통신망(VAN) 업체들을 인수해 결제 시장을 장악하는 식으로 BC카드가 독자 생존을 모색할 수도 있다.
 
외국에 지불하는 카드사의 수수료 문제
필자는 BC카드의 미래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건 아니다. 이 글을 쓴 목적은 한국 카드업계가 가진 구조적 문제점이 무엇이고, 이 문제점을 풀기 위해 어떤 해결책이 필요한지를 논의하기 위해서다.
 
우선 국내 은행이나 카드회사가 비자카드나 마스터카드에 매년 지급하는 수수료가 얼마인지 보자. 2006∼2008년까지 매년 약 600억, 700억 원 정도의 수수료를 지불해야 했다. 엄청난 돈이다.
 
한국 신용카드를 해외에서 사용한다면 외국의 신용카드 망을 사용하는 대가로 수수료를 외국에 지불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국내에서 쓰이는 신용카드에 대해서도 사용 금액의 0.03%를 수수료로 지급한다는 건 국가적으로 엄청난 낭비다. 심지어 현금 서비스에 대해서도 비자카드나 마스터카드에 수수료를 내야 한다. 특히 국내에서 사용되는 전체 카드 중 단 한 번도 외국에서 쓰이지 않는 카드 비율이 80%에 달한다. 카드 사용 금액으로 따지면 전체 카드 사용액 중 불과 1%만이 외국에서 사용된다. 이 와중에 최근 비자카드는 이 0.03%의 수수료를 0.04%로 인상하려다 거센 반발을 접하고 인상안을 철회했다.
 
해외 카드사에 지급하는 막대한 수수료 문제에 관한 보도는 매년 신문지상을 장식한다. 기사 마지막에는 항상 “비자나 마스터 브랜드가 달려 있지 않은, 국내에서만 사용이 가능한 카드를 많이 발급하겠다”는 시중 은행 관계자의 말이 실려 있다. 은행들이 그렇게 하도록 독려하겠다는 금융 당국자의 말도 빠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왜 매년 똑같은 뉴스가 쏟아질까. 은행들이 국내에서만 사용이 가능한 카드를 많이 발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은행의 관점에서는 국내 전용 카드보다 국내외 겸용 카드의 수수료가 2배가량 비싼 만큼 고객에게 국내 전용 카드를 권유할 요인이 없다. 심지어 소비자들도 이런 카드를 별로 찾지 않는다. 해외 카드회사의 로고가 붙어야 ‘명품 카드’라는 광고에 혹하는 소비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면서 필자의 지갑을 열어보니 총 8개의 카드가 들어 있었다. 신분증 2개까지 있으니 돈이 얼마 없어도 지갑이 항상 묵직하다. 주부들은 더하다. 주부들의 지갑에는 대형마트, 백화점, 화장품회사, 서점 카드들까지 수십 장의 카드가 빼곡히 들어 있다. 지금도 이런 상황이니 번거롭게 국내 전용 카드와 국내외 겸용 카드를 따로 발급받아 동시에 소지하려는 소비자가 적은 게 당연하다. 외국 출장이 잦은 소비자라면 더더욱 이를 기피할 것이다. 출장을 갈 때마다 서랍을 뒤져 국내외 겸용 카드를 찾아야 한다면 얼마나 번거로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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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학

    최종학acchoi@snu.ac.kr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필자는 서울대 경영대학 학사와 석사를 거쳐 미국 일리노이주립대에서 회계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홍콩과기대 교수를 거쳐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서울대에서 우수강의상과 우수연구상을 다수 수상하는 등 활발한 강의 및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숫자로 경영하라』 시리즈 1, 2, 3, 4, 5권과 『재무제표분석과 기업가치평가』, 수필집 『잠시 멈추고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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