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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법을 사용하면 모순도 풀린다

박영수 | 39호 (2009년 8월 Issue 2)
20세기는 전문화와 세분화의 시기였다. 예술과 기술, 비즈니스 분야는 끊임없이 새로운 가지를 뻗어내며 전문화의 극단까지 달려갔다. 이런 흐름을 반영해 대부분의 기업은 기술과 영업, 인사 등의 기능을 확실히 구분하거나, 제품별로 사업부를 만들어 독립적으로 운영했다.
 
하지만 21세기가 가까워지면서 여러 분야의 통합과 통섭에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 기술적 문제에 대한 해답이 종종 비기술적인 부분에서 나오며, 그 반대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세상에는 분리돼 보이지만 사실은 통합된 전체의 2가지 측면인 것들이 많이 있다. 미래에는 통합적인 접근과 시각에 대한 연구가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다.
 
모순의 win-win
 
‘트리즈(TRIZ)’는 통합적 접근이라는 측면에서 큰 의미를 갖는 방법론이다. 즉 전체적으로 개별 분야를 뛰어넘는 통합적 시각을 메타포(metaphor·은유적 표현)를 이용해 구현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런 시각은 과학, 공학, 수학 등 전문기술 분야의 지식이 부족해도 관련 문제를 해결하고 많은 아이디어를 도출하게 해준다.
 
우리는 가능하면 한 번에 하나의 일에만 집중하고 싶어 한다. 그래야 좀더 빠르고 정확하게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선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항상 여러 가지 대안 중에서 최선의 대안을 찾아내려 노력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우리는 둘, 또는 그 이상의 대안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받는다. 게다가 어떤 경우에는 하나가 아니라 둘 다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오기도 한다. 특히 상반되는 2가지 대안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모순은 해결책을 구하는 사람을 궁지로 몰아넣는다.
 
중국 전국시대 초()나라에서 창과 방패를 파는 상인이 “이 창은 예리해 어떤 방패도 꿰뚫을 수 있다. 그리고 이 방패의 견고함은 어떤 창이나 칼로도 꿰뚫지 못한다”고 자랑했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자네의 창으로 자네의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되는가?” 하고 물었다.
 
<한비자(韓非子)> 난일(難一) 난세편(難世篇)의 고사(故事)
 
여러분이 상인이라면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그림1>을 살펴보자. A와 B가 서로 상충하는 경우 우리는 “딜레마에 빠졌다”고 말한다. 모순적인 상황에는 △경제 성장과 환경 보호 △매출 향상과 원가 절감 △재고 비용 절감과 생산 안정화 등 수많은 경우의 수가 있다.
 
 
트리즈는 이런 상황에서 A와 B가 둘 다 좋아지는 아이디어를 찾아주는 방법론이다. 전문가들은 A와 B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을 ‘OR적 관점’이라 하고, A와 B를 모두 선택하는 것을 ‘AND적 관점’이라고 한다. OR적 관점의 대표적 기법으로는 ‘로직트리(logic tree)’를 꼽을 수 있다. 이는 전체적 관점에서 핵심 이슈에 집중하는 탁월한 방식이다. AND적 관점의 대표적 기법은 ‘마인드맵(mind map)’이다. 이는 가능한 모든 아이디어를 도출할 수 있게 해준다. 트리즈는 AND 중에서도 모순이 생기는 경우에 사용하는 해결책의 탐색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추상화의 이점
 
트리즈는 ①구체적인 특정 상황의 추상적 패턴(표준 문제)을 찾아 ②그것을 트리즈 매트릭스에 대입해 추상적 솔루션(표준 해결책)을 찾은 뒤 ③해결책을 다시 구체화하는 방법을 이용한다. 이것이 바로 메타포의 이용이다. 트리즈의 해결책은 여러 가지 모순의 해결에서 찾아낸 경험과 지식을 데이터베이스화한 것이다.
 
  
 
문제와 해결책의 추상화는 특정한 문제의 특정 해결책을 찾는 것보다 시간과 절차를 줄여준다는 장점이 있다. 특정 문제의 구체적 해결책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브레인스토밍을 통해 많은 아이디어를 찾아서 끝이 없는 실행을 거듭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더욱이 이런 방식으로는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해결책을 찾지 못할 수도 있다. 이차방정식 문제를 생각해보자. 3x2+5x+2=0 이 문제를 그냥 풀려고 하면 브레인스토밍으로 계속 수치를 대입해 시행착오를 겪어야 한다. 이 방법은 매우 느리고 부정확하다. 답이 하나 이상일 때는 만족스러운 답을 찾기도 어렵다.
 
반면 문제의 추상화는 이미 추출해놓은 원리를 이용해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와준다. 위의 방정식을 ‘근의 공식’을 이용해 푸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렇게 원리를 이용하면 더욱 빠르고 정확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실제 적용 사례
 
그럼 이제 추상화를 이용해 실제 문제를 해결해보자. 다음은 필자가 모 기업의 연구원들을 대상으로 트리즈 교육을 실시하면서 적용한 사례다(www.wikimanagement.kr의 ‘트리즈 매트릭스’ 메뉴 참조).
 
1단계 특정(개인적) 문제
 
- 연구원들이 승진 등 이익을 위해 자신이 아는 것을 다른 구성원에게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자신의 업무를 다른 사람과 공유하지 않는다.
 
- 기술 공유가 안 되다 보니 연구원 개인은 물론 연구소 전체의 역량이 나아지기 어렵다.
 
- 결론적으로 ‘연구개발 역량을 높이기 위해서는 기술 공유를 해야 하는데, 개별 연구원이 승진을 하기(기술 전문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기술 공유를 하면 안 된다’는 모순이 생긴다.
  
 
 
2단계 추상적(표준) 문제로 전환
 
- 이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강화되는 부분은 ‘연구개발 능력’이다(표준 문제 1번: 연구개발 능력).
 
- 연구원들 간의 경쟁으로 기술 공유가 잘 안 된다(표준 문제 15번: 공급 상호관계).
 
3단계 추상적(표준) 해결책 도출
 
- 강화 요소인 표준 문제 1번과 악화 요소인 표준 문제 15번을 모순 매트릭스로 확인해보면, 표준 해결책으로 사전 예방 조치(11), 대체 수단(26), 추출(2), 통합(5), 역방향(13)이 도출된다.
 
4단계 특정(개인적) 해결책
 
- 사전 예방 조치(11) 관련 아이디어: 회의 때 사전 연구 자료를 준비해 발표하도록 한다. 이렇게 하면 회의에 대한 집중력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연구원들이 자연스럽게 지식을 공유하게 된다. 선진기업에서는 회의 때 사전 연구 자료를 준비하지 않는 사람은 회의 장소에 있으나 의견은 내놓지 못하는 ‘관찰자(observer)’로만 참여하게 한다.
 
- 대체 수단(26) 관련 아이디어: 분야별 기술 전문 사내 강사들을 양성해 이들이 기술 공유를 활성화하도록 한다. 필자는 1989년부터 LG전자 기술 교육 담당자로 근무하면서 매년 수십 명씩 사내 강사를 양성했다. 이때의 사내 강사들은 LG의 핵심 기술 개발은 물론 연구원 육성에도 크게 기여했다.
 
- 추출(2) 관련 아이디어: 추출은 필요한 부분이나 특성을 뽑아내는 것을 말한다. 이런 원리를 적용해 특허 등 지적재산권 획득에 도움을 준 사람이나 그룹을 뽑아 개인 포상 또는 집단 포상을 하면 기술 공유를 더욱 촉진할 수 있다.
 
- 통합(5) 관련 아이디어: 통합은 동일, 유사, 연관 기능을 수행하는 요소들을 결합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원리를 적용해 지식 관리와 특허 관리, 역량 개발 시스템 등을 통합해 관리하면 조직 전체가 기술을 공유하도록 하는 데 큰 효과가 있다.
 
- 역방향(13) 관련 아이디어: 타인과의 기술 공유가 보상을 가져올 수 있도록(give & take) 하는 방안을 생각해본다. 기술 공유 컨퍼런스를 상시 운영하거나, 기술 공유자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이런 해결책을 데이터베이스화해 놓으면 두고두고 조직의 지식으로 활용할 수 있다. 삼성과 LG 계열사들은 이미 문제 해결 솔루션의 데이터베이스화를 시도하고 있다. 필자는 LG전자에서 트리즈 교육을 하면서 40가지 원리(트리즈를 만든 알트슐러가 연구한 40가지의 창의적 문제 해결 원리)로 문제 해결 솔루션을 분류해 공유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재 많은 기업과 공공기관이 트리즈 교육을 실시하고 있지만, 실제 적용 사례와 해결책을 분류해 조직 지식으로 만드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
 
필자는 중소기업이나 공공기관이라도 1단계의 ‘특정(개인적) 문제’를 100건 정도 해결하고, 그 결과(4단계의 ‘특정 해결책’)를 40가지 원리를 기준으로 분류한다면, 조직과 개인의 업무 성과를 몇 단계 성장시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렇게 된다면 중소기업이라도 빠른 시간 안에 삼성이나 LG 수준의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다.
필자는 LG전자 Learning Center에서 엔지니어 육성과 기술 교육을 담당하던 중 교육공학 분야에 입문했다. LG전자를 나온 후 컨설팅사에서 교육 프로그램과 핵심 역량, 6시그마, 리더십 코칭 등 다양한 분야의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현재 미래경영연구소장으로 재직 중이며, 한국액션러닝협회와 한국코칭학회, 한국트리즈협회 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미래에 대한 관심으로 ‘미래 예측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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