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최고전략책임자(CSO) 출신 데이터 전략가로 현재 강의, 출판, 컨설팅을 통해 경영 현장에 데이터 기반 문제해결의 중요성을 알리고 있는 강양석 딥스킬 대표가 새 연재, ‘데이터가 흐르는 조직’을 통해 데이터 혁신 조직이 갖춰야 할 균형 감각을 소개합니다. |
Article at a Glance데이터 과학은 사람의 판단을 다루는 기술이기 때문에 인문학, 경영학적 관점에서 다음의 4가지 균형을 지켜야 한다.
1. 유스케이스를 활용해 문제해결 관점에서 데이터를 수집하는 ‘문제와 데이터의 균형’
2. 기존 빅데이터의 한계를 인식하고, 실험을 통한 스몰데이터도 확보하는 ‘실험과 분석의 균형’
3. 온라인뿐 아니라 오프라인에서 고객의 심층 데이터를 수집하는 ‘심층 데이터와 피상적 데이터의 균형’
4. 데이터 역량이 조직 전체에 잘 발현될 수 있도록 권한을 배분하는 ‘역량과 권한의 균형’
2023년은 위기의 끝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다. 지난 3년여간 위기의 한복판에 있었을 때로부터 태세 전환이 필요하다. 왜 변해야 하는가에 대한 설득은 경험적으로 끝났다. 이제는 조직의 민첩한 대응력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행동을 보여줘야 한다. 다만 조급증은 금물이다. 디지털 및 데이터 관련 대규모 투자는 시작부터 골칫거리로 여겨진다. 어떻게 쓸지에 대한 고민 없이 무턱대고 구축하고 쌓은 디지털과 데이터 환경은 이미 애물단지가 돼 가고 있다. 2020년 IBM리서치와 포레스트리서치의 연구에 따르면 지금 인류가 가진 데이터의 고작 약 20%만 활용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고작 그것밖에 안 쓸 거면 왜 쌓았냐’는 말은 지금 와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 모든 일에 시작이 제일 중요하듯 그렇게라도 시작한 게 어딘가. 하지만 이제부터 달라져야 한다. 좀 더 노련하고 거시적인 안목이 필요하다.
근본적으로 데이터 과학은 디지털 대전환의 기반이 되는 수많은 기술 요소, 예컨대 사물인터넷(IoT), 양자컴퓨팅, 블록체인, 클라우드, AR/VR 등과 다르게 취급돼야 한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데이터 과학은 사람의 ‘판단’을 직접적으로 다루기 때문에 단순히 혁신 기술 하나를 도입하는 과정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의사결정 관점에서 데이터 과학을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지금껏 데이터에 대한 담론은 지나치게 공학적으로 흐른 감이 있다. 데이터 과학은 심리학, 인문학, 경영학과 함께 논의돼야 하며 데이터 과학을 제대로 실행하려면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감을 장기적으로 실천할 필요가 있다.
데이터는 데이터 과학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조직의 모든 구성원이 좋은 ‘판단’을 하는 데 필요한 귀중한 재료이다. 사람의 몸에 피가 잘 흐르는 것이 중요하듯 데이터 또한 조직 전반에 잘 흘러야 한다. 그래서 사람, 돈, 기술처럼 데이터를 필수불가결한 전략적 자산으로 인식하고 활용하는 조직을 바로 ‘데이터가 흐르는 조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번 글에서는 데이터가 흐르는 조직을 만드는 데 필요한 4가지 균형점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자 한다.
1. 문제와 데이터의 균형:유스케이스(use case)의 중요성우리는 데이터 과학을 지나치게 공학적이고 기법적으로만 이해하면서 목적의식을 잃어버렸다. 여기서 목적의식이란 모든 데이터 활용은 반드시 ‘문제해결(problem solving)’을 지향하고 있다는 간단한 사실을 말한다. 이로 인한 비효율성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리더가 데이터로 풀 수 없는 문제를 풀기를 직원들에게 강요하는가 하면 수백억짜리 스마트 팩토리 프로젝트가 명확한 목적 없이 진행되기도 한다. 실제로 2019년경 국내 재계 순위 5위권인 A그룹사의 데이터 과학 부서는 어떤 데이터를 쌓을지 결정하기 위해 전 부서에 엑셀 템플릿을 돌리려 했다. “귀하의 부서가 필요한 데이터를 써서 내주세요”라고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어떤 문제를 푸는 데 필요한지에 대한 고민 없이 그저 일률적으로 데이터를 모으려고 한 것이다. 생각만 해도 아찔한 일이다. 천만다행으로 그 당시 자문을 진행하고 있던 한 대학 교수의 만류로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진 않았다. 하지만 이게 다 “어떤 문제를 풀 것인가?”라는 질문에 천착하지 않고 데이터의 양에만 집착하는 관성에서 생긴 해프닝이라고 볼 수 있다. 데이터의 ‘필요성’은 상상에서 나오지 않고 ‘문제해결’ 과정에서 가장 명료해진다. 특히 필요한 데이터를 정의한다는 것은 단순히 그럴싸한 목록을 적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데이터는 구체적 형식까지 정의돼야 비로소 분석의 재료가 될 수 있다. A그룹은 전체적으로 어마어마한 행정 비용을 낭비할 뻔한 것이다.
이런 ‘문제와 데이터’ 사이의 불균형 문제는 비단 우리만의 고민이 아니다. 글로벌 전자제품 제조 업체 에릭슨에서 데이터 오피스 헤드였으며 현재는 호주 통신사 nbn의 최고데이터책임자(CDO)인 데이터 기반 조직변화관리 전문가 소니아 보이제(Sonia Boije)는 2021년 맥킨지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데이터 유스케이스(Data Use case)를 지속적으로 수집하고 관찰하다 보면 정말 중요한 데이터가 무엇인지 보입니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유스케이스가 바로 앞서 표현한 ‘문제’에 해당한다. 쉽게 말해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어야 한다”는 얘기다. 최근 그는 필자가 속한 딥스킬 팀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이끌었던 팀은 크게 1) 데이터 유스케이스 파트와 2) 데이터 유틸리티 파트로 구성하고, 그중 유스케이스 팀은 “어떤 문제를 풀 것인가?”, 유틸리티 팀은 “어떤 데이터를 쌓고 관리할 것인가?”에 관한 업무를 전담한다고 했다. 팀의 구성에서부터 문제와 데이터의 균형을 강조한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