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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역사

장수 생명체 비결은 상대가 예상 못한 능력

서광원 | 331호 (2021년 10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지구에서 1억 년의 시간 동안 장수한 생명체들은 생존에 유리한 공통된 특징을 갖고 있다. 바로 상대의 기대 범위를 뛰어넘는 능력치다. 수많은 불확실한 상황을 극복하며 개발된 이들의 이 같은 능력치는 포식자나 사냥감과 같은 상대의 예상을 빗나가게 한다. 기업과 개인 역시 위기를 극복하고 기회를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상대의 허를 찌를 정도의 성과가 필요하다.



무릇 오래된 것들은 사라지게 마련이다. 세상의 속성이 그렇다. 하지만 반대로 시간이 갈수록 가치가 높아지는 것들이 있다. 골동품이 그렇고 고전(古典)도 그중 하나다. 몇천 년 전에 쓰였으니 케케묵어도 보통 케케묵은 게 아닌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이 쓴 책이나 『논어』와 『사기』 같은 책이 그렇다. 세상을 사는 이치와 인간에 대한 통찰을 진하게 담고 있어서 일 것이다. 중국의 마오쩌둥이 대륙을 통일하면서 『자치통감』을 옆에 두고 줄줄 외웠고 현재 중국의 최고 통치자인 시진핑이 『논어』를 조자룡 헌 칼 쓰듯 구사하는 것도 이런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고전에서 살아가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세상은 비슷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전은 쉽지 않다. 읽고 암기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어떤 결과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그 과정을 깊숙하게 숙고해야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수많은 사람이 고전을 들먹이지만 막상 읽어본 사람은 손에 꼽을 만큼 적은 이유다. 고전 속에 배어 있는 지혜는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서 더 가치 있는 것일 게다.

오랜 시간 수많은 생명체가 명멸해 온 지구 생태계에도 이와 비슷한 ‘살아 있는 고전’들이 있다. 저 원시에서부터 수많은 시간과 변화를 헤치고 살아온 생명체들이다. 지금까지 지구에 출현한 생명체들 중 99% 이상이 사라진 이 험난한 세상에서 1억 년이라는 영겁 같은 시간을 살아온 생명체들이 꽤 된다.

1억 년. 1억 년이라는 시간은 어느 정도나 될까? 우리 호모사피엔스가 이 지구상에 출현한 게 20만∼30만 년 전이고 고대 인류까지 가봐야 600만 년이니 우리로서는 상상이 안 되는 시간이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이 오랜 시간을 사는 건 보통 능력으로는 어림도 없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세상의 변화를 작은 몸으로 살아내야 하니 말이다. 생명의 역사 측면에서 보면 1억 년은 생태계 전체가 낭떠러지 끝으로 몰리는 대멸종이 한 번 이상 휩쓸고 간 시간이고, 이보다 덜한 중소 규모의 멸종이 수십 번은 강타한 시간이다. 지역적으로 발생했기에 상대적으로 중소 규모라 불린 것일 뿐 해당 생태계에는 대멸종 이상의 위기일 수도 있다. 살아 있는 고전 생명체들은 도대체 어떤 능력을 갖고 있길래 이런 세상과 시간을 통과할 수 있었을까? 이번 회부터는 1억 년 이상 장수하는 생명체들이 장구한 시간을 살아올 수 있었던 비결을 탐색해보려 한다.

고전 책들이 그렇듯 이 살아 있는 고전 생명체들을 접하는 건 쉽지 않다. 물론 이유는 다르다. 읽기만 하면 졸음이 몰려오고 머리가 아파오는 통에 대하기 어려운 게 고전 책이라면 살아 있는 고전들은 졸음이 아니라 별로 좋지 않은 감정 때문에 그렇다. 다음 내용을 읽으면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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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어, 악어, 바퀴벌레, 진딧물, 모기, 파리, 뱀, 바늘두더지….’

혹시 읽는 동안 어떤 느낌이 들었는가? 대부분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별로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아니 아주 싫은 느낌이 어떤 식으로든 스쳐 갔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바로 살기 힘든 이 지구 생태계에서 적어도 1억 년 이상을 살아온 장수 생명체라는 것이다.

상어는 그들의 조상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면 대대로 번식해 온 기간이 무려 4억3000만∼4억5000만 년이나 되고 바퀴벌레는 3억5000만여 년, 악어와 파리, 모기, 진딧물은 2억2000만∼2억3000만 년 정도쯤 된다. 가장 짧은 뱀이 1억3000만 년, 바늘두더지 역시 1억 년 정도의 역사를 갖고 있다. 앞에서 말했듯 우리 호모사피엔스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시간이니 분명 대단한 능력을 가진 희귀한 존재들이다. 그런데 왜 인정받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다들 외면받는 대상이 됐을까?

이유는 하나. 이전과 완전히 다른 뇌를 핵심 역량으로 개발한 덕분에 현재 지구를 지배하고 있는 우리에게 별로 도움이 안 되는, 아니 사실은 해를 끼치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해를 끼치는 정도가 아니라 어마어마한 시간을 살아온 생명력으로 끈질기게 살아남아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기까지 하니 어떻게 좋은 감정을 가지겠는가?

물론 장수 리스트에 이들만 있는 건 아니다. 이들과 달리 ‘호감형’이라 할 수 있는 거북(1억5000만여 년) 1 과 우리에게 친숙한 식물들도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나물로 많이 먹는 고사리의 조상은 작고 조용한 자태와 달리 3억7000만여 년을 살아오고 있고, 은행나무는 2억6000만∼8000만여 년, 소나무는 1억3000만여 년을 살아오고 있다.

알다시피 이들은 대체로 완전히 다른 서식지(생태계)에서 살아가기에 각기 다른 생존 전략을 갖고 있다. 생존이란 환경이 요구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기 때문이다. 묘한 건 그런데도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능력도 있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어느 환경에서나 필요한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에 살든, 유럽에 살든 인간에게 공통적으로 필요한 능력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흥미로운 건 이들이 갖고 있는 이런 능력들이 요즘과 같은 불확실성 가득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인간에게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능력들이란 것이다. 환경이 요구하는 능력은 동물에게나 인간에게나 비슷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오래 살아왔어도 하등한 동물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그 말도 맞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가치가 낮아지는 건 아니다. 이들에겐 우리가 가지지 못한 게 있다. 우리가 살아보지 못한 수많은 불확실한 상황을 살아오면서,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면서 갖추게 된 능력이 그것이다. 요즘 공학계에서 생체 모방 공학이라는 이름으로 이들의 이런 생존력을 연구하고 상품화까지 하는 붐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는데, 이건 이들의 능력이 우리에게도 요긴하게 쓰일 수 있다는 방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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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그 오랜 시간을 살아오면서 터득한 생존의 지혜가 이런 하드웨어뿐일까? 생존 전략이나 생존의 노하우라는 소프트웨어에는 더 많은 지혜가 담겨 있을 것이다. 장수에는 그만한 전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운이 좋았을 수도 있었겠지만 운이 계속되는 일은 거의 없다. 또 능력이 있어야 운도 따른다. 좋지 않은 선입견 대신 이들의 생존 노하우에 초점을 맞춘다면 상당한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졸리고 딱딱하지만 잘 읽어야 무언가를 얻을 수 있는 고전처럼 이들에 대한 비호감을 넘어야 생존의 지혜에 접근할 수 있는데, 어떤 주인공부터 만나보는 게 좋을까? 아무래도 가장 먼저 탐색해 볼 대상은 상어다. 보통 장수 생명체들은 덩치가 작은 편이 많은데 이들은 거대한 덩치로 수많은 시대와 위기를 헤쳐왔기 때문이다. 그것도 4억 년 넘게 말이다. 덩치 큰 기업이나 개인들이 장수하기가 힘들듯 이들도 마찬가지였을 텐데 이들은 어떻게 그 덩치를 유지하며 지금까지 살아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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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생겨난 4억3000만∼4억5000만 년 전은 그야말로 아득히 먼 시간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원시 생명체의 대표 격인 삼엽충이 이때 최초로 눈을 만들어 번성하기 시작했는데 이즈음 지구 생태계는 다섯 번의 대멸종 중 첫 번째인 ‘오르도비스기 대멸종’으로 커다란 격변을 겪고 있었다. 상어들이 오르도비스 대멸종을 겪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때 즈음 출현한 상어들은 이후 일어난 네 번의 대멸종과 수많은 중소 규모의 멸종 사태를 고스란히 겪었다.2 우리가 공포감을 느끼는 무시무시한 능력도 이 과정에서 장착하게 됐을 텐데 사실 이들의 능력은 단순히 공포로만 표현될 만한 게 아니다. 면면을 보면 지금까지 살아 있을 만한 자격이 충분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들은 오랜 이력답게 440여 종이 넘는 다양성을 자랑한다. 그만큼 생태계 곳곳에 포진해 있다. 어른 팔뚝만 한 작은 종에서부터 길이 18m, 몸무게 20t인 고래상어까지 크기도 다양하다. 하나같이 자신이 서식하는 생태계에서 강력한 존재감을 자랑하는 게 특징이다. 서식지 개척을 위해 덩치는 줄였지만 대체로 다른 종으로 진화하기 이전의 능력을 그대로 갖고 있는 덕분이다. 그만큼 그들이 갖고 있는 능력이 어느 곳에서나 통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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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어 중에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캐스팅’해 ‘죠스’라는 이름으로 악명을 떨친 백상아리가 가장 유명하다. 백상아리는 다 크면 보통 길이 6m에 몸무게가 3t이나 나가는, 상어 중에서 가장 강력한 포식자다. 덩치가 크다고 둔하다고 생각하면 오해다. 이들은 물속에서 시속 40㎞의 속도를 낼 수 있고 수면 위로 3∼4.3m나 점프할 수 있다. 시속 40㎞면 100m 세계 기록 보유자인 우사인 볼트보다 빠른 속도이고(그것도 물속에서!), 몸무게 70㎏인 성인 인간은 1m도 점프하기가 힘든 데 반해 3t의 덩치로 수면 위 3∼4m 높이까지 점프하는 것도 보통 능력이 아니다. 속도는 사냥감 추적에 사용하고, 점프는 바깥 상황을 살피거나 공격을 해야 하는 순간에 구사한다. 다른 상어들도 이 정도는 아니더라도 대부분 뛰어난 민첩성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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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어들은 이런 능력으로 눈 깜짝할 사이에 들이쳐 먹잇감을 덥석 문다. 그런 다음 놓지 않는다. 한 번 물었다 하면 절대 놓지 않는 집요한 사람을 ‘상어 같다’고 하는데(예를 들면 전 세계 미디어 업계를 장악하고 있는 루퍼트 머독이 있다) 이는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절대 과장이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상어는 4억여 년 전 가장 완성된 형태의 턱을 최초로 개발한 주인공인데다 보통의 동물들과는 완전히 다른 이빨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어릴 때 한 번 교체하면 다시는 나지 않는 우리 인간의 치아와 달리 상어의 이빨은 마치 우리의 손톱과 발톱이 그렇듯 계속 재생된다. 더구나 이빨이 한 줄도 아니고 6∼8겹으로 촘촘히 입 안 가득 나 있다. 상어의 아래턱을 해부해 보면 새로 돋아날 이빨이 줄을 서서 대기하듯 가지런하게 놓여 있을 정도다. 이런 식으로 죽을 때까지 평생 수천 개의 이빨을 소비한다(3만 개까지 난다는 주장도 있다). 이런 이빨이 강력한 턱에 가득 장착돼 있으니 이빨 손상에 대한 걱정 없이 마음껏 물 수 있고 한번 물면 놓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상어의 이런 턱은 무시무시해 보이는 것과는 달리 생각보다 무는 힘이 강하지 않다. 230∼270㎏ 정도에 ‘불과하다’. 세계 최강 악어의 턱과 비교하면 3분의 1이나 4분의 1의 수준이다. 일단 꿀꺽 삼키는 걸 최우선으로 하는 까닭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최강의 포식자 백상아리는 무게 3t에 6m나 되는 몸길이를 가졌는데도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들이닥친다. 이들이 먹잇감에 달려들어 덥석 물 때부터 꿀꺽 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불과 0.05∼0.07초! 그러니까 1초도 안 되는 시간에 꿀꺽한 다음, 언제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유유히 사라진다. 이렇듯 덩치가 크면서도 민첩성이 뛰어나니 ‘죠스’라는 블록버스터 영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다만, 알려진 것과 달리 사람을 그리 많이 공격하지 않는다. 3

이 정도면 4억 년을 살 수 있을까? 상어는 그렇지 않다는 걸 알려준다. 진화는 필요치 않은 것을 갖고 있지 않으려 하기에 상어가 상시 사용하고 있는 능력을 보면 또 다른 장수의 조건을 알 수 있다.

상어는 앞에서 말한 공격력뿐 아니라 기회를 탐지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후각이 대표적인데 여의도만 한 곳에 피 한 방울만 떨어져도 이걸 감지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런가 보다’ 싶겠지만 사실 이건 보통 능력이 아니다. 여의도 근처를 지나다가 여의도 어느 맛집에서 나는 파스타 냄새를 맡을 수 있다면 어떨까? 이런 사람이 있으면 단박에 세계적인 유명 인사가 될 텐데 상어가 바로 이런 능력을 가졌다. 넓은 바다에서 살려면 이런 능력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피 냄새만이 아니다. 떼를 지어 다니는 물고기들은 개미가 그렇듯 위험이 닥치면 페로몬 같은 화학 물질을 분비해 의사소통을 하는데 이것도 기막히게 맡는다. 우리 식으로 하자면 상대방이 무선 교신하는 걸 엿들을 수 있는 것이다. 상어의 뇌를 보면 3분의 1이 후각을 담당할 정도로 여기에 투자를 많이 하고 있는데 덕분에 0.01ppm4 까지 감지할 수 있다. 시야가 흐려지기 쉬운 바닷속 환경에 대비한 능력이다.

그렇다고 다른 감각이 뒤처지는 것도 아니다. 백상아리의 경우 고양잇과 동물들처럼 망막 뒤의 반사판이 빛을 증폭시켜 주기 때문에 어둠 속 시력이 고양이보다 두 배나 좋다. 고양이의 야간 시력이 우리보다 다섯 배 정도 좋으니 백상아리의 야간 시력은 우리보다 열 배가 좋다는 의미다. 청각도 예민해서 먼 곳에 있는 물고기의 심장박동 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상어 귓속(중이)에는 깊이를 측정하는 기능까지 있다. 또 물고기이니 물고기들이 갖고 있는 측선도 갖고 있어 이걸로 시각이나 청각으로 감지할 수 없는 미세한 떨림이나 수압의 변화를 느낀다. 측선이란 머리 쪽에서 꼬리 쪽으로 몸의 양쪽을 가로지르는 액체가 들어 있는 가느다란 관을 말한다. 지름이 0.03㎜ 정도밖에 안 되지만 1㎞ 거리에 있는 생물들이 만들어내는 미세한 떨림을 감지할 수 있다. 누구에게도 비할 바 없는 엄청난 ‘촉’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 덕분에 완전히 캄캄하면서도 지형이 복잡한 곳을 마치 안방 드나들 듯 다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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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웬만한 능력을 다 갖고 있는 듯한데 이게 다가 아니다. 한 가지가 더 남았다. 세상 누구에게도 없는, 오로지 자신들만 갖고 있는 ‘로렌치니 기관’이 그것이다. 상어의 코와 입 주변을 보면 작은 구멍이 송송 뚫려 있는데 물론 그냥 있는 게 아니다. 이 작은 구멍들은 피부밑 세포들과 연결돼 있어 25m 이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를 마치 CCTV를 보듯 파악할 수 있다. 물고기들이 근육을 움직일 때 생겨나는 미세한 전기 신호까지 포착할 수 있다. 앞에서 말한 측선과 같이 가동시키면 초정밀 레이더가 따로 없다. 앞의 기능만 해도 충분할 것 같은데 왜 이런 것까지 갖고 있을까? 물속은 심해가 아니더라도 캄캄할 때가 많아 근접 상황에서는 좀 더 민감한 감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덩치는 육중해 보여도 감각은 대단히 섬세하다. 우리가 말하는 육감을 거의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에게 인상이 강한 상어를 주로 설명했지만 다른 장수 주인공들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악어는 작은 다리로 느릿느릿 기어 다니는 데다 덩치도 커서 상당히 둔할 것 같아 보인다. 실제로 평상시엔 그렇다. 이 또한 오해다. 노리는 먹잇감을 잡아챌 때 이들의 속도는 1m에 0.2초, 그러니까 1초에 5m를 움직일 수 있다. 전광석화가 따로 없다. 이 때문에 평상시 미동이 없는 악어만 생각한 채 기념사진을 찍겠다고 악어 곁으로 다가갔다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이들이 꽤 된다. 쿠바 악어는 그 육중한 몸으로 점프까지 하는데, 그렇게 해서 수면 위 나무에 앉아 있는 새를 단숨에 꿀꺽한다. 미움의 대명사 바퀴벌레 또한 마찬가지다. 초감각을 갖고 있어 우리가 발견하기 전에 우리를 발견하고, 우리가 먼저 발견한다 해도 우리의 눈보다 더 빨리 도망간다.

그래서 1억 년 이상 살아오고 있는 장수의 주인공들이 갖고 있는 첫 번째 비결을 꼽는다면 ‘상대가 예상치 못한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들이 노리는 사냥감이든 아니면 반대로 자신을 노리는 포식자든 상대의 예상을 뛰어넘는 능력을 갖춰야 기회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고 위기를 잘 피할 수 있는 까닭이다. 그러려면 기회와 위기를 누구보다 더 잘 탐지할 수 있어야 하기에 앞에서 말한 예민한 감지 능력 또한 갖고 있어야 한다. 5 이는 투쟁과 도주, 짝짓기와 번식이라는 생존의 네 가지 기본 조건과도 부합한다. 상대가 예상치 못한 능력은 투쟁과 도주, 그러니까 싸우거나 피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원리가 우리에게도 필요할까? 말할 필요도 없다. 스포츠에서 왼손잡이들이 각광받는 이유가 대표적이다. 우리는 대부분 오른손잡이인 까닭에 어떤 동작을 할 때 상대의 오른손 반응을 예상한다. 그런데 이럴 때 왼손을 뻗으면 어떨까? 훨씬 유리할 수밖에 없다.

개인이 회사에서 인정받을 때나 기업이 시장점유율을 늘려가야 할 때도 마찬가지다. 개인은 ‘이 정도 할 것 같다’는 기대 범위 안에 속하는 성과를 내서는 일 잘한다는 말을 들을 수 없다. 기대한 것 이상을, 그러니까 고객과 시장이 예상하는 것 이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대결에서는 더 그렇다. 알렉산더대왕과 한니발, 칭기즈칸과 나폴레옹, 그리고 롬멜은 모두 전쟁사에서 이름을 뚜렷하게 남긴 사람들이다. 그들이 싸운 적들까지 인정할 정도였는데 핵심은 바로 상대가 예상치 못한 시간과 장소에 나타나 허를 찌르는 민첩함이었다. 이를 위해 기병을 잘 썼고 나폴레옹은 기병과 같은 효과가 있는 포병을, 롬멜은 차량과 탱크를 잘 활용했다.

사실 먼 사례를 들 필요도 없다.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질문 하나를 던져보겠다. 여러분은 누구나 예상 가능한 미래를 가진 사람이 되고 싶은가, 아니면 예상할 수 없는 미래를 가진 사람이 되고 싶은가? 방향이 올바르다면 당연히 후자일 것이다. 누군가를 평가할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도 예상치 못한 능력이 아주 많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 소장 araseo11@naver.com
필자는 경향신문, 이코노미스트 등에서 경영 전문 기자로 활동했으며 대표 저서로는 대한민국 리더의 고민과 애환을 그려낸 『사장으로 산다는 것』을 비롯해 『사장의 자격』 『시작하라 그들처럼』 『사자도 굶어 죽는다』 『살아 있는 것들은 전략이 있다』 등이 있다.
  • 서광원 |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 생존경영연구소장
    - <경향신문>, <이코노미스트> 등에서 경영 전문 기자
    araseo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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