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 Column
필자가 『당신이 알던 모든 경계가 사라진다(부제: 빅블러의 시대, 가장 큰 경쟁자는 경계 밖에 존재한다)』에서 세계 최초로 ‘빅블러(Big Blur)’, 즉 경계 융화가 일어나는 현상에 대한 개념을 정의하고 알린 지 벌써 10년이 다 돼 간다. 필자가 정의한 빅블러는 ‘소비자 역할, 기업 관심사, 서비스 역할, 비즈니스 모델, 산업 장벽, 경쟁 범위의 6가지 측면에서 동시다발적인 힘이 작용하며 생산자-소비자, 소기업-대기업, 온•오프라인, 제품 서비스 간 경계 융화를 중심으로 산업•업종 간 경계가 급속하게 사라지는 현상’을 뜻한다. 책에서는 빅블러가 4차 산업혁명 시대, 비즈니스 모델 대충돌을 일으키게 될 현상이라는 맥락으로 설명한 바 있다.
빅블러란 용어가 제시된 지 10년이 지난 요즘, 이 단어는 이제 정책 기관, KB•NH•우리금융의 최고경영자 등 금융권 리더들의 기념사에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시대적 화두가 됐다. 금융권뿐만이 아니다. 최근 업종별로 경계 융화 현상이 나타나면서 빅블러 현상은 점점 가속화되고 있는 모양새다. 일례로, 편의점이 컬래버레이션 기반 상품 유통점으로 진화한 사례나 빙수 전문점 설빙이 짜장면을 팔고, 교촌치킨이 버거를 파는 사례 등도 빅블러 현상의 단적인 예다. 그런가 하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집의 용도가 확장되면서 주거와 상업 지역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현상도 빅블러 현상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 이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일어나는 변화들이 빅블러라는 경계 융화의 프레임 내에서 해석되는 움직임 자체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빅블러 개념의 출처와 개념이 잘못 알려지는 경우도 종종 있어 아쉽다. 가장 아쉬운 부분은 빅블러의 개념 자체를 오해하는 경우다. 이 용어가 인용되는 과정에서 빅블러의 경계 융화를 전통적 개념인 융합과 혼동해서 쓰는 사례가 꽤 자주 목격되곤 한다. 결론적으로 융화와 융합, 둘은 서로 다르지만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다. 융화는 서로 다르다고 인식되던 것들 사이의 차이가 사라짐에 대한 것으로, 우리의 의도와 무관하게 발생한다. 융합은 서로 다른 것이 결합하는 것으로 주로 우리의 의도에 의해 일어난다. 르네상스와 산업혁명도 서로 다른 지역의 사람, 기술과 문화가 합쳐지면서 발생했는데 이때 ‘경계의 사라짐’이 선행됐다. 경계가 사라지는 융화는 결과적으로 융합 자체를 용이하게 만든다. 또한 의도적인 융합 활동에 의해 융화가 촉진되기도 한다.
빅블러 혁명, 또는 빅블러 시대는 우리를 어디로 이끄는 것일까. 고객은 더 많이 요구하게 될 것이고, 기업은 더 많은 상상력을 필요로 하게 된다. 경계가 사라지면서 고객은 다른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좀 더 자주 인식하게 되고 과거에는 경계 내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통념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려 한다. 또한 기업은 경계의 사라짐으로 인해 다른 경계에 있던 기업과 비즈니스 모델이 충돌하는 상황을 더 자주 경험하게 된다. 서로 의도치 않았는데도 충돌하는 경우도 있지만 빅블러(경계 융화)를 성장 모멘텀 삼아 진화하려는 기업들에 의해 산업 전반을 아우르는 빅뱅(대충돌)으로 확대되는 경우가 많다. 우주의 빅뱅 자체가 무에서 유를 만드는 생산적 사건이었듯 빅블러로 인한 빅뱅 역시 세상이 더 나은 방향으로 끊임없이 진화하도록 만드는 동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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