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역사

덩치 커서 멸종? 공룡은 억울하다

320호 (2021년 05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6500만 년 전 갑작스런 소행성의 충돌로 수많은 지구 생명체는 멸종을 맞아야 했다. 백악기 대멸종이라 불리는 이 사건으로 전체 생물종의 70∼80%가 사라졌다. 식물과 작은 동물들이 사라지자 중생대를 주름잡던 공룡 역시 운명을 달리했다. 이 같은 상황은 과거형이 아니다. 2013년 러시아는 지역 내 운석우가 떨어져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지능과 문명이 발달한 인간도 소행성의 낙하를 예측하지 못한 것이다. 몸집이 비대한 공룡이 무능해서 멸종했다고 볼 수만은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편집자주
45억 년 전 생겨난 지구에 생명이 탄생한 건 36억 년 전이다. 30억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미미하게 존재하던 지구의 생명들은 5억4000만여 년 전 대폭발 등을 거치며 전성기를 맞아 약진하기 시작했다. 일명 ‘캄브리아기 대폭발’이 그것이다. 이때부터 생명들은 놀랄 만큼 다양해지고 크기가 커지며 진화한 동시에 숨 가쁜 생존 경쟁을 시작했다.

하지만 생존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300억 종의 생명체가 출현했지만 99.9%가 멸종한 것이 그 증거다. 0.1%의 생존율. 무엇이 이 수치를, 그러니까 살아 있음과 사라짐을 결정했을까? 살아 있는 생명체는 어떻게 생존의 끈을 이어왔고, 사라진 생명체들은 무엇 때문에 그런 운명을 맞이했던 것일까? 생명의 역사를 멸종과 장수, 번성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짚어보는 기사를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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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00만 년 전 어느 날 지구에 불청객 하나가 날아들었다. 이 정체불명의 불청객은 우주를 떠돌던 소행성이었는데 대기권을 돌파하면서 생겨난 거대한 화염과 함께 지금의 멕시코 유카탄반도 부근에 충돌했다. 단순한 불청객이 아니었다. 지름이 10∼15㎞나 되고 무게가 10억 톤에 달하는, 지구에서 가장 높다는 에베레스트산만 한 크기였으니 말이다. 이 거대한 바윗돌이 지금의 제트여객기보다 더 빠른 속도(최대 시속 7만 ㎞, 최저 시속 3만2000㎞)로,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초속 20∼70㎞라는 속도로 당시 바다였던 유카탄반도(지금의 칙술루브(Chicxulub) 마을)에 부딪쳤던 것이다.

크기와 속도가 대단했던 만큼 충돌의 충격파 또한 어마어마했다. 떨어진 곳이 완충 역할을 해줄 수 있는 바다였는데도 불구하고 깊이 15∼20㎞, 너비(지름) 160∼170㎞, 둘레 240㎞나 되는 구멍(충돌구, 운석공)이 생겨났을 정도였다. 이때 발생한 지진 강도가 무려 리히터 13이었다. 보통 리히터 8이면 전 세계적인 재난이라고 하고, 리히터가 1씩 증가할 때마다 보통 10배, 최대 30배 정도의 에너지가 증가한다는 걸 감안하면 하늘과 땅이 무너지는 듯했을 것이다. 연구에 의하면 이 충격은 수소폭탄 1억 개가 동시에 폭발하는 것과 맞먹을 정도였다. 쉽게 말하면 서울의 3분의 1만 한 크기의 바윗돌이 떨어져 경기도만 한 구멍이 파인 것이다. 더구나 화염이 이글거리는 것이었으니 충돌 지점 근처 수십 ㎞의 바다는 눈 깜짝할 사이에 증발해버렸을 것이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아니, 시작에 불과했다. 충돌로 인한 여파는 먼저 리히터 13 규모의 지진이 만들어낸 거대한 쓰나미로 나타났다. 이 상황을 이해하려면 지난 2011년 3월11일, 일본 동북부 지역에서 발생한 대지진을 떠올려보는 게 좋을 듯하다. 이때의 강도(진도)가 리히터 9.0이었는데 이로 인해 발생한 일명 ‘죽음의 쓰나미’는 높이가 20m였다. 이 쓰나미는 후쿠시마 원전에 설치된 8m의 안전 벽을 쉽게 넘어 버렸고 이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렸다. 2만 명 가까운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지금도 후유증을 앓고 있을 정도다.

리히터 9.0이 이 정도이니 리히터 13은 어땠을까? 단순 계산만으로도 여파가 일본 동북부 지진보다 1만 배(10배×10×10×10)에서 최대 81만 배(30배×30×30×30)까지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양한 연구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종합해 보면 당시 생겨난 쓰나미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했던 것 같다. 음속에 가까운 시속 960㎞의 속도에, 높이가 100∼300m쯤 되는 ‘초슈퍼’ 쓰나미가 생겨나 미국 중심부 내륙을 높이 300m의 파도로 덮어버리고, 5시간 만에 전 세계를 덮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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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내용을 다룬 영화 ‘딥임팩트(Deep Impact)’를 보면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영화에서는 지구로 날아오는 소행성을 폭파하기 위해 우주선 ‘메시아’를 급파해 핵폭탄으로 산산조각 내려 하지만 실패한다. 소행성은 두 개로 분리된 채 여전히 지구로 향한다. 메시아는 어쩔 수 없이 더 큰 소행성에 충돌, 자폭함으로써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만 작은 소행성은 그대로 날아와 지구에 충돌한다. 이로 인해 거대한 쓰나미가 세상을 덮치는 영화다. 영화적으로 표현했다고 생각하겠지만 여기에 나오는 쓰나미 영상은 지극히 사실적이다. (영화 ‘2012’에 나오는 쓰나미는 더 위력적이어서 히말라야산맥을 넘실거릴 정도다.)

다시 6500만 년 전으로 돌아가면, 충돌로 일어난 지진과 쓰나미(2차 충격)가 전 세계 대륙을 휩쓸고 있을 때, 숨 돌릴 틈도 없이 3차 충격이 시작됐다. 소행성이 충돌하는 순간 상공 100㎞까지 튀어 오른 수백만 톤의 암석이 대기를 타고 지구를 돌아다니며 전 대륙에 불타는 암석들을 벼락처럼 쏟아붓기 시작했던 것이다. 수소폭탄이 6㎞마다 하나씩 터진 것과 같은 상황이었다. 하늘이 무너지고 세상이 불타는 지옥이라는 게 이런 상황이었을까? 만약 이런 일이 인천 앞바다에서 벌어졌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나라는 아마 1분도 안 돼 거대한 해일에 잠겨버렸을 것이고, 일본과 중국도 2분 정도 만에 쓰나미의 습격을 받거나 불에 탔을 것이다. 세상이 5시간 만에 물바다가 돼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곧이어 들이닥친 불벼락으로 세상이 불바다로 변하는 새로운 지옥이 펼쳐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물바다와 불바다가 된 세상에 3일째부터 비가 오기 시작했다. 드디어 소강상태가 시작됐던 걸까? 아니었다. 불행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는 법. 충돌하면서 파편으로 변한 바위에서 나온 유황이 황산으로 변해 이것이 산성비로 지구 전역에 뿌려지기 시작했다. 하루 이틀 내리는 비가 아니었다. 무려 수십 년 동안이나 이런 비가 지구 전역을 적셨다.

그런데 이것도 끝이 아니었다. 더 치명적인 결정타가 남아 있었다. 대기 중에 가득한 먼지와 구름 때문에 해를 볼 수 없었다. 캄캄한 암흑 같은 시간이 4개월 정도 이어졌고 1년이 지나서도 햇빛 보기가 힘들었다. 이후에도 대기에 가득 찬 아황산가스가 빛을 막는 바람에 지구는 차디찬 빙하기라는 터널 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왜 이게 결정타였을까? 지구상의 생태계는 대부분 햇빛을 기본 조건으로 한다. 식물이 광합성을 하면 그걸 초식동물이 먹고, 그 초식동물을 육식동물이 사냥하는 식이다. 시간이 흘러 육식동물이 죽으면 미생물들이 분해하면서 흙 속에 영양분이 축적되고 이걸 식물이 뿌리로 흡수해 잎에서 만든 광합성과 함께 살아가는 선순환이 생태계의 기본 구조를 이룬다. 그런데 이런 구조의 전제조건인 햇빛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숲이 얼고 말라버리자 초식동물들이 사라졌고, 초식동물이 사라지자 육식동물 또한 이 비극에 이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태는 적어도 50만 년, 길게는 수백만 년 동안 이어졌다.

말할 것도 없이 수많은 생명체가 가뭇없이 사라져갔다. 바다에서는 몸길이 10m를 넘던 우람한 어룡들이 사라졌고 오랜 시간 생존해왔던 암모나이트 또한 자취를 감췄다. 육지 역시 그동안 세상을 지배해왔던 공룡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최근 공룡들 중 비교적 작은 몸집의 공룡이 조류(새)로 진화했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어쨌든 중생대에 살았던 모습의 공룡들은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공룡에 밀려 밤의 세계에서 근근이 살아가던 포유류 또한 3분의 2가 같은 운명을 맞았다. 지구 전체로 보면 생물종의 70∼80%가 멸종해버린, 캄브리아기 이후 다섯 번째 멸종 사건인 백악기 대멸종이다.1

중요한 건 여기에 나오는 70∼80%라는 수치가 개체 차원이 아니라 종(種) 차원이라는 것이다. 생명을 분류하는 가장 기본 차원인 종의 70∼80%가 영원히 함몰돼버린 것이다. 개체의 70∼80%가 사라지면 복원될 수 있지만 종이 사라지면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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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게 있다. 우리는 공룡이 한때 지구 최강의 존재였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영화 ‘쥬라기공원’의 영향이다. 그러면 이 최강의 존재는 얼마 동안이나 지구를 군림했을까?

위력적이었으니 몇백만 년쯤 될까? 아니 몇천만 년? 대체로 둘 중 하나를 꼽는다. 하지만 둘 다 틀렸다. 공룡이 지구의 최강자였던 시간은 무려 1억5000만 년 이상이다. 2억5000만여 년 전부터 백악기 대멸종이 일어난 6500만 년 전까지를 중생대라고 하는데 공룡은 이 대부분의 시간을 지배적인 존재로, 그러니까 중생대의 주인공으로 지냈다. 우리 호모사피엔스가 출현한 게 길게 잡아야 30만 년 정도이고, 오스트랄로피테쿠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해도 최대 600만 년이라는 걸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시간이다. 이 시간 동안 공룡은 수천, 수만 종으로 변화하고 진화했을 텐데 새들이 공룡의 후예라는 걸 인정한다면 이 다양한 공룡이 ‘거의 다’ 멸종해버린 것이다. 2

이렇게 번성했던 공룡이 왜 비운의 주인공이 됐을까? 우리들이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너무 비대한 탓에 둔해지고 적응력이 떨어져서 그랬을까?

멸종한 생명체들이 그렇듯 화석으로만 남아 있다 보니 전모를 파악할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의 연구를 종합해 볼 때 공룡의 멸종은 공룡 탓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공룡 탓’이라는 건 당시 상황이 가혹했는데도 살아남은 생명체들이 있기 때문이다. 살아남은 생명체들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설명할 텐데 ‘공룡 탓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건 뭘까?

포식자의 경우 보통 몸무게가 20㎏이 넘어가면 먹이가 바뀐다. 아니, 바꿔야 한다. 작은 사냥감으로는 덩치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좀 더 큰 먹잇감을 사냥하거나 아니면 작은 걸 자주 먹어야 한다. 하지만 자주 사냥하는 건 에너지 소모가 많아지기에 대부분 커다란 사냥감을 노리는 쪽으로 전환한다. 사자나 호랑이가 토끼를 사냥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들이는 노력에 비해 결과가 하찮기 때문이다. 잡식성인 북극곰은 조개나 산딸기도 먹지만 이건 주요 사냥감인 바다표범을 잡지 못했을 때를 위한 것이다.

그래서 앞에서 말한 대멸종 같은 상황이 일어나면 이런 동물들이 가장 먼저, 그리고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 덩치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먹이를 먹어야 하는 대형 동물들이 먼저 사라지니 이런 대형 동물을 노리는 몸무게 20㎏ 이상의 포식자도 마찬가지 신세가 되는 것이다. 한껏 전성기를 누려온 공룡은 대부분 이 정도 이상의 몸집을 가졌을 것이니 치명적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많은 연구는 백악기 대멸종 당시 20㎏ 이상의 체중을 가진 동물은 거의 멸종했고, 10㎏ 이상도 70% 이상이 멸종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앞에서 설명했듯 소행성 충돌의 후유증이 최소한 50만 년, 길게는 수백만 년 동안 이어지다 보니, 적어도 육지의 경우 고양이보다 큰 동물은 모두 멸종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지구 생태계가 완전하게 회복된 건 거의 1000만 년이나 지나서였다. 한마디로 공룡은 덩치가 크긴 했지만 오로지 덩치 때문에 멸종한 건 아니라는 뜻이다.

만약 공룡이 비대해서 멸종했다면 일반적으로 10∼20톤씩 나가는 공룡에 비해 너무나 작아 ‘비대하다’란 수식어와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우리 인간은 어떨까? 앞에서 말한 소행성 충돌이 지금 일어난다면 우리는 무사할 수 있을까?

지난 2009년 3월, 너비 60m짜리 소행성이 지구 근처를 지나간 적이 있다. 수소폭탄 1개의 위력으로 추정된다. 이런 일은 과거형이 아니다. 우주에는 이런 크고 작은 소행성이 수없이 떠돌아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 중 지구로 날아올 가능성이 있는, 백악기 대멸종을 일으킨 수소폭탄 1억 개짜리와 같은 규모를 가진 지름 10㎞짜리 소행성도 있다.

실제로 2013년 2월15일 오전 러시아 우랄산맥 동쪽 첼랴빈스크주 일대에 운석우(隕石雨)가 떨어져 부상자만 1200명이 넘었고 3000여 채의 건물이 파손됐다. 러시아 과학기술원에 의하면 지름이 17∼20m에 무게 약 10톤인 운석이 지상 30∼50㎞ 상공에서 폭발한 것이었다. 보통 지름 50m 이상을 소행성이라고 하고, 이하를 운석이라고 하는데 지름 20m짜리가 이런 피해를 낸 것이다. 놀라운 건 이 운석이 대기권에 돌입하기 전까지 그 존재를 아무도 몰랐다는 것이다.

영화 ‘딥임팩트’에서는 불과 10개월 전에 소행성이 지구로 날아오는 게 확실하다는 것을 확인한다. 현실은 어떨까? 비슷하다고 하는데 크기가 작을수록 발견하기 어렵다는 게 문제다. 앞에서 말한 러시아 운석우가 떨어진 16시간 뒤인 2월16일 오전4시25분(GMT 19시25분), 이것의 두 배 정도 되는 45m 크기의 소행성이 인도양 근처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슬아슬’하다고 한 건 이 소행성이 방송과 통신을 중계하는 정지궤도위성이 있는 곳(궤도 3만6000㎞)보다 더 가까운 거리를 지나갔기 때문이다. 이 바윗덩어리는 러시아 운석우와는 무관했다.3

우리 인간은 공룡과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문명을 이루고 있지만 우리 또한 불행을 피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러니 굳이 공룡의 잘못을 따진다면 그 긴 시간 동안 뇌와 문명 같은 고도화를 하지 않아 소행성이 오는 것을 예측하지 못했고, 그에 대한 대비도 하지 못했다는 것일 수는 있다. 물론 아직은 우리 인류도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그런데 공룡이 비대하고 무능해서 멸종했다는 단정적인 믿음은 왜 아직도 세상에 퍼져 있을까? 지금도 많은 사람, 특히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들까지 공식 석상에서 공공연하게 부정적인 뉘앙스를 담아 ‘공룡 조직’이나 ‘공룡처럼’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런 사고방식은 어디서 생겨난 걸까?

영국 브리스틀대 척추고생물학 교수인 마이클 벤턴은 그의 책 『대멸종』에서 수많은 문헌을 뒤진 끝에 최초의 기원자를 찾아냈다고 밝히고 있다. 20세기 초 런던 자연사박물관장을 지낸 아서 스미스 우드워드가 그 주인공인데 1909년 영국과학진흥협회 연설에서 이런 내용의 강연을 한 것이 학계와 세상에 점차 받아들여졌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만 해도 한 번에 수많은 생명체가 몰살하는 ‘대멸종’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기에 모든 생명체는 탄생과 성장, 그리고 노화를 통해서만 사라져간다고 믿고 있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자기 덩치에 못 이겨 적응력이 바닥 나는 바람에 멸종했다는 게 자연스러웠을 수 있다. 지식의 한계가 오류를 만든 셈이다.

사실 이 표현이 일반화된 데는 시대적인 상황이 더 큰 역할을 했을 수도 있다. 당시 영국은 해가 저물지 않는 대영제국의 시대를 만끽하고 있었는데 그들에겐 거대한 인도나 중국, 아메리카 대륙의 나라들이 왜 지리멸렬한 신세가 됐는지를 온 세상에 알려줄 논리가 필요했다. 그런 그들에게 아무리 덩치가 커도 능력이 없으면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공룡 멸종설’은 비할 바 없는 은유적 표현이었다. 더 나아가 덩치가 커지는 자신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효과도 있었다. 자신들의 제국주의 논리를 정당화하고 전파하는 데 공룡의 멸종과 능력의 관계는 아주 효과적이었다.

특히 20세기 들어 기업이 시대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면서 더 그랬을 것이다. 국가가 독점하다시피 했던 조직을 갖게 된 기업의 쇠퇴를 설명하고 경종을 울리기에 이만한 표현이 어디 있겠는가? ‘공룡 조직’이 되면 ‘공룡처럼’ 사라진다는 표현은 더할 나위 없는 것이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유명한 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가 남긴 말이 있다.

“공룡이라는 말은 욕이 아니라 찬사가 돼야 한다. 공룡은 1억2000만 년이 넘도록 최고의 자리에서 군림하다가 사라졌지만 그것은 그들 자신의 잘못 때문이 아니었다.”4

공룡의 큰 덩치는 그렇다면 멸종과 아무런 상관이 없을까. 다음 편에서 관련 내용을 소개한다.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 소장 araseo11@naver.com
필자는 경향신문, 이코노미스트 등에서 경영 전문 기자로 활동했으며, 대표저서로는 대한민국 리더의 고민과 애환을 그려낸 『사장으로 산다는 것』을 비롯해 『사장의 자격』 『시작하라 그들처럼』 『사자도 굶어 죽는다』 『살아있는 것들은 전략이 있다』 등이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21호 Power of Voice 2021년 05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