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를 통해 본 세상

분식회계 사태, 3150억대 소송을 뒤집다

257호 (2018년 9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한화의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은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건이 터지면서 처음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계약 초기 한화는 산업은행에 이행보증금 3150억 원을 지급한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조선업계 상황이 급격히 변하면서 한화가 인수전에서 발을 뺄 것을 우려한 산업은행은 한화에 본계약 체결을 종용하게 되고 한화는 실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상황에서 본계약을 체결할 수 없다며 인수전에서 발을 뺀다. 이후 이행보증금 3150억 원에 대한 소송이 진행되는데 1·2심에서는 한화가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한 데 대한 책임을 물어 산업은행의 손을 들어준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 전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태가 터지면서 분위기는 급반전한다.



편집자주
최종학 서울대 교수가 딱딱하고 어렵게만 느껴지는 회계학을 쉽게 공부할 수 있도록 ‘회계를 통해 본 세상’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독자들이 회계를 받아들이고 비즈니스에 잘 활용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지난 2008년, KDB산업은행(이하 산업은행)은 계열사로 거느리고 있던 대우조선해양을 매각하겠다고 시장에 매물로 내놨다. 포스코, GS, 현대중공업과 치열한 경합 끝에 한화그룹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인수대금은 6조3000억 원이다. 3주간 실사를 거친 후 발견된 사항에 따라 3% 범위 내에서 가격을 조정하고, 그 후 2009년 3월까지 본계약을 체결하는 것과 동시에 인수대금을 납부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 소식이 발표되자 한화그룹 전 계열사의 주가가 동반 하락한다. 시장에서는 한화의 입찰 전 승리가 ‘승자의 저주’에 해당한다면서 한화그룹의 형편으로 볼 때 인수대금이 너무 커서 한화그룹의 경영 상황이 앞으로 악화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양해각서를 체결하기 직전인 2008년 가을부터 세계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경제 상황이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했다. 한화가 6조3000억 원의 인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매각할 예정이었던 계열사 주식이나 부동산의 가치는 급락하고, 한화에 돈을 빌려주기로 했던 금융사들은 훨씬 더 높은 이자율을 요구했다. 대우조선해양도 신규 수주가 급감한다. 이런 상황에서 산업은행은 한화에 ‘2008년 12월29일까지 본계약을 체결하고 실사 여부와 관계없이 2009년 3월 말까지 모든 대금을 납부하라’는 양해각서 조건의 변경을 강력히 요청해서 이를 관철한다. 원래 양해각서 초안에 있던 ‘실사 후 본계약 체결’이라는 내용을 바꾼 것이다. 이 조항을 포함시키지 않는다면 양해각서를 체결하지 않겠다는 산업은행의 압박에 한화가 마지못해 동의한 것으로 보인다.

한화와 산업은행의 갈등과
한화의 대우조선해양 인수 포기
양해각서에 따라 한화는 우선 계약금의 5%로 책정된 이행보증금 3150억 원을 납부했다. 이 계약금은 위약벌(계약을 어기는 것에 대한 벌)이라고 계약서에 쓰여 있었다. 만약 한화 측의 귀책 사유로 최종 계약이 무산되면 산업은행이 이행보증금을 몰취하고, 그 반대로 한화 측에 책임이 없는 사유로 계약이 무산되면 한화가 원금과 이자를 돌려받을 수 있다고 돼 있었다. 만약 양해각서가 해지될 경우에는 이 금액을 제외한 기타의 손해배상이나 원상회복 등 일체의 다른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고도 명시돼 있었다. 1

그런데 한화는 양해각서에 서명하고 이행보증금을 납부한 후에도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실사를 진행할 수 없었다. 2 매각 위로금 지급 등을 요구한 노조가 한화 측의 회사 출입을 막고 자료 제공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산업은행도 한화의 실사를 돕기 위한 별도의 행동을 취하지 않고 무관심한 태도를 보였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자 한화는 계약 조건을 변경해 달라고 요청한다.

(1) 매각 대금의 분할 납부, (2) 산업은행 보유 대우조선해양 주식의 전부 매각이 아닌 분할 매각, (3) 확인 실사 후 본계약 체결 등을 요구한 것이다. 하지만 산업은행은 이 요청을 거부한다. 그러자 한화는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포기했고 산업은행은 이행보증금 3150억 원을 몰취했다. 한화는 공돈만 날린 셈이다. 그렇지만 이런 소식이 알려지자 한화그룹 계열사의 주가가 일제히 상승한다. 자본시장에서는 오히려 한화가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포기한 것을 호재로 받아들인 것이다. 3

그 후 한화는 산업은행에 소송을 제기한다. 세계금융위기가 경영 환경에 많은 영향을 미쳐 대우조선해양의 가치가 급락한 것은 계약 내용에 중대한 변경을 일으키는 사건에 해당하며 부실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대우조선해양 노조의 반대와 산업은행의 비협조로 실사를 못한 만큼 계약조건을 이행하지 못한 것이 한화의 책임만은 아니라고 주장한 것이다. 실사는 M&A 과정에서 꼭 거쳐야 하는 절차인데, 이를 수행하지 못했으니 M&A 절차를 완료할 수 없었다는 주장이다. 즉 한화가 인수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실사를 못해서 인수 절차를 더 이상 진행할 수 없었다는 의미다. 따라서 이행보증금을 돌려달라고 소송했다.

그러나 이 소송에 대해 2011년 1심, 그리고 2012년 2심 법원은 모두 원고(한화) 측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때까지만 해도 한화가 법정 다툼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낮아 보였다. 법원의 판단 근거는 크게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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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소송전과 법원의 판단 근거
첫째, 한화는 대우조선해양이 우발채무나 부실의 발생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실사를 꼭 해야 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대우조선해양은 상장기업으로서 외부 감사를 받을 뿐만 아니라 산업은행이 대주주로서 대우조선해양에 직원을 파견해 엄격히 감독하고 중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으므로 숨겨진 우발채무나 부실이 존재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따라서 실사의 실익이 거의 없다.

둘째, 한화는 본계약 체결을 하지 못한 것이 전적으로 한화의 책임이 아니라 양 당사자 모두 일부분 책임이 있으므로 이행보증금 일부를 (즉 누가 얼마나 더 잘못했는지 비례적으로 따져서) 돌려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 주장은 이행보증금의 본질을 고려할 때 타당하지 않다. 우선 양해각서 문안을 보면 이행보증금은 위약벌이라고 명시적으로 규정돼 있다. 비례 책임을 따지는 손해배상액과는 달리 위약벌은 책임 정도에 따른 감액이 허용되지 않는다. 즉 손해배상액이라면 양측의 잘못을 따져서 잘못한 부분 정도만 비례적으로 보상하면 되지만 위약벌은 ‘올 오어 낫싱(all or nothing)’의 개념으로서 조금이라도 더 잘못한 측에서 모든 벌을 부담하게 된다. 더군다나 본 사건에서 계약 조건을 이행하지 않은 것은 한화의 책임이 더 크다. 한화 측은 세계금융위기 때문에 시장 상황이 바뀌었다고 주장하지만 양해각서 문안에는 ‘주식시장에서의 가격 변동 및 시장 상황 등 외부 경제 환경의 변화 및 그로 인한 영향’은 가격 조정 사유에서 제외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므로 이행보증금을 돌려 달라거나 비례 책임에 따라 나누자는 주장은 성립되지 않는다.

셋째, 산업은행이 이행보증금을 한화에 돌려주지 않는 것이 거래의 공정성을 현저하게 해치는 것으로 볼 수 없다. 이 사건으로 한화가 부당하게 큰 손해를 본 것처럼 보이지만 한화가 산업은행에 납부한 이행보증금은 거래대금의 5%로서 총 거래금액과 비교하면 액수가 크지 않다. 또한 이 사건의 결과로 대우조선해양의 매각절차가 2년 이상 지연되면서 산업은행도 피해를 입었다. 한화는 우선협상자 자격을 취득하고도 계약 체결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재는 불가피하다.

위와 같은 이유에서 법원은 한화 측의 주장이 합당하지 않으며 산업은행은 이행보증금을 돌려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실사를 하더라도 숨겨진 부실이 없을 것이므로 실사의 실익이 크지 않으며, 계약조건을 지키지 않은 데는 한화의 책임이 더욱 크고, 계약 내용이 한화에 부당하게 불리하지 않기 때문에 산업은행이 3150억 원 전액을 위약벌로써 산업은행이 가질 수 있다는 결론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한화가 재판에서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였다.

1·2심 결과를 뒤집은 대법원 판단의 근거
그런데 2심 판결 이후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2014년 들어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에서 대규모 적자가 발생하자 대우조선해양도 부실을 분식회계를 통해 숨겨뒀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심이 널리 퍼진다. 그러자 대우조선해양의 경영진이 수차례에 걸쳐 이런 가능성을 적극 부인한다. 하지만 2015년 대우조선해양 사장이 바뀌면서 상황은 급반전한다. 외부 감사인인 안진회계법인이 대우조선해양이 장기간에 걸친 대규모 분식회계를 통해 적자 기업을 흑자 기업인 것처럼 표시하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4

그 밖에도 대우조선해양에서 그동안 벌어졌던 경영진이나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 사례 및 불법행위들이 언론에 다수 보도됐다. 분식회계가 벌어진 것은 남상태 사장(노무현 정권 임명)과 고재호 사장(이명박 정권 임명) 시기다. 그런데 이들이 재임 당시 자신을 임명한 정치권에 로비를 하고 향응을 베풀었으며, 상당한 뇌물을 제공했다는 의심도 제기됐다. 또한 그동안 분식회계를 통해 경영 성과를 부풀려서 막대한 성과급을 받아간 사실도 알려졌다.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2014년과 2015년 동안 대법원은 판단을 보류하고 상황을 지켜봤다. 이후 대우조선해양의 대규모 분식회계가 밝혀지면서 대법원은 2016년 2심의 판결을 뒤집고 다시 재판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5

1심과 2심의 결과를 정반대로 뒤집은 대법원의 판단 근거 중 핵심은 다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한화가 계약의 체결 이전에 실사를 못한 것은 계약의 성사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사건이다. 협상 단계에서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우발채무가 나중에 발생하거나 협상 시점에서 평가된 자산가치가 실제보다 과장된 것으로 드러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M&A 거래에서는 실사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둘째, 양해각서에 이행보증금이 ‘위약벌’이라고 규정돼 있다 할지라도 그 금액의 본질은 ‘손해배상액’이다. 양해각서를 보면 양측은 이행보증금 이외에는 기타의 손해배상이나 원상회복 등 일체의 다른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즉 이행보증금 외에는 다른 형태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따라서 양해각서에 ‘위약벌’이라고 규정된 이행보증금은 사실상 손해배상금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손해배상액은 양측의 잘못 정도에 따라 비례해서 배분할 수 있다. 법원은 “이행보증금 몰취 조항을 둔 목적이 최종 계약 체결이라는 채무 이행을 확보하는 데 있더라도 3150억 원에 이르는 이행보증금을 전액 몰취하는 것은 과하다”고 밝혔다.

대법원 판결에 대한 해석
2016년 7월 대법원은 이런 두 가지 이유에서 산업은행이 3150억 원 전액을 몰취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리고 사건을 2심으로 되돌려 보냈다. 대법원에서는 2심의 판결이 옳은지, 옳지 않다면, 왜 옳지 않은지에 대해서만 판단을 내린다. 따라서 대법원 판결에 기초해 구체적으로 한화가 얼마를 돌려받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2심을 맡은 고등법원에서 다시 판결을 내려야 한다. 고등법원의 판단에 따라 비례 책임을 계산해 3150억 원을 나눠 가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보면 대우조선해양의 분식회계 사태가 대법원의 판결을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1심과 2심에서는 분식회계가 없었을 것이라는 가정하에 대우조선해양이 외부 감사와 산업은행의 감독을 받고 있으므로 별도의 실사가 필요 없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실사를 못 했다고 본계약 체결을 거부한 한화 측에 과실이 있다는 판단이었다. 판결문에는 ‘세계금융위기 때문에 자금 사정이 안 좋아진 한화 측에서 실사를 못한 것을 핑계로 계약조건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바꾸려고 했다’는 표현까지 등장한다. 즉 실사를 하지 못했다는 것은 한화의 핑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우조선해양의 분식회계 사태가 터지면서 대법원 판사들은 그 당시 한화 측에서 대우조선해양의 실사를 수행했으면 분식회계를 발견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6

분식회계의 존재 여부와 규모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실사를 해야 하는데, 이를 수행하지 못했으므로 M&A의 후속 단계를 진행할 수 없었다는 한화 측 주장을 대법원이 수용한 것이다.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태가 없었다면 대법원 판사들이 이렇게 하급심의 판단을 뒤집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덧붙여 대법원은 양해각서에 ‘위약벌’이라는 명칭이 사용되고 있지만 그 실질은 손해배상액에 가깝다고 판단했다. 즉 명칭보다 실질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이었다. 7 따라서 비례 책임을 따져서 3150억 원이라는 돈을 나누라고 결정한 것이다.

대법원의 판결로 사건은 다시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내졌다. 그리고 2018년 1월 드디어 고등법원의 판결이 내려졌다. 산업은행은 3150억 원의 돈 중 40%에 해당하는 1260억 원과 이 돈에 대한 이자를 한화에 돌려주라고 판결했다. 2008년 대우조선해양의 매각을 추진하면서 시작된 사건이 무려 10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종결된 것이다.

손해는 결국 국민 모두의 몫으로
이 사건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원래 양해각서 초안에는 실사를 마친 후 가격 조정을 거쳐 본계약을 체결한다고 규정돼 있었으나 산업은행 측의 요구로 실사가 완료되지 않더라도 본계약을 체결하는 것으로 변경됐다. 세계금융위기가 악화되고 있던 2008년 11월 상황에서 볼 때 본계약까지 시간이 지체된다면 계약의 상대방인 한화가 발을 뺄 가능성이 있다고 산업은행이 사전에 판단해 계약 조건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결국 본계약이 체결되지는 않았으나 계약 조건을 바꾼 덕분에 3150억 원 중 일부라도 받을 수 있게 됐으므로 산업은행의 결정은 현명했던 것으로 보인다.

산업은행 입장에서는 계약을 최종적으로 성사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당시 조선 경기가 급속히 악화되고 대우조선해양의 가치가 급락하고 있던 상황을 고려하면 6조3000억 원의 일부만을 회수하더라도, 예를 들어 계약조건의 10% 정도 깎아준다고 해도 산업은행 측에 무척 유리한 거래였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건이 밝혀진 지금의 상황을 고려하면 어떻게든 대우조선해양을 매각하는 것이 유리했을 것이다. 만약 산업은행이 민간 기업이었다면 2008년 12월 들어 한화가 상황이 변했다면서 계약조건을 바꾸자고 주장했을 때 계약 조건을 조금 양보하더라도 본계약을 체결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감사원의 감사를 받아야 하는 산업은행은 최초의 계약 조건을 변경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계약 조건을 바꿀 경우 추후 감사원에서 부당하게 한화에 특혜를 줬다고 문책을 당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한 과거 사례를 보면 정권이 바뀌면 국회에서 전 정권의 비리를 파헤친다면서 국정감사를 할 가능성도 높다. 따라서 산업은행 측은 안 파는 것이 손해라는 것을 알면서도 계약 조건을 바꿔줄 수 없었고, 그 결과 대우조선해양은 산업은행의 자회사로 계속 남아 있게 됐다고 볼 수 있다.

산업은행이 입은 손해는 결국 국민의 세금으로 메워졌다. 현재 언론에서 언급되는 대우조선해양의 가치가 한화가 계약했던 6조3000억 원의 4분의 1에도 못 미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국민들이 얼마나 큰 손해를 봤는지 잘 알 수 있다. 이는 근본적으로 환경 변화를 고려하지 않고 규정만을 따져서 관련 기관을 문책하는 감사원의 감사 행태나 항상 정쟁만을 일삼는 국회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감사원이나 국회가 변하지 않는 한 이런 일은 계속 되풀이될 수밖에 없는데 안타깝게도 변할 조짐이 전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M&A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조언
이 사건은 M&A와 관련해 기업들에 여러 시사점을 준다. 첫째, 한화는 산업은행이 계약 조건 변경을 요구했을 때 이를 수락했다. 이는 명백한 실책이다. 실사 후 최종 금액을 결정하고 본계약을 체결한 후에 인수금액을 지불한다는 원래 계약 조건은 M&A 거래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조건으로서 특정 계약 당사자에게 불리하거나 유리하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숨겨진 부실의 가능성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실사를 안 하고도 본계약을 체결하고 대금을 지불한다는 새로 바뀐 조항은 한화 측에 일방적으로 불리하다. 이런 불리한 조건을 수락한다면 산업은행이 대우조선해양의 가치를 보장한다는 내용도 계약 조건에 함께 추가되는 것이 합리적이다. 한화가 인수를 완료한 후 실사를 진행해 숨겨진 부실이 발견된다면 이미 대금을 지불한 후라도 그 부실에 해당하는 금액을 돌려받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 한화는 M&A 과정에서 충분한 실사 기회를 주지 않고 매각을 앞당기려는 매도자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산업은행이 계약조건 변경을 요구한 시점은 2008년 말로 세계금융위기가 악화되던 시기였다. 특히 대우조선해양 노조가 실사를 반대해서 회사 출입을 막고 있는 상태에서 앞으로 남은 불과 한 달 남짓한 기간 동안 노조를 설득해서 실사 기회를 얻은 후 실사를 마치고 본계약도 마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조건이다. 이런 내용을 보면 산업은행은 한화가 실사를 하지 않기를 바랐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실제로 당시 산업은행은 실사에 반대하는 노조를 설득하려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언론을 통해 드러났다. 파는 쪽에서 계약을 독촉하는 행동을 한다면 숨겨진 이유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럴 때 사는 쪽에서는 조급할 필요가 없다. 시간을 갖고 분석해보면 파는 쪽에서 시간을 단축하고자 하는 이유가 드러나게 될 것이고, 사는 쪽에서 협상 조건에서 우위에 서게 될 수도 있다.

셋째, 급한 마음에 계약 조건 변경에 동의했다고 하더라도 그다음에 이행보증금 3150억 원을 산업은행에 지불한 것 또한 큰 실책이다. M&A 시 엄밀한 실사는 필수적이다. 집 한 채를 살 때도 집을 직접 방문해서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고 등기부를 확인한 후 거래를 한다. 이런 과정을 생략하고 계약을 먼저 한다면 나중에 문제점이 발견돼도 남 탓을 할 수가 없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엄격히 실사를 실시해야 숨겨진 위험들을 발견할 수 있다. M&A 시에 매물로 나온 기업들은 매각자가 한 푼이라도 더 받으려는 목적에서 수치를 부풀리거나 무리하게 단기 업적을 극대화하느라 장기 성장잠재력이 오히려 훼손된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8

한화의 현명한 결정
그렇다고 한화가 계속 잘못된 결정만 한 것은 아니다. 한화는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위해서 적극적으로 노력해서 경쟁을 물리치고 인수자로 선정됐다. 그러나 이행보증금까지도 납부한 후 마지막 순간에 인수를 포기했다. 앞선 한화의 세 가지 실수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순간 인수를 포기한 한화의 결정은 매우 훌륭했다. 3150억 원을 이미 납부해서 돌려받을 가능성이 낮다고 하더라도 그 돈은 이미 되돌릴 수 없는 매몰원가(sunk cost)다. 그 돈이 아까워서 5조8000억 원의 잔금을 무리하게 납부했다면 아마 한화는 그 뒤에 더 큰 위기에 처했을지도 모른다. 한화의 인수 포기가 주식시장에 알려지자 한화그룹 계열사들의 주가가 일제히 상승했다는 점에서도 이런 가능성을 짐작할 수 있다.

기업들이 매몰원가가 아까워서 발을 빼지 못하고 계속해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의 투자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경영자가 자신의 임기 내에 실패를 자인하고 손실을 인식하기 싫으니 더욱 이런 행동이 나타날 것이다. 의사결정 시에 매몰원가는 무시하고 미래에 발생할 효익과 비용(원가)만을 고려해 현명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한화는 마지막 순간에 잘못을 깨닫고 손절매를 했다. 한화의 경영진은 실수를 인정하면서 인수를 포기하자는 현명한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러한 용기와 판단력은 경영자들에게 귀감이 될 것이다.

필자소개 최종학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acchoi@snu.ac.kr
필자는 서울대 경영대학 학사와 석사를 거쳐 미국 일리노이주립대에서 회계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홍콩 과기대 교수를 거쳐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서울대에서 우수강의상과 우수연구상을 다수 수상하는 등 활발한 강의 및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숫자로 경영하라』 시리즈 1, 2, 3, 4권과 『재무제표 분석과 기업가치평가』, 수필집 『마흔, 감성의 눈을 떠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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