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siness History Highlight-아모레 퍼시픽의 태평양 증권 매각
편집자주
기업의 역사에는 그 기업의 운명을 바꾼 결정적 사건이나 순간이 반드시 존재합니다. 이때의 결단이나 사건의 이면을 살펴보는 과정은 다른 기업에도 큰 교훈을 줍니다. 단순히 ‘어떤 일이 있었다’고 기억하는 것보다 그 일의 원인과 맥락을 정확하게 분석해 지식의 형태로 만드는 ‘암묵지의 지식화’ 작업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국내 유수 기업의 기업역사(社史)를 집필해 온 유귀훈 작가가 ‘Business History Highlight’를 연재합니다.
세계 화장품 시장 규모는 미국, 일본, 중국 순이다. 중국 여성에게 묻는다. ‘한국’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드라마나 K-POP이 아니다. ‘한국 화장품’이다. KOTRA 등에 따르면 인지도 측면에서 화장품이 한류 드라마나 K-POP에 앞선다. 한국 화장품 브랜드는? 단연 아모레퍼시픽의 ‘설화수’다. 이들에게 ‘한국’과 ‘설화수’는 같은 말이다.
아모레퍼시픽은 1991년 12월 태평양증권을 SK그룹(당시 선경그룹)에 매각했다. 업계 안팎에서 이해하기 어렵다는 말이 많았다. 일부에선 나중에 제2이동통신사업에 진출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지레짐작했다. 그럴 만도 한 게 당시 증권업은 모든 대기업이 진출하지 못해 안달하는 최고의 유망 업종이었고 태평양증권은 아모레퍼시픽 계열사 중 수익구조와 실적이 가장 안정적이며 양호한 자회사였다. 그러나 ‘돈 되는 자회사를 팔아 돈 안 되는 자회사의 부도를 막는다’는 게 당시 아모레퍼시픽의 생존전략이었다.
1990년대 초, 아모레퍼시픽(당시 태평양)은 모두 25개의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었다. 증권, 건설, 광고, 패션, 보험, 물산, 금속, 인쇄, 화학, 전자, 신용금고, 프로야구팀, 여자농구단… 말 그대로 다각화의 모범 케이스였다. 그러나 탄탄하기로 소문났던 아모레퍼시픽에도 경보음이 울렸다.
이 같은 위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화장품 전 품목 수입이 완전 자유화된 1986년으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수입 화장품에 할인 화장품까지 시장을 잠식하면서 화장품사업에 노란불이 들어왔다. 어지럽게 진행한 다각화는 그 대응전략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자회사가 적자를 내면서 아모레퍼시픽 전체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거기다 1991년 노조의 장기 파업이 결정적이었다. 현금유동성에 문제가 생기면서 부도 위기가 현실로 다가오자 경영진은 긴급 회의를 열고 원점으로 돌아가 화장품사업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태평양통상(1989), 태평양전자(1991), 한국훼라이트(1991), 태평양프랑세아(1994)와 한국써보(1995) 등을 정리했지만 아모레퍼시픽 전체적으로 1993∼1995년 3년 연속 적자였다. 화장품시장의 점유율도 1991년 30.3%에서 1995년 25%대로 하락했다.
1995년 8월, 1994년 한국시리즈에서 준우승하며 한창 주가가 오르는 태평양 돌핀스를 현대그룹에 매각했다. 태평양패션은 거평그룹에 1원을 받고 매각했다. 자본금을 ‘까먹은’ 태평양패션의 차입금(지급보증 포함)은 인수하고 전환사채와 보유주식은 양도했다. 정확하게 따지면 150억 원 정도를 얹어준 마이너스 M&A의 첫 사례를 감수했다.
1997년 8월 여자농구단을 신세계에 매각하고는 또 한번 구설에 올랐다. 9월에 외환위기가 시작됐으니 말이다. ‘노아’가 된 아모레퍼시픽은 분명 외환위기를 미리 예견했을 거라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그리고 아시아 외환위기가 닥쳤다. 1997년 진로그룹, 대농그룹, 해태그룹 등 내로라하는 대기업들까지 부도를 냈다. 이들을 끝내 재계의 지도에서 사라지게 만든 주범은 다각화 트렌드였다. 진로그룹 24개 사, 대농그룹 21개 사, 해태그룹 15개 사. 당시 위기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대기업들의 공통점은 무리한 다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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