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캣 인수 직후 ‘소통 不在’로 주가 폭락-IR 실패한 두산, IR 강자로 대 변신

77호 (2011년 3월 Issue 2)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미래전략연구소 인턴 연구원 이창하(26·서울대 경영학과 4), 오병섭(25·고려대 경영학과 4) 씨가 참여했습니다.

과거 OB맥주 등 소비재를 주력으로 했던 두산그룹은 외환위기 이후 지주회사로의 전환을 통해 대대적인 주력사업 변경 작업에 나섰다. 2001년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을 인수하면서 변신을 시작한 두산그룹은 2003년 고려산업개발(현 두산건설), 2005년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를 잇따라 인수하며 명실상부한 중공업 전문 그룹으로 거듭났다. 특히 2007년 두산인프라코어는 총 49억 달러를 투자해 미국 중장비 회사 밥캣을 인수했다.

이는 한국 기업 역사상 최대 규모의 해외 인수합병(M&A)이자 한국 기업이 미국 대기업을 인수한 최초의 사례였다. 밥캣 인수 전까지 한국 기업의 해외 M&A는 대부분 외국의 중소기업을 사들이는 수준에 불과했다. 업계와 금융시장에서도 두산이 중공업 전문 그룹으로의 변신을 마친 증거가 바로 밥캣 인수라는 평가가 많았다. 당시 두산은 이때 모든 자금을 자체 자금으로 조달할 수 없어 약 39억 달러를 미국과 한국에서 차입 조달했다. 흔히 부채 약정(debt covenant) 또는 재무 약정(financial covenant)이라 불리는 이때의 차입 조건은 밥캣의 부채가 EBITDA(이자, 세금, 감가상각비, 무형자산 상각비 차감 전 이익) 7배를 넘어서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밥캣을 인수한 지 불과 1. 서브프라임(subprime) 대출 부실에서 시작된 미국 발 금융위기가 2008년 전 세계를 강타했다. 당연히 미국의 주택건설 경기도 악화됐다. 건설장비를 생산하는 밥캣 역시 후폭풍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실적 악화로 밥캣의 EBITDA가 나빠지면서 밥캣은 부채가 EBITDA 7배가 넘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몰렸다. 결국 두산그룹은 증자를 통해 마련한 돈으로 일부 부채를 상환하기로 했다.

재무 약정에 근거해 밥캣의 EBITDA 부족분을 보충하려면 1억 달러 미만의 증자만 해도 충분했다. 그러나 두산그룹은 10억 달러의 대규모 증자를 결정했다. 왜 지금 당장 필요한 돈의 10배를 조달하려 했을까. ‘서브프라임 사태가 언제 진정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당장 필요한 돈만 마련하면 안 된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세계 경제의 회복 속도가 예상보다 늦어지면 추가 증자를 할 수도 있었다. 나중에 또 증자를 한다고 발표하면 금융시장은 더 큰 충격을 받을 게 뻔했다. 당시 두산 경영진은차라리 지금 대규모 증자를 단행해 시장에 한 번의 충격만 주자고 결정했다.

하지만 두산그룹의 계획은 시장의 예상과 많이 달랐다. 결국 2008 8월 말 10억 달러 증자 계획이 발표되자 두산그룹 주가는 요동쳤다. 증자의 당사자인 두산인프라코어뿐 아니라 두산그룹 계열사 전체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했다.1

당시 두산그룹은 밥캣이 유동성 위기를 겪지 않도록 지원하면 장기적으로는 두산그룹의 성과에 상당한 도움을 줄 거라고 생각했다. 예상치 못했던 금융위기에 휘말려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밥캣 인수는 회사의 미래를 위해 필요한 선택이었으며, 투자자들 역시 이 점을 이해해줄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시장과의 교감 없이 발표된 10억 달러의 증자 계획은 투자자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겼다. 1년 전 한국 기업 역사의 새로운 장을 썼다는 평가를 받았던 밥캣은 졸지에 두산중공업과 두산인프라코어의 가치까지 훼손하는 미운 오리 새끼로 전락했다.

밥캣 문제로 두산그룹이 겪은 홍역은 대표적인 IR 실패 사례이자, 역설적으로 IR이 기업 활동에서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를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다. 주가 급락으로 단순히 주주와 해당 기업만 큰 손해를 입은 게 아니라 그룹 전체의 신뢰도 및 이미지가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한 번 떨어진 신뢰를 회복하는 데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이 일을 겪은 후 두산그룹은 사태의 해결 방안 및 후속 작업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다. 고심 끝에 시장 및 투자자들과의 소통을 중시하는 새로운 기업 문화를 정립하는 데 최선을 다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자본시장과의 올바른 소통이 실적 향상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점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애널리스트 출신으로 현재 두산중공업의 IR 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손종원 상무와의 인터뷰를 통해 두산그룹의 변화 및 IR 업무의 중요성에 관해 알아보자.

두산그룹의 잇따른 애널리스트 영입

2005 9월 굿모닝신한증권에서 자동차 업종 분석을 담당하던 손종원 애널리스트가 두산중공업 IR 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증권계에 18년간이나 몸담은 베테랑 애널리스트가 대기업의 IR 부서장으로 자리를 옮긴 최초의 사례였다. 지금은 애널리스트 출신 IR 담당자를 두고 있는 기업이 많지만, 당시만 해도 내부 인사가 아닌 외부 인사에게 IR 책임을 맡기는 기업은 많지 않았다.

몇 달 후 미래에셋증권에서 조선업종을 담당했던 남권오 애널리스트도 두산인프라코어 IR 팀장으로 옮겼다. 두 사람 모두 경력이 10년이 넘는 베스트 애널리스트였던데다, 소비재 기업도 아닌 B2B 기업에서 유명 애널리스트를 IR 담당자로 잇따라 뽑았다는 사실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다. 얼마 후 대우증권의 장충린 자동차 담당 애널리스트 역시 ㈜ 두산의 IR 책임자로 변신했다.

두산그룹의 오세욱 전무는 애널리스트 대거 영입과 관련, “지주회사 전환과 관련해 재무 관련 쟁점이 많은데 내부 인력만으로는 각 계열사의 재무 상태에 관해 활발한 홍보 활동을 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B2B 기업이라 소비자들과의 접촉도 많지 않은데 투자자들의 욕구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자본시장과 투자 심리를 잘 아는 전문가 영입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손 상무는 1987년 이코노미스트로 증권업계에 발을 담근 후, 1991년부터 자동차 업종을 분석해온 1세대 애널리스트다. 그는 “18년간 리서치 업무를 담당했던 터라 스스로에게 새로운 동기를 부여하고 싶었다. 애널리스트 재직 기간 중 많은 기업의 IR 담당자를 만나면서 느꼈던 아쉬움도 해소하고 싶었다. IR의 핵심 업무는 회사와 금융시장의 가교 역할인데, 기존 IR 담당자들이 시장의 언어나 논리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느꼈다고 이직 이유를 설명했다.

손 상무는지금은 주식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들도 대충 뜻을 알지만 당시만 해도 롱(long, 주식 매수), (short, 주식 매도)이라는 간단한 용어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톱 라인(Top line, 매출)과 바텀 라인(bottom line, 당기순이익), 오버행(overhang, 물량 부담), 오버웨이트(overweight, 투자 비중 확대) 등은 말할 것도 없었다. 매출과 순이익을 톱 라인과 바텀 라인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매출이 손익계산서의 가장 윗부분, 당기순이익이 가장 아랫부분에 나오기 때문이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별 어려운 말도 아니고 왜 그런 용어를 쓰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지만, 서로의 의사소통을 방해하는 측면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용어뿐 아니라 시각의 차이도 컸다. 손 상무는기업 내부에 있는 사람은 주가 변화를 지나치게 단순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실적이 좋으면 당연히 주가가 오르는 거 아니냐는 투다. 하지만 주가 변화는 실적 자체보다 시장의 기대치를 능가하느냐(outperform), 미달하느냐(under perform)에 따라 움직인다. 시장이 A기업의 1분기 당기순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 증가할 거라고 기대했다 치자. 실제로 뚜껑을 열어보니 25%가 늘었다. A기업 관계자는지난해보다 순이익이 25%가 늘었는데 얼마나 대단한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주가는 당연히 떨어진다. 시장은 이미 실적 향상 전망을 주가에 반영해왔고, 실제 실적이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당 기업 내부에서는시장이 이상하다’ ‘IR 담당이 일을 제대로 하는 거 맞냐는 식으로 반응한다. IR은 일종의 고객 서비스다. 당연히 수용자의 관점에서 업무를 진행해야 한다. 하지만 많은 기업들이 지나치게 생산자의 관점에서만 사고하고 판단하는 오류를 범할 때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IR이 본연의 역할을 다하려면 회사와 자본시장의 사정을 두루 알고 있는 애널리스트가 적격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실제 손 상무의 두산중공업 입사 후 두산인프라코어, ㈜두산의 IR 담당자도 애널리스트가 맡았다. 최근에는 두산건설과 두산엔진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즉 두산그룹 휘하 모든 상장회사의 IR팀장이 모두 애널리스트로 채워졌다. 이는 한국 대기업 중 유일한 사례다.()

밥캣 사태가 IR 팀 위상 강화

많은 화제를 모으며 IR 담당자가 됐지만 2008년까지 두산그룹 내에서 IR 팀의 역할과 위상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일단 손 상무나 다른 계열사의 IR 담당자들은 당시 임원이 아니라 부장급이었다. B2B 사업에 익숙한 일부 직원들은 IR의 필요성과 효용에 관해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2008 8월 밥캣 증자 사태를 둘러싼 홍역은 상황을 바꿔놓았다. 최고 경영진은 물론 전사적으로 IR 팀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 효과적인 IR이 기업 가치와 신뢰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절감했기 때문이다.

밥캣 인수로 한껏 기세를 올렸던 두산은 2008년 국내 M&A 시장의 최대어로 꼽혔던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겠다는 의도를 여러 차례 보였다. 포스코, GS건설 등 쟁쟁한 회사들도 대우조선을 노리는 상황에서 두산까지 가세하니 시장의 관심이 집중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2008년 여름 두산은 갑자기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포기한다고 선언했다. 금융시장이 두산그룹의 유동성에 의문의 눈초리를 보내기 시작했다. ‘거듭 대우조선해양에 관심을 표시하더니 갑자기 왜 인수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했을까. 그룹에 무슨 문제라도 있나라는 시선이 더해졌다. 하지만 두산은그룹 전체의 유동성에 큰 문제가 없으며, 서브프라임 사태에도 불구하고 밥캣의 상황도 크게 나쁘지 않다는 태도를 취했다.

이런 상황에서 갑작스레 터져 나온 밥캣 증자 계획은 투자자와 금융시장에 충격을 안겨줬다. 증자 규모도 예상보다 훨씬 크자 시장은 냉담하게 반응했다. 주가 급락으로 두산그룹의 자산 가치는 이틀 만에 무려 4조 원이 사라졌다. 향후 전망도 어두운 의견들만 나왔다. 금융위기가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데 밥캣이 두고두고 두산의 발목을 잡는 거 아니냐는 전망이 확산됐다. 49억 달러라는 밥캣 인수가격이 너무 비쌌다는승자의 저주론도 뒤늦게 나왔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유상증자 발표 하루 뒤 애널리스트를 대상으로 IR을 개최했다. 그간 밥캣의 실적이 괜찮다고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증자를 단행한 이유를 자세히 설명했다. 두산은 밥캣 인수 당시 총 39억 달러를 빌렸다. 10억 달러는 두산인프라코어와 두산엔진에 대한 신용 대출로, 29억 달러는 밥캣의 자산을 담보로 하는 차입매수(LBO)로 조달했다. 이 중 LBO를 통한 차입 규모가 밥캣 EBITDA 7배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계약 조건 때문에 불가피하게 증자를 단행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즉 인수 당시의 복잡한 차입 조건 때문에 증자를 단행했을 뿐, 시장에서 우려하는 유동성 위기는 아니라는 점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물론 차입금 조항 때문이라고는 해도, 결국서브프라임 사태에도 불구하고 밥캣의 상황이 나쁘지 않다는 두산그룹의 발표는 결과적으로 사실이 아니었던 셈이다. 하지만 거듭된 IR로 주가 하락은 예상만큼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두산그룹 주가는 2008 4분기부터 안정세를 찾았다. 손 상무는밥캣 실적 악화에 대한 시장 우려를 다소 간과한 면이 있었다. 여러 번 증자 계획을 발표하느니 한 번의 대형 증자를 단행하는 게 나을 거라는 생각 또한 공급자 위주의 사고였다. 실적의 좋고 나쁨에 관계없이 시장과 항상 대화해야 하며, 일관된 메시지를 꾸준하게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는 점을 절실히 느꼈다고 강조했다.

두산그룹은 이 사태를 계기로 IR의 중요성을 확실히 인지하기 시작했다. 가장 확실한 증거는 사건이 마무리된 후 손 상무를 비롯한 두산 3사 즉 두산중공업, 두산인프라코어, ㈜두산의 IR 팀장이 모두 부장에서 임원으로 승진했다는 사실이다. IR 팀 인원도 30% 이상 늘었고, IR 팀장이 CEO가 주재하는 경영회의에 필수적으로 참가하는 등 IR 팀장의 위상도 달라졌다.

곽수근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임원과 실무진이 접할 수 있는 사내외 정보의 양과 질은 본질적으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투자자들을 만날 때도 마찬가지다. 투자자들은 당연히 임원급을 만나는 일을 더 선호한다. 주가 급락에도 불구하고 계열사 IR 팀장을 모두 임원급으로 승진시켰다는 건 두산그룹이 증자 사태 당시의 실패를 더 이상 반복하지 않겠다는 뜻을 시장에 명확하게 알린 셈이라고 평가했다.

두산그룹 각 계열사의 IR 팀장이 모이는 협의체도 만들었다. 이들은 최소 1달에 1회 이상 모여 각 계열사가 처한 쟁점들이 개별 회사와 두산그룹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때 어떤 식으로 공조를 취할지 면밀히 준비했다. 밥캣 사태 때 증자에 참여하지도 않은 계열사의 주가까지 급락하는 일을 겪었기 때문이다.

IR 레터 발행도 정례화했다. 위기가 발생하면 CEO 또는 CFO의 명의로 IR 레터를 써현재 상황은 이렇고,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나가겠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밝혔다. 두산중공업은 현재까지 5회 이상 CFO 명의의 IR 레터를 발송했다. 일부 대형 주주에게만 발송하는 게 아니라 1000 명이 넘는 국내외 투자자들에 단체로 발송된다.

흙 속에 묻힌 해외투자자도 발굴

두산중공업은 독립적이고 체계화된 IR 조직을 구성하는 데도 힘썼다. 현재 6명의 직원들이 국내외 로드쇼 및 컨퍼런스 개최, 공장 숍 투어(shop tour) 및 발전소 필드 투어(field tour), 연간 360회 이상의 데일리 미팅(Daily meeting) 등 국내외를 포괄하는 IR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직원 수도 10명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다.

손 상무는 애널리스트나 투자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하고, 이 요구에 최대한 부합하도록 하는 데 많은 신경을 썼다. 우선 IR 정보의 형식부터 과감히 바꿨다. 손 상무는애널리스트 시절, 받고 나서 가장 답답했던 자료가 회사 소개와 텍스트로만 채워진 문건이었다. 가능한 한 텍스트를 최소화하고, 숫자화할 수 있는 정보를 최대한 제공하고자 했다. 숫자로 대다수의 정보를 표현하되, 이 역시 대부분을 그래프로 만들어 그림만 봐도 이 수치가 무얼 뜻하는지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회사 소개는 간략하게 줄이거나 아예 맨 뒤로 보냈다고 설명했다. 투자자들의 반응도 긍정적이었다. 두산중공업의 IR 자료가 좋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해외에서도 자료를 보내달라는 요청이 잇따랐다.



공장 견학 형식도 대폭 달라졌다. 두산중공업의 숍 투어는 단순히 공장만 견학하는 게 아니라 발전소 투어와 패키지로 묶여 있다. 숍 투어에서 두산중공업의 완성품인 터빈의 제조 과정을 본 후, 이 터빈이 장착된 발전소를 같이 견학하는 식이다. 터빈을 생산하는 역할은 두산이 담당하지만, 그 제품의 최종 소유자는 한전이다. 투자자가 진짜 궁금해하는 사안은 터빈을 어떻게 제조하느냐가 아니라 그 터빈이 발전소에서 어떻게 쓰이고 있느냐다. 투자자, 즉 고객의 관점에서 생각해야 이런 연계 투어 아이디어를 낼 수 있다. 물론 한전의 협조와 이해를 구하는 유무형의 노력이 필요하다. 두산중공업은 투자자들이 정말 알고 싶어하는 양질의 정보를 특색 있게 제공하자는 생각에 한전으로부터 협조를 얻어냈다.

손 상무는 특히 외국인 투자자들이 자주 숍 투어를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물론 지금보다 더 자주 해외 IR을 다니면 좋겠지만 비용과 시간의 제약이 있다. 해외투자를 많이 유치하기를 원한다면 해외에 나가 현지의 투자자를 만나는 것보다 국내에 찾아온 해외 투자자에게 공을 들이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많은 기업들은 이를 간과하고 있다고 말했다.

즉 해외에서 한국으로 기업 탐방을 올 정도의 외국인 투자자라면 이미 투자하겠다는 의사를 가진 사람이다. 그만큼 해당 회사에 대한 관심과 투자 의지가 높으므로 이들에게는 조금의 노력만 투여해도 상당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해외 IR에서 만나는 투자자에게는 회사 및 비즈니스 소개, 산업 현황, 심지어 한국의 지정학적 상황까지 짧은 시간 안에 설명해줘야 하기 때문에 소기의 효과를 달성하기 어렵다.

문제는 많은 한국 기업들이 해외 IR을 할 때는 최고경영자를 비롯한 고위 임원이 대거 참가해 열의를 보이면서도, 국내에 직접 찾아오는 투자자들의 응대는 실무자급에게 맡긴다는 사실이다. 손 상무는애널리스트 시절부터 이런 상황이 매우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했다. IR 담당자는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투자자 집단을 잘 발굴하고 관리할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노력으로 외국인 투자자 비중과 숫자도 늘었다. 세계 최대 펀드인 캐피탈 그룹(Capital Group)이 두산중공업 주식의 5% 이상을 보유한 적도 있고, 피델리티도 상당량의 주식을 보유했었다. 아랍에미리트(UAE), 사우디아라비아의 투자자들도 주요 외국인 주주로 합세했다. 2006년부터 매년 2회씩 4 IR 중심지 즉 뉴욕, 런던, 홍콩, 싱가포르 등을 열심히 순회한 결과다. IR 팀이 제대로 꾸려지기 전에는 생각하기 어려웠던 일이다. 현재 두산중공업의 유동주식은 전체 주식의 30% 정도에 불과하다. 한때 이 유동주식의 3분의 2 이상이 외국인 소유이던 시절도 있었다.
 

내부 구성원도 잘 설득해야

조직 내부에 IR의 필요성에 관한 인식을 제대로 심어주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IR은 절대로 IR팀 혼자서만 할 수 없다. 사내 여러 부서와 효과적인 협력을 통해서만 투자자와 여러 이해관계자들을 흡족하게 만들 수 있는 정보를 생산·유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문화에 익숙지 않은 사내 여러 부서와의 교감하고 협력을 이끌어내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고 손 상무는 토로했다.

특정 부서의 성과 목표와 IR 팀의 목표가 상충될 때가 있다. 유달리 실적이 좋게 나온 사업부가 있다 치자. 당연히 IR 팀은 이를 널리 홍보하려 한다. 하지만 해당 사업부는 이를 꺼린다. 자신들이 이렇게 이익을 많이 낸 걸 알면 고객회사나 경쟁회사들이 가만두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실적 호전의 구체적 이유를 알고 싶어하는 시장과, 노출을 피하려는 욕구를 지닌 해당 부서 사이에서 IR이 오도가도 못할 때가 많다.

이런 갈등을 해결하려면 해당 부서에 ‘IR이 왜 필요한지, IR을 통해 이런 정보를 알려주는 게 해당 부서와 회사 전체의 이익에는 어떻게 기여하는지 납득시켜야 한다. 하지만 초기에는 회사 안팎 모두에서 이런 인식을 공유하는 게 어려웠다. 시장에서는과거에는 안 이러다 갑자기 왜 IR을 열심히 하지? 유상증자라도 하려나?’라는 식이고, 내부에서는저 사람 혹시 자사주를 많이 보유하고 있나? 주가를 띄운 후 비싼 가격에 팔려는 건가?’라는 식이었다. 일단 IR의 필요성부터 제대로 납득시키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손 상무는 다음의 논리를 들어 IR의 존재 이유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첫째, 기업 가치에 대한 평가 기준이이익에서주가로 바뀌었다. 과거에는 주가가 좀 낮거나, 주가 변동이 심하더라도 이익을 많이 내거나 현금 흐름만 좋으면 투자할 만한 회사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M&A라는 경영 기법이 활성화되면서 기업 가치를 평가하는 수단이 중요해졌다. 어떤 회사가 지금 당장 돈을 잘 번다는 사실만으로는 이 회사가 살 만한 회사인지 아닌지 구분하기 힘들다. 업계 내 경쟁자와의 비교도 어렵다. 모든 기업이 처한 상황은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가는 가장 손쉽고 편리한 비교 기준을 제공한다.

주주 가치 경영 측면에서 살펴봐도 마찬가지다. 곽수근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어떤 기업의 당기순이익 증가는 주주를 포함한 많은 외부 이해관계자에게 직접적인 편익을 제공하지는 못한다. 다양한 이해관계자에게 가치를 전달해 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주가 상승이라고 설명했다.

둘째, 시장의 신뢰가 높아진다. 좋은 뉴스건 나쁜 뉴스건 활발한 IR을 통해 주주들에게 해당 기업의 정보와 상황을 신속하게 알려줄 때, 주주와 이해관계자들은 그 회사를 믿게 된다. 그 결과물이 주가 상승일 뿐 IR의 목적이 주가 상승은 아니다. 신뢰도 증가는 해당 회사가 잘 나갈 때가 아니라 어려움에 처했을 때 빛을 발한다. 어떤 기업이 위기에 처해 증자를 해야만 하는 상황에 몰렸다. 시장으로부터의 신뢰가 있어야 다른 회사보다 낮은 금리로 더 많은 돈을 유치할 수 있고, 더 빨리 위기를 극복할 거라는 믿음도 얻을 수 있다. 평소에는 말 한마디 없다가 자신이 필요할 때만 도와달라고 하는 친구보다, 자주 만나고 소식을 들어온 친구를 어려울 때 더 도와주고 싶은 심정과 마찬가지다.

손 상무는주식시장에는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 오죽하면 주식과 연애하는 투자자는 있어도 결혼하는 투자자는 없다는 말이 나오겠는가. 가능한 일도 아니지만 설사 가능하다 해도, 모든 투자자가 두산중공업 주식을 영원히 보유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우리의 역할은이 주식 너무 좋아라는 투자자를 10명 만드는 게 아니라, ‘다시는 이 놈의 주식 안 산다는 말을 하는 투자자가 1명도 없도록 만드는 일이다. 그래야 시장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셋째, 장기 투자자 확보가 쉬워진다. 세 번째 요인은 한국 시장의 특수성을 반영한 요인이다. 일반적으로 장기 투자자는 적어도 3∼5년의 투자 기간을 설정하고, 해당 종목에 투자하는 투자자들을 말한다. 하지만 국민연금을 제외하면 국내 시장에서 진정한 의미의 장기 투자자는 많지 않다. 대형 금융회사 중에서도 1년 넘게 한 종목을 보유하는 회사가 많지 않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해외로 눈을 돌리면 사정은 달라진다. 한국 주식시장의 작은 규모 탓에 잘 알려지지만 않았을 뿐, 한국 기업에 관심을 가진 대형 투자자들이 많다.

이런 투자자들을 만나서 우호적 주주로 만들려면 주가가 오랫동안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 손 상무는외국인 투자자는 특히 불확실성을 싫어한다. 실적 이상으로 지배구조나 승계 관리에 관한 관심도 높다. 장기 투자를 원하는 이들의 욕구를 만족시키려면 설사 최고점은 좀 낮더라도 주가가 안정적 수준에서 소폭의 등락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꾸준한 IR을 통해 주가를 관리하지 않으면 호재가 나올 때 주가가 급등하고, 악재가 나올 때 주가가 급락하는 널뛰기 기업이 되고 만다. 이처럼 등락이 심한 주식에 투자하려는 외국인 투자자들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또 한번의 주가 급락은 없었다

두산중공업은 금융위기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2009년까지 어려움을 겪었다. 2008년 당기순손실이 658억 원, 2009 3283억 원을 기록했다. 2010 5월에는 밥캣의 추가 증자설과 두산건설의 유동성 우려도 제기됐다. 그룹 계열사들의 주가 또한 다시 급락했다.

하지만 2008년 홍역을 치른 두산중공업은 침착하게 대응했다. 두산중공업의 CFO인 최종일 부사장은 기관투자가들과 각 증권회사 애널리스트들에게 직접 e메일을 보냈다. 그는 두산건설과 밥캣의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고 추가 증자는 없다고 소상히 밝혔다. 재계에서 소셜미디어를 가장 활발하게 이용하는 오너로 이름 높은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도 트위터에 증자설은 사실무근이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그 결과, 많은 애널리스트들이 증자설은 사실무근이며 두산그룹의 펀더멘털은 나쁘지 않다는 보고서를 써냈다. 주가는 곧 제자리로 돌아왔고, 추가 증자도 당연히 없었다. 두산그룹의 달라진 IR 정책이 효과를 발휘한 셈이다. 2008년과 달리 최고 경영진이 직접 나서서 자본시장과 긴밀하게 소통하는 모습이 주효한 셈이다.

2010년 이후 두산중공업의 실적은 더욱 좋아졌다. 2010년에는 분기별 이익이 모두 흑자로 돌아섰다. 연간으로는 4468억 원의 영업이익, 1112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대규모 경기 부양 정책을 택한 미국 경제가 금융위기에서 벗어날 조짐을 보이면서 건설장비를 생산하는 밥캣의 영업 실적도 호전되고 있다. 2009년 인수한 체코의 스코다 파워도 실적 호전에 기여할 거라는 전망이 많다.

2011 1월 두산중공업은 자회사인 두산엔진을 성공적으로 상장시켰다. 두산엔진은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에 선박 엔진을 공급하는 세계 제2위의 디젤엔진 제조업체다. 조선업 경기가 대폭 회복되고 있으며, 중국 시장 점유율이 30%에 달하는 만큼 두산엔진은 앞으로 안정적인 성장을 이룰 전망이다. 두산엔진의 주요 고객인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이 두산엔진의 주요 주주인 점도 이런 전망에 근거한다. 두산엔진의 성공적인 기업 공개(IPO)로 두산중공업은 상당한 현금을 회수할 수 있었다. 두산엔진의 IPO 과정에서도 두산중공업을 포함한 각 계열사의 IR 팀이 협력했다.

KB투자증권 허문욱 애널리스트는해외 발전소 건설 사업을 본격 추진했던 2007년이 두산중공업의 제1기 성장기라면 12 5000억 원이라는 사상최대 수주를 기록한 2010년과 두산엔진이 상장된 올해는 제2 성장기라며밥캣 사태를 겪으면서 IR 활동에 대한 중요성과 노하우를 터득한 만큼 앞으로는 위기 상황은 물론 업황이 좋을 때도 시장과의 소통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회사가 돼야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손종원 상무는장기적으로는 중동,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독일 프랑크푸르트, 프랑스 파리, 미국 플로리다, 캐나다 토론토, 호주 시드니, 스칸디나비아 반도 등 아직 한국 기업들이 IR을 실시하지 않는 곳에서도 해외 IR을 개최해 더 많은 해외 투자자들을 유치하고 싶다고 말했다. 현재 많은 기업들이 하듯 미국에서 1주일간의 IR 일정을 진행하면 아무리 바쁘게 돌아다녀도 뉴욕 3, 보스턴 1, 샌프란시스코 1일의 일정 밖에 나오지 않는다. 물론 뉴욕과 런던에 대형 투자자들이 몰려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 외의 지역에서는 한국 기업을 거의 알지 못하는 투자자들도 많이 있다. 그는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장기 투자자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은 투자자들이 세계 도처에 널려 있다. ‘흙 속의 진주를 발견하는 일도 게을리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시사점

두산중공업의 사례에서 보듯 기업이 우수한 실적을 내는 일 못지 않게 이를 제대로 시장에 알리는 게 매우 중요하다. 특히 위기 때는 시장과의 소통을 통해 투자자들의 불안과 우려를 잠재우는 일이 필수적이다. 위기를 진화할 때는내용형식이 모두 중요하기 때문이다.

학술 연구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IR을 포함한 기업들의 적극적인 정보 공시 활동은 기업에 상당한 유무형의 도움을 준다. 공시를 자주 하는 기업일수록 해당 기업을 담당하는 애널리스트들의 숫자도 증가한다. 많은 애널리스트들이 해당 기업을 분석하면 애널리스트들이 발표하는 실적 전망도 정확해지고, 예측치의 분산 및 변동성도 감소한다.

이런 발견은 투자자들이 기업에 더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일을 가능하게 해 준다.2  그 결과, 투자자들은 해당 기업의 미래 이익을 더욱 정확히 예측해 현재의 주가에 반영할 수 있다.3  즉 주가가 당해년도의 이익보다는 예측된 미래이익에 따라 변하는 정도가 커지는 셈이다. 따라서 당기의 이익수준이 단기적으로 낮더라도 주가가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해당 기업의 관점에서 볼 때도 단기 이익이 아니라 장기 이익에 중점을 두고 회사를 경영할 수 있으므로 유리하다.

기업이 정확한 공시를 자주 해 투자자들로부터 신뢰를 얻으면 자본 비용이 감소해서 직접적인 혜택을 얻을 수 있다.4  특히 뉴스가 언론을 통해 자주 보도되는 대기업보다 기업의 공시 이외에는 다른 정보가 별로 없는 중소기업에서 자본비용이 감소하는 효과가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부정적인 뉴스를 적극적으로 미리 공시하는 기업은 사전에 소송을 차단할 수 있어, 잠재적인 소송 비용을 줄일 수 있다.5  중요한 뉴스를 사전에 공시하지 않으면 나중에 이 사실이 공개됐을 때 주가 하락으로 피해를 본 주주들이 소송을 종종 제기하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점은 이런 효과들이 특정 상황에 처했을 때 단기적으로 공시를 늘린다고 발생하는 현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해당 기업이 무슨 말을 해도 투자자들이 이를 신뢰할 수 있을 만큼 정확한 정보를 지속적으로 공시해야 시장의 반응이 강하게 나타난다.6  신주 발행 시 단기적으로 공시를 늘린 기업의 주가는 반짝 상승하지만 그 효과는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그러나 공시를 일관되게 많이 하는 기업의 주가는 계속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한다.7  공시의 빈도와 정확도가 높은 기업일수록 경영진의 명성도 높다.8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최종학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acchoi@snu.ac.kr

동아비즈니스리뷰 283호 Future Food Business 2019년 10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