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미국의 실업률이 마침내 10%를 돌파했다. 취업을 단념한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실업률이 17%에 이른다는 보도도 있었다. 미국 부동산 가격 하락의 직격탄을 맞은 캘리포니아 주와 남부의 여러 주, 자동차 산업이 붕괴된 미시간 주의 실업률은 무려 20%가 넘는다고 한다. 일부에서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끝났다면서 출구 전략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미국의 실업률 현황은 안타깝게도 아직 위기가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드러냈다.
투자은행들은 이번 금융위기의 주범으로 비난받고 있다. 상당수 기업들이 파산하여 많은 근로자들이 실직했지만 미국 정부는 거의 도와주지 않았다. 그러나 투자은행을 살리기 위해서는 무려 7000억 달러라는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한다는 데 미국인들은 분개하고 있다. 특히 그 공적자금의 상당 부분이 투자은행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 1인당 수백만 달러에서 수억 달러에 달하는 보너스를 지급하기 위해 쓰여졌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국민들의 분노는 폭발했다.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나섰으나 별 소용이 없었다. 결국 미국 정부는 구제금융을 지원받은 기관의 직원은 보수로 최대 50만 달러만 받을 수 있다는 법안을 마련했다. 공기업도 아닌 민간기업의 보수 수준을 정부가 결정한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은가. 그것도 공산주의 국가도 아닌 현대 자본주의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서 말이다.
투자은행 업계에서도 특히 업계 1위인 골드만삭스에 비난이 집중되고 있다. 골드만삭스 측은 이런 비난이 억울할지도 모른다. 골드만삭스는 위기관리 시스템을 잘 갖춰 금융위기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았다. 회계처리도 보수적으로 하여 금융 자산의 평가 손실도 정확하게 장부에 반영했다. 골드만삭스는 이미 금융위기에서 회복해 상당한 이익을 올리고 있다. 정부로부터 받은 공적자금도 다 상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드만삭스가 비난을 받는 이유는 한국식으로 말하면 국민 정서법이나 괘씸죄 때문이 아닐까 한다. 사람들은 골드만삭스가 이제까지 미국 정부에 낸 세금이 골드만삭스의 이익 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작은데도 불구하고 정부로부터 100억 달러의 공적자금을 받는 등 너무 많은 혜택을 받았다고 말한다. 때문에 골드만삭스에는 혜택을 주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골드만삭스가 2008년 미국 정부에 지불한 세금이 전체 순이익의 1% 정도인 1400만 달러에 불과하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실제로 이는 골드만삭스의 최고경영자(CEO)인 로이드 블랭크페인이 받은 연봉과 비교해봐도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회계 장부 상으로만 보면 골드만삭스가 낸 대부분의 이익이 조세 피난처 국가에서 발생했고 미국에서 번 돈이 거의 없으니 미국 정부에 낼 세금이 많지 않은 게 당연하다.
그러나 일반 미국인들의 감정은 그렇지 않다. 금융위기로 수많은 사람들이 실직하거나 봉급 삭감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골드만삭스 직원들은 천문학적인 급여와 보너스를 받고, 세금은 쥐꼬리만큼만 낸다고 생각한다. 실제 대부분의 영업은 미국에서 이루어지지만 조세 피난처 국가에서 이익을 기록하도록 회계처리를 했을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골드만삭스를 둘러싼 여러 논란은 DBR 44호 ‘회계를 통해 본 세상’ 22편에 실린 ‘골드만삭스가 강한 이유’에서 자세히 설명한 바 있다.
사실 개인이나 기업들은 누구나 대부분 세금을 덜 내려고 한다. 자발적으로 세금을 더 내려고 하는 기업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합법적인 수단을 통해 절세를 하려고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 합법적인 정도가 너무 과해 보인다면, 아무리 합법적이라도 여론의 비난을 받아 기업 이미지가 나빠질 수 있다. 한국에 투자해서 상당한 이익을 올렸지만 역시 조세 피난처를 경유한 투자를 통해 자본 소득에 대한 세금을 내지 않은 외국 사모펀드들도 많다. SK 그룹의 경영권을 공격했던 소버린, 외환은행과 강남 스타타워를 인수했던 론스타 등이 대표적이다. 한국 투자로 큰돈을 벌었지만, 이런 펀드들이 한국에 대규모 투자를 재개하지 못하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거라고 필자는 추측한다. 사실 론스타가 한국에서 손해 본 거래도 일부 있다. 그렇지만 이런 일은 다 묻혀져서 잘 알려지지 않고, 세금을 납부하지 않은 것만 계속 언급되고 있다.
최종학acchoi@snu.ac.kr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필자는 서울대 경영대학 학사와 석사를 거쳐 미국 일리노이주립대에서 회계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홍콩과기대 교수를 거쳐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서울대에서 우수강의상과 우수연구상을 다수 수상하는 등 활발한 강의 및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숫자로 경영하라』 시리즈 1, 2, 3, 4, 5권과 『재무제표분석과 기업가치평가』, 수필집 『잠시 멈추고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