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필자가 속한 회계법인은 외국 기업에 지분을 매각하고자 하는 국내 모 기업의 가치 평가 자문을 담당했다. 이 기업 관계자와 인수자는 평가 방법 및 결과에 대해 큰 견해 차이를 보였다. 인수자는 이 회사와 유사한 상장 회사들의 주식 시장 내 거래 배수를 중심으로 평가 결과를 제시했고, 매도자는 회사의 사업 계획을 바탕으로 한 미래 현금 흐름을 이용하여 평가 결과를 제시했다. 두 방법은 인수합병(M&A)에서 일반적으로 쓰이는 방법임에도 불구하고 추정된 기업가치는 2배 이상 차이가 났다.
2008년 하반기에 한참 매각 절차가 진행되던 대우조선도 마찬가지다. GS그룹의 인수 포기 선언 후 한화가 우선 협상자로 선정됐다. 한화는 양해각서(MOU)와 실사를 비롯한 인수 절차를 진행하다 돌연 인수를 포기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당시 한화가 대우조선의 지분 50% 인수에 제시한 가격은 6조 3000억 원이었다. GS나 포스코 역시 6조 원 정도의 인수 가격을 검토했다. 하지만 최근 다시 매각 절차를 진행할 것으로 보이는 대우조선의 현재 시장 가치는 이와 큰 차이가 난다. 현재 대우조선 지분 50%의 가격은 2조 1000억 원 내외다. M&A에 수반되는 상당한 웃돈을 고려해도 3조 원을 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과연 한화나 다른 기업들이 6조 원 이상으로 대우조선을 인수했다면 현재 어떤 처지가 됐을까?
금호아시아나 그룹의 사례도 빼놓을 수 없다. 금호아시아나는 M&A를 통해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했지만 결국 2009년 말 일부 계열사들이 워크아웃 대상으로 지정되는 등 큰 시련을 겪었다. 금호아시아나가 재무 위기에 빠진 이유는 2005년 인수한 대우건설의 주가가 기대만큼 상승하지 않아, 계약 당시 재무적 투자자들에게 약속한 풋 옵션(put option) 조항이 부메랑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국내 M&A 시장의 거품이 최고조에 달했던 지난 2005∼2007년 중 공격적으로 기업 사냥에 나섰던 많은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표1)
필자는 M&A에서 가장 중요한 사안이 가격 결정, 그중에서도 가치 평가(Valuation)라고 생각한다. 물론 최종 가격 결정은 가치 평가보다 훨씬 어려운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적절한 가치 평가가 이뤄지지 않으면 M&A의 악영향이 상상 이상으로 클 수 있다는 점을 최근 몇몇 사례가 잘 보여준다. 즉 M&A의 성공을 가능케 하는 요인은 여러 가지지만 사후 가장 중요하다고 평가 받는 사안은 결국 가치 평가와 밀접한 관련을 지닌 인수 금액이다.
인수자의 자신감과 인수 금액 거품 논란
2006년부터 2007년 동안 국내에서는 공격적인 대형 M&A들이 여럿 등장했다. 기업들은 풍부해진 유동성을 바탕으로 성장을 위한 새 동력을 찾으려 했고, 시너지 창출이 가능하다고 판단한 기업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인수를 시도했다. 불행히도 많은 기업들이 동일한 회사를 두고 경쟁했기 때문에 최종 인수자로 낙찰된 기업은 높은 인수 금액을 제시할 수밖에 없었다. 2008년 금융위기가 도래하면서 최종 인수자 중 일부는 결국 ‘승자의 저주’에 빠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시기 M&A를 단행한 기업들의 재무 실적을 EV/EBITDA 지표로 분석해보면 다음과 같다.(표2) EV/EBITDA는 기업가치(EV)를 이자·법인세·감가상각비 지급 전 이익(EBITDA)으로 나눈 수치다. 일반적으로 기업이 자기 자본과 타인 자본을 이용해 어느 정도 현금 흐름을 창출할 수 있는지를 파악하는 지표로 쓰인다. 수치가 높을수록 현금 흐름 창출 능력이 좋다는 뜻이다. 하지만 아래 표에서 보듯 M&A 전과 후를 비교해보면 그 수치가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M&A를 시도하는 기업의 기대대로 지속적인 성장이 이뤄진다면 인수 후와 인수 전 EV/EBITDA 지표의 차이가 별로 없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사례가 많지 않다는 게 문제다.
M&A는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야 하기에 경험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같은 산업에서의 운영 경험이나 인수 경험이 있는 기업들은 때로 피인수 기업에게 공격적인 제안을 내놓는다. 하지만 인수자의 경험과 자신감이 항상 좋은 결과를 낳는 건 아니다. 2007년 글로벌 M&A 시장을 이끌었던 세계적인 사모펀드들도 금융위기를 피해갈 수 없었다. 인수 과정과 인수 후 경영에 대해 강한 자신감을 피력하며 공격적인 M&A를 시도한 많은 대형 사모펀드들은 금융위기로 큰 어려움을 겪었고 몇몇 펀드는 거의 해산할 지경에 이르렀다.
국내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특정 산업에서 잇따른 기업 인수로 큰 성공을 거뒀던 모 그룹은 시너지 효과 창출이 가능하다고 평가한 동종업계의 해외 기업이 매물로 나오자 적극적으로 인수를 추진했다. 외국 글로벌 기업들과 가격 경쟁을 한 끝에 인수에 성공했지만 세계 금융위기가 터져 큰 시련을 겪었다. 거듭 말하지만 인수 후 성공적인 경영에 대한 자신감이 지나치게 높은 가치 평가로 연결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