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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이 보물선의 꿈 부른다

최종학 | 27호 (2009년 2월 Issue 2)
보물선은 어린이 동화책에나 나올 법한 얘기지만 지금도 가끔 세계 각국에서 보물선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국내에서도 충남 태안 앞바다 등지에서 도자기 등을 싣고 가다 난파한 보물선이 발견됐다. 태안 보물선은 주꾸미를 낚는 어부가 주꾸미를 잡아 올릴 때, 주꾸미가 도자기를 꼭 물고 올라오는 바람에 세상에 나왔다. 주꾸미가 1000년 동안 해저에 숨겨졌던 고려시대 보물을 끌어올렸다는 얘기는 한동안 사람들 입에 크게 오르내렸다.
 
일제 시대에 숨겨둔 금괴를 발굴한답시고 투자자를 모집했다가 사기를 치고 도주하는 사건도 지난 수십 년 동안 계속 일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에 속는 사람이 생긴다는 사실은 참 이해하기 어렵다. 하긴 구권 화폐를 신권 화폐로 교환해 주겠다는 사기 사건도 약 10년 동안 줄기차게 이어졌지만 아직까지 속는 사람이 있으니 보물선에 속는 사람이 계속 생기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주식시장에도 보물선이 있다. 이 보물선은 소위 ‘보물선 테마주’라 불린다. 보물선과 관련된 호재로 주가를 띄우는 사건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예가 동아건설이다. 2000년에 법정관리 상태이던 동아건설의 주가가 갑자기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울릉도 앞바다에 수장된 러시아 군함 드미트리 돈스코이 호에 막대한 금괴가 실려 있는데 동아건설이 이 군함을 인양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군함을 인양하기만 하면 동아건설이 자금난을 일시에 해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당당히 부활할 수 있다는 루머도 나왔다. 이에 힘입어 동아건설 주가는 300원에서 3000원 이상까지 수직 상승하기도 했다.
 
특히 이때 동아건설 주가는 무려 17일 동안 상한가를 기록했다. 17일 연속 상한가라는, 당분간 깨지기 힘든 엄청난 기록이 보물선 소식 하나로 수립된 셈이다. 그러나 이는 소문에 불과했으며, 동아건설은 주식시장에서 퇴출당했다. 일확천금을 노리던 많은 투자자는 쪽박을 찰 수밖에 없었다.
 
역시 2000년에 삼애앤더스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회사의 주가도 갑자기 오르기 시작했다.
 
일제시대 때 일본군이 패망 직전 진도 앞바다 해저에 20조 원 가치의 보물을 묻어뒀다는 얘기를 이용호 삼애앤더스 사장이 직접 들고 나왔기 때문이었다. 별다른 영업 활동도 없던 삼애앤더스 주가는 2000원에서 1만7000원대까지 8.5배 이상으로 뛰었다.
 
당시 이 사장은 김대중 대통령의 친인척과 실세 유력 정치인을 후견인으로 내세우면서 갑자기 유명해졌다. 그러나 이러한 유명세도 잠시, 삼애앤더스는 곧 파산했다. 이 사장은 세간의 화제가 된 이용호 게이트 사건의 주역으로 등장했고, 결국 주가조작 혐의로 구속됐다. 이용호 게이트 조사 결과 국가정보원은 물론 검찰의 최고 수뇌부까지도 이 사장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가히 대표적인 권력형 비리로 불릴 만했다.
 
동아건설과 삼애앤더스의 보물선 탐사
이런 보물선 파동은 냉정히 생각하면 처음부터 사기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선 동아건설이나 삼애앤더스의 주력 사업은 보물선 탐사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삼애앤더스야 실체가 거의 없는 중소기업이니 논외로 하자. 동아건설도 리비아 대수로 공사를 성공적으로 완수해 낸 건설 회사일 뿐 보물 탐사나 해양 탐사와는 무관한 기업이다.
 
동아건설이 설사 드미트리 돈스코이 호를 발견했다 하더라도 그 배에 금괴가 실려 있을지 의문이다. 금괴가 실려 있다 해도 그 금괴의 소유주를 가리는 작업 또한 상당히 복잡하다. 러시아 정부, 동아건설, 울릉도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누가 금괴의 소유주냐는 문제를 두고 장기간에 걸친 국제 및 국내 소송이 이어질 것이다. 따라서 이 보물선 테마주라는 것은 처음부터 사기성이 농후한, 아무런 실체가 없는 것이었다.
 
삼애앤더스도 마찬가지다. 앞에서 언급한 이유 외에도 예전부터 대통령 친인척이나 권력 실력자가 등장하는 사건 가운데 후일담이 좋은 경우는 전무했다. 이 점만 봐도 이미 사기라는 것이 거의 분명한 사건이었다. 정말 좋은 투자처가 있다면 굳이 대통령 친인척이나 유력 정치인에게 지분을 나눠주고 정치자금을 내면서 이들을 후견인으로 내세울 필요가 없다. 국정원이나 검찰을 동원해 금융기관에 발굴 자금 대출 압력을 넣을 필요 또한 물론 없다.
 
그렇다면 왜 이런 보물선 사기가 횡행하는 것일까. 우선 동아건설 처지에서 보면 당시 동아건설은 이미 시장에서 퇴출 일보 직전에 처해 있었다. 회사의 퇴출을 막기 위해 회사 임직원들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몇몇 주주들도 회사 퇴출로 보유 주식이 휴지조각이 되기 전에 주식을 매각하고 난파선에서 뛰어내릴 기회를 찾고 있었다.

 

그러나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퇴출을 피할 방도가 없었다. 신주나 사채를 발행해도 인수할 투자자가 없었다. 보물선 소문이 나면서 이 모든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회사가 망하기 직전이라면 경영자나 주주들은 아무리 위험한 프로젝트라도 수행하려 할 것이다. 어차피 망하면 경영자는 직업을 잃고, 투자자는 큰 손해를 본다. 아무리 성공 가능성이 낮은 위험한 프로젝트라도 성공하기만 하면 회사를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카드 게임을 하면서 돈을 계속 잃었다고 가정해 보자. 다음 판에서 이전 판에 잃은 돈의 2배씩을 베팅하면 100번 연속 지더라도 한 번 이기면 이론적으로 원금을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1만 원, 2만 원, 4만 원, 8만 원씩 베팅해 모두 잃었다면 4게임에 걸쳐 총 15만 원을 잃는다. 그런데 다섯째 게임에서 8만 원의 두 배인 16만 원을 베팅해 이기면 1만 원(16-15=1)의 이익을 얻는다.
 
이는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도저히 착수하지 않을 실현 가능성 낮은 프로젝트가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왜 종종 등장하는지를 잘 보여 준다. 실패할 가능성이 높지만 만에 하나 성공하면 원금 회복이 가능하다. 단 이런 프로젝트는 자신의 자금이 아니라 되도록이면 남의 자금을 빌려서 수행하려 할 것이다. 자신의 돈을 투자한다면 아무도 도박과 같은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흔히 이야기하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는 셈이다.
 
이러한 논리 그대로 동아건설은 채권단으로부터 보물선 발굴에 필요한 돈을 대출받으려고 매우 애썼다. 이 와중에 소문이 퍼지면서 주가가 오르기 시작하자 기존 주주들은 재빨리 오른 가격에 주식을 팔기 시작했다. 보물선 소문만 믿고 주식을 산 ‘순진한’ 투자자들만 주주로 남은 것이다.
 
사실 동아건설이 파산을 선고 받기 직전 비싼 가격에 주식을 산 주주들이 순진한 투자자인지, 시한폭탄이 언제든 터질 수 있다는 점을 알면서도 주가의 추가 상승 기대감에 물불 가리지 않고 폭탄 돌리기 게임에 뛰어든 투기 세력인지는 쉽게 판단할 수 없다. 어쨌든 채권단은 동아건설의 요구를 거부했으며, 동아건설은 파산했다.
 
도박과 로또는 왜 유행하는가
이 사건이 벌어지던 당시 모 기자가 동아건설을 방문했다. 기자가 보물선 이야기의 신뢰성을 묻자 동아건설 관계자는 “어차피 인생은 도박 아닙니까”라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참으로 심오한 대답이 아닐 수 없다. ‘인생은 도박’이라는 말 한마디에 신뢰성에 관한 모든 해답이 들어 있다.
 
삼애앤더스 사건은 더욱 허점투성이였다. 일제시대나 지금이나 진도는 지리적으로 오지에 속한다. 물론 보물은 남들이 찾기 힘든 곳에 숨겨야 하지만 최소한 숨긴 본인은 쉽게 찾아올 수 있는 곳에 남겨 두는 것이 논리적으로 합당하다. 차라리 일제가 부산항에 만든 지하 해군기지나 부산 앞바다 무인도에 보물이 있다고 하면 훨씬 신빙성 있게 들렸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사건이 IMF 사태 직후인 2000년에 일어난 것일까. 그 이유는 경제 상황이 어려울 때 도박과 로또복권이 더 유행한다는 사실로부터 추론할 수 있다. 전대미문의 금융위기 충격이 가시지 않던 당시 많은 사람은 주식투자 등으로 큰 손해를 보았다. 이런 사람들은 비록 가능성이 낮을지라도 현재의 어려움을 탈출하고, 유토피아의 세계로 진입하기를 꿈꾼다.
 
그러다 보니 이런 무모한 투자에 ‘올 인’하는 것이다. 한번 투자에 실패하면 그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더욱 공격적인 투자를 일삼는다. 그러다 보면 이런 믿기 힘든 보물선이란 함정에 빠진다. 키코(KIKO)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키코보다 더 위험한 파생상품인 피봇(Pivot)을 구입하는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요즘 세계 경제가 많이 어렵다. 한국도 마찬가지여서 주가가 급락하고 회사 부도율 또한 높아지고 있다. 청년 실업은 커다란 사회 문제로 비화됐다. 필자가 일하는 서울대의 졸업생조차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 이렇게 경제가 어려울 때 보물선과 같은 허황된 테마로 주가를 조작하려는 사람이 꼭 등장한다.
 

2009
년의 새로운 보물선은?
2009년의 보물선 테마는 꼭 보물선 발견이라는 사건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보물선 소문에는 속을 만큼 속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외 유전이나 광산 발견, 놀라운 신기술 개발, 해외 인수합병(M&A), 외국인이나 유명 연예인의 투자 유치도 결국 보물선 탐사와 맥을 같이하는 사건이다. 금괴가 유전·석탄·신기술·외국인·연예인 등으로 이름을 바꾼 것에 불과하다.

예나 지금이나 이런 장난을 치는 기업은 모두 경영 성과가 부실하고, 기업 규모도 작은 한계 기업이다. 2006년에 발생한 ‘주식회사 이영애’ 사건이 대표적이다. 한류스타 이영애 씨가 드라마 ‘대장금’의 대히트로 아시아 지역에서 크게 인기를 끌자 본인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다른 사람이 이영애 씨 이름을 도용해 사업을 벌이겠다고 나선 것이다.
 
심지어 회사 설립 발표도 이영애 씨가 해외 출장을 간 사이에 이뤄졌다. 마침 비행기 이륙이 늦어져서 공항 라운지에서 기다리던 이영애 씨가 뉴스에서 이 보도를 보고 깜짝 놀라는 바람에 사기라는 것이 불과 몇 시간 만에 들통이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자자들은 계속 속기만 한다. 실체도 불분명하고 자금 사정도 나쁜 기업이 무슨 수로 막대한 비용과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해외 유전이나 광산 개발 사업을 진행하겠는가. 얼마나 대단한 비장의 기술이 있어 이 기업이 M&A의 목표물이 되겠는가. 중동이나 유럽의 유명 투자자, 그 바쁜 유명 연예인이 무엇 때문에 이 조그만 회사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겠는가.
 
최근에는 이것도 부족한지 나이 어린 재벌 2, 3세가 투자한다는 재벌 후계자 테마주까지 등장했다. 재벌 후계자 테마주는 재벌의 이름을 이용해 돈을 벌려는 배후 세력이 작전을 꾸미고, 철 모르는 후계자를 감언이설로 속여 소위 ‘얼굴 마담’으로 내세우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 광풍이 끝나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또 땅을 치며 통곡할지 걱정이다. 왜 눈을 크게 뜨고 합리적인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 ‘사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좋다(It is too good to be true)’라는 영어 속담이 절로 생각난다.
 
하긴 이는 한국에서만 벌어지는 일도 아니다. 금융위기 여파로 비틀대고 있는 월가는 최근 전 나스닥 회장인 거물 펀드 매니저 버너드 메이도프가 벌인 사상 초유의 다단계 사기 행각으로 큰 타격을 받았다. 월가의 내로라하는 금융 전문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나 배우 케빈 베이컨과 같은 유명 연예인, 한국의 몇몇 대형 금융기관도 메이도프의 폰지 사기에 당했다. 이를 보노라면 탐욕을 좇는 인간의 본성이 존재하는 한 제2, 3의 메이도프가 다시 등장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앞 설 따름이다.
  • 최종학 최종학 | - (현)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 우수강의상과 우수연구상 동시 수상
    - 홍콩과기대 교수
    acchoi@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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