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가 촉발한 신용위기가 확산되면서 전 세계 경제가 대공황에 버금갈 정도의 충격을 받고 있다. 이번 경제위기의 근본 원인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나오고 있다. 많은 전문가가 공통적으로 꼽고 있는 것은 19년 동안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으로 재직하며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한 ‘마에스트로’ 앨런 그린스펀의 저금리 정책이다.
그린스펀 전 의장이 재임기간 내내 저금리 정책을 고수하면서 사람들은 저축 대신 소비에 나섰고, 소비할 돈이 부족해지자 은행에서 돈을 빌려 물건을 사들였다. 은행 대출로 주택을 구입한 것이 바로 소비 증가의 대표적 형태였다.
게다가 미국은 저가 상품은 중국과 남미, 고가 상품은 유럽, 에너지는 중동 및 중앙아시아에서 수입해 끊임없이 소비했다. 이를 통해 미국뿐 아니라 미국에 상품과 자원을 공급하는 각국 경제 또한 비정상적인 수준으로 갑자기 팽창하는 거품에 휩싸였다. 이 와중에 미국은 해외에서 물품을 수입할 달러가 부족해지자 기축통화인 미국달러를 계속 찍어내 구입 자금을 충당했으며, 이로 인해 전 세계에는 유동자금이 넘쳐났다.
유동자금은 새로운 투자처를 찾기 위해 배회했다. 때마침 수학과 통계학을 금융상품에 접목한 금융공학이 발달하면서 파생상품이 쏟아져 나왔으며, 단 하나의 기초자산(underlying assets)으로 다수의 파생상품을 만들어 파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를 놓칠세라 각국에서 넘쳐나던 유동자금은 파생상품 쪽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베어스턴스, 리먼브러더스 등 이번 신용위기로 파산한 투자은행들은 막대한 돈을 빌려 파생상품에 투자했다가 화를 당했다. 금리가 매우 낮기 때문에 빚을 내 투자하더라도 돈을 벌기만 하면 이자를 갚은 뒤에도 충분히 이익을 올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집값이 떨어지면서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이 급증하고 관련 파생상품이 부실화되는 등 거품은 꺼지기 시작했다. 미국이 어려워지니 미국 시장에 저가 상품을 수출하던 중국 및 남미 경제 상황도 악화됐으며, 미국에 직접 투자하던 유럽 경제 또한 나빠졌다. 미국의 경제 위기가 순식간에 전 세계로 번진 것이다.
신용위기 원인은 저금리가 아니다
이는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신용위기의 원인을 쉽게 설명한 것이다. 그러나 과연 전 세계 수많은 금융기관이 쓰러진 근본 이유가 과연 이것 뿐일까. 항상 회계를 중심으로 경제 현상에 접근하는 필자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필자는 이번 경제위기의 진정한 원인은 미국 금융기관들의 지나친 성과급 지급과 단기 성과평가 제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금융기관이 소비자들의 신용을 정확히 평가해 불량 대출자를 가려내고 이들에게 대출해 주지 않았다면 사람들이 빚을 내 분수에 맞지 않는 소비를 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투자은행 또한 위험관리 시스템을 적절히 갖췄더라면 위험한 파생상품을 설계해 판매하거나 위험한 자산에 무모하게 투자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에 파산한 몇몇 미국 투자은행의 경우 부채가 자기자본의 20, 30배를 초과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 원인을 저금리에만 돌릴 수는 없다. 물론 저금리가 금융기관들로 하여금 더 많은 부채를 빌리도록 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자율이 낮은 것만으로 이번 사태를 설명할 수 없다는 의미다. 금리 수준과 관계없이 금융기관들은 이런 공격적인 행동으로 내 몬 인센티브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 인센티브가 바로 과도한 성과급과 단기에 치중한 성과평가제도다.
과도한 성과급, 무엇이 문제인가
미국 금융기관 종사자들의 전체 보수에서 성과급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다. 이 현상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한국보다 고정급 비중이 작은 반면에 성과급 비중이 엄청나게 크다. 고위층으로 올라갈수록 성과급 비중이 높아지므로 최고 경영진이 수천 만 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보너스를 받는 경우도 흔하다.
이 성과는 대부분 당기순이익, 총자산이익률(ROA), 경제적 부가가치(EVA) 등의 회계지표로 측정할 수 있다. 따라서 최고 경영진은 성과를 높이기 위해 공격적 투자를 통한 지표 개선을 시도한다.
한국적 견해로는 최고 경영진이 높은 위험을 감수하며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것을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한국에서 어떤 최고경영자(CEO)가 회사의 당기순이익을 100억 원 증가시켰다면 그 경영자는 1억 원 정도의 보너스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의 위험성이 매우 높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잘 되면 당기순이익 100억 원 증가가 가능하다 해도 실패하면 회사가 망할 정도의 위험을 지녔다면 1억 원의 보너스 때문에 이를 시도하는 경영자는 없을 것이다.
미국은 다르다. 회계보고서에 공시된 미국 경영자 보수를 조사한 결과 최고 경영진 5명이 받은 평균 보수가 회사 당기순이익의 약 10%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신용위기에 문제를 일으킨 투자은행들은 이 비율이 더 높았다. CEO의 연간 성과급이 수백 억 원, 수천 억 원에 이르는 사례도 많았다.
실제로 리먼브러더스는 파산 2주 전에도 2명의 이사에게 2000만 달러(약 300억 원)의 성과급을 지급했다. 리먼의 CEO 리처드 풀드는 파산 전 4년 동안 총 4억8000만 달러(약 7000억 원)의 보수를 받았다.
미국 CEO들의 평균 보수는 자사 평직원의 400배에 이른다. 한국 기업도 회계보고서에 이 수치를 공개하지만, 조사 결과 그 수치는 겨우 11배에 불과했다.
이런 막대한 보수 때문에 많은 미국 CEO 들은 위험관리에 소홀했다. 또한 막대한 성과급으로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하는 호화 생활도 즐겼다. 사치에 한 번 익숙해지면 다시는 예전의 생활로 돌아갈 수 없다. 현재 누리는 생활 수준을 유지하려면 이미 받은 막대한 성과급 외에도 수백 억 원, 수천 억 원을 더 벌어야 한다. 때문에 투자 위험을 방관한 채 고위험 상품에 투자했다가 신용위기를 자초한 것이다.
경영자들의 이런 행태 때문에 신용위기 초기에 많은 미국인은 부실 금융기관에 대한 미국 정부의 자금 지원을 반대했다. 의회가 7000억 달러의 구제금융 법안을 처음에는 부결시킨 것도 이 때문이다. 회사에서 쫓겨난 금융 거물들의 불행을 기뻐하는 사람도 많았다. 리먼브러더스의 리처드 풀드 전 CEO는 회사가 파산을 발표한 상황에서도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즐기다가 분노한 시민으로부터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미국 정부는 국민들의 이러한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구제금융을 받은 금융기관이 경영진에 상당 금액의 성과급을 지급하는 것을 금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