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선은 어린이 동화책에나 나올 법한 얘기지만 지금도 가끔 세계 각국에서 보물선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국내에서도 충남 태안 앞바다 등지에서 도자기 등을 싣고 가다 난파한 보물선이 발견됐다. 태안 보물선은 주꾸미를 낚는 어부가 주꾸미를 잡아 올릴 때, 주꾸미가 도자기를 꼭 물고 올라오는 바람에 세상에 나왔다. 주꾸미가 1000년 동안 해저에 숨겨졌던 고려시대 보물을 끌어올렸다는 얘기는 한동안 사람들 입에 크게 오르내렸다.
일제 시대에 숨겨둔 금괴를 발굴한답시고 투자자를 모집했다가 사기를 치고 도주하는 사건도 지난 수십 년 동안 계속 일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에 속는 사람이 생긴다는 사실은 참 이해하기 어렵다. 하긴 구권 화폐를 신권 화폐로 교환해 주겠다는 사기 사건도 약 10년 동안 줄기차게 이어졌지만 아직까지 속는 사람이 있으니 보물선에 속는 사람이 계속 생기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주식시장에도 보물선이 있다. 이 보물선은 소위 ‘보물선 테마주’라 불린다. 보물선과 관련된 호재로 주가를 띄우는 사건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예가 동아건설이다. 2000년에 법정관리 상태이던 동아건설의 주가가 갑자기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울릉도 앞바다에 수장된 러시아 군함 드미트리 돈스코이 호에 막대한 금괴가 실려 있는데 동아건설이 이 군함을 인양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군함을 인양하기만 하면 동아건설이 자금난을 일시에 해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당당히 부활할 수 있다는 루머도 나왔다. 이에 힘입어 동아건설 주가는 300원에서 3000원 이상까지 수직 상승하기도 했다.
특히 이때 동아건설 주가는 무려 17일 동안 상한가를 기록했다. 17일 연속 상한가라는, 당분간 깨지기 힘든 엄청난 기록이 보물선 소식 하나로 수립된 셈이다. 그러나 이는 소문에 불과했으며, 동아건설은 주식시장에서 퇴출당했다. 일확천금을 노리던 많은 투자자는 쪽박을 찰 수밖에 없었다.
역시 2000년에 삼애앤더스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회사의 주가도 갑자기 오르기 시작했다.
일제시대 때 일본군이 패망 직전 진도 앞바다 해저에 20조 원 가치의 보물을 묻어뒀다는 얘기를 이용호 삼애앤더스 사장이 직접 들고 나왔기 때문이었다. 별다른 영업 활동도 없던 삼애앤더스 주가는 2000원에서 1만7000원대까지 8.5배 이상으로 뛰었다.
당시 이 사장은 김대중 대통령의 친인척과 실세 유력 정치인을 후견인으로 내세우면서 갑자기 유명해졌다. 그러나 이러한 유명세도 잠시, 삼애앤더스는 곧 파산했다. 이 사장은 세간의 화제가 된 이용호 게이트 사건의 주역으로 등장했고, 결국 주가조작 혐의로 구속됐다. 이용호 게이트 조사 결과 국가정보원은 물론 검찰의 최고 수뇌부까지도 이 사장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가히 대표적인 권력형 비리로 불릴 만했다.
동아건설과 삼애앤더스의 보물선 탐사
이런 보물선 파동은 냉정히 생각하면 처음부터 사기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선 동아건설이나 삼애앤더스의 주력 사업은 보물선 탐사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삼애앤더스야 실체가 거의 없는 중소기업이니 논외로 하자. 동아건설도 리비아 대수로 공사를 성공적으로 완수해 낸 건설 회사일 뿐 보물 탐사나 해양 탐사와는 무관한 기업이다.
동아건설이 설사 드미트리 돈스코이 호를 발견했다 하더라도 그 배에 금괴가 실려 있을지 의문이다. 금괴가 실려 있다 해도 그 금괴의 소유주를 가리는 작업 또한 상당히 복잡하다. 러시아 정부, 동아건설, 울릉도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누가 금괴의 소유주냐는 문제를 두고 장기간에 걸친 국제 및 국내 소송이 이어질 것이다. 따라서 이 보물선 테마주라는 것은 처음부터 사기성이 농후한, 아무런 실체가 없는 것이었다.
삼애앤더스도 마찬가지다. 앞에서 언급한 이유 외에도 예전부터 대통령 친인척이나 권력 실력자가 등장하는 사건 가운데 후일담이 좋은 경우는 전무했다. 이 점만 봐도 이미 사기라는 것이 거의 분명한 사건이었다. 정말 좋은 투자처가 있다면 굳이 대통령 친인척이나 유력 정치인에게 지분을 나눠주고 정치자금을 내면서 이들을 후견인으로 내세울 필요가 없다. 국정원이나 검찰을 동원해 금융기관에 발굴 자금 대출 압력을 넣을 필요 또한 물론 없다.
그렇다면 왜 이런 보물선 사기가 횡행하는 것일까. 우선 동아건설 처지에서 보면 당시 동아건설은 이미 시장에서 퇴출 일보 직전에 처해 있었다. 회사의 퇴출을 막기 위해 회사 임직원들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몇몇 주주들도 회사 퇴출로 보유 주식이 휴지조각이 되기 전에 주식을 매각하고 난파선에서 뛰어내릴 기회를 찾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