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여름 동아제약의 강신호 회장과 강 회장의 차남인 강문석 수석무역 대표 사이에 경영권 분쟁이 벌어졌다. 가장 가까운 사이여야 할 부자 사이에 내분이 일어난 것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지만 한 번 돌아선 부자 관계는 이 경영권 분쟁을 서로 전혀 모르는 남남 사이의 다툼보다 더 치열하게 만들었다.
원래 강문석 대표는 동아제약에서 7년 동안 대표이사로 근무했다. 그러나 그는 경영 방침을 둘러싼 의견 대립으로 아버지와의 관계가 악화돼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후 강 대표는 서서히 동아제약의 주식을 매집했다. 14.79%의 지분을 획득한 그는 15.61%의 지분을 가지고 있던 강신호 회장 측에 대항해 주주총회에서의 표 대결을 선언했다.
당시 동아제약의 상황은 상당히 어려웠다.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받고 350억 원의 추징금을 부과받아 이를 납부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이 와중에 아들로부터 경영권마저 위협 받았으니 강 회장의 심정이 어떠했는지 짐작하기가 어렵지 않다.
치열한 언론 플레이를 벌이던 두 사람은 여러 경로의 중재를 통해 극적으로 화해했다. 그리고 강문석 대표와 강 대표가 추천한 인물 1명을 동아제약의 이사로 선임했다. 즉 강 대표의 경영 참여를 일부 인정하는 형식이다. 이렇게 부자 사이의 다툼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듯했다.
동아제약 경영권분쟁의 변수
재미있는 일은 그 다음에 벌어졌다. 동아제약은 그 뒤 이사회에서 자사가 보유하고 있던 자기 주식 약 75만주(전체 지분율 7.45%)를 해외의 조세피난처 국가에 위치한 특수목적법인(SPC)인 DPA 리미티드와 DPB 리미티드에 전량 매각, 648억 원을 조달하기로 결의했다.
이 두 SPC가 동아제약 주식을 매입하기 위해 지불한 648억 원은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받은 것이었다. 대출금에 대해서는 동아제약이 지급보증을 서 주기로 했다. DPA와 DPB는 동아제약 주식을 이용해 8000만 달러의 교환사채(EB)를 발행하기로 했다. EB는 사채의 보유자가 일반 사채처럼 발행회사로부터 이자를 정기적으로 지급받을 수 있으며, 사채를 발행한 회사에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자사주 또는 타사 주식을 사채와 교환할 권리를 포함하고 있다.
이 EB의 발행 조건은 발행 1년 후인 2008년 7월 4일 이후부터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동아제약 주식으로 교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교환가액은 발행 직전일의 동아제약 주가보다 15% 높은 9만8500원이었다. EB 이자율은 3.95∼4.10%, 발행일로부터 3년 되는 시점에 구매자가 풋(매도) 옵션을 행사해서 발행자에게 상환을 요구할 권리도 포함되어 있었다.
가장 흥미를 끄는 점은 발행 즉시 알려지지 않은 구매자가 나타나 이 EB를 매입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에 대해 언론은 전혀 심층적인 기사를 내놓지 못했다. 단지 이러한 사건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피상적으로 간단히 보도하는 정도였다. 이 보도를 읽은 전문지식이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 입장에서는 도대체 이 사건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경영 전문가가 아닌 기자들이 SPC, EB, 지급보증 등의 의미를 명확히 이해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설령 동아제약의 재무제표나 공시 내용을 모두 살펴본다 해도 앞에서 언급한 정보 이외의 다른 상세한 정보는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필자는 이 사건에 대한 자세한 내부 정보를 전혀 갖고 있지 못하다. 다만 상식적 수준에서 공시처럼 이용 가능한 공개정보를 통해 추측할 뿐이다.
그런데 이름도 듣지 못한 페이퍼 컴퍼니로 보이는 DPA나 DPB라는 회사가 갑자기 나타나서 모두 동아제약이 지급보증을 해준 덕택에 빌린 돈으로 동아제약의 자사주를 사준다는 것은 아무래도 개운치 않다. DPA나 DPB가 법적으로는 동아제약과 아무 관계가 없다 해도 다른 연관성이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게 만든다.
자기주식 매각대신 EB 선택
그렇다면 동아제약은 왜 자기주식을 시장에서 매각하지 않고 이런 방법으로 해외 SPC에 매각해 EB를 발행하는 방법을 이용했을까. 그 이유는 강문석 대표와의 경영권 분쟁 때문일 것이다. 서로 지분경쟁을 벌이는 입장에서 현금 동원력이 별로 없는 경우 회사에서 보유하고 있는 자기주식을 시장에 매각해 회사에 필요한 현금을 조달한다고 할 때 경쟁 상대방이 매각된 주식을 매집한다면 경영권이 위험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3자 배정 형식으로 모든 자기주식을 우호세력인 특정인에게 국내에서 매각한다면 이는 경영권을 둘러싸고 법정소송이 벌어질 때 문제의 꼬투리를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법적으로는 아무 관계가 없는 해외 법인인 DPA나 DPB가 발행한 EB를 누가 사든 동아제약이 상관할 바가 아니다.
따라서 자기주식을 시장에서 매각하지 않고 국내 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외국에 위치한 제 3자에게 넘겨 그 3자가 EB를 발행하도록 한 것이다. 이 방법으로 자기주식을 매각해 현금 648억 원을 조달했으므로 동아제약은 부과된 세금을 무사히 납부하고 유동성 위기를 넘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