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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4. 암흑 속 깜짝 흑자, ‘대한항공’의 피버팅

“수송보국… 승객이 없으면 화물을 실어라”
기내 좌석과 함께 고정관념을 떼어내다

배미정 | 313호 (2021년 01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대한항공은 코로나19 사태로 국제 여객 사업이 70%가량 축소됐음에도 불구하고 화물 사업 중심으로 피버팅해 전 세계 주요 항공사 중 유일하게 흑자를 기록했다. 대한항공 피버팅의 성공 비결은 첫째, 아이디어를 신속하게 행동으로 전환시킨 CEO의 톱다운식 의사결정, 둘째, 단계별로 화물 전용 여객기를 개조해 혁신의 강도를 점진적으로 높여 나간 점, 셋째, 비대면 업무 환경을 마련해 부서 간 협업의 시너지를 높인 점, 마지막으로 운송 네트워크와 영업력의 기존 핵심 역량을 새로운 사업 중심으로 재분배한 점이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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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의 화물기가 운항을 준비하는 모습 / 사진 제공=대한항공

지난해 2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해 중국을 시작으로 봉쇄령이 확산되면서 국내 대기업들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 중국의 공장이 멈추면서 수출 생산 물량에 차질이 생겼고 이동에 제약이 생기면서 사람뿐 아니라 물류에도 제동이 걸렸다. 그중에서도 봉쇄령의 직격탄을 맞은 업종은 바로 항공업이었다. 하늘길이 막히면서 오도 가도 못하게 된 여객기들이 활주로를 빼곡히 채웠다. 하늘을 날지 못하고 땅에서 대기 중인 여객기를 그저 지켜봐야 하는 국내 1위 국적 항공사 대한항공의 임직원들 속은 타들어 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바이러스의 대유행을 당장 막을 길도 없었다. 매출의 70% 가까이 차지했던 여객 사업이 멈추면서 직원의 집단 휴직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더불어 회사의 미래도 암담해졌다.

하지만 대한항공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밝은 면(bright spot)을 찾았다. 불확실한 미래에 발목 잡히는 대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추진하기로 했다. 여객 대신 항공화물 중심으로 회사의 가용 자원을 전면 재배치하기로 한 것이다.

화물도 상황이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경기가 위축되면서 해외 공장 생산이 줄줄이 멈추고 항공화물의 수요도 움츠러들었다.1 하지만 항공화물의 수요 감소보다도 공급 부족 문제가 훨씬 더 심각했다. 여객기 운항이 멈춘 탓이다. 대다수 항공사는 소수의 화물기를 보유하면서 다수인 여객기 화물칸에 승객 짐을 실은 뒤 여유 공간을 활용해 화물을 운송해왔다. 그런데 여객기의 운항이 멈추면서 이런 화물 운송에도 차질이 생긴 것이다. 특히 마스크 등 국가 간 방역 물자의 이동 수요가 늘면서 항공 화물의 수요 대비 공급 부족 현상은 더욱 가중됐다. 오랫동안 대형 화물기를 다수 보유하면서 화물 운송 네트워크에 투자해온 대한항공에 실낱같은 희망의 빛이 보였다. 대한항공은 화물 운송에 공격적으로 투자하기로 전격 결정하고, 대기 중인 여객기까지도 항공화물 전용으로 바꿔 활용하기로 피버팅(pivoting, 방향 전환)했다. 지난해 1월23일 중국 우한의 봉쇄령이 내려진 지 한 달쯤 됐을 때였다. 그리고 3월13일 대한항공은 인천-호찌민행 편에 처음으로 승객 없는 화물 전용 여객기를 띄웠다. 화물칸 전체를 화물로 가득 채운 여객기였다.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다음 단계로 여객기 여객칸의 좌석 위 짐 넣는 선반(overhead bin)에 짐을 싣기 시작했다. 그다음에는 좌석에 화물을 담을 수 있는 카고 시트백(Cargo Seat Bag)을 설치했다. 나중에는 아예 좌석까지 제거해 수송 가능한 화물 수송량을 늘렸다. 그 덕분에 여객기 한 대당 수송 가능한 화물량은 기존 22톤에서 34톤으로 1.5배 이상 늘어났다.

이렇게 대한항공이 기존 대형 화물기 23대에다가 화물 전용으로 개조한 여객기 6대를 포함해 다수의 여객기를 화물 전용 여객기로 추가 운영한 결과, 화물 매출은 2020년 3분기 누적 기준 2조8898억 원으로 전년 동기(1조9147억 원) 대비 51% 증가했다. 전체 대한항공 매출에서 화물이 차지하는 비중도 51.2%로 전년(20.5%) 대비 2.5배 뛰었다. 물론 매출의 70%를 차지하던 여객 사업의 타격으로 전체 매출과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글로벌 항공사들이 위기에 주춤하는 사이, 대한항공은 여객보다 상황이 나은 화물 운송 사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함으로써 손실을 메꾼 덕분에 2020년 3분기 누적 기준 매출 5조5456억 원과 영업이익 917억 원을 기록했다. 하늘길이 막히는 전례 없는 바이러스 위기에 글로벌 주요 항공사들이 줄줄이 적자를 기록한 데도 불구하고 흑자를 낸 것이다.

대한항공의 화물 전용 여객기 전환은 전례 없는 위기 환경 속에서도 혁신을 추진해 사업 기회를 확장하는 데 성공한 사례로 주목할 만하다. 이런 변화는 재무적 성과와는 별도로 임직원들에게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이겨낼 수 있는 자신감을 심어줬다는 측면에서도 의의가 크다. 비록 많은 직원이 사업 축소로 순환 유급 휴직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지만 대한항공은 다른 항공사와 달리 인위적인 감원을 하지 않은 채 화물 중심으로 운영 인력을 풀가동하면서 코로나 이후를 준비하고 있다. 대한항공 화물사업본부와 경영전략본부 관계자들과의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대한항공의 화물 전용 여객기 운항 혁신 사례를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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