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1. 코로나19 계기로 이사회 역할과 책임론 강화

‘주주 가치 극대화’라는 구호 이젠 옛말
소비자-지역사회 이해관계도 고려를

299호 (2020년 6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코로나19 위기를 계기로 주주뿐 아니라 소비자, 임직원, 지역사회 등 이해관계자 전체의 이해관계를 고려하는 기업과 이사회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

1. 리더는 이사회 기능을 전략적인 자원으로 활용해 시장의 신뢰를 얻고 기업 가치를 높일 수 있다. 이사회는 기업을 자문하고 모니터링할 뿐 아니라 독립적인 입장에서 주주와 이해관계자들의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중재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2. 가족 기업은 가족 구성원이 갖지 못하는 새로운 시각을 가진 사외이사와의 대화, 생산적인 비판을 활용해 의사결정의 질을 높여야 한다. 이사 또한 본인이 CEO로부터 독립적인 판단이 가능한지 고민해야 한다.

3. 전 세계적으로 이사회 다양성이 화두다. 여성 후보자들에게 자기 계발 기회를 제공하고 그들의 가시성을 높이고 지원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편집자주
본 글은 기자가 린 페인 하버드대 교수와 서면으로 인터뷰한 내용을 주제별로 묶어서 글로 정리한 것입니다.

2019년 8월 미국의 대기업 CEO 181명은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Business Round Table)1 에서 기업의 목적이 “소비자, 직원, 공급업체, 지역공동체 등 모든 이해관계자에 대한 책임(commitment)을 다하는 데 있다”고 선언했다. 이 선언은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이 1997년 비즈니스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주주 가치 극대화’라고 정의한 것을 완전히 뒤집은 것이었다. 1980년대만 해도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이 발표한 기업의 목적에 이해관계자에 대한 헌신의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그런데 1997년 기업 사냥꾼의 적대적 M&A가 늘어나는 분위기 속에서 주주 이익 환원이 최우선시됐다. 하지만 최근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 내부에서 과거 선언한 주주 중심주의가 오늘날 실제 CEO들의 비즈니스 방식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22년 만에 새로운 성명이 나오게 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주주 가치가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는 아니다.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은 “주주의 장기 가치를 높이기 위해 투명성과 효과적인 관여 활동에 헌신해야 한다”고 밝힌다.

2019년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의 성명은 비즈니스 리더들 사이에서 수년간 팽배했던 주주 중심 자본주의가 전부가 아니라는 관점이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이런 성명이 나왔다고 해서 당장 비즈니스 관행이 바뀌고 있다고 평가하기는 이르다. 2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의 성명은 뜨거운 논란을 일으켰는데 일부 주주 그룹은 그들이 다른 이해관계자와 동등하게 취급되는 데 반발하기도 했다. 그래도 그동안 많은 기업이 주주 가치를 극대화하겠다는 명목으로 다른 이해관계자들을 외면해온 현실을 감안하면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은 분명하다. 특히 미국 내 집단 간 불평등이 커지고 근로자 임금이 수년간 정체하면서 비즈니스의 우선순위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우리가 옹호하는 시장 자본주의 시스템이 더욱 포용적이고 공정하고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라도 비즈니스 리더들이 새로운 관점에서 지배구조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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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구조의 정의

기업지배구조(Corporate Governance)는 기업이 조정되고 통제되는 시스템 전반3 을 일컫는다. 나는 이 정의가 가장 유용하다고 보는데 우선 기업지배구조에 관한 여러 가지 이론, 예컨대 대리인 이론(agency theory), 기업 실체 이론(entity theory), 이해관계자 이론(stakeholder theory) 등에 대해 가장 중립적이기 때문이다. 또 이사회에 기업의 지배 권한을 부여하는 미국 회사법의 취지와도 일치한다. 지배구조는 (대리인 이론이 주장하는) 경영진과 주주, 혹은 지배 주주와 소수 주주 간의 이해 충돌뿐 아니라 다양한 주주와 이해관계자들 간의 이해 충돌을 다뤄야 한다. 또 승계와 지속성의 문제, 비즈니스가 사회적 이해관계를 어떻게 충족시킬지의 문제도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나는 대리인 이론의 한계를 느끼고 기업 중심의 지배구조 모델(company-centered model)4 에 관해 작업해왔다. 대리인 이론과 관련한 학술연구 대부분은 경영진과 주주의 이익을 나란히 맞춤으로써 경영진이 주주의 수익을 극대화하는 데 초점을 둬왔다. 하지만 이는 회사법과 상충될 뿐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기업이 주주 이익에만 천착하게 되면 기업과 사회에 오히려 해를 끼칠 수 있다. 1980년대 초, 대리인 이론이 처음 논의되기 시작할 때부터 나는 이 같은 개념적, 법적 이슈를 염려했다. 그리고 많은 기업이 주주 가치의 극대화를 궁극적인 목표로 추구하면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을 지켜봤다. 나는 기업이 목적을 지닌 사회•경제적 유기체이자 법적 실체라는 기업 실체 이론을 기반으로 기업 중심 모델을 제시했다. 이 모델은 단기적인 주주 가치보다는 미래의 혁신, 전략적 쇄신, 투자에 주목하는 지배구조 프레임워크이다.

기업 중심 모델은 특정 주주 혹은 이해관계자가 아닌, 기업 전체에 대한 이사회의 책임을 강조한다는 측면에서 주주 중심 모델 혹은 이해관계자 모델과 다르다. 대리인 이론에 따르면 이사회의 역할은 경영진이 주주 이익을 극대화하는지를 모니터링하는 수단 중 하나로 제한된다. 하지만 기업 실체 이론에 따르면 이사회의 역할은 기업의 가치를 보호하고 증진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사회는 기업을 자문하고 모니터링할 뿐 아니라 주주와 이해관계자들의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인지하고 독립적인 판단을 통해 기업 입장에서 ‘중재하는(mediating)’ 역할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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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기업이 전략, 비즈니스 모델, 투자 우선순위 등과 관련해 모든 이해관계자의 동의를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모든 이해관계자가 협력적인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거나 모두가 합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기업의 이사회와 비즈니스 리더의 책임이다. 특히 이사회가 기업의 자원을 어떤 이해관계자 그룹의 이익을 위해 활용할지 결정하는 재량은 이사회의 신의성실의무(fiduciary duty), 즉 이사회가 기업 전체와 최선의 장기적인 이익을 위해 의사결정해야 한다는 의무의 제약을 받는다.

코로나19와 지배구조

코로나19 위기는 주주 우선주의 관점을 여러 가지 측면에서 약화시키고 있다. 먼저, 이번 위기는 주주 가치를 극대화한다는 명목으로 위기 이전에 행해졌던 많은 결정의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기업들은 그동안 주주 가치를 극대화한다는 명목으로 최대한 많은 수익을 내고 현금을 벌어서 배당하거나, 자사주를 매입하거나, 주가를 올리는 데 활용했다. 현금을 많이 보유한 기업은 특히 행동주의 투자자들의 압박 때문에 자사주를 매입하거나 장기 R&D 투자를 줄이고, 빚에 의존하고, 인력 투자를 줄이고, 비즈니스 활동을 물가가 저렴한 지역으로 아웃 소싱했다. 이런 기업들은 위기가 닥쳤을 때 더 취약하다. 위기로 매출은 줄었는데, 현금이 없고, 이미 부채비율은 높다. 이미 줄여놓은 인력 운용의 유연성도 떨어지고, 새로 닥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쓸 수 있는 여유 자원(slack)이 없다. 이런 점에서 많은 기업이 주주 가치 극대화를 위해 그동안 내린 의사결정들이 과연 올바른지 의문을 품고 있다.

또 이번 위기는 비즈니스에 이해관계자 집단들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우고 있다. 일부 기업에서는 소비자가 아예 사라졌다. 또 다른 기업은 최소한의 핵심 인력을 쓰면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공급망이 파괴되고, 채무 연장이 불가능해지고, 자본 조달이 안 돼 고생하는 기업들이 많다. 이번 위기는 기업이 이 모든 이해관계자를 필요로 한다는 근본적인 진실을 보여줬다.

기업들은 상황과 이슈에 따라 의사결정의 우선순위가 달라져야 함을 깨닫고 있다. 코로나19는 기업으로 하여금 소비자뿐 아니라 임직원 건강과 안전을 최우선 순위에 올리도록 했다. 예컨대, 주주 가치를 높이기 위해 이익폭을 조금 더 늘릴 것인가, 직원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한 설비에 투자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할 때는 후자를 택하는 것이다. 또 목숨을 구할 약의 가격을 정할 때 가능한 최고가를 매길 것인가, 소비자의 니즈를 고려할 것인가를 결정할 때 소비자의 이해관계를 우선시해야 한다. 공공시설에 오염물질을 방출할 것인가, 오염 처리 비용에 투자할 것인가를 고민할 때 공공의 이익을 고려해 후자를 택해야 한다. 이처럼 기업은 의사결정을 할 때 누구의 이해관계를 우선시해야 할지 늘 고민하게 된다. 이런 결정을 할 때는 개별 이해관계자 그룹에 어떤 책임을 다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정의한 프레임워크가 도움이 될 수 있다. 물론 여기에 적용할 수 있는 단순한 알고리즘 같은 것은 없다. 그래서 때때로 이해관계자의 목소리가 투자자들을 불편하게 만들기도 한다.

덧붙여서 이번 위기는 기업이 경제학에서 말하는 ‘공공재(public goods)’에 얼마나 많이 의존하는지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주주 중심주의는 기업이 공공재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가르치지만 이번 위기는 공공재, 예컨대 지역사회의 건강, 정확한 정보, 효율적인 정부가 비즈니스에 핵심적인 요소임을 보여줬다. 코로나19 위기를 계기로 비즈니스 리더들이 공공재를 확보하는 것도 기업의 역할 중의 하나임을 진지하게 고려하게 됐다.

바람직한 지배구조와 이사회의 역할

경영진이 기업지배구조5 에 신경 써야 하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핵심은 ‘신뢰’ 때문이다. 기업은 투자자들과 다른 이해관계자들에게 책임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줌으로써 신뢰를 확보하고 유지할 수 있다. 강력한 지배구조는 경영진이 자신감이 있다는 신호를 시장에 전하고, 이에 따라 현재뿐 아니라 미래의 투자자들도 그들의 투자가 보호받고, 현명하게 활용될 것임을 신뢰할 수 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독립적인 이사회를 갖춘 기업들이 자본 조달 비용도 적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지배구조가 단순히 투자자 신뢰와 자본 접근성의 문제만은 아니다. 요령 있는 경영진은 이사회에서 유용한 인사이트와 정보, 지도를 받을 수 있음을 잘 안다. 이사회에서의 왕성한 토론은 의사결정의 질을 높이고 경영진이 전략적 실수를 저지르지 않도록 돕는다. 또 노련한 경영진은 이사회를 전략적 자원으로 보고, 이사들 각자의 전문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한다. 이사회를 다룰 줄 아는 경영진은 그들이 조직 전반에 걸쳐 의무를 다하는 데 이사회가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를 잘 안다. 이사회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경영진 팀과 상호작용하고 관리•감독 체계를 마련함으로써 전략, 재무 보고, 자원 배분, 윤리, 문화, 위험 관리, 사이버 보안 등 기업 운영 전반에 걸쳐 가치를 더할 수 있다.

바람직한 지배구조에 대한 정의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일부는 주주권의 보호를, 또 다른 편에서는 특정 규칙과 정책을 적용한 것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나는 이사회 효과성(effectiveness)이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바람직한 지배구조를 얘기할 때 머릿속에서 책임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면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이사회를 떠올린다. 이사회가 기업의 전략을 심도 있게 토론하고 자신들의 지식과 경험을 활용해 건설적인 지원과 적절한 비판을 동시에 제공하는 것이다. 이사회는 기업이 효과적인 리더십을 갖추고 있음을 담보하고 그런 역량이 꾸준히 발전하고 있으며, 승계 절차 또한 마련돼 있음을 보장해야 한다. 이는 곧 감시를 통해 위험을 관리하고, 성과를 추적해 평가하고, 선량한 기업 시민권을 육성하는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음을 의미한다. 기업에 문제가 발생하면, 특히 경영진의 불법행위가 발견되거나, 전략이 실패하거나, 원치 않는 기업 인수가 들어오거나, 갑작스런 사업의 반전이 있을 때 이사회가 빠르게 응대해서 처리해야 한다.

이와 반대로 나쁜 지배구조는 이사회가 책임을 다할 수 없거나 그럴 의지가 없는 경우다. 이런 이사회는 굉장히 형식적으로 정해진 절차에 따라 운영된다. 사전에 세부 안건과 회의 시간이 빡빡하게 정해져 있어 이사들이 질문과 우려 사항이 있더라도 얘기하지 못한다. 정해진 안건 이외의 다른 내용은 얘기조차 꺼낼 수 없다. 이런 이사회의 이사들은 과도하게 리더의 눈치를 보거나, 지식이나 경험이 부족하거나 단순히 준비를 제대로 안 했을 수 있다. 이런 이사회에서 핵심적인 감시 활동, 예컨대 성과를 추적하고, 재무 보고의 정확성을 따지고, 기업 리스크를 모니터링하는 활동은 이뤄지지 않는다. 이사들이 문제의 신호를 보고도 무시하고 넘어간다. 최악의 케이스는 이사회가 현상 유지하는 데만 급급해서 누가 차기 리더가 돼야 할지조차 합의하지 못하는 경우다. 이런 나쁜 지배구조의 영향은 당장 즉각적으로는 보이지 않을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기업 경쟁력의 하락, 기업과 주주, 특히 소수 주주와 폭넓은 이해관계자에 대한 피해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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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기업과 이사회의 독립성

가족 기업에서 이사회 독립성이 유지되지 않는 문제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이슈다. 단일 가족이 주식의 상당 부분을 소유해 이사회를 지배하는 동시에 회사를 운영하면, 가족이 그들 자신의 이해관계를 기업의 이해관계 혹은 소수 주주의 이해관계보다 우선시할 가능성이 항상 존재한다. 또 가족의 내분이 이사회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거나, 경영의 우선순위를 왜곡할 위험도 크다. 이런 기업들은 훌륭한 인재를 유치하거나 유지할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승진이 실력이 아닌 다른 기준으로 이뤄지거나 가족의 문제가 업무 환경을 해치기 때문이다.

기업을 지배하는 가족이 투자자와 이해관계자의 신뢰를 얻으려면 가족의 일을 비즈니스와 철저히 분리할 필요가 있다. 그러려면 강력한 사외이사를 선임해서 그들에게 독립적인 판단에 따라 생각을 표현할 실질적인 권한을 줘야 한다. 가족 구성원들의 생각과 다른, 가족의 합의에 도전하는 사외이사를 선임해 새로운 시각을 들여오는 것이 오히려 더 나은 의사결정에 기여할 수 있다. 물론 이런 방식이 작동하려면 가족 구성원부터 우선 진정으로 열린 대화와 생산적인 비판에 수용적이어야 하고, 모든 이사회 멤버가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

이사회는 평소 기업의 CEO를 자문하는 동시에 감시하는 이중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대부분 상황에서 이 두 가지 활동은 상호보완적이다. 이사회가 조언을 하는 능력도 일반적으로 어느 정도의 감시 역할을 전제한다. 이런 활동은 이사회와 경영진 팀 간의 강력한 관계 형성이 뒷받침돼야 한다.

하지만 이사회 독립성이 가장 큰 문제가 될 때는 기대 이하의 성과를 낸 CEO를 물리는 결정을 할 때다. 이사회는 성과가 좋은 CEO는 신뢰하고 지원하는 동시에 CEO가 더 이상 그 직책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할 때는 그에 따른 결정을 해야 한다. 만일 CEO가 이사회의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고 회사를 떠나야 하는 시기임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이사회는 경질까지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마인드세트의 변화는 이사 개인의 입장에서 굉장히 어려울 수 있다. 심지어 아주 전문적인 이사들도 힘들어 한다. 이사가 CEO의 가족이거나 친구인 경우에는 더더욱 그럴 것이다. 그래서 이사는 이사회에 합류하기 전에 본인이 독립적인 판단을 할 능력이 충분한지 심도 있게 되돌아봐야 한다. 또 이사회는 CEO의 친구나 가족으로 구성하면 안 된다.

이사회 젠더 다양성의 중요성

이사회의 젠더 다양성과 재무 성과의 긍정적인 인과관계를 입증한 연구는 아직 없다. 하지만 많은 연구가 이사회의 젠더 다양성이 재무적 이익뿐 아니라 다른 긍정적인 효과와 상관관계(correlate)가 있음을 보여준다. 예컨대, 최근 한 연구는 여성 이사가 포함된 이사회를 갖춘 의료기기 생산 업체가 심각한 안전 문제에 따라 상품을 리콜하는 비율이 남성 이사만 있는 기업보다 35% 높다고 밝힌다. 또 이사회 다양성과 총자산수익률(ROA), 자기자본이익률(ROE), 투자자본수익과의 상관관계를 밝힌 논문도 있다. 또 다른 논문들이 여성 이사의 존재가 신용평가, 환경 보고, 혁신 문화, 내부 모니터링, 이사회 내 활발한 토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밝힌다. 반드시 이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여성이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며 심지어 구매 결정의 상당 부분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감안해 글로벌 기업들은 오늘날 이사회의 젠더 다양성이 바람직한 거버넌스의 핵심 축임을 인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이사회 참여는 매우 느리게 진행 중이다. 최근 몇 년 사이 변화가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2019년 기준 미국 S&P 500 기업 이사의 여성 비율은 26%인데 이는 2009년 16%에서 상승한 수치다. 법으로 성별 할당제6 를 도입한 노르웨이나 프랑스 같은 국가에서는 약 40%의 비율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기업 일부는 ‘루니룰(Rooney rule)’이라고 불리는 원칙을 적용하고 있다. 이 룰은 미국의 프로 미식축구팀 피츠버그 스틸러스(Pittsburgh Steelers)의 전 구단주인 댄 루니(Dan Rooney)의 이름을 딴 원칙이다. 그는 내셔널풋볼리그(NFL)에 상위 레벨의 코칭 포지션을 고려할 때 반드시 소수 인종 후보를 고려하는 규정을 도입했다. 이사회에도 같은 맥락의 원칙을 적용할 수 있다. 예컨대, 이사의 공석이 나올 때마다 반드시 한 명의 여성 후보를 고려하는 것이다. 아마존은 2018년 이사회 다양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은 후에 기업지배구조 가이드라인의 일부로 이 원칙을 받아들였다. 현재 아마존의 이사회는 4명이 여성이고, 6명이 남성이다.

여성 이사의 참여율을 높여야 한다고 얘기할 때 일각에서는 여성 인력이 아직 이사회에 참여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반대한다. 하버드경영대학원은 이런 이슈에 정면으로 대응하기 위해 이사회에 참여하길 원하는 시니어 여성 경영진을 위한 전문성 개발 프로그램을 론칭했다.

1년에 한 번, 일주일간 진행되는 프로그램의 이름은 ‘여성 이사로 이사회에서 성공하기(Women on Boards: Succeeding as a Director)’7 다. 2016년에 론칭돼 현재 40개국 출신의 400명 이상의 여성 경영진이 참여했다. 내 경험에 비춰볼 때 문제의 핵심은 능력 있는 여성이 부족하다는 게 아니다. 능력 있는 여성의 가시성(visibility)이 떨어지고, 그들이 이사회에 선임되는 데 필요한 지원을 받지 못하는 데 있다. 한국의 비즈니스 리더들도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 후보자들에게 자기 계발 기회를 제공하고 그들의 가시성을 높이고 지원하려는 집단적인 노력을 펼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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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회 관행 개선을 위한 제언

이사회 토론은 밀실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외부인이 이사회가 얼마나 잘 운영되는지를 평가하기가 쉽지 않다. 한 가지 방법은 이사회가 주기적으로 스스로를 평가하는 것이다. 이런 평가는 이사회 의장, 선임 사외이사, 거버넌스 위원장의 감독하에 이뤄질 수 있다. 서베이, 인터뷰, 제3자의 관찰을 활용할 수 있다. 외부의 컨설턴트가 평가를 실시할 수도 있다. 평가 결과물을 분석해 향후 이사회의 구성이나 활동을 개선하는 데 활용하는 것이다. 예컨대, 분석 결과 이사회가 더 많은 시간을 전략에 투입할 필요가 있다거나, 특정 유형의 전문가가 이사회에 필요하다는 점이 드러날 수 있다. 이런 자기 평가 결과가 진지하게 받아들여지면 이사회를 개선하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이사회 멤버들 스스로가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개별적으로 알게 될 뿐 아니라 이사회 전체의 수준 또한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그룹의 준법감시위원회처럼 다른 나라에서도 이사회 외부에 독립적인 이사회를 설치해 이사회의 역할을 보완하는 경우들이 있다. 삼성의 케이스를 직접 공부하지 않았지만 다른 나라의 케이스를 고려했을 때 위원회의 존재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 권한이 어떻게 행사되는지를 보는 게 더 중요하다. 위원회의 존재 자체는 기업이 더 이상 위법행위를 하지 않도록 견제하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위원회에 권한이 집중될 경우 부당 경영을 방지하는 효과도 있지만 선량한 직원들로 하여금 과도하게 부주의나 실패가 두려워 위험 감수를 꺼리게 만들 가능성도 있다. 준법감시프로그램이 잘못 디자인되거나 너무 가혹할 경우에는 오히려 신뢰와 직원 참여를 약화시킬 수 있다.8

또 이사회 외부 조직은 기업의 리더들이 스스로 모범을 보이지 못할 경우에 한해서만 컴플라이언스를 증진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싶다. 비즈니스와 컴플라이언스 양쪽 모두의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근본적으로 조직 내에 진정성(integrity)을 갖고 법을 존중하는 문화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런 문화는 물론 적절한 준법 시스템을 통해서 강화될 수 있지만 우선 최고경영자의 의지(Tone at the top)로, 즉 기업의 이사회와 비즈니스 리더가 앞장서서 모범을 보여야 한다. 미국에서는 법무부(DOJ)가 불법을 저지른 기업의 준법 감시 체계를 개선하기 위해 독립적인 감시자를 파견하기도 한다. 이런 프로그램은 어떤 케이스에서는 취지에 맞게 법을 존중하는 진정성 있는 문화를 구축하는 도약판이 되기도 하지만 다른 케이스에서는 관료주의적인 관리•감독만 늘리기도 한다. 그 차이는 결국 리더십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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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 페인 하버드경영대학원 교수 lpaine@hbs.edu
린 페인(Lynn Sharp Paine)은 하버드경영대학원(HBS) 교수로 글로벌 리더를 대상으로 기업지배구조, 이사회 효과성, 이사회 다양성 등에 관해 강연하고 HBR에 왕성하게 기고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200여 개의 케이스를 담은 『Leadership, Ethics, and Organizational Integrity: A Strategic Perspective(1996)』, 베스트셀러 『Value Shift: Why Companies Must Merge Social and Financial Imperatives to Achieve Superior Performance(2003)』가 있으며 2011년에 쓴 책 『Capitalism at Risk: Rethinking the Role of Business』는 올해 증보판이 출간될 예정이다. 스미스칼리지를 최우등으로 졸업, 옥스퍼드대에서 도덕철학 박사 학위를 받고 하버드대 로스쿨을 나왔다.

정리=배미정 기자 soya1116@donga.com

DBR mini box

거수기-밀실 논의로 대외적 불신 커져
사외이사들의 독립적 의견에 귀 기울여야

배미정 기자 soya1116@donga.com

국내 기업의 이사회는 경영진을 견제하는 역할을 못 한다는 의미에서 ‘거수기’라는 비판으로부터 늘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사외이사는 경영진과 대주주로부터 독립적이고 전문성을 가진 외부 인사로 최대주주와 경영진의 사익 추구를 감시, 차단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최대주주와 경영진의 친구 혹은 전문성이 없는 낙하산 인사가 임명되면서 경영진의 전횡을 막지 못하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대우조선해양의 분식회계 사태가 대표적이다. 이사회 논의가 밀실에서 이뤄지고 구체적인 내용이 외부에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대외적인 불신을 키우는 경향도 있다. 삼성전자가 준법감시위원회를 이사회 외부에 별도로 설치한 것도 이사회가 그동안 제 기능을 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못할 것이라는 대외적인 불신이 커진 탓도 있다. 국내 기업의 이사회가 본연의 기능을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현재 국제지배구조네트워크(ICGN)의 이사로 전 기업지배구조원장인 조명현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 스스로 이사회 관행을 바꿔나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대한항공의 사외이사로 글로벌 관행을 국내 이사회에 도입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조 교수를 인터뷰한 내용을 아래에 정리했다.

사외이사의 거수기 문제가 늘 지적된다.

국내에서 대기업의 사외이사들이 이사회 안건에 거의 100% 찬성하는 것으로 기록되는 것을 근거로 이사회의 실질적 독립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곤 한다. 하지만 찬성률이 높은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통상적으로 안건은 이사회가 열리기 전에 이사들을 통해 조율 및 수정되는 과정을 거치고, 반대하는 이사가 많이 있는 경우 해당 안건은 이사회 결의에 부쳐지지 않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사외이사가 안건에 반대한 기록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 이사회가 거수기라는 증거가 될 수는 없다.

문제는 사외이사 선임 과정의 독립성이다. 사외이사 선임의 주체가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이하 사추위)가 돼야 하는데 경영진이 개입하는 경우가 많다. 사추위에 경영진이 들어가는지, 안 들어가는지는 큰 문제가 아니다. 사추위가 독립적으로 후보군을 추려서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선정해야 하는데 국내 기업에서는 비서실 같은 부서에서 리스트를 사추위에 주고 그대로 추인하는 경우가 문제다. 이렇게 선임된 사외이사는 경영진의 눈치를 볼 가능성이 높다. 경영진도 사외이사를 내가 뽑은 종업원처럼 생각할 뿐, 감독하고 협력하는 독립적인 존재로 여기지 않는다.

기업의 사추위가 실질적인 후보 추천 권한을 갖고 그 권한을 적극적으로 행사할 필요가 있다. 사추위가 제대로 작동해야 그로부터 선임된 사외이사가 이사회에서 실질적인 역할을 하면서 이사회에 힘이 실리는 선순환이 이뤄질 수 있다.

집중투표제를 도입해서 소액주주의 의견을 반영해
이사진을 보다 공정하게 뽑아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집중투표제를 통해 소액 주주를 대표하는 사람이 이사가 됨으로써 의사결정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은 긍정적이다. 문제는 그렇게 선임된 이사가 소액 주주 등 특정 집단을 위해서가 아니라 전체 주주를 위해서 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사는 경영진이든, 대주주든, 소액주주든 누구로부터도 독립적이어야 한다. 누군가의 추천으로 선임된 이사라고 해서 결코 한쪽의 입장을 대변함으로써 다른 쪽의 이익을 해쳐서는 안 된다. 이사의 독립성은 그 어떤 이해관계로부터도 독립적이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사가 경영진을 견제하는 기능과 조언하는 기능이 상충하지는 않는가?

그렇지 않다. 전문가이기 때문에 조언할 수 있고, 또 견제할 수 있는 것이다. 예컨대, 공정거래 전문가인 이사는 대기업 집단의 내부 거래, 일감 몰아주기와 관련해 감독하면서도 내부 거래 등을 이렇게 개선해야 한다고 조언도 할 수 있다.

사외이사들이 기업의 현안과 관련 정보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사회 사무국의 지원하에 이사들이 기업과 관련된 각종 수치를 요구하고 또 설명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기업도 사외이사들의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시대가 됐고, 외부의 시각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길 진정 원하고 있다. 최근 이사회의 횟수와 소요 시간이 점점 길어지는 추세다. 대한항공도
1년에 6∼7회 정기적으로 하다가 매달 하는 것으로 이사회 횟수를 늘렸다. 이사회에는 안건과 관련된 주요 임원이 배석해 이사들의 질문에 즉석에서 답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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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회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이사회에도 동료평가(peer evaluation)를 적용할 필요가 있다. KB금융지주에서 도입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직 활성화되지는 않았다. 이렇게 동료 평가를 하게 되면 경영진에게 쓴소리를 한 이사들이 경영진 눈에는 가시방석일지 몰라도 동료 이사들로부터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자연스럽게 이사회의 독립성이 높아질 수 있다. 또 이사들로 하여금 이사회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하도록 독려할 수 있다.

이사회 다양성이 이슈가 되고 있다. 카카오에는 90년생 사외이사가 선임됐다.

집중투표제의 취지와 마찬가지로 성별, 연령별, 전문성에 따른 다양성은 이사회가 추구해야 할 가치다. 이사회 성향이 한쪽으로 너무 치우쳐져 있으면 의사결정도 편향될 위험이 있다. 예컨대, 이사회에 60대 이상만 모여 있으면 보수적인 결정을 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다양성에도 독립성과 전문성이 전제가 돼야 한다.

사외이사의 보수에 대한 논란도 많다. 어느 정도가 적당한가?

우선 이사의 활동을 시급으로 따지면 안 된다. 해외에서는 이사회의 영향력과 더불어 책임도 큰 만큼 대기업일수록 대형 컨설팅펌이나 투자은행의 파트너급을 기준으로 대우를 해주는 게 관례다. 또 스톡옵션을 지급하기도 한다. 미국에서는 현금과 스톡옵션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컨센서스가 있다. 현금은 미래 가치와 연동이 안 되는 한계가 있는 반면, 스톡옵션은 이사들이 과도하게 위험을 추구하는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는 이런 기준에 대한 논의가 아예 없다. 사외이사의 급여가 직원 평균 급여보다 낮은 경우도 허다하다. 사외이사의 기록되는 근무 시간은 적을지 몰라도 이사들은 CEO, CFO 등 C 레벨 임원들과 마찬가지 수준의 의사결정을 내리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앞으로 기업들이 전문성 있는 사외이사를 경쟁적으로 영입하는 과정에서 보수에 대한 논의도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 국내 이사회에 도입할 수 있는 베스트 프랙티스는?

우선 새로 이사가 선임되면 이들에게 회사를 소개하는 세션을 반드시 가져야 한다. 전문성을 가진 사외이사도 회사의 실질적인 운영과 관련해서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부서별 책임자들이 나와서 직접 현황을 소개하고 질문을 받는 기초 교육 시간을 마련해야 한다. 또 이사들에게 매년 이사 업무 수행과 관련된 지속적인 교육을 외부 전문 기관에서 받도록 정보를 제공해야 하고 이사들은 일정 시간 이상 이러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

이사회에 소위원회가 많은데 소위원회별 규정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곳이 다수다. 특히 작은 회사일수록 제도만 갖춰놓고 제대로 운영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소위원회별 내부 규정을 마련해 실천할 필요가 있다.

또한 사외이사를 대표할 선임 사외이사를 선임하고 그가 주재하는 사외이사들만의 간담회 세션 등을 주기적으로 가져서 독립적인 의견을 취합하는 것도 주요국에서 베스트 프랙티스로 간주되고 있다.

국내 대기업은 대주주와 소액 주주 간 이해 상충 문제가 존재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이를 해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현대자동차가 도입한 주주소통이사를 선임하는 것도 추천할 만한 사례다. 사외이사 중에 한 사람에게 별도로 주주 권익 보호를 담당하는 역할을 맡겨서 소액 주주와의 소통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18호 Dynamic Workspaces 2021년 04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