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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1 글로벌 모빌리티 얼라이언스

완성차 업체들 어제의 적과 제휴 붐
스타트업 지원하며 생태계 구축해가야

차두원 | 298호 (2020년 6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모빌리티 산업을 둘러싼 업계 지형의 변화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모빌리티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 및 인수합병(2015∼2017년) → 완성차 업체들 간의 얼라이언스(alliance) 구축(2018∼2019년)

완성차 업체 간 모빌리티 얼라이언스 결성 이유
공동 개발을 통한 투자 리스크 분산 및 자동차 소비 감소라는 당면 위기에 대한 대응

국내 업체에 대한 제언
연구개발(R&D) 투자의 절대 규모, R&D 집중도, 얼라이언스 구조 등 여러 측면에서 현대차를 포함한 국내 완성차 업체의 경쟁력은 해외 주요 경쟁 기업에 비해 뒤처져 있는 상황. 보다 적극적인 오픈 이노베이션과 함께 기존 협력업체 및 스타트업과 함께 성장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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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빌리티 산업의 캄브리아 대폭발기

요새 모빌리티 관련 세미나나 회의에 참석하면 “모빌리티 산업을 정의할 수 있는 분이 계시면 설명을 부탁드린다”는 질문을 반드시 던진다. 많은 기업이 모빌리티 사업부를 설치해 새로운 성장동력 사업으로 검토하고 있지만, 의외로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모빌리티 산업이 등장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데다 워낙 빠른 속도로 시장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지금으로선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동의된 학문적 정의를 찾기 어려운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언론이나 전문가들이 말하는 대표적 모빌리티 비즈니스는 차량 공유(car sharing), 승차 공유(ride sharing), 차량 호출(ride hailing) 등이다. 하지만 스스로를 모빌리티 업체라고 부르는 곳은 이외에도 많다. 자율주행차는 물론 공유 자전거와 전동킥보드로 대표되는 마이크로 모빌리티(micro mobility) 분야, 심지어 하늘을 나는 플라잉카(flying car)나 드론 업체들까지 다양하다. 사람뿐만 아니라 음식 배송과 물류 서비스를 담당하는 업체들도 스스로를 모빌리티 업체라고 정의한다. 이동을 위한 디바이스들을 생산하는 제조업체들까지 서비스 분야에 뛰어들면서 모빌리티 하드웨어의 서비스 상품화(servitization) 속도는 점점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이처럼 현재 모빌리티 산업의 범위는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서비스 시장을 넘나들고 있다. 흡사 5억4000만 년 전, 생물 진화에서 우주의 빅뱅에 필적할 만한 ‘캄브리아 대폭발기(The Cambrian Explosion)’와 같다. 당시 지구에는 생물 다양성이 급격히 증가해 현재 대부분의 동물문이 등장했을 정도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현재 모빌리티 산업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서비스 모델과 디바이스를 개발한 기업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업계의 지형도를 계속 바꿔나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에서 언급된 비즈니스 모델들을 기초로 모빌리티 산업에 대해 정의하자면 대략 ‘인간과 사물, 혹은 원하는 대상의 물리적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모든 디바이스, 서비스 알고리즘과 플랫폼 연구개발(R&D), 사용자 경험과 상호작용 설계, 운영 및 유지보수, 폐기 등의 전 과정’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1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 전시회인 CES 2020에서 도요타가 2021년 착공 예정인 우븐시티(Woven City) 콘셉트를 선보인 것에서도 드러나듯 최근 전 세계적으로 관심이 높은 스마트시티의 핵심 기능도 바로 모빌리티다. 모빌리티는 단순히 도시 구성요소를 넘어 시민들의 생활과 삶의 모습을 새롭게 진화시키고 있고, 기업들에는 새로운 먹거리로 등장했다. 모빌리티 캄브리아 대폭발기가 계속 진행 중인 이유다.

구글이 촉발한 자율주행기술 경쟁

최근 모빌리티 산업에서 가장 주목받는 자율주행기술 경쟁은 구글이 불을 지폈다. 구글은 2009년부터 자율주행기술을 본격적으로 개발하기 시작했고, 2016년 12월엔 지주회사 알파벳 산하의 12번째 사업부로 자율주행차 개발을 전담하는 웨이모(Waymo)를 설립했다. 현재까지 웨이모는 공식적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공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간 웨이모의 R&D와 시험 서비스 추이를 분석해 보면, 기존 완성차 업체에서 자동차를 구입해 자율주행 운송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완성차 업체 등에 자율주행 운영 체제를 라이선스하는 것이 가장 유력한 비즈니스 시나리오다. 이미 크라이슬러 미니밴 퍼시피카 600여 대를 자율주행차로 개조해 미국 애리조나 피닉스 지역에서 시험 운행하고 있으며, 추가로 6만2000대를 투입할 계획이다. 재규어 랜드로버 SUV 전기차 아이-페이스(i-Pace) 2만 대도 주문해 보급형(크라이슬러)과 고급형(재규어) 포트폴리오를 모두 갖췄다. 2019년 2월에는 르노-닛산-미쓰비시 얼라이언스와 자율주행 협력을 체결했고, 올해 들어선 외부 투자(총 30억 달러)도 유치했다.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인 구글이 웨이모를 앞세워 자율주행차 사업을 본격화하면서 2015년 이후 전통적인 완성차 업체들도 모빌리티 관련 스타트업의 앞선 기술을 획득하기 위해 적극 나서기 시작했다. 당시 주요 완성차 업체들은 자율주행 상용화 시기를 2020년이나 2021년으로 내다봤고, 예상 목표 시점에 맞춰 서비스를 내놓기 위해 승차 공유 및 자율주행 핵심 부품인 라이다(LiDAR, Light Detection and Ranging)2 개발과 인공지능(AI) 스타트업들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투자와 인수합병(M&A)을 추진했다. 가령, GM은 승차 공유 업체 리프트에 투자를 단행하고, 라이다 업체인 스트로브와 현재 GM에서 자율주행기술 개발을 전담하는 크루즈 오토메이션을 M&A했다. 포드도 AI 업체인 아르고 AI, 니렌버그 뉴로사이언스와 오토믹, 라이다 업체인 벨로다인, 지도 업체인 시빌맵스, 대중교통 트랙킹 앱 개발 업체 트랜스록, (현재는 서비스를 종료한) 온디맨드 서비스 업체 채리엇 등에 투자하거나 회사를 인수했다. 하지만 막대한 투자만큼 기술개발 속도는 따라가지 못했고, 결국 상용화 목표 시점은 점점 뒤로 밀렸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완성차 업체들의 전략도 2018년을 기점으로 바뀌게 된다. 즉, 개별 회사 차원에서 유망한 스타트업의 기술을 획득하려던 접근에서 탈피해 직접적인 경쟁관계인 완성차 업체들끼리 얼라이언스(alliance)를 구축하기 시작한다. 대표적으로, 지난 2월 오리진(Origin)이라는 6인승 전기 자율주행자동차를 발표한 GM크루즈는 미국의 GM, 일본 혼다와 소프트뱅크 얼라이언스의 결실이다. GM에서 자율주행기술 개발을 위한 독립 조직으로 운영되는 GM크루즈는 2016년 3월 GM이 자율주행기술 개발 스타트업 크루즈 오토메이션을 인수(5억8100만 달러)하며 탄생했다. 이후 GM크루즈는 2018년 5월 소프트뱅크 비전 펀드로부터 22억5000만 달러(GM크루즈 지분 19.6%), 같은 해 10월 혼다로부터는 7억5000만 달러(GM크루즈 지분 5.7%)를 투자받았다.3 GM크루즈 최고경영자(CEO)인 댄 암만은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인이 자가용, 승차 공유 서비스 대신 오리진을 사용하면 연 5000달러를 절약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4 현재까지 주행비용, 충전 인프라, 차량 유지 비용 등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제시되지 않았지만 GM 오리진은 스마트폰 앱으로 호출하는 온디맨드 로보택시(Robotaxi)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계획이다. 반면 웨이모는 기존 하드웨어보다 양산 가능성이 높고 보다 정밀한 센싱(sensing)이 가능한 5세대 하드웨어를 재규어 전기차 아이페이스에 탑재해 선보이며 ‘웨이모 비아(Waymo Via)’라는 배송 서비스를 시작하는 등 계속 독자 노선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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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모빌리티 얼라이언스

완성차 업체들 간 얼라이언스는 유럽에서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100년이 넘는 전통적 완성차 업계 라이벌인 독일 BMW와 다임러는 모빌리티 서비스 통합(2018년)과 레벨4 자율주행 공동 개발(2019년)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플랫폼과 아키텍처 공동 개발 및 공유를 통해 자율주행자동차 개발과 출시 시기를 단축하고, 세계 최대의 모빌리티 서비스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서다. 2019년 7월에는 독일 폴크스바겐과 미국 포드가 전기차, 자율주행차, 상용차, 모빌리티 서비스 등 여러 부문에서 포괄적 협력을 위한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파트너십의 주요 내용에는 폴크스바겐이 포드 자율주행차 핵심 기능인 가상 운전자 시스템을 개발하는 아르고 AI 벤처 펀드에 17억 달러를 투자(6억 달러는 주식 인수, 11억 달러는 R&D 투자)하겠다는 계획이 포함돼 있다. 폴크스바겐은 2018년부터 구글의 자율주행 프로젝트 총책임자였던 크리스 엄슨(Chris Urmson)이 설립한 자율주행기술 개발 업체인 오로라와 협력했다. 하지만 오로라와 제휴 관계를 넘어 M&A를 희망했던 폴크스바겐과 독립 기업으로 남으려는 오로라 간의 의견 차이로 2019년 6월 협력관계는 종료됐다.5 이에 폴크스바겐은 포드의 자율주행기술 개발을 전담하고 있는 아르고 AI를 전략적으로 선택했다.

일본에서도 모빌리티 얼라이언스가 활발히 형성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도요타와 소프트뱅크는 ‘보다 안전하고 편안한 모빌리티 사회 실현(Realize a Safer and More Comfortable Mobility Society)’을 슬로건으로 내세우며 2018년 모넷테크놀로지를 설립했다. 모넷테크놀로지의 역할은 도요타의 모빌리티 서비스 플랫폼과 커넥티드카(connected car)를 위한 정보 인프라, 소프트뱅크의 스마트폰과 센서 디바이스들을 통해 획득한 데이터를 연동하는 것이다. 일차적으로는 자동차와 사람의 이동과 관련해 두 회사(도요타와 소프트뱅크)가 광범위하게 수집한 데이터를 기초로 교통 수요와 공급을 최적화하고, 궁극적으로 모빌리티 관련 사회 이슈를 해결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MaaS(Mobility as a Service, 서비스형 모빌리티)6 를 선보인다는 게 모넷테크놀로지의 목표다.

현재 모넷테크놀로지는 단지 도요타와 소프트뱅크 두 회사의 합작법인이 아니다. 설립 이듬해 3월 혼다와 히노가 각 10%씩, 3개월 뒤인 6월엔 마쓰다, 스즈키, 스바루, 다이하쓰공업, 이스즈자동차 등 5개 자동차 업체가 각각 2%씩 모넷테크놀로지에 지분 투자를 단행했다. 결과적으로 일본 완성차 8곳이 모두 한배를 탄 셈이다. 8개 완성차 업체가 모넷테크놀로지에 공동 투자했다는 점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2018년 8개 완성차 업체의 판매량은 약 4400만 대로 일본 전체 판매량의 77%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7 치열한 경쟁 관계에 있는 이들이 손을 맞잡은 이유는 MaaS의 빠른 정착과 시장 확장을 위해서다. 불필요하게 소모적 경쟁을 하며 돈을 낭비하기보다는 상호협력의 길을 통해 MaaS의 표준 확보를 통해 도요타를 중심으로 경쟁 상대인 르노-닛산-미쓰비시 얼라이언스, 세계 자동차 판매 1위인 폴크스바겐을 제치고 향후 자동차와 MaaS 시장의 선두로 올라서겠다는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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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모넷테크놀로지는 도쿄에서 온디맨드 서비스(주문형 모빌리티)와 라스트마일 서비스(출퇴근 및 출장용)인 스마트워크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새로운 서비스 개발을 위해 다양한 업종의 회원사들도 적극적으로 끌어모으고 있다. 2020년 3월 초 기준으로 515개 기업이 모넷 컨소시엄 회원사로 가입했다. 회원사들의 업종은 건설업, 제조업, 전기•가스•열공급•수도업, 정보•통신•방송산업, 출판업, 운수업, 우편업, 도소매업, 금융업, 보험업, 부동산업, 임대업, 학술연구, 전문•기술 서비스업, 광고업, 지주회사, 숙박업, 음식 서비스업, 생활 서비스업, 오락업, 여행업, 교육, 학습 지원, 의료복지, 복합서비스업(협동조합) 등으로 매우 다양해 이종 산업 간 시너지가 기대된다. 모넷 컨소시엄은 플랫폼에 가입한 회원사 간 비즈니스 매칭을 통해 새로운 MaaS 보급을 위한 비즈니스 기회 개발(사업 기획, API 기획, 차량 기획)과 MaaS 확산을 위한 환경 정비(스터디그룹, 정보교환모임, 제언 활동)를 위해 컨소시엄 운영을 시작한 상태다.

완성차 업체 간 모빌리티 얼라이언스 결성 이유

그렇다면 이렇게 서로 경쟁 관계에 있는 완성차 업체들이 서로 손을 맞잡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는 자율주행에 투자되는 막대한 미래 투자에 대한 부담 때문이다. 전 세계 모빌리티 업계를 선도하는 30개 기업8 은 작년까지 완전자율주행기술 개발을 위해 약 160억 달러를 투자했다. 이 중 절반은 웨이모, GM크루즈, 우버가, 나머지 절반은 바이두, 도요타, 포드(아르고 AI), 애플이 투자했다. 업체 이름만 봐도 막대한 자금력을 보유한 소수의 기업만이 완전자율주행기술을 개발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언제 수익이 발생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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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급된 기업들이 지불하는 비용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지출은 엔지니어들의 급여와 보너스, 프로토타입 자율주행자동차 도로 테스트 운영 비용, 지도 데이터 수집, 자율주행자동차 모니터링과 운영을 위한 인건비, 영상 인식과 학습을 위한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인프라 비용, 프로토타입 자율주행자동차 생산비용 등이다. 앞으로 완전자율주행기술이 상용화와 황금기를 맞이하게 되기까지 적어도 수십억 달러의 투자는 더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9 그렇기 때문에 공동 개발을 통해 향후 예상되는 투자 리스크 분산과 함께 기술 상용화 단계에서 보다 넓은 시장을 확보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 완성차 업체 간 얼라이언스의 주된 목적이다.

두 번째 이유는 미래 투자 준비를 위한 현재의 위기 대응이다. 최근 모빌리티 업계에서 회자되는 가장 뜨거운 이슈는 ‘피크카(Peak Car, 세계 자동차 수요가 정점을 지나 정체 혹은 감소하는 시점)’를 둘러싼 논란이다. 지난 2017년 9520만 대에 달했던 글로벌 자동차 판매량은 2019년 9030만 대로 감소했고, 2020년에는 2019년 대비 0.3% 감소해 9000만 대 선이 깨질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10 피크카 논란이 또다시 수면 이론 위로 떠오르고 있다. 피크카 논란은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인 2011년 처음 등장했으나 중국과 인도 등 신흥 자동차 소비 대국의 등장으로 바로 수그러들었다. 하지만 최근 중국과 인도 시장의 자동차 판매량이 기대에 크게 못 미쳤고, 승차 공유와 차량 공유가 새로운 이동 옵션으로 등장하고 환경보호를 위한 도시와 국가의 정책들이 변화하면서 다시금 피크카 이론이 힘을 얻고 있다. 더구나 자율주행 등 신기술에 대한 기대로 소비자들은 신차 구매 결정을 망설이고 있으며11 코로나19가 창궐하면서 한동안 신규 자동차 소비는 피크카를 넘어 ‘카클리프(Car Cliff, 자동차 절벽)’라고 불릴 만큼 감소할 가능성도 높다.

전동 킥보드로 대표되는 전동화된 마이크로 모빌리티 디바이스의 등장 역시 피크카 혹은 카클리프 주장에 대한 설득력을 높이고 있다. 현재 전기차, 자율주행자동차, 승차 혹은 차량 공유 서비스 중심으로 재편하고 있는 완성차 업체들에 중요한 자금줄인 자동차 판매가 감소하고 있다는 점은 미래의 적신호다. 더구나 웨이모, 우버, 디디추싱 등 미래 시장을 두고 각축을 벌이고 있는 경쟁자들의 등장은 얼라이언스의 필요성을 더욱 증가시키고 있다. (DBR mini box I ‘모빌리티 얼라이언스 구축 효과’ 참고.)

DBR mini box I 모빌리티 얼라이언스 구축 효과

유럽연합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가 매년 발간하는 전 세계 R&D 투자 기업 스코어보드(EU Industrial R&D Investment Scoreboard) 데이터를 활용하면 완성차 업체 간 모빌리티 얼라이언스의 구축 효과를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i 2019년 10월 이탈리아-미국계 자동차 그룹 피아트크라이슬러(FCA)와 프랑스를 대표하는 자동차 그룹 푸조시트로엥(PSA) 간 합병을 예로 살펴보자. 양측은 양적 성장이 아닌 미래 차 개발과 시장 확보를 위한 질적 성장으로 합병의 의미를 설명했다. FCA와 PSA의 2018년 회계연도 R&D 투자는 각각 36억8000만 유로, 36억5000만 유로 규모로 같은 해 글로벌 완성차 업체 가운데 각각 8위, 10위다. 하지만 양사의 R&D 투자를 합치면(73억3000만 유로) 같은 해 완성차 업체 R&D 투자 1위인 폴크스바겐(136억4000만 유로), 2위인 다임러(90억4000만 유로), 3위인 도요타(82억7000만 유로)에 이어 4위 수준으로 올라선다. 두 회사의 연간 통합 판매량은 870만 대, 매출액은 1844억 유로 규모로 글로벌 4위다. 그동안 FCA는 웨이모에 의존해 자체 자율주행기술을 개발하지 않고 있었고, PSA는 레벨 1∼3(1: 운전자 보조 단계, 2: 부분 자동화 단계, 3: 조건부 자동화 단계) 개발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합병을 통한 R&D 투자 확대와 몸집 키우기는 웨이모 자율주행 협력 정책과 미래 차 시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모빌리티 업계 넷플릭스(Mobility for Netflix)를 향한 레이스

현재 서비스형 모빌리티, 즉 MaaS는 크게 3단계로 진화하고 있다. 우선, MaaS 1.0은 하나의 모빌리티 디바이스를 공유하는 전용 플랫폼 서비스다. 공유 자전거와 전동 킥보드, 차량 공유 서비스 등이 대표적 사례다. MaaS 2.0은 멀티모달 운송 시스템으로, MaaS 1.0 체제 아래에서 단절돼 운영되던 각 디바이스의 공유 서비스들을 하나의 앱에서 모두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의미한다.12 즉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 마이크로 모빌리티(예: 공유 자전거, 전동 킥보드 등), 차량 공유 서비스, 대중교통(예: 버스, 지하철, 철도), 렌터카, 택시 등 가능한 모든 디바이스를 순차적으로 연결하는 서비스다. 여러 가지 디바이스를 환승하더라도 결제는 한 번에 하는 것이 특징이다. 마지막 자율주행 시스템 단계인 MaaS 3.0은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 지점에서 지점(point-to-point)으로 보다 정밀하게 이동하는 것을 뜻한다. 이는 디바이스를 사용하거나 환승하기 위해 이동을 필요로 하는 MaaS 1.0과 2.0의 도어-투-도어(door-to-door) 서비스에서 한발 더 나아간 것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주요 모빌리티 업체들이 지향하는 바는 MaaS 2.0과 3.0을 결합해 다양한 모빌리티 디바이스들을 하나의 플랫폼에 통합하고 사용자 취향에 적합한 최적의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마치 오리지널과 외부 제작 콘텐츠 수천만 개를 자체 플랫폼에 모아 시청자 취향에 맞게 서비스하며 글로벌 시장을 독식하는 넷플릭스와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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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MaaS 2.0은 이미 대륙 혹은 국가별로 플랫폼 지배자들이 존재하고 있다. 소프트뱅크가 2017년 12월 우버에도 100억 달러를 투자하며 최대주주로 등극한 후 막대한 자본력을 무기로 글로벌 MaaS 2.0 체제를 갖췄기 때문이다. 그 결과 우버는 북미와 호주에 집중하게 됐고, 그 외 소프트뱅크 산하 반(反)우버 전선에 있던 기업들이 동남아(그랩), 러시아(얀덱스), 중국(디디추싱), 인도(올라), 브라질(99) 등 대륙 혹은 거대 국가별 시장 지배자로 자리 잡았다. 이들은 소프트뱅크 중심의 상호 인수합병(M&A) 혹은 투자 관계로 얽혀 있다.13 소프트뱅크는 직접 R&D를 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하지는 않지만 현재 글로벌 Maas 2.0 시장의 큰손으로 자리 잡았다.14 현대차, BMW, 메르세데스벤츠, 아우디, 포드, GM 등 대부분 완성차 업체도 전동 킥보드, 차량 공유 서비스, 온디맨드 등 다양한 모빌리티 서비스를 제공하며 경쟁하고 있어 모빌리티 업계 넷플릭스로 등극하기 위한 경쟁구도는 팽팽하게 유지되고 있다.15 하지만 자율주행기술 중심의 MaaS 3.0의 경우엔 아직까지 시장지배자를 어느 기업이라고 꼭 집어 이야기하긴 힘들다. 웨이모가 최고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만 현재 북미 지역에서만 시험 운행을 하고 있다. 더구나 코로나19 상황에서 미국 자율주행자동차 시험 운행이 정지되고, 대표적인 자율주행 스타트업 죽스(Zoox)도 매물로 나온 상황에서 앞으로의 주도권 결정에는 시간적 여지가 남아 있다. 자율주행 관련 법과 제도가 합의되기까지도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한 상태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현재 국내 기업들 가운데 글로벌 모빌리티 시장에 진출했거나 주목받는 기업을 찾기 힘들다는 점이다. 그나마 ‘인간 중심의 도시를 위한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제공자(Smart Mobility Solution Provider for Human-Centered Cities)’라는 기치를 내건 현대차가 정의선 수석 부회장 중심으로 모빌리티 업체로의 트랜스포메이션을 빠르게 추진하고 있긴 하지만 R&D 투자 규모를 볼 때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다. 구체적으로 2018 회계연도 현대차 R&D 투자 규모는 완성차 업체 가운데 12위(20억4000만 유로)로 1위인 폴크스바겐의 약 15.0%, 2위 다임러의 22.5% 수준이다. 현대차와 기아차(11억6000만 유로), 현대모비스(6억6000만 유로)의 R&D 투자 규모를 다 합해도(38억6000만 유로) 폴크스바겐의 28.3%, 다임러 대비 42.6% 수준이다. R&D 집중도16 는 폴크스바겐 5.8%, 다임러 5.4%, 도요타 3.5%, 포드 5.1%, BMW 7.1%, GM 5.3%, 혼다 5.3% 등에 비해 낮은 수준인 2.7%다. 기아차와 현대모비스도 각가 2.7%, 2.4%로 현대차와 유사한 수준이다.17 단, 최근 과감한 투자로 2014년부터 2018년까지 5년간 연평균 증가율(CAGR)이 현대차 9.2%, 기아차 8.5%, 모비스 15.4%로 비교적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 시그널로 해석된다.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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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2017년은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모빌리티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와 M&A 등을 통해 모빌리티 기술과 서비스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는 기간이었다. 이후 2018∼2019년 사이엔 완성차 업체들 간의 얼라이언스가 활발하게 형성됐다. 현대차 역시 이 기간 중 그랩과 올라 등 해외 승차 공유 업체에 투자했고, 2019년 9월 자율주행 플랫폼 기업 앱티브(APTIV)와 미국 합작회사(총 40억 달러 규모, 20억 달러 투자)를 설립했다. 이어 작년 12월 현대차는 ‘2025 전략’을 공개하며 오는 2025년까지 61조 원을 투자해 지능형 모빌리티 제품과 지능형 모빌리티 서비스를 주축으로 하는 사업 구조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증명하듯 현대차는 CES 2020에서 우버와의 도심항공모빌리티(Urban Air Mobility, UAM) 사업 협력을 발표했고, 연이어 영국 상용 전기차 스케이트보드 전문 기업인 어라이벌(Arrival)을 인수하고 미국 전기차 전문 기업 카누(Canoo)와 차세대 전기차 플랫폼을 공동 개발하기로 하는 등 새로운 변화를 위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국내에서는 기아차와 함께 자율주행기술과 모빌리티 플랫폼을 개발하는 스타트업 코드42에 총 170억 원의 투자를 단행하기도 했다. 이는 거의 모든 모빌리티 분야의 디바이스와 기술, 플랫폼 및 서비스를 아우르는 포트폴리오로 현대차그룹이 모빌리티 분야에서 차세대 넷플릭스로 등극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전략기획본부, 모션랩, 크래들 설치도 같은 맥락이다. 그동안의 독자 개발 노선을 벗어난, 현대차그룹에서 말하는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으로 풀이된다. (DBR mini box Ⅱ ‘오픈 이노베이션으로 미래 모빌리티 이끌 것’ 참고.)

하지만 현대차그룹이 모빌리티 업계의 넷플릭스가 되기 위해서는 보다 과감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동안 현대차그룹은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과의 경쟁을 위해 품질 우선주의로 브랜드 파워를 키웠고, 수직 계열화된 협력업체들이 이를 뒷받침했다. 이는 협력업체들도 시대 변화에 따라 경영 및 기술혁신 역량을 높이고 지속가능성 확보를 위한 트랜스포메이션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동안 현대차그룹이라는 보호막에서 품질 향상에 집중했던 부품업체들은 모빌리티 시대에 들어서면서 상대적으로 뒤처지는 혁신 능력과 시장경쟁력에 고민이 많다. 이는 지금까지 미래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고 설계해 본 기회도, 여력도 없었기 때문이다.

부품산업의 경쟁력은 장기적으로 스마트 모빌리티 디바이스 경쟁력을 좌우한다. 자동차 부품업계 붕괴를 방지하기 위한 상생 차원을 넘어 함께 트랜스포메이션을 위한 전략적 지원이 필요한 이유다. 스마트 모빌리티 서비스를 위한 모빌리티 스타트업들의 발굴, 지원, 성장, 협력의 과정에도 현대차의 주도적 역할이 필요하다. 최근 현대차는 온디맨드, 카셰어링, 구독모델 등 서비스 플랫폼 개발과 운영을 직접 하고 있다. 하지만 틈새시장 공략을 통해 새로운 모빌리티 비즈니스와 시장을 창출하고 시장 요구에 빠르게 대응하려면 우수한 인재를 보유한 스타트업을 지원하고 육성해 건강한 모빌리티 생태계를 구축해야 현대차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다. 오픈 이노베이션과 함께 조직 내부의 혁신(internal innovation)도 매우 중요하다. 모빌리티 산업에 뛰어든 거대 기술 기업(Tech Giant)들의 핵심 경쟁력 가운데 하나는 민첩함이다. 새로운 시장을 찾아 여기에 적합한 비즈니스 모델을 설계해 실험하고, 가치가 없는 사업들과 시장에서는 빠른 속도로 철수한다. 현대차에도 보다 빠른 시장 분석과 도전, 실패의 용인, 이러한 과정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제도와 지원 시스템, 의사결정 체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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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mini box II Interview: 윤경림 현대차그룹 부사장
“오픈 이노베이션으로 미래 모빌리티 이끌 것”

지민구 동아일보 산업1부 기자 waru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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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적인 모빌리티 기술과 서비스 아이디어가 있는 곳이라면 전 세계 어디든 가고, 누구든 만난다. 현대자동차그룹에서 미래 모빌리티 전략 수립의 한 축을 맡고 있는 윤경림 전략기술본부 오픈이노베이션전략부장(부사장)의 이야기다. 부서 명칭에도 드러나듯 그는 현대차그룹의 각종 개방형 혁신 사업을 이끌고 있다.

평소 “자동차 회사가 제조업에 머물면 안 된다”는 철학을 강조했던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2018년 9월 경영 전면에 나서면서 현대차그룹은 독하게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과거엔 차를 만들어 파는 것에 그쳤다면, 앞으로는 새로운 이동 수단(vehicle)과 각종 모빌리티 서비스를 직간접적으로 제공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게 정 수석부회장의 판단이다. 이를 위해 현대차는 2018년 ‘동남아시아의 우버(Uber)’라 불리는 그랩(Grab)에, 2019년 인도 1위의 차량 호출 업체인 올라(Ola)에 총 3000억 원 안팎의 지분 투자를 단행한 데 이어 올해에는 ‘하늘을 나는 택시’로 불리는 개인용 비행체(PAV) 개발을 위해 미국 우버와도 손을 잡았다.

윤 부사장은 지영조 현대차그룹 전략기술본부장(사장)을 도와 이러한 대규모 투자•협업 프로젝트 외에도 물밑에서 택시, 렌터카 등 모빌리티 생태계의 기존 사업자와 협업을 모색하고 국내외 스타트업을 발굴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케이블TV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렸던 2006년, 윤 부사장은 KT에서 새로운 미디어의 성장을 예견하고 일찌감치 인터넷TV(IPTV) 사업 추진을 주도했다. 그의 예측대로 IPTV는 유료 방송 시장의 주인공이 됐다. 지난해 3월 현대차그룹에 전격적으로 합류한 윤 부사장의 시선은 미래 모빌리티 생태계를 향해 있다. 그를 만나 현대차그룹이 모빌리티 생태계에서 어떤 혁신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물었다.

현대차그룹에서 추진하는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에 대해 설명해 달라.

말 그대로 현대차그룹이 혼자 사업을 하는 게 아니라 외부와 협력해서 각종 사업을 같이한다는 의미다. 이를 위한 효율적인 방식이 지분 투자다. 현대차그룹이 미국 실리콘밸리, 이스라엘 텔아비브, 독일 베를린, 중국 베이징 등 해외 4개 지역에 세운 ‘크래들’과 서울의 ‘제로원’은 스타트업 등 외부 투자 대상을 발굴하기 위한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하지만 투자는 시작일 뿐이다. 투자를 계기로 그들과 모빌리티 분야의 새로운 상품, 서비스를 공동으로 개발하고 사업 현장에 적용할 예정이다. 아이디어로만 머물렀던 것을 구체화시켜 함께 사업화를 시도하고자 한다. 택시업계와 상생형 차량 호출 사업을 구축한 ‘KST모빌리티(마카롱택시)’와 네이버 최고기술책임자(CTO) 출신 송창현 대표가 창업해 통합 자율주행 플랫폼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코드42’ 등이 현대차그룹이 투자한 대표적인 스타트업이다. KST모빌리티와는 호출 택시 맞춤형 친환경차 보급을 논의하고 있고, 코드42와는 중장기적으로 자율주행 서비스 고도화를 위해 협업할 예정이다.

완성차 업체들은 이미 많은 부품사와 협업을 하고 있지 않나.

현대차그룹을 비롯해 완성차 업체들은 제조업 중심으로 차량을 만들기 위한 수직 계열화 형태의 협력 체계를 구축했다. 하지만 이른바 ‘MECA(모빌리티, 전동화, 커넥티비티, 자율주행)’ 시대에는 기존 협력 체계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10년 안에 차량뿐 아니라 PAV 등 다양한 이동 수단이 등장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서비스도 나타날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데이터다. 자동차 제조사인 현대차그룹은 차량을 통해 800개 이상의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지만 이것을 새롭게 가공하고 분석하는 것은 정보통신기술(ICT)의 영역이다. 현대차그룹이 기존 제조업 문법을 벗어난 협력 체계를 구축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ICT를 접목하면 구체적으로 어떤 모빌리티 서비스가 나올 수 있나.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프로바이더’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모빌리티 업체들에 서비스를 잘 추진하기 위한 솔루션을 제공해 생태계를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겠다. 차량 보유 고객에게 가장 필요한 서비스가 보험이다. 보험 상품은 그동안 보험사가 설계한 대로 판매됐다. 개인의 운전 습관과 개별 차량의 특징은 크게 반영되지 않았다. 하지만 차량이 수집한 각종 주행 데이터를 분석해 활용하는 게 가능하다면 운전자 개인 맞춤형 보험 상품을 내놓을 수 있다. 이미 보험사들과 실제 사업에 적용할 수 있을지를 논의하고 있다.

그 외 스타트업들과는 ‘차량 가계부(차계부)’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주유비, 통행료, 세차비, 수리비 등 차량과 관련한 모든 지출을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으로 간편하게 정리할 수 있도록 돕는 서비스다.

사실 현대차그룹을 비롯해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그동안 완성차를 만들어 판매한 후 차량 사후관리 서비스(AS)를 제공하는 역할까지만 했다. 반면 스마트폰 시장을 보자. 애플은 스마트폰을 만들고, 제품에 어울리는 운영체제(OS)부터 앱까지 각종 소프트웨어(SW)와 서비스를 직접 개발해 제공한다. 그래서 애플만의 공고한 스마트폰 생태계가 갖춰졌다. 이제 완성차 업체도 애플처럼 차량도 잘 만들면서 좋은 서비스를 결합하자는 게 현대차그룹의 구상이다. 차를 만들고 파는 것은 시작에 불과하고, 폐차에 이르기까지 모든 단계를 현대차그룹이 챙겨보자는 것이다.

이런 모든 노력을 현대차그룹이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스타트업 등 외부와의 협업을 추진하겠다는 점이 핵심이다. 차량을 단순히 어느 지점에서 어느 지점으로의 이동을 위한 운송 수단으로 보지 않고, 그 안에서 고객들이 쉬어가는 공간이라고 생각하면 정말 많은 신개념 서비스를 생각할 수 있다. 실제 자율주행 시대가 오면 차량 안에서 운전자도 여유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운전보다는 휴식과 여유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다. 운전자를 포함해 이동 수단 탑승객들이 내부에서 쉽게 콘텐츠를 즐기거나 쇼핑을 할 수 있도록 서비스와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우리의 중요한 사업 중 하나다. 작지만 새로운 서비스들이 고객들의 실생활에 큰 편의를 제공할 것이다. 작은 혁신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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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모빌리티 시장에서 차량 호출•공유 사업자와 택시업계 간 갈등의 골이 깊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현대차그룹은 직접 차량 호출•공유 서비스 사업을 할 계획이 없다. 대신 현대차그룹은 기존 모빌리티 사업자들과 상생하는 형태의 사업을 고민하고 있다. ‘플릿 매니지먼트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모빌리티 플랫폼 운영사들의 호출•공유용 차량에 각종 센서를 달아 손쉽게 주행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는 형태다. 쉽게 말하면 차량 호출•공유 시장에서 기업 간 사업(B2B)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현대차그룹이 그동안 택시, 렌터카 업체에 차량만 판매했다면 앞으로는 플릿 매니지먼트 서비스를 같이 묶어 제공할 예정이다. 택시, 렌터카 사업자는 현대차그룹의 플릿 매니지먼트 서비스를 통해 수집되는 운전자의 세밀한 운전 습관, 특징 등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며 효율적으로 차량을 관리할 수 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차량의 문제점을 빠르게 확인해 사고를 예방하는 것도 가능하다.ii

미국에선 현대차가 직접 차량 공유 서비스를 진행하는 것으로 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모빌리티 서비스 사업을 위한 해외 법인 모션랩(Mocean Lab)을 설립했다. 다양한 모빌리티 서비스와 기술을 실험하겠다는 취지를 담은 명칭이다. 모션랩은 올해 1월 첫 번째 시범 사업으로 차량 공유 서비스 ‘모션 카셰어(Mocean Car Share)’를 출시했다. 모션 카셰어는 한국의 쏘카나 그린카처럼 모바일 앱을 통해 시내 주요 거점에서 차량을 시간 단위로 빌려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서비스다. 모션랩은 앞으로 차량 공유 서비스인 모션 카셰어 외에도 골목길까지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전동 킥보드, 실시간 수요를 반영해 여러 목적지를 거칠 수 있는 셔틀버스 서비스 등을 LA에서 직접 운영하면서 고객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연구할 계획이다. 중장기적으로는 LA를 거점으로 개인용 항공기 등 항공 이동 서비스도 시범 운영할 예정이다. 현대차그룹 내부에서 모션랩을 ‘모빌리티 실험실’로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모션랩 설립을 두고 주변에서 왜 LA를 선택했냐는 질문을 많이 듣는다. LA는 도심 교통 체증이 심각하고 1인당 연평균 교통비가 9741달러로 뉴욕, 런던보다 높다. 그래서인지 LA 시정부는 시내 교통 체증을 해소하고 일반 시민들의 교통비를 낮추기 위한 스마트 모빌리티 사업에 관심이 많고 ICT 기반의 공유 플랫폼 확충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글로벌 모빌리티 기업들을 지원하기 위해 ‘어반 무브먼트 랩스(Urban Movement Labs, UML)’라는 협의체까지 만들었을 정도다. 현재 UML에는 LA시 산하 교통 관계 기관과 차량 호출 기업 리프트, 구글의 자율주행 전문 자회사 웨이모 등이 참여하고 있다. 현대차 역시 모션랩을 통해 완성차 업체로는 처음으로 UML에 합류했다. 향후 LA시의 지원을 받아 다양한 모빌리티 사업 관련 실험을 해본다는 목표다.

미래 모빌리티 시장에서 현대차그룹은 다른 글로벌 완성차 업체와 비교해 어떤 장점을 갖고 있나.

혼자 신사업을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글로벌 스타트업, 기존 협력업체와 함께 만들어 가려고 한다. 좋은 아이디어와 기술이 있는 곳이라면 기다리지 않고 우리가 먼저 찾아간다. 외부에서는 ‘현대차그룹이 보수적이고 딱딱한 조직이 아니냐’고 묻는다. 하지만 ICT 업계에서 현대차그룹으로 넘어와 직접 일해 보니 자유롭고 개방된 분위기가 느껴진다. 임직원들도 생존을 위해 변화해야 한다는 고민을 깊게 하고 있다. 신사업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능력도 갖췄다. 미래 모빌리티 시장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갖기 위해 신속하게 움직이고 있다.


윤경림 부사장은 서울대 경영학과를 나와 1988년 데이콤(현 LG유플러스)에 입사했다. 1997년 하나로통신(현 SK브로드밴드)으로 옮겨 마케팅 업무를 주로 담당했고 2006년 KT의 신사업추진실장으로 영입돼 인터넷TV(IPTV) 사업 활성화를 이끌었다. 지난해 3월부터 현대차그룹에 합류해 전략기술본부 산하 오픈이노베이션전략부를 맡아 국내외 모빌리티 관련 투자, 협업 등을 총괄하고 있다.
  • 차두원 | 필자는 일본자동차연구소 방문연구원, 현대모비스 연구소 Human-Machine Interface 팀장을 거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정책기획실장, 전략기획실장, 성과확산실장 등을 지냈다. 『4차 산업혁명과 빅뱅 파괴의 시대』 『4차 산업혁명과 퓨처노믹스』 『잡킬러-4차 산업혁명』 『로봇과 인공지능이 바꾸는 일자리의 미래』 『초연결 시대-공유경제와 사물인터넷의 미래』 등을 공저했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 겸임 연구원으로도 재직 중이다.
    doowoncha@kistep.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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