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를 위한 청사진을 그려라

17호 (2008년 9월 Issue 2)

베인&컴퍼니의 사모펀드 경영전략 해부’ 1회에서 강조했듯이 투자 기업의 최대 잠재치 평가에 대한 전략적 실사가 끝나면 사모펀드는 투자기간에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가 무엇인지, 그 목표에 도달하려면 어떤 핵심과제를 수행해야 하는지 파악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기업 경영진이 자사에 대한 전략적 실사를 수행했다면 회사의 역량과 잠재력을 명확히 인지할 수 있다. 그리고 회사가 최대 잠재치에 도달하기 위해 수행해야 하는 핵심 과제들도 파악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다음 목표는 선정된 핵심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청사진을 그리는 것(develop the blueprint)이 중요하다.
 
사모펀드의 청사진 개발 방법
청사진 개발 단계에서 사모펀드는 먼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핵심적인 사항을 고려한다.

― 3
5년 뒤 최대 잠재 자산 가치.
경영진과 사모펀드가 최대 잠재치 분석을 통해 선정한 핵심 대형 과제.
(핵심 과제는 35개가 일반적이며, 6개를 넘기는 경우는 드물다)

청사진은 핵심 과제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아무리 중요한 과제라고 해도 현실적으로는 투입 자원(resource)이 제한되어 있다. 또 정해진 절차에 따라 정해진 시한 내에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따라서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특정 활동과 투자를 선별해야 한다.

청사진은 한 조직이 성공적으로 과제를 완수하고 최대 잠재치를 달성하는 방안에 대해 실무적인 세부사항을 제시하는 전략적 운영계획이다. 과제별로 그린 청사진은 과제 이행에 대한 매우 상세한 로드맵을 제시한다. 과제별로 필요 활동과 자원, 일정, 진척사항, 지표, 결과물 등을 제공하는 것. 여러 과제가 상호 연관돼 있는 경우 상호관련성 및 핵심사안(critical-path issues)도 청사진에 명시된다.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사모펀드의 청사진은 전통적인 기업 전략 기획과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전략 기획은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보다 ‘무엇을 달성할 것인가’에 주로 초점을 맞춘다. 반면에 사모펀드의 청사진은 오직 필요 활동과 관련한 사항만을 제시한다. 과제를 어떻게 수행하고, 정해진 기간 내에 투자 대비 수익을 어떻게 올릴 것인가에 대해 관심을 기울인다.

호주의 침대 매트리스 제조사인 실리의 사례를 살펴보자. 실리의 핵심 과제는 주력 매트리스 상품의 디자인을 수정함으로써 기업의 지속적인 성장을 이끌고, 제조공정을 개선하며, 관련 비용을 절감하는 일이었다.

이를 위해 실리는 다음과 같은 활동이 명시된 청사진을 상세하게 개발하였다. 우선 이상적인 제품의 속성을 결정하기 위해 소매업체의 선호도 및 경쟁업체를 분석하고, 연구개발(R&D)과 생산을 포함한 디자인 변경에 따른 비용을 추산했다. 또 제품 개발 일정과 프로세스 요건을 정의하고, 제품 개발과 관련한 경영진의 역할을 명시했다. 동시에 필요한 투자와 교육을 파악하고 예상되는 생산량 증가분을 계산했다. 또 소매업체 및 제품 라인별 브랜드 출시 계획도 고려했다. 즉 어떤 브랜드에 새로운 디자인을 적용하고, 어떤 소매업체에 우선적으로 공급할 것인가를 결정한 것이다.

실리의 청사진 개발 노력은 결실을 거두었다. 새로운 매트리스 디자인은 일정대로 완료됐고, 불필요한 비용 지출을 최소화할 수 있었으며, EBI TDA(세금, 이자, 감가상각 전 영업이익)는 22% 향상됐다. 이를 바탕으로 실리는 목표로 한 고가 제품라인에 대한 재투자를 극대화할 수 있었다.
 
기업의 청사진 개발 방법
1회에서 개별 기업 입장에서 까다로운 의사결정을 내리고 새로운 과제에 사운을 걸기가 얼마나 어려운 지 언급했다. 청사진 개발 단계에서는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 소수의 핵심 과제에 집중하고 이를 실행하기 위한 행동 지향적인 로드맵을 설계해야 한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청사진이 어떤 모습을 띠어야 하는지 나름대로 개념을 정립하는 것이다. 다음 단계로 최고경영진을 한자리에 모아 집중적이고 포괄적인 기획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시간이 얼마가 소요되든 상관없다. 협력과 추진력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면 외부 인사를 영입해도 좋다. 이를 위해 어떤 자원(자금, 인력)이 필요하며 어떻게 자원을 조달해야 하는지 파악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는 기업 경영 현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동시에 현상유지를 옹호하는 사람들과 맞서는 상황도 각오해야 한다. 이 과정의 목표는 경영진에게 조사된 기업 현황과 청사진을 모두 잘 이해시켜 그들로부터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다.

마이클 카펠라스가 1999년 컴팩을 인수할 당시 컴팩은 내홍을 겪고 있었다. 그는 전체 경영진을 한 곳에 모아 기업 회생을 위한 청사진에 합의하도록 했고, 사흘 뒤 그들은 단결된 모습으로 그 방을 나올 수 있었다. 이 청사진 덕분에 회사는 회생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훗날 휴렛패커드(HP)로부터 인수 가격을 200억 달러나 더 받을 수 있었다.
 
청사진을 개발한 기업 사례
성공적인 청사진 개발을 통해 회사 수익을 크게 향상시킨 사례를 살펴보자. 미국 사모펀드인 버크셔 파트너스는 오시코시(OSHKOSH) 브랜드로 잘 알려진 미국의 아동복 회사 카터스를 2001년 사모펀드 인베스트사로부터 인수했다. 버크셔는 회사 수익성을 개선한 뒤 2006년 주식 시장에 카터스를 상장함으로써 6배를 웃도는 투자 수익을 올렸다. 버크셔가 카터스의 성과를 개선하는 데 청사진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살펴보자.(그림1)
 

 
버크셔는 인수 실사 과정에서 생산 효율성 및 재고 관리 부문에 회사 성과를 개선할 여지가 있음을 파악했다. 카터스는 원가 상승으로 인해 중국 등 해외 생산 비중이 과거 10%에서 80% 수준으로 커지면서 생산 소요 시간이 늘고 있었다. 또 수요 예측에 따른 생산이 어려워지면서 재고 관리에도 어려움이 많았다. 이에 따라 버크셔는 생산 효율성 및 재고 관리를 개선하고, 동시에 성장을 견인하기 위해 다음의 세 가지 핵심 과제를 정의했다.
-기존의 주요 고객에 대한 판매를 확대한다.
-새로운 대중 유통 채널로 진입한다.
-주요 공급업자의 역량을 꾸준히 개선한다.

다음으로 버크셔와 카터스의 경영진은 핵심 과제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활동을 상세하게 풀어놓은 계획, 즉 청사진을 주도면밀하게 개발했다.

우선 기존의 주요 고객에 대한 판매 비중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주문 생산 비중이 늘어났으며, 수요 예측이 좀 더 정확해졌다. 또한 경쟁사와 비교해 해상 및 육상 운송 등 배송 과정을 합리화할 수 있는 영역을 파악하고 개선함으로써 전체 생산부터 판매까지 소요되는 기간을 단축했고, 유통 채널의 까다로운 납기 관련 요구 사항을 충족시킬 수 있었다. 동시에 IT 시스템을 개발하고 공급업자 관리 시스템을 개선한 것은 물론 공급업자 관리를 위한 전문가를 적극 채용해 재고 수준을 대폭 낮췄다.

이러한 일련의 활동이 청사진에 의해 체계적으로 제시됨에 따라 회사는 전체 생산에서 판매까지 소요되는 기간을 기존의 15
20% 수준인 30일로 줄일 수 있었다. 또 주문 생산 비중을 기존의 30% 수준에서 60% 수준까지 끌어올려 과거 잘못된 수요 예측으로 인해 생기는 재고 수준을 75% 가량 줄일 수 있었다.
 
청사진 개발로 변화 분위기 조성
잭 웰치가 이끌던 제너럴일렉트릭(GE)이나 피터 브라벡의 네슬레 등 일부 선도 기업은 최적의 청사진을 개발하기 위한 고도의 기법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들은 예외적인 기업이며, 대부분의 기업은 청사진 개발에 어려움을 겪는다. 변화를 위한 청사진 개발 과정이 어렵거나 낯설다면 외부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편이 낫다.

청사진 개발에는 평균적으로 2
6개월의 기간이 소요된다. 이 과정에서 최초 100일 이내에 첫 번째 핵심과제를 출범시키는 데 집중해야 한다. 또 최대 잠재치를 정의하고 이에 따른 핵심과제를 추진하는 프로세스는 수년을 주기로 되풀이되기 때문에 청사진 개발은 항상 진행 중인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일부에서는 사모펀드가 태생적으로 일반 기업에 비해 변화를 추진하는 데 이점이 있다고 여긴다. 사모펀드가 기업에 투자하면 기존 조직의 틀이 깨지고, 새로운 사업 운영 모델이 적용될 것이라는 인식이 크다. 또 사모펀드가 목표 지향적이기 때문에 투자 기업은 현상을 유지하기보다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변화를 기대하는 여건이 조성된다고 본다.

일반 기업의 경영진도 이러한 변화 지향적인 분위기를 조성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청사진 개발을 통해 최고경영자(CEO)는 이러한 분위기를 순조롭게 조성할 수 있다. 특히 신임 CEO에게 청사진 개발은 조직에 변화 지향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 최초 100일 이내에 전략적 실사를 마무리하고 기업의 최대 잠재치를 정의하는 일은 신임 CEO가 조직 내에 통제 가능한 변화를 일으키고, 다른 핵심 임원과 관계를 공고히 하며, 조직 내부에서 인재를 발굴해 회사의 역량을 결집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청사진을 개발하는 일은 회사가 경쟁사에 비해 뒤처져 있다고 생각하거나, 회사의 오래된 성과 기준을 개선하고자 하는 경영진에게도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회사의 새로운 도약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내려졌다면 청사진 개발을 유용하게 활용해 보자.

[DBR TIP] 청사진 개발을 위한 과제
 
- 3∼5개의 핵심 과제를 위한 로드맵을 개발하고 이에 집중한다.
- 거시적인 관점에서 시작해 실행 가능한 상세 활동 목록 작성까지 좁혀 나간다.
- 구체적이고 실용적이어야 한다.
- 오직 사실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
- 조직 내 관심을 일으키고 공통의 목표를 추구하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 초기 청사진 개발에 2∼6개월의 기간을 투자한다

편집자주 글로벌 컨설팅회사 베인&컴퍼니가 올해 2월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출판부를 통해 출판한 저서 <사모펀드에서 배우는 기업가치 향상의 비결(Lessons From Private Equity)>을 바탕으로 ‘사모펀드의 경영 원칙’을 동아비즈니스리뷰(DBR)에 연재합니다. 우수 사모펀드들이 투자 기업의 지분을 인수한 뒤 어떻게 기업 가치를 향상시켰는지 분석하고, 일반 기업의 경영진이 기업 가치 향상을 위해 적용할 수 있는 경영 원칙을 소개합니다.
 
필자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UC버클리 Haas School of Business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베인&컴퍼니의 이사로 재직 중이며, 서울 오피스의 인수합병(M&A) 및 사모펀드 컨설팅 부문 총괄 매니저이다. 기업 인수합병 관련 프로젝트 외에 금융기관과 다국적 기업의 전사 전략 및 변화 관리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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